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212
211화
-탕진잼(2)
“원하시는 게 있으시다면 말씀만 하십쇼!”
교체된 점원은 처음부터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듯 싹싹하게 굴어왔다.
“간도 쓸개도 없는 몸이지만요.”
“쉿.”
이현은 고소하다는 듯 속삭이는 티타니아를 향해 검지를 세워 입에 붙였다.
다행히 듣지 못한 건지 점원은 몸에서 빛을 번쩍이며 이현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갑옷을 보고 싶네요.”
“네! 이쪽으로 오시죠!”
사실 아티팩트를 다루는 보물 상회에서 살 것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에트나 행성에서의 모험으로 이미 어지간한 무기와 방어구는 모두 구한 뒤였다.
‘이게 다 헤파이스토스 덕분이지.’
고대 그리스의 신들에게 받은 A급 아티팩트들과 헤파이스토스가 만들어준 그에 뒤떨어지지 않는 아티팩트들.
그것들이 있는데 굳이 추가로 DP까지 써가며 구매할 장비는 많지 않았다.
“일단 나진 누나의 갑옷이랑…….”
“주인님의 방어구도 사야 하는 거 알죠?”
“알고 있어. 걱정하지 마.”
디르케와 리코스는 각각 아레스와 하데스에게 갑옷을 선물 받았지만, 이현과 나진은 그러지 못했다.
둘은 각각 무기와 허공을 걷게 해주는 신발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현은 나진과 자신이 입을 방어구를 고를 생각이었다.
“여기입니다. 어지간한 방어구는 다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호오. 정말이네요.”
점원이 안내한 방은 티타니아가 눈을 반짝일 정도로 휘황찬란한 방어구들이 전시된 곳이었다.
“대단한데.”
이현도 감탄을 터뜨렸다. 방어구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더럽게 비싸네.’
대부분 방어구의 가격이 10,000 DP를 넘는 것에 대한 경악이었다.
비싼 건 수백만 DP를 넘는 것도 있었다.
“저, 저거 아이X맨 슈트 아니야?”
이현이 말까지 더듬거리며 가리킨 건 황금색과 붉은색으로 멋지게 칠해진 기계 슈트였다.
마치 지구의 영화에서 나온 슈퍼 히어로의 장비와 흡사한 모습이었다.
“아, 마도 기갑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저건 추천해 드리지 않습니다. 메인 동력이 마력인데, 보통 잡아먹는 게 아니거든요.”
겉만 유사했지 내용물이나 작동 원리는 전혀 다른 물건이었나 보다.
이현은 동경하던 슈퍼 히어로 장비가 아니라는 아쉬움에 입맛을 쩝 다셨다.
“정 원하신다면 사념 에너지를 마력으로 치환하는 장치를 만물 상회에서 구매하시면 됩니다. 대략 견적이 이 정도일 겁니다.”
“괜찮습니다.”
점원이 허공에 써준 금액을 보며 이현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마도 기갑과 마력 변환 장치를 합친 금액은 이현이 무공서를 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엄두를 못 낼 금액이었다.
“아직 멀었네요.”
“두고 봐. 내가 암브로시아랑 넥타르 팔아서 꼭 사고 만다.”
이현이 아련한 눈으로 마도 기갑을 쳐다봤다.
“Next time, babe.”
마도 기갑에 대한 미련을 버린 후, 이현은 한참이나 방어구들을 둘러보았다.
“역시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것에 비하면 급이 달리네.”
“대장장이의 신이 만든 신물이랑 비교하면 안 되죠.”
던전 마켓이 아무리 우주 곳곳의 아티팩트들이 들어오는 시장이라 하더라도, 결국엔 필멸자들의 장터였다.
훌륭한 상품은 많았지만, 신물과 비교하기엔 급이 떨어졌다.
‘물론 가격만큼은 신물급인 것도 있지만.’
마도 기갑은 그 가격만 따지면, 충분히 신물급이었다.
“이걸로 하지.”
한참의 시간을 들여 이현이 골라낸 방어구는 두 가지였다.
「백은갑(D) : 5,000 DP」
「제웅직성의 코트(E) : 500 DP」
백은갑은 새하얀 금속으로 만들어진 고대 중국풍의 갑옷이었다.
다만, 단점은 제대로 착용할 수 있는 부분이 어깨와 하복부 정도였고, 나머지는 분실된 듯 보이질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래놓고도 이걸 이 가격에 파네.”
“그만큼 남은 부위가 대단한 물건입니다. 하, 하하.”
티타니아의 투덜거림에 점원이 황급히 대답했다.
