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183
182화
-벌레 신(2)
눈앞에 적들이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제우스는 여전히 여유가 넘쳤다.
“흥, 그래 봤자 벌레들일 뿐이다.”
그들에게 타르타로스의 죄수를 넘기고 쫓아내겠다며, 제우스는 홀로 우주 밖으로 나갔다.
“크, 큰일이다.”
협상을 하러 지구 밖으로 나갔던 제우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새파래진 채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에요, 아버지?”
현명하고 용감한 아테나가 자신의 부엉이를 쓰다듬다가 놀란 제우스를 걱정하며 물었다.
제우스는 잔뜩 겁에 질린 채였다.
“그 걸신들린 놈들. 타르타로스의 죄수들만으로는 요깃거리도 되지 않는다며 협상을 거부했다.”
제우스의 말에 헤라가 눈살을 찌푸렸다.
“탐욕스러운 것들. 그래서 어쩌신 거예요? 그냥 돌아오신 건가요? 자랑스러운 그 번개로 혼쭐을 내주시지 그랬어요.”
헤라의 타박에 제우스가 헛웃음을 흘렸다.
“번개? 흐흐흐, 번개는 이제 없어.”
“네? 그게 무슨……. 여보!”
그제야 제우스의 한쪽 팔이 사라졌다는 걸 깨달은 헤라가 비명을 질렀다.
“우리는 그들의 상대가 되지 않아.”
제우스가 허전해진 팔을 움켜잡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벌레 신의 사제라는 그 거대한 존재가 번개의 창 아스트라페를 든 그의 손을 통째로 먹어 치우는 건 한순간이었다.
“어서 치료를! 아테나, 어서 아폴론을 아니, 아스클레피오스를 데려오거라!”
“그럴 때가 아니다.”
제우스는 수척해진 얼굴로 의술의 신을 불러오려는 헤라와 아테나를 말렸다.
“당장 12신을 모두 소집해라. 아이기스를 작동시켜야 한다.”
단 한 번도 작동된 적 없었던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최후의 보루.
아이기스.
페르세우스가 바친 메두사의 머리로 장식한 아테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방패.
하지만 실제로 아이기스는 하나가 아니었다.
제우스가 가진 아이기스, 대(大)아이기스.
그것은 지구 전체를 감쌀 수 있는 행성용 방패였다.
정확히는 신들의 힘과 격을 희생해 펼치는 에너지 차폐막에 가까웠다.
지금 제우스는 그걸 펼치자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여보, 그건…….”
헤라가 난색을 보였다.
대아이기스는 펼치는 것만으로도 신들의 격과 힘을 무지막지하게 소모하는 장치였다.
이제 모든 전쟁이 끝나 편히 격의 상승을 도모할 시기였는데 이런 희생이라니.
헤라뿐만 아니라 아테나도 난감해하는 표정이었다.
“지금 내 말이 안 들려? 가서 준비해!”
하지만 제우스는 막무가내였다.
정확히는 겁에 질려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상태였다.
그런 제우스를 달래려 아테나가 서둘러 그의 남은 팔을 잡았다.
“어머니 말이 맞아요, 아버지. 너무 시기상조가 아닐까요?”
“닥치고 하라는 대로 해!”
“악!”
아테나가 제우스가 휘두른 팔에 내동댕이쳐졌다.
“아, 아버지?”
이런 취급을 받아본 적이 없는 아테나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레스와 달리 그녀는 항상 사랑받는 딸이었다.
그런 아테나를 씹어먹을 듯 노려보는 제우스의 모습에 헤라마저 숨을 죽이고 입을 열지 못할 정도였다.
“차라리 전쟁을 하자던 아레스가 낫구나.”
“아버지!”
앙숙인 아레스를 칭찬하는 말에 아테나가 발끈했지만, 제우스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실성한 듯 비웃음을 흘렸다.
“아닌가, 그놈은 멍청하게도 맞서 싸우자고 주장했으니. 모두 멍청이야! 모두 우물 안의 개구리라고!”
제우스는 흐느끼듯 웃으며 아이기스를 작동시키러 올림포스 신전 깊숙한 곳으로 떠나 버렸다.
그 모습을 헤라와 아테나는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대체 무슨 영문으로 아버지가 저렇게 겁에 질리신 걸까요?”
“크로노스를 비롯해 어떤 적 앞에서도 저런 모습을 보이신 적이 없었단다.”
