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12
11화
-규격 외의 격(1)
양분을 바치고 기절하듯 잠들어 버린 이현은 쌓인 피로 때문에 다음날 오후가 되어서야 일어났다.
깨어난 이현이 제일 먼저 한 것은 전날 흡혈종 헌터들과의 싸움에서 희생당한 캠핑장 사람들 아니, 워킹데드의 시신을 수거하는 것이었다.
“끙!”
이현은 민아와 함께 계곡물에 떠내려갔던 워킹데드의 육신을 건져와 캠핑장 한가운데 조심히 눕혔다.
이현을 따라 하는 것처럼 민아도 시신에서 떨어져 나간 부위들을 찾아 가져왔다.
졸졸 따라다니며 그를 돕는 것이 마치 부모에게서 귀염받고 싶어 하는 아이의 모습 같았다.
“기특하네.”
몬스터가 보스를 돕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티타니아가 설명해주었지만, 이현은 그래도 민아가 대견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크륵, 크륵.”
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민아는 팔짝팔짝 뛰며 아직 남은 워킹데드의 시신들을 가지러 갔다.
“그러니까, 뇌가 파괴된 사람들은 되살릴 수 없다는 거야?”
“[시생]의 능력으로는 그래요.”
“그럼 이번에 얻은 [망자] 특성은?”
“뇌가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대로 워킹데드로 부활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그보다 더 격이 떨어지는 언데드로 부활하겠죠. 기억도 모두 잃게 될 거구요.”
이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조금만 더 빨리 힘을 얻었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그에게서 떠나질 않았다.
“또, 또 고구마 생각하고 있죠? 지금 이만큼 한 것도 얼마나 대단한 건데요!”
그런 이현을 티타니아가 혀를 차며 타박했다.
“이게 대단한 거라고?”
“임시 던전은 기본이 전멸로 시작하는 게 보통이에요.”
모든 던전은 임시 상태로 생성이 된다.
그리고 정식 던전으로 승격하기 위해선 양분이 필요했다.
때문에, 다른 행성에 게이트를 열고 식충식물처럼 헌터를 꾀어낸다.
그리고 헌터들이 던전 내부에 휘말린 생명체들을 죽이게 되고 그것을 양분으로 삼아 던전이 승격하는 것이 평범한 케이스였다.
“그런데 우리 주인님은 시작부터 헌터를 죽이고 시작했네요? 그게 얼마나 규격 외의 일인지 알아요? 그것뿐만이 아니죠!”
티타니아가 손가락을 꼽으며 이현의 규격 외 행적을 나열했다.
“던전에서 업적 받기, 총관님 만나서 계약하기, 나 같은 고오급 도우미를 배당받기!”
“중간에 뭔가 이상한 게 섞여 있는데?”
이현이 미심쩍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지적했지만, 티타니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곤 계속 손가락을 꼽았다.
“던전 내 생명체가 아닌 헌터들로 던전 승격의 양분을 채우기. 단 한 번 만에 인자를 획득하기, 던전이 승격하기도 전에 특성을 얻기까지! 이레귤러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라구요.”
티타니아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래선 칭찬하는 건지 혼을 내는 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이현은 티타니아가 규격 외를 강조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게다가 그 규격 외의 격! 그건 진짜 논외의 대상이에요. 제 도우미 생활 속에서도 단 한 번도 없던 일이에요.”
스킬의 등급을 인위적으로 승급시켜주는 힘이라는 말도 안 되는 능력에 흥분한 티타니아가 이리저리 팔랑거리며 날아다녔다.
하지만 그래봤자 본인도 영문을 몰랐기에 이현은 어깨를 으쓱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도 몰라. 나라고 뭘 알겠냐.”
“내가 알려주도록 하지.”
한 번 만났을 뿐이지만 잊을 수 없는 목소리가 이현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히이익! 총관님 오셨어요?”
이현이 티타니아의 소리에 깜짝 놀라 서둘러 뒤를 돌아보았다.
“다시 만나 반갑군.”
윤기가 흐르는 검은 정장을 입은 여인이자 그를 던전 보스로 만든 존재, 총관이 그곳에 서 있었다.
* * *
오후의 태양 아래, 어제와 마찬가지로 총관이 불러낸 테이블과 의자에 이현이 앉았다.
티타니아는 총관의 주변을 날아다니며 열심히 아부를 떨고 있었다.
“아휴, 바쁘실 텐데 총관님이 여긴 어쩐 일로 다 오셨어요?”
