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153
152화
-습격(4)
한편, 해수면으로 떠오른 배 위에서 이아코스는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왜 그래?”
네레우스가 준 배 덕분에 바닷물에 젖지는 않았지만, 바닷바람이 부는 바닷가에 있는 것만으로도 쌀쌀했다.
이현의 물음에 이아코스는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다만, 불안한 표정은 여전했다.
“현, 빨리 가야 할 것 같아. 바다의 노인께서 하신 말씀이 마음에 걸려.”
이아코스의 불안한 목소리에 이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예지의 신이 직접 한 경고를 흘려들을 생각은 없었다.
“이리 와, 가는 시간을 단축하자.”
이현이 이아코스의 손을 잡고 강화 스킬을 걸어주었다.
사념 에너지가 몸에 스며드는 느낌에 이아코스의 눈이 크게 떠졌다.
“현, 이건 뭐야?”
몸에 넘치는 힘에 신기해하는 이아코스에게 이현은 강화 스킬을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배에서 내리는 즉시 달리는 거야. 알겠지? 나진 씨도요.”
이현의 말에 이아코스와 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에요. 갑시다.”
배가 해안가에 닿자마자 셋은 배에서 뛰어내려 실레노스의 집으로 내달렸다.
* * *
세멜레는 자신의 앞을 막아선 리코스의 모습에 눈을 크게 떴다.
“너, 그 모습은 뭐야? 그런 승격이 존재해?”
이노로 변장했던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보다 승격으로 변한 리코스의 모습이 그녀를 더 놀라게 했다.
에키드나도 오피디온도 아닌 제3의 승격의 형태.
‘이런 자가 있었나?’
세멜레의 눈동자가 당황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분명 그녀가 이노로 변장했을 때, 이현 일행 중에 승격자는 보이지 않았었다.
‘그 환자!’
디르케도, 두 인간도 아닌 사우레노르라면 병에 걸렸다는 그자밖에 없었다.
‘저 승격을 감추기 위해서 위장하고 있던 거였어.’
그리고 세멜레는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그 인간은 승격의 비밀을 알고 있었구나!’
던전에 사절로 갔던 하인이 봤던 존재가 바로 눈앞에 있는 리코스이리라.
세멜레는 그 사실을 깨닫자 비밀을 알고 싶은 마음에 꼬리가 뻣뻣해질 정도로 흥분했다.
그녀가 참지 못하고 몸을 꿈틀거릴 때였다.
“그걸 왜 네가 가지고 있는 거냐!”
세멜레의 팔에 들려 있는 부화함을 확인한 리코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과 디르케의 알이 담긴 부화함이 적의 손아귀에 들어가 있었다.
“부화함을 돌려놓아라.”
리코스는 온몸을 떨며 분노했다.
그에게서 쏟아져 나오는 분노의 격을 확인한 세멜레가 잠깐 몸을 움찔할 정도였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그 격을 받아넘긴 세멜레의 눈은 초승달처럼 휘어 있었다.
“더 다가오지 않았으면 좋겠네. 알이 깨져 버릴지도 몰라?”
쉬시식.
그녀의 뱀 같은 혀가 허공을 핥았다.
“알 속의 아이가 겁내는 소리가 안 들려?”
리코스와 디르케의 소중한 알.
그 알이 들어가 있는 부화함이 범인의 다른 팔에 껴 있었다.
“알에 조금이라도 해가 간다면 네 사지를 찢어주마.”
리코스가 범인을 보며 으르렁거렸다.
승격자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전혀 겁을 먹지 않고 오히려 평온해 보이는 목소리로 대꾸해왔다.
“그럴 수는 없겠는데?”
리코스는 분노로 터질 것 같은 머릿속을 간신히 차갑게 식히며 세멜레의 의중을 파악하려 애썼다.
“그 알을 왜 가져가려는 거지?”
“글쎄?”
리코스의 거듭된 질문에 세멜레가 재밌다는 듯 키득댔다.
사실, 그녀에게 그 알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당장 떨어뜨려 깨진 알 속의 난황이 흙바닥을 적셔도 안타까운 감정 하나 생기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이현을 쥐고 흔들 약점이 된다면?
세멜레는 그 알이 같은 무게의 황금보다도 가치 있게 보였다.
“난 너희들에 대해 아주 궁금한 게 많거든? 이게 아주 좋은 거래 조건이 될 것 같네.”
한쪽 팔에 낀 알을 세멜레가 장난스럽게 흔들었다.
“당장 그만두지 못해!”