놀람이 가시자 헤라도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우선 저분의 말대로 12신을 소집하도록 하자꾸나. 아니, 가서 포세이돈과 하데스도 부르도록 해라.”
헤라의 말에 아테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제우스의 말이 거짓 없는 진실이라면, 올림포스가 아닌 지구 전체의 위기가 될 테니까.
* * *
오랜만에 모든 신이 모인 올림포스는 북적댈 만도 했지만, 잡담 하나 없이 고요했다.
그 이유는 초조한 채 하나 남은 팔의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제우스의 모습 때문이었다.
“동생이여, 무엇을 그리 무서워하는 게냐. 넌 이미 이 행성의 지배자가 아니더냐. 최고신의 위엄이 아깝구나.”
겉으로는 타박하는 듯한 말투였지만, 하데스의 본심은 제우스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포세이돈도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 말이 맞다. 우리는 어떤 적 앞에서도 승리해왔으니 염려할 것 없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듯 포세이돈이 오만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우스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아버지,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하루라도 빨리 전쟁을 준비하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레스가 한쪽 팔을 잃고 온 제우스를 보며 분을 이기지 못해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그제야 제우스가 손톱을 물어뜯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전쟁? 전쟁이라고?”
떨리듯 흘러나온 제우스의 연약한 목소리에 모두 입을 다물었다.
그들이 본 적 없는, 약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너는 저들을 모른다. 무식하게 창과 칼을 휘둘러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야. 그들은 우리 모두를 잡아먹을 거다.”
제우스의 시선이 텅 비어 있는 자신의 한쪽 팔로 향했다.
적을 향해 무적의 번개를 휘두르던 그의 팔과 창은 벌레 신을 모시는 사제의 간식이 된 지 오래였다.
“설령 잡아먹더라도 크로노스에게 아버지와 레아께서 하셨던 것처럼 다시 토해내게 하면 될 거예요.”
제우스와 레아에게 그 계책을 전한 메티스의 딸, 아테나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제우스의 대답은 차가웠다.
“뱉어내? 허튼소리! 그 벌레들의 턱은 우리의 살을 찢고 잘게 부수어 산산이 흩어놓을 거다.”
제우스는 하나 남은 팔로 테이블을 쾅 내리쳐 다른 신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하늘에 군림하는 너희의 아버지로서 명령한다! 대아이기스를 펼쳐 지구를 보호하라!”
최고신이 내리는 지엄한 명령에 올림포스 신들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제우스의 명을 따릅니다.”
“아버지의 명을 따릅니다.”
모두가 아이기스를 펼치기 위해 자리를 옮기는 틈을 타, 아레스가 제우스에게 다가갔다.
“아버지.”
“어서 가지 않고 뭘 하는 것이냐.”
한시가 바쁜 와중에 여유를 부리는 아레스의 행동에 제우스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레스는 잠시 흠칫했지만, 미움받는 것은 익숙했기에 신경 쓰지 않고 하려던 말을 이어나갔다.
“제게 적을 대비할 군대를 마련할 시간을 주셨으면 합니다.”
“넌 내 말을 뭘로 들은 거냐! 우리는 그들의 상대가 못 돼!”
“하지만!”
“하지만이고 나발이고 그럴 여유는 없다. 어서 가서 아이기스의 작동을 돕기나 하거라!”
제우스는 혀를 차며 자신도 아이기스를 작동시키기 위해 서둘러 자리를 떴다.
“비겁하게 숨기만 할 작정이신가!”
홀로 남은 아레스가 분을 참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명색이 전쟁의 신이라는 자신이 적 앞에서 싸워보지도 못하고 숨어야 한다니. 통탄할 노릇이었다.
“어이, 형제.”
그런 그의 어깨를 붙잡는 이가 있었다.
“주정뱅이.”
“쌈박꾼이 할 말은 아니잖아?”
해맑은 웃음을 짓는 미청년의 정체는 디오니소스였다.
“무슨 일이냐. 너도 여기서 꾸물대다간 나처럼 아버지의 미움을 받을 거다.”
“뭐, 혼나면 혼나는 거지. 안 그래?”
디오니소스는 올림포스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제우스에 대한 애정도 그리 크지 않았다.
아레스는 그런 자유분방한 그의 모습이 부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그만큼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증거였으니까.
“형님은 싸우고 싶지?”
“……그래.”
아레스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가서 적을 도륙하고 명예롭게 이기고 싶었다.
