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274
273화
-누에(3)
도시 뉴가텀의 곳곳에서 비명과 죽음이 울려 퍼졌다.
실종 사건이 일어나던 날 로어노크 교도소에서 퍼져 나가기 시작한 재앙의 씨앗은 이미 도시 전체를 점령한 지 오래였다.
그 시작은 바로 이경이 억지로 먹인 벌레 신의 알껍데기였다.
벌레 신의 알 속에서 태어날 사도를 보필할 권속들의 알이 뭉쳐서 이루어진 보호막.
즉, 껍데기 자체가 벌레 신의 권속들이 태어날 모판이었다.
그 껍데기 한 조각이 모렐로의 몸속에서 수백 아니, 수천에 이르는 권속의 유충으로 부화했다.
그것이 바로 다름 아닌 모렐로의 몸에서 나온 흰 애벌레 무리였다.
모렐로의 몸속을 다 먹어치운 애벌레들이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성충으로 우화하기 힘들었다.
행성조차도 먹어 치우는 벌레 신의 권속답게 그들 역시 먹어 치우는 양이 장난이 아니었다.
제 몸의 수십, 수백 배에 이르는 양을 먹어 치우고 몸을 불려야 번데기로 변태할 수 있었다.
“벌레가, 벌레가 으아아악!”
“살을 파먹는다! 벌레가 살을 파먹는다!”
손가락만 한 애벌레가 죄수의 몸을 파고들어 살을 파먹는다.
몸뚱이를 다 먹어치우면 탈피를 거듭해 팔뚝만 한 애벌레가 되어 다음 먹이를 찾아 나선다.
그것이 반복되자 교도소 안에 살아있는 생명체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로어노크 교도소에서 일어난 실종 사건의 실체는 바로 애벌레들의 탐식이었다.
수백 명에 이르는 죄수와 간수들을 모조리 먹어치운 애벌레들은 몇몇 사체를 움직여 교도소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무고한 희생자들을 습격해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번데기.
애벌레는 가장 안전한 곳에 고치를 틀고 번데기가 된다.
작은 애벌레라면 나뭇잎의 뒷면에 자리를 틀거나 도롱이를 만들어 그 안에서 번데기 시기를 날 준비를 한다.
벌레 신의 권속들이 안전하게 변태를 하기 위해 선택한 장소는 살아 있는 지적 생명체들의 몸 속이었다.
“커억!”
“어헉!”
로어노크 교도소와 접한 허드센 강 하류에 놀러 왔던 뉴가텀 시민들은 애벌레들의 습격을 받았다.
사람 팔뚝만 한 애벌레가 입이나 항문 같은 신체의 구멍을 파고들어 자리 잡았다.
오크, 고블린, 오거, 트롤 가릴 것 없이 습격의 대상이 되었다.
“사각사각.”
“히이이.”
“그분들이 오신다.”
“은총을. 은총을.”
애벌레들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마약성 물질이 지적 생명체의 뇌를 마비시키고 장악했다.
마치 살아 있는 채로 좀비가 된 양 그들은 몸 안을 산 채로 갉아 먹혀도 고통 하나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모렐로가 그랬던 것처럼 몸속을 모두 갉아 먹은 뒤, 애벌레들은 실을 뿜고 고치를 만들었다.
그 와중에도 지적 생명체들은 벌레 신의 복음을 읊으며 끊임없이 움직였다.
다른 숙주를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수천 마리의 권속 유충이 모두 몸을 차지하기엔 허드센 강의 유람객들이 턱없이 적었다.
유충들은 몇 마리가 동시에 한 몸을 차지하고 있다가, 숙주가 다른 시민을 공격하게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한 마리씩 숙주를 차지하고 고치를 짓는 식이었다.
그렇게 단 일주일 만에, 뉴가텀 전역에 권속의 숙주가 된 시민들이 퍼지게 되었다.
* * *
콰직!
이현의 도끼가 거대 나방을 그대로 반으로 쪼갰다.
검으로 베는 것이 더 깔끔했지만, 그래선 속도가 나질 않았다.
이 끔찍한 벌레 신의 권속들은 베인 상처쯤은 재생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현은 체액이 사방으로 튀었지만, 도끼를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이쯤 되면 징그러운 것도 모르겠다.”
이현이 얼굴에 튄 나방의 체액을 닦아내며 투덜거렸다.
처음에는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끔찍한 몰골이었지만, 수십 마리를 으깨놓고 나니 이젠 무덤덤해질 지경이었다.
그건 나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발초심사(撥草尋蛇).”
