Otherworldly Illusion Hunter RAW novel - Chapter 85
83화. 선수(先手) (2)
“그런데 갑자기 사적제재 이야기는 왜 나온 거예요?”
심각한 얼굴의 선우연과 달리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태도를 유지하는 기려.
“아차, 아직 설명을 안 했던가? 걱정 마세요. 제가 하려는 일이 막 그렇게…. 폭력적이진 않을 텐데.”
그는 테이블 위의 재스민차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럼 일단 설명부터 드릴게요. 전 개인적으로 그곳의 신도를 세 부류로 나누고 있어요.”
“세 부류?”
“1. 단순숭배, 2. 간접세뇌, 3. 직접세뇌. 이렇게 셋.”
F급 헌터는 제 손가락을 하나씩 접으며 부연설명을 더한다.
“1번은 말 그대로 그냥 사이비 종교의 교리에 심취한 일반인이에요.”
“네.”
“후자들은 필요에 따라 적절한 인재를 세뇌시켜 억지로 이용하는 사례고.”
우물우물.
김기려는 겨를이 있을 때마다 탕수육을 집어먹었다.
그 덕분에 선우연도 한결 긴장을 풀고 질문할 수 있었다.
“2번과 3번은 정확히 무슨 차이죠?”
하지만 뒤이어 꺼내진 문장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정보였지.
“세뇌 방식의 차이요.”
“아하.”
“2번은 [유혹의 눈동자] 같은 아이템에 의존하는 반면, 3번은 어떤 각성자가 직접 손을 쓴 거니까.”
“네.”
“사람에게 세뇌된 3번이 아이템을 써서 2번을 만들고, 이 2번들이 교단에 충성하며 1번을 끌어오고. 뭐 대충 그런 피라미드 구조일 텐데…….”
잘그락.
그는 셔츠 밖으로 흘러나온 금색 목걸이를 다시 옷 안으로 집어넣으며 말을 이었다.
“저번에 그 조직 사람들을 훑어봤을 때 느낀 거지만. 이 3번들, 분명 모두 같은 인물에게 세뇌됐어요.”
“네?”
“요컨대 나찰사원에는 단 한 명의 세뇌 총괄자가 있다는 거예요.”
김기려는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충격적인 발언을 꺼냈다.
“그리고 전 그 총괄자가 누군지 알아낼 수 있고.”
만약 저 말이 사실이라면, 모든 세뇌의 중심에 있는 인물을 체포할 경우 수뇌부가 줄줄이 정신을 차리며 조직이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 거죠?”
하지만 정신 계열의 스킬은 사용자를 추적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아니, 사용자는 물론이고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세뇌 여부조차 제대로 판단하기 어려운 실정.
그런데 김기려는 어떻게…….
“영업 비밀이에요.”
아쉽게도 이에 대한 설명은 들을 수 없었다.
상대는 자신의 능력을 밝히기 꺼리는 눈치였으니 말이다.
이윽고 방 안에는 식기가 부딪치는 작은 소음만이 흘렀다.
“저기요.”
물론 뭔가를 부탁하는 처지로는, 그대로 조용히 있을 수가 없었지만.
“선우연 씨.”
“네.”
잠시 뒤.
식사를 마친 김기려는 이내 작은 목소리로 질문한다.
“어쨌든 말씀드렸던 대로 저는 그 중심인물을 검거하게 돕고 싶은 것뿐이에요.”
“….”
“그러기 위해서는 세뇌가 된 나찰사원의 신도를 만나야 하고요. 경찰과 다리를 놔줄 사람도 필요합니다.”
즉, 김기려는 현재 선우연의 도움을 간곡히 바라는 상황.
“어떻게 안 될까요?”
원래 선우연이라는 각성자는 사적인 부탁을 하기에 그다지 적절치 않은 인물이었다.
결백과 청렴.
나름의 소신을 지키고 사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이런 청탁은 거절해야 해.’
분명 머릿속으로는 그렇게 결론 내려졌건만, 어째서인지 선우연은 쉽사리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지만, 만약 이걸로 그 골칫덩이들을 정말 와해시킬 수 있다면……?’
아무리 청렴을 목표로 한다 한들 이 세상에 완벽히 공명정대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것이 바로 선우연의 약점이었다.
뇌물 등, 자신이 부정한 재물을 취하게 되는 안건에서는 단호하지만.
공공의 이득을 앞세워 설득하면 의외로 쉽게 흔들려버리는 그 이중성.
‘진짠가……?’
의협심이 강한 선우연의 입장에선 기려의 말이 너무나 유혹적이었다.
‘하긴,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는데.’