그런 아레스의 마음을 잘 안다는 듯 디오니소스가 그의 등을 두드렸다.
“나랑 헤파이스토스 형님이랑 헤르메스 형님이 뭘 하나 만들었거든? 그게 도움이 될 거야.”
“그게 무슨 소리냐?”
아레스가 의아해하자 디오니소스가 히죽 웃었다.
“명색이 우주로 싸우러 나가는데, 맨몸으로 갈 생각이야?”
디오니소스의 안내를 받아 그들이 만든 작품을 본 아레스는 할 말을 잊었다.
“집안 어르신 이름을 땄지. ‘높은 자’ 하이페리온이야.”
디오니소스가 설계하고 헤르메스가 권능을 부여하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것은 신들이 탑승하게 설계된 우주 전함이었다.
“이거라면!”
싸울 수 있겠다는 희망에 아레스의 눈이 반짝였다.
* * *
“그래서 그 우주 전함을 타고 싸우신 건가요?”
이현이 상상도 못 할 정도의 스케일이 된 신들의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우주 전함을 타고 우주에서 날아온 괴물들과 싸우다니.
‘완전 이거 스타크래…….’
어릴 적에 하던 게임과 같은 내용이 옛날의 지구에서 실제로 일어났다니.
흥분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현아!”
오죽했으면 너무 흥분하는 이현의 옆구리를 나진이 푹 찔러 진정시켜야 했다.
“아니, 우리는 싸울 수조차도 없었다.”
이현의 흥분은 신경 쓰지 않은 채 아레스가 고개를 저었다.
“왜죠?”
우주 전함이 활약하지 못했다니.
이현이 아쉬운 마음에 물었다.
그 직후 나진이 팔뚝을 세게 꼬집었지만.
“제우스의 말이 옳았어. 우리는 방어조차도 하기 힘들었다.”
올림포스의 모든 신이 나서서 대아이기스에 에너지와 격을 쏟아부었지만, 벌레 신의 종자들의 침입을 막는 것이 전부였다.
아니, 그것도 위태했다.
“제우스의 팔을 뜯어먹은 벌레 신의 사제는 아이기스를 공격하지도 않았다.”
아레스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들의 수는 끝이 없었고, 우주를 가득 메울 정도였지. 반대로 우리는 수가 적었고, 힘이 한정되어 있었다.”
대아이기스를 유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격과 에너지를 소모한 신들은 금세 지치고 약해졌다.
“모자란 힘을 보태기 위해 타르타로스의 죄수들까지 끌어왔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지.”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결국엔 배신자가 나왔다.”
다섯 신의 얼굴에 분노가 떠올랐다.
“가장 먼저 아나톨리아의 신들이 자신들의 고향으로 도망쳤다.”
아나톨리아에서 건너온 아프로디테, 아폴론, 아르테미스, 레아.
“다음은 헬라의 토속신들이었지.”
그리스 땅의 토속신 중에선 포세이돈, 데메테르, 페르세포네가 그들의 고향인 크레타로 숨었다.
“그들이 탈주하고 나니 그 밑의 신들에게는 남을 이유가 없었지. 우리의 수는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아나톨리아 출신인 디오니소스와 토속신이었던 헤라와 그 아들 헤파이스토스는 끝까지 남았지만, 이미 전세는 절망적이었다.
가뜩이나 약해진 신들이 숫자마저 줄자 대아이기스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아이기스가 무너지는 순간, 지구가 그 벌레들의 먹이로 전락할 것이 눈에 뻔히 보이는 상황이었다.”
신들은 자신의 최후를 직감했다.
그래서 최후의 발악이라도 하기 위해 전쟁을 준비했다.
“싸우지도 않고 목숨을 내줄 정도로 우리는 비겁하지 않았으니까.”
무기력해진 제우스를 대신해서 아레스가 신들을 지휘해 전쟁을 준비했다.
아테나와 헤라가 제우스의 곁에 남고, 아레스가 신들을 모두 이끌고 전장에 나가려는 찰나였다.
“제우스가, 아버지라 부르기도 싫은 그 비겁한 자가…….”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아레스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우리를 팔아넘겼다.”
“……예?”
“그 벌레들에게 우리를 팔아넘겼다는 말이다!”
이현을 비롯한 일행의 동공이 커졌다.
이게 무슨 소리지?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가?
“그는 우리 모두를 대가로 자신의 목숨을 구걸했다.”
이현은 그제야 제우스가 왜 이 행성에서 욕을 먹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