나진이 자세를 낮추며 낮고 크게 휘두른 창에 거대 나방들이 다리를 잃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나진은 몸을 일으키는 동시에 바닥을 박차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화예소휘창-봉점두화鳳點頭花].”
쓰러진 나방 권속들의 머리에 정확히 나진의 창이 쏟아졌다.
퍽! 퍽! 퍽!
다시 한번 체액이 분수처럼 솟아올랐지만, 이현처럼 온몸이 체액으로 뒤덮인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아 했다.
“으아아! 몸에 튀잖아! 저리 가!”
“배부른 소리 한다.”
“내가 묻혀 줄까 보다. 그냥 콱!”
이미 체액 범벅이 된 이현과 나진이 얄밉다는 표정으로 이아코스를 노려보았다.
원거리에서 활을 쏘아대는 이아코스만이 몸에 한 방울의 체액도 묻히지 않고 거대 나방들을 물리치고 있었다.
“현! 대체 이것들은 정체가 뭐야?”
“이아코스, 그런 거 물을 시간 있으면 하나라도 더 죽여!”
“그치만 나진 아가씨, 끝이 없잖아, 이것들!”
나진의 구박에 이아코스가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이현은 대답을 해주는 대신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이것들이랑 만나게 될 줄이야.’
이현은 분석의 안약을 통해 확인한 거대 나방들의 정체를 떠올리며 표정을 굳혔다.
「이름 : 없음
종족 : 누에(???)
직업 : 벌레 신의 권속」
분석안에 나타나는 정보는 이게 전부였다.
내용도 부실하고 알아낼 것도 거의 없는 정보였지만, 이현의 시선을 끈 것은 바로 이들의 종족이었다.
누에.
지구에선 비단실을 뽑아내는 데 쓰이는 누에나방의 애벌레였다.
‘하긴, 그러고 보니 나방인데 전혀 날질 못하네, 이것들.’
비단실을 뽑기 위해 양잠하는 누에들은 품종 개량으로 날개가 짧아져 하늘을 날 수가 없었다.
권속 누에들도 비슷하게 날개가 짧았고 하늘을 날지 못했다.
‘천만다행이지.’
만약 이들이 하늘을 날아 공격해왔으면 상대하기가 지금의 수 배는 더 힘들었을 터였다.
“그래도 짜증 나는 건 마찬가지야!”
드디어 이현이 으깨 버린 권속 누에의 수가 세자릿수를 넘었다.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나오네.”
나진이 또 하나의 권속 누에의 머리를 창으로 꿰뚫으며 투덜거렸다.
“아까 보니 이것들 살아 있는 오크한테 알을 까던데요?”
“뭐? 으악, 끔찍해.”
나진이 더 끔찍할 게 있었냐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현도 마찬가지 마음이었다. 혹여나 이 권속들의 알이 몸에 까진다고 생각하니 속부터 울렁거렸다.
일행 모두 UHS를 입고 있으니 권속 누에들이 쉽게 몸에 알을 깔 수는 없을 테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됐다.
‘벌레 신의 영향을 받으면 변질된다.’
알도 아니고 배설물에서 나온 포자에 감염된 이들이 바로 오크, 고블린, 트롤, 오거들이었다.
만약 바로 제거한다고 해도 알에 감염되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이현은 상상이 가질 않았다.
“다들 방심하지 말아요!”
“알았어!”
“걱정하지 말라구, 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나진과 이아코스는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몸을 내어줄 생각이 없었다.
“릭! 얼마나 남았어!”
“고, 곧 도착합니다!”
이현의 질문에 나진의 샌들인 [탈라리아]를 신고 허공에 떠 있던 릭이 대답했다.
이현 일행과 달리 릭은 가만히 놔두면 바로 알에 감염될 터였다.
그래서 나진이 자신의 아티팩트를 양보해 허공으로 대피시킨 참이었다.
밀려드는 권속 누에들을 처치하느라 바쁜 이현 일행을 대신에 릭이 그들을 오도일 저택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저깁니다!”
“이런 제길.”
또 하나의 권속 누에를 쪼개 버리고 릭이 가리킨 곳을 쳐다본 이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택은 이미 반파되어 있었고, 그 일을 벌인 장본인은 거대한 누에나방이었다. 무려 3m가 넘는.
“저건 너무한 거 아냐?”
수십 마리의 권속 누에를 죽여 넘기며 익숙해진 나진마저 비명을 질렀다.
마치 괴수물 영화에나 나올 법한 거대 누에나방이 반파된 저택의 지붕을 갉아 먹고 있었다.
“아버지! 팻!”
오도일 저택에서 이현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을 아버지 맥도일과 패트릭을 떠올린 릭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이거 어렵게 됐는데.”
