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13
12화
-규격 외의 격(2)
눈을 뜨자마자 이현이 맡은 냄새는 구린내였다.
그것도 한여름 땡볕에 방치된 공중화장실 정화조에서나 날법한 역한 냄새.
“으악, 이게 뭐야.”
“뭐긴 뭐예요. 다 주인님 몸에서 나온 찌꺼기들이죠.”
“그게 무슨 소리야?”
티타니아의 말에 이현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오물 하나 묻은 것 없이 기절하기 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감사히 여겨요. 총관님이 서비스라고 다 제거해주고 가셨어요. 물론 냄새는 한동안 좀 나겠지만.”
티타니아가 있지도 않은 코를 막는 시늉을 하며 키득거렸다.
이현은 그제야 총관도, 그녀가 불러낸 테이블과 의자도 모두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이현은 바닥에 앉은 채로 이게 꿈인가 싶어 눈만 껌뻑거렸다.
“청옥액을 마신 덕분에 주인님 몸속이 싹 청소된 거예요. 이제 주인님의 몸은 벌모세수까지는 아니더라도 갓 태어난 아기 때처럼 지고지순한 몸이 된 거죠.”
“알아듣게 좀 이야기해줄래?”
“간단히 말해 이제 주인님은 마나도 기도 오러도 모두 쉽게 배울 수 있는 몸이 된 거예요! 기연이죠!”
이현은 티타니아가 말하는 걸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몸이 대단히 가볍게 느껴지고 상쾌해졌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냄새가 지독하다는 것만 빼면 정말 최곤데? 진짜 좋은 거였나 보네.”
“제가 그렇다고 이미 말했잖아요. 이제 몸 깨끗해졌으니 앞으로 술이나 담배 같은 건 할 생각도 말아요.”
“뭐래, 원래도 안 했거든?”
이현은 기가 차서 부모님도 안 하는 잔소리를 하는 티타니아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총관님은 왜 오셨던 거래?”
“뭐 때문이겠어요. 규격 외의 격 때문이죠.”
티타니아는 던전 시스템에 관련된 부분은 빼고 이현에게 총관의 설명을 그대로 전달했다.
던전 시스템은 민감하면서도 복잡한 시스템이었다.
이현이 함부로 건드렸다간 어떤 영향이 미칠지 몰라 총관은 그에게 알려주는 것을 금지했다.
다행히 이현은 큰 의문을 가지지 않고 넘어갔다.
“결론은 마음대로 써도 큰 문제가 없는 힘이라 이거지?”
“네. 드물다 뿐이지 사용을 금지할 정도는 아니래요.”
“합법적으로 쓸 수 있는 일종의 버그라…….”
이현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마음껏 써주는 게 도리 아니겠어?”
* * *
이현이 냄새나는 몸을 씻고 대충 저녁을 먹고 나자 이미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수도나 전기를 계속 쓸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것들도 던전의 구성품이 된 거니깐, 던전이 사념 에너지로 계속해서 구현화 시키는 거예요.”
던전이 생기면서 수도시설이나 전력을 공급하는 시설은 외부와 단절되었다.
하지만 던전이 자체적으로 그것들을 복구하면서 이현은 전과 다름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래도 냄새는 안 가시네.”
“27년간 몸에 쌓인 노폐물 냄새인데 그게 금방 사라지겠어요?”
“새삼 충격이다. 내 몸속에서 이렇게 구린 게 나올 줄은 몰랐어.”
캠핑장의 세면장에서 몸을 꼼꼼하게 씻어냈는데도 사라지지 않는 냄새에 이현은 좌절했다.
이현은 할 일 없이 놀고 있던 민아를 데리고 던전의 핵으로 향했다.
“많이 변했네.”
던전의 핵에서 자라고 있는 던전수는 그새 또 모습이 변해있었다.
커다란 이현의 잎 외에도 작은 잎들이 줄기 곳곳에서 자라고 있었다.
거기에 던전수 중간에서 가느다란 가지 하나가 손가락 길이 정도로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이게 [망자] 특성의 가지라고?”
“네. 아직은 작은 가지지만 던전수가 자라면서 특성의 가지도 굵어질 거예요. 파생 가지도 생기겠죠.”
“파생 가지?”
“특성에 관련된 던전 스킬이나 아이템을 생산해내는 가지에요.”
던전수는 자라면서 몇 개의 던전 특성을 획득하고 그것이 던전의 특색을 좌우하게 되는 거라고 티타니아가 덧붙였다.