“자네 주인의 규격 외 행동들 때문이지. 이미 자네가 말한 대로 말이야.”
총관의 말에 티타니아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말요? 이게 총관님께서 직접 오실 정도로 큰일인가요?”
“나도 내가 연이어 같은 던전에 직접 오게 될 줄은 몰랐지.”
총관은 재밌다는 듯 이현을 힐끗 보았다.
영문을 모르는 이현은 그저 멍하니 둘의 대화를 지켜보는 중이었다.
“나중에 문책받을 일은 아니죠? 총관님, 저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다 우리 집의 고양이 아니, 던전 보스가 한 짓입니다.”
“그럴 일 없으니 자네도 가서 앉도록. 정신이 없군.”
“넵.”
수다를 떨며 총관 주변을 티타니아가 날아다니자, 총관이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티타니아는 군말 없이 바로 이현의 어깨로 날아가 착 앉았다.
그것을 본 총관의 눈꼬리가 휘었다.
“그렇게 싫어하더니 하루 만에 나름 친해졌나 보군.”
“앗! 그, 그건…….”
티타니아가 당황해서 허둥지둥하는 모습에 총관이 이현과 그녀를 번갈아 보며 슬쩍 웃었다.
전날과 다르게 좀 더 부드러워진 모습이었다.
“달라진 내 태도가 궁금한가 보군.”
“……굳이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긴장감으로 이현이 얼굴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간단해. 이제는 너도 내 휘하에 있는 인간이지. 나도 내 밑에 있는 사람을 아낄 줄 아는 상사라서.”
“입사 지원자와 사원의 차이라고 생각하면 됩니까?”
“괜찮은 비유로군.”
이현의 말에 총관이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저 골칫덩어리의 봉인을 조금이나마 풀어주었으니 더 관심을 두기로 해서.”
이현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걸 보자마자 알아냈을 줄이야.
“놀라울 것도 없어. 저 아이를 봉인한 건 나니까.”
“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저 아이가 얼마 전 선을 하나 넘었거든. 난 신상필벌은 중요하게 여기는 성격이라서.”
그렇게 말하는 총관의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이현은 어깨에 앉은 티타니아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너 대체 무슨 잘못을 한 거야?”
“그런 게 있어요. 너무 깊게 알려 하지 말아요.”
퉁명스레 대답하는 티타니아를 보니 이현은 답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분명 저 건방진 성격에 필터 없는 주둥아리를 잘못 놀리다 혼난 게 뻔하지.’
“뭐! 왜요? 으쯔라그여!”
대꾸하는 것도 얄미운 그녀의 모습에 이현은 기가 찼다.
이현은 그런 티타니아를 무시하고 총관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유능한 사원을 벌 때문에 방치해 두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 만약 네가 저 아이의 봉인을 모두 풀어낸다면, 그걸로 벌은 끝내는 걸로 하지.”
총관이 손가락을 튕기자 이현의 눈앞에 찻잔과 그 안에 담긴 파랗고 반투명한 액체가 나타났다.
방금 끓여낸 듯 김이 올라오고 청아한 향이 풍기는 음료였다.
‘이게 무슨 차지?’
생전 처음 보는 차향에 이현은 저도 모르게 식욕이 돌고 꿀꺽 침이 넘어갔다.
“저 아이의 봉인을 조금이나마 풀어 준 것에 대한 상을 주마. 안기도에서 가져온 청옥액(靑玉液)이다. 들어봤을지 모르겠군.”
당연히 이현은 처음 듣는 음료였다.
하지만 티타니아는 이름을 듣자마자 놀라서 비명을 지르며 붕붕 날아다녔다.
“엑! 이 귀한걸!!”
이현이 의아해서 티타니아를 바라보자 그녀가 숨도 쉬지 않고 설명을 시작했다.
“한 잔만 마셔도 100년의 수명을 늘리는 차에요. 몸의 노폐물을 빼주고 근골과 혈맥을 강화해주는 효과가 있어요.”
“무슨 약수터 설명이냐?”
“기왕이면 영약이라고 표현해 줄래요? 어쩜 이렇게 모르실까!”
티타니아가 기가 찬다는 듯이 이현을 타박했다.
‘그렇게 좋은 거라면…….’
이현의 눈이 아직도 시체를 주워서 가져오고 있는 민아에게로 향했다.
수명이 늘어난다면 혹시 저 아이에게도 통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였다.
그 생각을 눈치챈 티타니아가 혀를 찼다.