언뜻 보면 하자 물건을 커버하려는 필사적인 대답 같았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분석의 안약을 사용한 이현의 눈에는 같은 내용의 정보가 보였다.
「백은갑(D)
– 상산의 용이라 불렸던 장군이 입고 다니던 백은 빛의 갑옷.
– 주군의 아이를 품기 위해 갑옷의 일부분이 유실되어 있다.
– 갑옷 자체로는 뛰어난 물건은 아니지만, 짝이 되는 무기와 함께라면 특별한 힘을 착용자에게 부여해준다.
– 스킬 : [견고(D)]. [일신시담(E)]」
‘상산의 용. 그리고 일신시담. 이 갑옷의 원주인을 생각하면 당연히 뛰어난 물건이지.’
상산 출신의 무장으로 유비에게 전신이 담 덩어리로 되어 있다(一身是膽)고 일컬어질 정도로 뛰어난 장군.
백은갑은 그 조운 자룡의 갑옷이었다.
‘잃어버린 갑옷 부분은 유선을 구할 때 없어진 건가?’
장판파에서 조운이 유비의 아들 아두, 즉 훗날의 유선을 구하기 위해 가슴 부분의 갑옷을 떼어냈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이 백은갑은 진품이 맞을 확률이 꽤나 높았다.
“이건 확실히 진품이 맞아. 나진 누나에게 줘야겠어.”
“주인님?!”
아니, 기껏 비싼 갑옷을 사놓고선 왜 본인이 쓰지 않는단 말인가?
“설마 또……!”
“호구마 짓 아니니깐 눈 좀 똑바로 떠라.”
눈에 흰자까지 드러내며 자신을 노려보는 티타니아를 보며 이현이 한숨을 쉬었다.
“이게 정말 조운 자룡의 갑옷이라면, 애각창을 가지고 있는 나진 누나가 착용하는 게 더 나을 거야. 세트 효과도 있는 것 같으니.”
나진이 가진 부러진 애각창, 정확히는 온전한 애각창은 조운 자룡이 쓰던 창의 이름이었다.
“그게요? 겨우 50 DP 짜리였는데?”
“나도 진짜 그걸 줄은 몰랐지.”
원래 애각창은 천애지각(天涯地角), 즉 세상 어디에도 비할 바 없는 창이라며 조운이 이름 붙일 정도로 대단한 창이었다.
그러니 자루가 부러져 있고 고작 50 DP밖에 되지 않는 F급 아티팩트가 조운의 그 애각창일 줄은 이현도 몰랐다.
하지만 백은갑의 설명을 보는 순간 이현은 나진의 애각창이 조운의 애각창일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부러진 걸 회복할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무기가 될 거야.’
F급 아티팩트임에도 불구하고 나진의 역천강기를 버텨내는 튼튼한 창이었다.
아니, 애초에 F급 아티팩트가 히드라와의 싸움에서도 멀쩡히 버틴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보통의 아티팩트가 아니라는 증거였다.
“그럼 주인님은 이 달랑 500 DP 짜리 코트만 입는다구요? 더 좋은 것들도 많은데?”
티타니아가 이현이 고른 코트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정체를 알 수 없지만 거친 재료로 만들어진 긴 검은 코트는 방어력이라곤 하나도 보이질 않았다.
“DP도 많은데 더 좋은 거로 사요.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맞습니다. 방어력만 보자면 이 백은갑보다도 훨씬 뛰어난 물건도 많이 있습니다.”
점원마저도 이현의 결정을 말렸지만, 이현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내가 보기엔 이게 나한테 최적의 방어구 같은데?”
“네?”
티타니아가 어이가 없다는 듯 반문하자, 이현은 분석안에 들어오는 코트의 정보를 알려주었다.
「제웅직성의 코트(E)
– 액막이를 막아준다는 제웅직성의 묘리를 적용해 만들어진 코트.
– 절체절명의 순간, 자신을 희생하고 완벽하게 주인이 입을 피해를 대신한다.
– 스킬 : [제웅(A)]」
“어때? 나한테 완벽하지?”
이 코트를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예비용의 목숨을 하나 더 가지게 되는 셈이었다.
지금껏 살아남기 위해 애써왔던 이현의 취향과 딱 들어맞는 방어구이기도 했다.
“거기다 가성비까지 끝내주네.”
스킬이 발동되면 사라지는 일회용이라 그런지 가격과 등급도 스킬에 비하면 싼 편이었다.
하지만 티타니아는 여전히 불만이 많은 듯 보였다.
“근데 이걸로 적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기나 하겠어요?”
“무슨 걱정이야. 나한테는 강화 스킬도 있고, 초기화도 있는데.”