그리고 특성에서 파생된 스킬과 능력은 던전 보스들이 쓸 수 있는 [던전 스킬]이었다.
“보통은 정식 던전으로 승격하기도 전에 특성을 획득하는 일은 없지만요. 이건 정말…….”
“그래, 그래. 규격 외라 이거지? 그래서 이걸로 할 수 있는 게 뭔데?”
당장 이현에게는 던전을 운영하는 데 [망자] 특성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했다.
본인이 규격 외인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실감이 나지 않기도 했고.
“아직 파생 가지가 뻗은 게 아니라서 크게 쓸만한 건 없어요. 던전 승격이 완료되어서 던전수가 더 성장하면 모르겠지만요.”
“당장 쓸 수 있는 건 뭔데?”
“음, [망자의 땅]이라는 스킬이 생겼네요. 주인님도 직접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티타니아의 말에 이현은 분석의 안약을 눈에 넣고 던전수를 살폈다.
「던전의 나무(F)
상태 : 모종
◆ 특성 [망자]
– 죽은 자를 일으켜 사역한다.
– 스킬 : [망자의 땅]
◆ 다음 성장까지의 양분
– 성장 중. 남은 시간(92:11:25)」
「[망자의 땅]
– 던전 일부를 언데드 계열 몬스터를 생산하고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해주는 공간으로 만든다.
– 망자의 땅으로 지정된 곳에서는 생명을 가진 존재들의 힘이 약화 되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 던전수가 가진 격과 등급에 따라 지정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진다.」
일반 스킬과 달리 던전 스킬은 등급이 없는 대신 던전수의 격과 등급에 영향을 받는 듯했다.
[시생]의 업그레이드판 스킬이라고 할 수 있었다.“망자의 땅을 설치하고 거기에 시신을 묻으면 언데드 몬스터가 되어서 부활하는 스킬이구나?”
“네. 다만 시신의 상태에 따라 언데드의 격이 달라진다는 건 기억하죠?”
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캠핑장 한구석에 모셔놓은 사람들의 시신 상태를 떠올리자 마음이 착잡해졌다.
‘헌터들과 싸우면서 너무 손상이 심해졌어.’
이미 혈액은 물론이고 심장과 내장 일부를 잃은 이들이었다.
거기에 이번에는 뇌까지 잃은 이들도 많았다.
흡혈종 헌터의 리더가 가진 사격술이 뛰어났기 때문에 머리를 관통당해 쓰러진 워킹데드들이 많았다.
‘아마 다시 워킹데드로 부활 가능한 이들도 몇 되지 않을 테지.’
이현은 입안이 썼지만,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었다.
“가자. 스킬도 확인할 겸, 설치까지 끝내고 시신도 묻어드리러.”
이현은 동굴에서 나와 민아와 함께 캠핑장 인근의 공터로 향했다.
망자의 땅을 설치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여기쯤이 좋겠네.”
이현은 망자의 땅을 캠핑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설치하기로 했다.
망자의 땅이 산 자에게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었다.
산 자라곤 이현밖에 없었지만, 던전 보스인 이현에게 악영향이 미치는 것은 문제가 컸다.
“여기에 빙의해 봐.”
이현이 다른 사람이 챙겨온 듯한 야전삽에 티타니아가 사물 빙의하자 아티팩트까지는 아니었지만 훌륭한 삽이 되었다.
“에휴, 나 같은 훌륭한 도우미가 삽질 아니, 삽이 되어야 한다니.”
“삽질은 내가 하는 거고.”
꾹꾹.
자신의 바지를 잡아당기는 손길에 이현이 돌아보니 민아였다.
민아는 야전삽이 빛을 내며 대형 삽으로 변신하자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관심을 보였다.
‘마법 소녀처럼 보였으려나?’
이현이 웃으며 가지고 놀라고 삽을 건네주자 민아는 신이 나서 삽을 휘두르며 달려 나갔다.
“아야야! 살살 휘두르지 못해요? 이 꼬맹이가!”
“크륵!”
이현은 직접 땅을 팔 예정이었지만, 민아가 삽이 마음에 들었는지 놓으려 하질 않았다.
“그럼 민아가 땅을 파볼래?”
“크륵!”
맹렬히 고개를 끄덕인 민아가 삽으로 열심히 땅을 파기 시작했다.
삽질이 어설펐지만, 힘이 세서 그런지 순식간에 깊은 구덩이가 생겨났다.
“아프다니깐요! 살살해요, 이 꼬맹이! 주인님, 이거 아동 착취인 거 알죠? 빨리 말려요!”