리코스가 분노의 고함을 질렀지만, 당장에라도 알을 떨어뜨릴 수 있는 세멜레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런 리코스를 보며 세멜레가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마음 같아선 너를 붙잡고 승격의 비밀을 털어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말야.”
뱀의 혀를 날름거리며 세멜레가 아쉬워했다.
하지만 더 확실한 정보를 쥐고 있는 자가 있는데 굳이 차선을 택할 이유는 없었다.
“네 주인에게 전해.”
세멜레가 알을 품에 안은 채로 뒷걸음질 쳤다.
“옹케스토스의 왕궁으로 혼자 올 것. 그러면 알을 무사히 돌려줄게.”
“말도 안 되는 소리!!”
리코스가 주인을 위기에 빠뜨리려는 세멜레의 속셈을 잃고 분개해 소리쳤다.
하지만 세멜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부화함을 흔들어 보일 뿐이었다.
“만약 다른 누군가와 함께 오거나 오지 않는다면, 말 안 해도 알지?”
으드득.
리코스가 으스러져라 쥔 주먹에서 끈적한 피가 흘러나왔다.
지금 당장에라도 주인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세멜레를 단숨에 으깨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러는 순간 디르케와 자신의 알이 박살 나리라는 걸 알기에 리코스는 분노를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왕궁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부화함을 가지고 유유히 떠나는 세멜레를 리코스는 그저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
* * *
“후우우.”
깊이 들이마셨던 숨을 내쉬며 감겨있던 세멜레의 눈이 떠졌다.
“또 한 걸음 내디뎠어.”
입가에 차오르는 미소를 감출 수가 없었다.
“아름다워.”
세멜레는 손을 눈앞으로 들어 올렸다.
그녀의 손은 예전처럼 붉은 오렌지색을 띠지 않고 탁하게 물들어 있었다.
이대로만 격이 오른다면 곧 그녀의 별명은 붉은 뱀이 아니라 검은 뱀으로 불릴지도 몰랐다.
“좀 더 확인을 해봐야겠는걸?”
세멜레는 칼을 꺼내어 손가락 끝을 찔렀다.
그러자 그녀의 비늘 색보다 더 탁한 검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치지익!
핏방울이 떨어진 바닥의 카펫에서 독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녀의 피가 독으로 물들었다는 증거였다.
“그냥 새로운 승격의 형태를 본 것만으로도 이렇게 격이 오르다니.”
세멜레가 몰려드는 환희로 몸을 떨었다.
몇 년을 수련해도 독 숨결을 쓰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리코스를 본 것만으로 한 단계 더 승격에 다가갈 수 있었다.
“정말 탐이 나, 그 인간.”
세멜레는 한층 더 뱀과 같아진 혀를 날름거리며 이현이 한시라도 빨리 찾아오기를 바랐다.
똑똑.
그래서일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세멜레의 얼굴이 순간 환해졌다.
“누구?”
“왕이오.”
“쳇, 방해꾼이 왔네. 들어와요.”
하지만 곧 들려오는 목소리는 그녀가 기다리던 상대의 것이 아니었다.
‘이젠 숫제 훼방꾼 취급이군!’
밀려드는 모욕감에 왕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세멜레의 방으로 들어왔다.
“부탁한 대로 왕궁의 수비대에 말을 해놓았소.”
새벽녘에 옆구리에 알을 끼고 돌아온 세멜레는 당당하게 왕의 침소로 쳐들어갔다.
왕은 기겁하고 놀랐지만, 세멜레는 그런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말만 했다.
“이 알을 되찾으러 무서운 인간이 올 거예요. 수비대보고 막지 말고 보내 주라고 해요.”
왕의 침소에 함부로 들어오는 것도 모자라선 이젠 자신의 개인 병력도 멋대로 동원하는 무례라니!
하지만 숨결 하나에 당장이라도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세멜레 앞에서 왕은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세멜레! 당신이 아무리 에키온 가문의 가주라 하더라도 이건 도가 지나쳤소!”
왕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세멜레가 재밌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 분명 잘 알아들은 것 같았는데, 모자랐나 보네요?”
세멜레가 당장이라도 훅하고 숨결을 내뱉으려고 하자 왕의 시종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왕 역시 사색이 되어 뒷걸음질 쳤다.
“내, 내가 잘못했소!”
“흥! 진작에 그럴 것이지.”
기대했던 인간이 아니라서 가뜩이나 실망했는데 왕이라는 작자가 이런 식으로 나오니 세멜레는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즉, 꺼지라는 소리였다.