이현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던전으로 돌아가지 않고 오도일 저택으로 향한 건 고블린 갱단과 건축업자들을 구해서 던전으로 옮기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상황을 보아하니 생존자가 있기를 기대하는 건 어려워 보였다.
만약 살아 있다고 해도 곧 저 거대 누에나방에게 잡아먹히리라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살아 있다 하더라도 굳이 들어가서 구출해야 하나?’
패트릭과 고블린 갱단은 분명 이현에게는 동맹이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현 일행이 목숨까지 걸어가면서 구해야 할 동맹은 아니었다.
퇴각해서 던전으로 돌아갈지 말지를 이현이 고민하던 찰나였다.
쾅!
거대 누에나방이 저택에서 튕겨 나가 바닥을 뒹굴었다.
투투투투!
등부터 바닥에 떨어져 6개의 다리를 바둥거리는 누에나방 위로 총격이 쏟아졌다.
“키에에에에엑!”
몸집이 거대한 만큼 배로 울어대는 소리도 컸던 거대 누에나방이 결국 버둥거림을 멈추고 숨을 거두었다.
이현도 엄두가 나지 않던 거대 누에나방을 처치한 건 다름 아닌 골렘이었다.
“팻!”
“릭! 이 자식 살아 있었구나!”
2세대 골렘의 조종석을 열고 반갑게 손을 흔드는 건 다름 아닌 패트릭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아버지는? 다른 고블린들은?”
“다 무사해! 빨리 이쪽으로 와! 지하에 대피소가 있어!”
권속 누에들의 습격이 시작되자마자 오도일 저택의 지하 대피소로 피한 덕분에 모두 목숨을 건진 모양이었다.
“서둘러!”
이현 일행의 뒤로 다시 권속 누에들이 모여드는 모습을 보고 패트릭이 골렘용 스팀건을 쏘아댔다.
투투투투!
“지하로!”
이현 일행은 패트릭의 엄호 덕분에 무사히 지하 대피소로 몸을 피할 수 있었다.
* * *
벌레 신의 권속인 누에들은 우화하기 위해 뉴가텀 시민들의 몸이 필요했다.
고블린을 숙주로 삼은 누에들은 작았고, 오크를 숙주로 삼은 누에들은 상대적으로 컸다.
오거를 숙주로 삼은 누에는 그 크기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오도일 저택을 공격하던 거대 누에나방이 바로 오거를 숙주로 삼은 권속 누에였다.
그렇다면 권속이 아닌, 벌레 신의 알에서 태어난 사도는 어떨까?
이미 알에서 태어나자마자 그 크기가 고블린보다 컸던 사도의 유충은 아놀드 로스를 통째로 갉아먹을 정도였다.
그런 사도의 유충이 번데기를 만들려면 더 큰 공간이 필요했다.
“여기 있었구나.”
이경의 던전 게이트를 감시하던 오거 경찰들도 이 전대미문의 재앙 앞에서 도망친 지 오래였기에, 그녀는 자연스럽게 다시 던전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가장 강력한 기운을 내뿜는 번데기를 찾아 이동했다.
그런 성이경이 사도의 번데기를 찾은 곳은 바로 시청의 시장 집무실이었다.
“역시 욕심꾸러기네.”
평범한 숙주로는 사도의 번데기를 구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도의 유충은 시청 안의 모든 오거를 자신이 뿜어낸 실로 뭉쳐 거대한 고치로 만들었다.
뇌를 흡수당한 게이너 시장의 사체를 포함한 어마어마한 양의 오거 사체들이 무덤처럼 쌓여 있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죽여다오…….”
“어머? 살아 있는 오거가 있네?”
이경이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거 사체 더미 속에서 겨우 목소리를 흘리고 있는 건 베이커 경감이었다.
“이 상태에서 죽지 않는다는 건 진짜 놀라운 재능이네. 아깝다.”
조금만 더 빨리 알아차렸다면 던전으로 끌고 가서 노예로 삼았을 텐데.
하지만 이미 사도의 유충이 자신의 숙주이자 식량으로 삼기로 한 모양이었다.
이경이 다가가자 오거 사체 더미 속에서 괴성이 흘러나왔다.
“키이이잇! 꺼져라!”
“걱정하지 마. 데려갈 생각 없으니.”
이경이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지만, 어차피 그녀가 진짜 원하는 건 나진이었다.
“어떤 아이가 나올까 기대가 되는데?”
아직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사도의 유충이 번데기에서 우화하는 모습을 기대하며 이경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도시를 파괴할 정도로는 강해야 하지 않겠어?”
으적, 으저적.
이경의 말에 대답이라도 하듯 사체 더미 안에서 오거의 살점을 씹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