“보기 좀 그렇긴 하네.”
이현은 결국 민아를 달래어 자신이 다시 삽을 잡았다.
이미 민아가 깊게 파놓아서 이현은 구덩이를 넓히기만 하면 되었다.
구덩이 작업을 완료한 다음에는 민아와 함께 시신들을 날랐다.
‘여기에 민아의 부모님도 계시겠지.’
시신의 훼손이 심각한 상태라 누가 민아의 부모님인지는 구분할 수가 없었다.
민아도 딱히 부모의 시체를 알아보는 일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시체를 나를 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이현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한 분이라도 더 격이 높게 부활하셨으면 좋겠네.’
이현은 시신들의 상태가 조금이라도 덜 상하도록 조심스레 시신을 구덩이 속에 뉘었다.
그리고 시생의 힘을 담은 흙을 그 위로 뿌리고 구덩이를 다시 덮었다.
“[망자의 땅]”
이현이 그곳을 망자의 땅으로 지정하자마자 갈색이었던 보통 흙이 짙은 보라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구덩이 주변에는 이상한 한기가 맴돌기 시작했다.
“산 자가 약화된다더니 으슬으슬 몸이 아파지는 기분이네.”
이현은 소름이 돋는 팔뚝을 문질렀다.
민아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지만, 이현은 근처에 있기만 해도 기운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빨리 가죠.”
“그래.”
이현은 마지막으로 그들이 조금이라도 더 격 높은 몬스터로 부활하길 빌며 그곳을 떠났다.
* * *
“그러고 보니 이게 있었지?”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온 이현은 전날 거머리가 놓고 갔었던 헬멧과 소총을 꺼내 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소총은 민아가 들고 도망친 거였지만.
“이 총은 대체 어떻게 쏘는 거지?”
다른 흡혈종 헌터들의 총처럼 거머리의 총도 탄창도 보이지 않고 노리쇠나 탄피 배출구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매끈한 총신에 개머리판, 그리고 방아쇠가 전부였다.
“티타니아, 뭐 아는 거 있어?”
“아뇨? 없는데요?”
너무나도 당당한 그녀의 대답에 이현의 눈이 한심하다는 듯이 바뀌었다.
그러자 티타니아가 발끈했다.
“전 도우미예요. 던전 밖의 일은 잘 모르는 게 당연하죠.”
“그렇다고 던전 안의 것도 잘 아는 건 아니잖아?”
“우쒸! 팩트 폭력을 멈춰주세요!”
티타니아도 잘 모른다면 분석안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현은 분석의 안약을 눈에 넣고 잠시 고통을 참아냈다.
「단단한 모듈러 헬멧」
“이건 그냥 헬멧이네.”
쓰면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할 수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냥 단단한 헬멧이었다.
이현은 다음으로 흡혈종 헌터의 소총인 마혈소총을 살펴보았다.
「수제 마혈소총(F)]」
“어?”
헬멧과 달리 소총은 일반 물건이 아니었다.
F급이었지만 스킬이 붙은 아티팩트였다.
이현은 눈을 비비고 다시 마혈소총을 바라보았다.
「수제 마혈소총(F)
– 총기 장인이 수제로 만든 마혈소총. 정확도가 높고 잔고장이 없다.
– 스킬 : [명중(F)]
– 특이사항 : [혈액 구속] 스킬이 없을 시, 사용 불가.」
“왜 그래요?”
티타니아의 질문에 이현은 자신이 본 내용을 설명해주었다.
아티팩트라는 사실에 잠깐 놀랐던 티타니아는 특이사항을 듣고는 고개를 저었다.
“빛 좋은 개살구네요. 그 스킬이 없는 이상 죽었다가 깨어나도 못 써요.”
“다른 방법이 없을까?”
이현은 솔직히 아쉬웠다.
만기 제대한 대한민국 남자치고 총 안 써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앞으로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총기는 이현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줄 터였다.
“애초에 흡혈종들만 쓰도록 만들어진 무기에요. 흡혈종이 되지 않는 이상 못 써요.”
티타니아의 단호한 대답에도 이현은 아쉬운 지 몇 번이고 총을 들었다 놨다 했다.
사물 빙의의 진화 효과 없이도 아티팩트인 물건은 이 총이 처음이었다.
지금도 F급이라지만 아티팩트인데, 티타니아가 빙의하면 얼마나 더 강해질까?
‘어떻게든 쓰고야 만다.’
이현은 밤늦게까지 총기를 만지작거리며 열의를 불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