“죽은 자에겐 어떠한 효력도 없는 약이에요. 또 무슨 고구마 짓을 하려고.”
“아…….”
이현이 아쉬움에 탄식을 내뱉었지만, 티타니아는 이현이 쓸데없는 짓을 하도록 놔두지 않을 거라면서 콧김을 뿜어댔다.
“어서 마셔요.”
이현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눈 딱 감고 찻잔을 들이켰다.
분명 김이 나는 차였는데 한 모금 입에 넣자마자 얼음을 씹는 것처럼 이가 시려왔다.
‘으윽, 입안이 얼어붙는 것 같다.’
견디지 못한 이현이 찻잔을 다시 내려놓으려고 할 때였다.
“어딜!!”
티타니아가 부웅 날아와 찻잔이 떨어지지 않도록 이현에게 밀어붙였다.
덕분에 찻잔에 있던 모든 내용물이 이현의 입속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으으윽.”
“맛은 좀 어떤가?”
그 모습을 무심히 보고 있던 총관이 감상을 물어왔다.
이현은 저도 모르게 삼켜 버린 청옥액 때문에 동상을 입을 것 같은 속을 문지르며 얼굴을 찡그렸다.
“얼음덩어리를 삼킨 느낌인…….”
쿵!
말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이현은 정신을 잃고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았다.
* * *
테이블 위에 머리를 박고 있는 이현의 뒤통수를 내려 보며 총관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역시 기절했군.”
“보통 영약이 아니니까요. 참나, 기연도 못 알아보고 불평하기는.”
“너도 마실 테냐?”
“주신다면 감사히 마실게요!”
티타니아의 날개가 흥분으로 파닥거렸다.
청옥액은 인간에게는 영약이지만, 지구의 존재가 아닌 티타니아나 총관에게는 좋은 음료에 불과했다.
그래도 그 뛰어난 향과 맛으로 인기가 많은 음료이기도 했다.
“보아하니 규격 외의 일들만 저질렀던데. 네가 보기엔 어떤 것 같지?”
손가락을 튕겨 청옥액 두 잔을 내온 총관이 티타니아와 티타임을 즐기면서 질문을 해왔다.
“다른 건 넘어갈 만한 일들이에요. [최초의 살해자] 업적이나 헌터를 모조리 죽이고 던전을 승격시키는 일이 없던 건 아니니까요.”
티타니아는 어깨를 으쓱했다.
던전의 역사는 오래되었고, 별의별 일들이 있어 왔다.
크게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규격 외의 격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건 정말 듣도 보도 못한 상황이에요.”
“그럴 테지. 하지만 그가 그 힘을 가진 최초의 보스는 아니지.”
“네?”
티타니아의 놀란 목소리를 들으며 총관은 쓰러져 있는 이현을 쳐다보았다.
“던전의 보스가 죽으면 던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말해 봐.”
“보스와 몬스터 모두가 사망하고 던전에 흡수되지요. 그리고 그걸 기반으로 새로운 던전 보스가 생겨나구요.”
“그렇지. 그러면, 격이 사라져 소멸하는 몬스터는 어떻게 되지?”
티타니아는 이번에도 바로 대답했다.
“격이 소멸하면 말 그대로 아무것도 남기지 못해요. 영혼도, 육체도, 어떠한 에너지도 없이 사라져 버리죠.”
“답이 나왔네.”
“네?”
학생의 답을 기다리는 교사처럼 총관은 티타니아의 대답을 조용히 기다렸다.
머리를 감싸 쥐며 고민하던 티타니아는 머지않아 정답을 알아내었다.
“격의 소멸로 사라지는 던전 보스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가요?”
“정확히는 격의 양도로 인한 소멸이지. 격의 양도가 보스만의 능력이니 틀린 것은 아니군.”
그러니 없을 수밖에.
티타니아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이현을 바라보았다.
“아주 호구 중의 호구, 멍청이 중의 똥 멍청이들만 얻는 능력이었네요.”
자신이 소멸할 걸 각오하고 몬스터에게 모든 격을 넘겨주는 멍청이가 세상천지에 얼마나 될까?
“던전의 입장에선 보스가 소멸하면 새로운 보스를 만들어 내야 할 테지.”
“하지만 격의 소멸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구요.”
“그래. 던전 보스를 잃을까 봐 두려워진 던전이 억지로 시스템의 힘을 끌어와 부여한 게 규격 외의 격이다.”
시스템에 속해 있는 스킬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던전에 속한 자의 상태를 바꾸는 시스템의 힘. 그것이 규격 외의 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