단순한 천으로 만들어진 코트라도 이현의 내구 강화 스킬이면 강철 이상의 방어력을 가지게 된다.
거기에 파손이 된다고 하더라도 던전 안이라면 언제든 초기화로 복구할 수 있었다.
“강화 스킬이랑 초기화를 고려하면 오히려 등급 높은 아티팩트는 제외해야지.”
일정 이상 등급의 아티팩트는 던전에 등록할 수가 없다.
그러니 지금으로선 E급 아티팩트 정도가 최고 한도인 셈이었다.
“그건 그렇지만요.”
“나중에 던전의 규모가 더 커지면 알아서 바꿀 테니 걱정하지 마.”
“악!”
이현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티타니아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튕겨주었다.
“자, 이제 다음 쇼핑으로 가자고.”
* * *
“VIP이시니 눈치 없게 굴지 말고 정성을 다해 챙겨드려.”
보물 상회의 점원이 굳이 만물 상회까지 따라와선 만물 상회의 점원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이현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럴 필요까진 없는데.”
“아닙니다. VIP를 모시는 데 불상사가 또 일어나선 안 되니까요.”
보물 상회의 점원이 상쾌한 빛을 몸에서 뿜어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다음에 방문하실 때는 꼭 저를 찾아주시길.”
‘아, 그런 속셈이었구나.’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실적을 올리기 위해 단골을 관리하는 서비스였다.
그래도 이현은 점원의 속 보이는 서비스가 기분 나쁘진 않았다.
“알겠습니다. 다음에도 찾아가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피핀이라고 합니다.”
환한 빛을 내뿜던 보물 상회의 점원, 피핀이 돌아가고, 이번엔 만물상회의 점원이 이현과 티타니아를 안내했다.
피핀이 정중하게 이현을 대접하는 것을 본 덕분인지, 그 역시 한 치의 소홀함 없이 이현을 대하고 있었다.
“뭐 찾으시는 거라도 있으십니까? 전투와 관련되지 않은 아티팩트나 영약의 재료, 수집용 물품 등 저희 상회엔 없는 게 없습니다.”
그의 자랑대로 만물 상회는 그 이름답게 웬만한 물건들은 모두 갖춰놓고 있었다.
“대량의 인원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 기왕이면 건물 통째로 보호할 수 있는 범위였으면 좋겠는데.”
“아, 그거라면 이걸 추천해 드립니다.”
점원이 이현의 말을 듣고 가져온 건, 손바닥에 들어오는 작고 납작한 직육면체의 상자 위에 달린 빨간 버튼이었다.
「절대 안전 벙커(C) : 30,000 DP」
“버튼을 누르는 즉시 주변을 완벽하게 보호하는 차폐막을 형성합니다. 일회용이지만 한번 형성되면 도시를 날려 버리는 폭격에도 버틸 수 있습니다.”
“도시를 날려 버리는 폭격이라면 핵폭발도 막아낼 정도라는 소리예요.”
티타니아가 옆에서 설명을 덧붙였다.
“차폐막의 범위와 유지 기간, 그리고 방어력은 투입되는 에너지의 양과 비례합니다.”
참고로 에너지는 사념 에너지로도 공급이 가능하다고 점원이 설명을 이었다.
“일회용에 30,000 DP라면 절대 싼 값은 아니지만…….”
이현에게는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었다.
크라쉬의 무지막지한 공격을 고려한다면 사둬서 나쁠 일은 없었다.
이현은 [절대 안전 벙커]의 구매를 확정하고도 몇 가지 물건을 더 골라 넣었다.
“이거 좋은데?”
이현이 집어 든 건 전신을 감싸는 스판덱스 재질의 보디슈트였다.
“UHS 말씀이시군요. 아티팩트는 아니지만 훌륭한 기능을 가진 보조 의류죠.”
옷 안에 집 한 채를 입는다고 해서 UHS(Under House Suit)라는 이름이 붙은 이 슈트는 대단한 물건이었다.
“방화, 방수, 방탄, 방검 기능은 물론 생존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유지해주는 물건입니다.”
“이런 대단한 물건이 아티팩트가 아니라는 게 신기할 정도네.”
이현이 혀를 내둘렀다.
“뭐, 아티팩트가 아니라도 기능만 좋으면 좋지. 가격이 싸니 더 좋고.”
한 벌에 달랑 100 DP. 이현은 씩 웃었다.
“이거 있는 대로 다 챙겨주세요.”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게 돈 쓰는 재미라고 했던가.
이현은 그날 벌어들인 11만 포인트를 모두 탕진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