게다가 교주가 아니라 세뇌의 총책임자를 노리자는 저 계획은 상당히 지능적인 판단이었지.
단순 포교 활동은 처벌할 수가 없지만, 사람을 향해 세뇌 스킬을 쓰는 것은 확실히 커다란 위법 행위라.
‘적어도 흐지부지 끝나진 못 할 거야.’
이번에야말로 잡을 수 있다. 테러범들의 중심축을.
그래서 선우연은 오랜 고민 끝에 이런 대답을 내놓게 되었다.
“알겠어요.”
약간의 절충안과 함께.
“나찰사원에 관련된 수사에 협력하게 되면, 제가 당신을 감정사 신분으로 참가할 수 있도록 추천해볼게요.”
“아하.”
“일단 그때까지는 대기해주세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차피 이쪽도 별 대단한 이득을 얻으려 했던 게 아니고, 그냥 기회가 되면 나찰사원을 곤란하게 하고 싶었을 뿐이니까.
‘됐다!’
기려는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질문했다.
“혹시 대략 어느 정도 기다리게 될까요? 일정을 맞춰두고 싶어서요.”
그러자 선우연은 식사를 멈추고 눈을 굴렸다.
“글쎄요. 저도 일을 골라 받는 입장이 아니라 뭐라 확답할 수는 없지만…….”
이어진 것은 가벼운 어조의 대답이다.
“최대 3개월쯤?”
***
[…럼 언제가 괜찮아요? 일정 빠질 때까지 기다릴게요. ㅎㅎ] [한 3달 뒤쯤이요.]톡톡톡.
나는 엄지손가락을 능숙히 움직여 에스더의 문자에 답을 보냈다.
“배터리가 3%밖에 안 남았네.”
게다가 불가피한 사정 때문에 휴대폰을 꺼야 했을 때는, 이를 상대방에게 친절히 알리기까지.
[아무튼 지금은 답신하기가 어려우니 나중에 다시 연락 바랍니다.]실로 완벽한 예의와 격식.
앞으로도 이렇게만 나가면 분명 권력자의 심기를 거스를 일 따위는 없을 거다.
“좋아, 일단 폰은 충전해두고…….”
지구인과의 성공적인 소통이 끝난 후.
나는 다시 원룸의 책상으로 시선을 옮겼다. 오늘은 한참 중요한 작업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후우.”
고개를 돌린 책상 위에는 연필로 그린 마법진 도안이 수십 장 늘어져 있었다.
이 마법진들은 다 뭐냐고?
그거야 당연히 나찰사원을 물 먹일 때 쓸 수단들이지.
“으음.”
하지만 육체가 F급이라는 어마어마한 핸디캡 덕택에 뜻밖의 난항이 거듭됐다.
대부분의 술식을 마력 부족으로 사용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이를 어쩐다. 선우연에게는 이미 세뇌 관할자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당당히 말해버렸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은 강창호의 레드 게이트 공략 금지령이 떨어진 상태라 다른 할 일이 없다는 것인가.
“하긴, 뭐. 어차피 선우연도 한 몇 개월은 진득하게 기다려 보자고 했으니.”
좋아. 마음의 여유를 가지자.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대략 10시간 정도 밥도 안 먹고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슬슬 영양분을 공급하며 휴식을 취하는 것도…….
-♪♭~ ♬~
아, 전화가 왔네.
“여보세요?”
나는 이것만 받고 쉬자고 생각하며 곧바로 통화에 들어갔다.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신자는 바로 그 B급 헌터였으니까.
-지금 통화 가능하신가요?
그 상투적인 인사를 시작으로, 나는 한동안 선우연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네, 네네.”
통화를 할 때 쓰는 추임새를 보면 이쪽도 벌써 지구인 다 됐다 싶었지.
“네.”
뭐 아무튼.
“아, 저도 통과요? 예. 알겠습니다.”
몇 분간 이어진 통화 끝에, 선우연의 설명을 모두 듣게 된 나는 다시 휴대폰을 슬립모드로 전환했다.
그리고 그것을 바르게 충전기에 꽂아 넣으며, 한마디 했다.
“하핫, 이런 썩을!”
우리 협회 직원님께서 운이 좋게도 불과 하루 만에 나찰사원과 관련된 수사에 참가하게 됐다지 뭐냐.
즉, 나는 수사가 본격적으로 개시될 3일 뒤까지 술식 개량을 마쳐야 한다.
***
블루셸(Blueshell)이라는 물질을 아는가?
이는 식물형 몬스터가 사는 던전에서 종종 발견되는 열매로.
각성자의 능력을 일시적으로 강화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단다.
한데 그 아이템은 현재 유통이 금지된 상태였다.
부작용으로 육체의 심각한 손상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이고.