“…….”
하지만 세멜레의 그 모습을 보고도 왕은 떠나지 않고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어요?”
“……찾아온다는 자가 정말 인간이오?”
“그런데?”
“제길.”
두려운 표정을 짓는 왕의 모습을 보고 세멜레는 언뜻 스쳐 들었던 풍문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런 예언이 있었지?”
재밌다는 표정으로 키득대는 세멜레의 태도에 왕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졌다.
무릇 권력을 잡은 위정자에게 가장 궁금한 것은 무엇일까?
자신의 삶이 어떻게 끝나는지에 대한 의문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옹케스토스의 왕 역시 왕위에 오르자마자 예언의 신에게 사람을 보내어 신탁을 청했었다.
‘눈매가 무서운 인간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사우레노르도 아니고 인간이라니!
예언을 듣고 대경실색한 왕은 도시 내의 눈매 매서운 인간을 모조리 잡아 죽였다.
치욕스러운 내용과 그 우스꽝스러운 행동 때문에 옹케스토스 왕의 예언은 호사가들의 입에서 자주 오르내렸었다.
“그러고 보니 그 인간의 눈이 매서웠던가?”
세멜레는 한때 동행하면서 관찰했던 이현의 눈매를 떠올렸다.
하지만 하찮은 인간에게 관심이 없던 그녀였기에, 이현의 눈매가 매서운지 아닌지 구분하는 건 무리였다.
“……그걸 좀 자세히 말해보시오!”
“걱정하지 말아요. 그 인간이 어떻게 날뛰든 내가 붙잡을 거니까.”
“혹시 모르는 일이잖소!”
세멜레는 예언 때문에 안달복달하는 왕을 보면서 비웃음을 흘렸다.
“그러면 가서 병력을 더 보강하든가. 내가 들여보내랬지, 언제 목을 내놓으랬어요?”
모름지기 위대한 전사라면 자신의 몸뚱이 정도는 스스로 지킬 줄 알아야 했다.
‘저 부실한 몸으로는 방패 하나 들기도 힘들겠지만.’
세멜레는 서둘러 병력을 보강하러 돌아가는 왕의 불룩한 배와 빈약한 팔다리를 보고 코웃음을 쳤다.
“흥! 시간 낭비했네.”
세멜레는 왕 따위에 시간을 빼앗긴 게 아깝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얼른 와. 기다리기 힘들잖아.”
한시라도 빨리 이현이 와서 그녀에게 승격의 비밀을 알려줬으면.
세멜레는 기대감에 몸을 부르르 떨며 기뻐했다.
* * *
서둘러 달려온 이현 일행은 격렬했던 싸움의 현장을 발견했다.
그 흔적은 실레노스의 집 앞까지 이어져 있었다.
“세상에, 이런…….”
나진은 곳곳에 널려 있는 주검들과 핏자국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현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 입안이 바짝 말랐다.
‘무슨 일이 벌어졌구나.’
하지만 제일 놀란 건 이아코스였다.
“주인어른!”
“기다려. 위험하니 내가 확인해볼게.”
이아코스가 서둘러 집안으로 뛰쳐들어가려 했지만, 이현이 서둘러 말렸다.
이제 이아코스는 단순히 강함의 비밀을 파헤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보호해야 할 대상이었다.
이현은 이아코스를 나진에게 맡긴 후 자신이 먼저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디르케를 발견했다.
“디르케!”
“……보, 보스.”
숨을 헐떡이는 디르케의 모습이 범상치 않아 보여 이현은 서둘러 분석의 안약을 넣고 그녀를 보았다.
「상태 이상 : [중독]」
분석안으로 디르케의 상황을 파악한 이현의 미간이 좁혀졌다.
‘독이라고?’
하지만 이유를 파악하는 것보다는 치료가 먼저였다.
이현은 서둘러 품에서 [마스티하의 눈물]을 꺼내 들었다.
“얼른 이것부터 먹어.”
이현의 품에서 약을 삼킨 디르케의 표정이 한결 편해지며 잠을 자듯 정신을 잃었다.
분석안으로도 [중독]의 상태 이상이 해제된 걸 확인한 이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제가 답해드리겠습니다.”
이현의 혼잣말에 대꾸한 건 저택에서 나온 리코스였다.
“리코스? 설마 그건……?!”
리코스가 품에 안고 나온 사우레노르를 본 이현이 숨을 들이켰다.
사지와 꼬리를 축 늘어뜨린 실레노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