능력이 강화될 때 발생하는 특유의 고양감 탓에 높은 중독성을 보였기 때문에.
[(속보) 오는 3월, 블루셸 채집 전면금지 결정…….]결국 마약류로 규정된 블루셸.
그런데 문제는, 이 블루셸이 지금도 어느 조직폭력단에 의해 암암리에 유통되고 있다는 것인데.
“거기 단체 이름이 뭐랬죠?”
-가양파요. 가양파.
선우연이 현재 쫓고 있는 게 바로 이 가양파의 일부 세력이었다.
“음, 조폭을 체포하러 간다라…….”
그런데 이쯤 되면 당연한 의문이 떠오른다.
이 사건은 언뜻 들어서는 사이비들과 연관을 지을 수 없으니까.
“그래서 이게 저랑 무슨 상관이죠?”
나는 휴대폰을 고쳐잡고 질문했다. 그러자 B급 헌터가 특유의 단정한 목소리로 설명해주었다.
-블루셸 유통업자가 나찰사원과 큰 접촉점이 있거든요.
접촉점?
-이전에 은평구 실종 사건에서 봤던 등산객 기억나요?
아하.
여기까지만 들어도 얼추 갈피가 잡힌다.
그러고 보니 그 등산객. 확실히 입에 물고 있던 뭔가를 씹자마자 마력이 증가했었지.
“그때도 블루셸이 쓰였던 건가요?”
-네. 그 테러리스트들 쪽으로 블루셸이 대량으로 흘러 들어간 정황이 있어요. 그 물품을 큰 규모로 취급하는 건 가양파뿐인데도요.
나찰사원은 일종의 VIP 손님이란 건가.
‘확실히 서로 자주 접촉했겠군.’
경찰들은 이번 심문에서 기껏해야 테러리스트의 인상착의 정도나 물어볼 예정인 모양이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다.
“어쩌면 그 가양파 사람들 자체가 세뇌 스킬에 걸려있을 가능성이 있겠네요.”
나는 굳은 목을 스트레칭하며 통화를 이어나갔다.
“그런 거대 종교를 유지할 만큼 대단한 역량의 각성자라면 굳이 스킬을 아끼지 않을 테니.”
뚝, 뚝.
김기려의 시체가 만들어내는 성대 소리에 작은 불협화음이 섞여들었다.
“나였으면, 분명 유통책에게도 어느 정도 암시를 걸어뒀을 거예요.”
-그런가요?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도록 조금만 조정하면 얼마나 편하겠어요.”
분명 거래에 한두 푼이 움직이는 게 아닐 테니까.
“그 유통업자는 꼭 잡아줘요. 따로 확인할 게 있어요.”
이쪽이 확신을 하고 말하니 선우연도 이내 이해했다는 듯 반응했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이 사람도 참 고생이야.
헌터 협회의 정직원이라는 이유로 툭하면 국가사업에 이리저리 동원되니까.
‘가엾구먼.’
나는 상대방이 과로할까 걱정돼서 몇 마디 염려를 늘어놓았다.
-하하하.
그런데 수화기 너머의 지구인이 갑자기 얕게 웃었다. 왜지?
-생각해주시는 건 감사한데 사실 저는 하는 일이 별로 없어요. 부외자잖아요.
나는 그녀의 말을 조용히 경청했다.
언뜻 보기에는 올바른 대화의 자세 같지만, 속으로는 음험한 계산이 돌아가고 있었지.
-위험한 현장은 진짜 경찰분들이 가셨고요. 제가 할 일은 그냥 창고 수색을 입회하는 거예요.
“창고요?”
-원래는 이마저도 나와볼 일이 아니었는데, 알고 보니 블루셸 보관 창고에 결계가 있대서요.
“…!”
-그것만 깨면 오늘 할 일은 끝이나 다름없어요.
블루셸이 쌓여있는 창고라.
‘흠.’
그 물질은 각성 능력을 폭발적으로 향상해줌에도, 몸에 치명적인 손상을 준다는 후폭풍 때문에 사용이 꺼려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구인들의 관점.
신체를 수복하는 능력이 뛰어난 나라면 그 부작용도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
‘인체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궁금한데.’
게다가 굳이 직접 사용하지 않더라도.
블루셸은 마도학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어쩌면 그 미지의 열매에 내 불운을 해결할 열쇠가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오호라.’
샘플이 필요해.
하지만 한국은 블루셸 같은 물건에 민감하니 그것을 함부로 유출할 리는 없을 터.
“선우연 헌터님.”
나는 휴대폰의 마이크를 향해 넌지시 물었다.
“…. 혹시 창고 수색에 보조 한 명 더 필요하지 않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