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375
374화
-현녀강림(2)
“녹옥의 타구봉(打狗棒)?”
“개방 방주의 신물이 아닙니까!”
타구봉을 내어놓겠다는 주팔공의 말에 태허자와 현당이 대경실색해서 외쳤다.
하지만 주팔공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뭐, 신물이야 따로 다시 만들면 되지 않겠소?”
물론, 그렇게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개방의 신물을 넘긴다는 건 즉, 타구봉을 가진 이가 내리는 명령을 개방이 모두 듣겠다는 소리였으니까.
방회의 방주가 할 말이 아니었다.
“방주!”
“거, 귀 안 먹었소. 소리 좀 줄이시오.”
“지금 그럴 소리를 할 때요?”
흥분한 태허자의 고함에 주팔공은 양 귀를 막으며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이 정도는 내놓아야 은 맹주도 내공심법을 건네줄 거 아니요.”
“아미타불, 아미타불. 방주의 크나큰 희생에 모두가 감복할 것입니다.”
현당이 합장하며 깊이 허리를 숙여 자신에게 존경을 표시하자, 주팔공은 머쓱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개방이 시대에 따라 누군가를 위해 정보를 모아온 건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오. 지금까지 그게 황제나 무림맹을 위해서였지만, 이번엔 은 맹주일 뿐이지.”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개방의 방주가 타구봉을 다른 이에게 넘긴 일은 전무후무했다.
주팔공은 녹옥 색의 타구봉을 쓰다듬으며 피식 웃었다.
“이 타구봉을 처음 개방에 주신 순평후께서도 이해해 주실 거요. 의를 행하기 위함이니.”
거기까지 말을 마친 주팔공은 침중한 표정이 되어 있는 태허자와 현당의 어깨를 짚으며 히죽 웃었다.
“새 신물을 만들 때는 이 거지에게 적선 좀 해주시구려.”
해맑게 웃는 늙은 거지의 표정에 이끌린 두 사람 역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은 맹주에게 가봅시다. 우리가 이렇게까지 간도 쓸개도 다 빼주는데 내공심법을 주지 않을까!”
주팔공이 앞장서서 세 사람은 은미환이 있을 맹주의 거처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이가 있었다.
“내공심법을 얻기 위해 그렇게까지 한단 말이지?”
이현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아니, 왜 원조 맛집을 두고 다른 데서 구걸을 하실까?”
자신들의 소중한 것을 내놓고 무공을 배우려는 세 명의 뜻은 갸륵했으나 번지수가 잘못되었다.
“우리가 가르치고 저걸 다 먹어 버려?”
소림 칠십이종 무예, 무당의 선단 제조법. 그리고 개방의 신물 타구봉.
솔직히 이현에게는 그리 탐나는 것들은 아니었다.
무공이야 던전 마켓에서 사들이면 되고, 선단은 훨씬 더 뛰어난 넥타르와 암브로시아가 있으니 있어도 의미가 없었다.
개방을 부릴 수 있는 신물 타구봉은 더더욱 필요가 없었고.
‘사도만 물리치면 이 행성에 더는 볼 일이 없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현은 가장 필요 없는 타구봉이 탐이 났다.
그도 그럴 것이, 분석의 안약을 눈에 넣은 이현에게 타구봉 위로 떠 오른 정보는 충격적이었으니까.
「[타구봉-애각창의 부러진 자루]
: 애각창을 온전히 복원하기 위한 재료(3/4)」
어쩌다 부러진 애각창의 일부분이 개방의 신물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건 꼭 손에 넣어야 한다.”
타구봉은 나진의 전력 상승을 위해서라도 꼭 얻어내야 할 물건이었다.
* * *
이현은 다시 객실로 돌아와 나진과 티타니아에게 자신이 보았던 것을 설명했다.
“정말? 애각창의 자루가 있었어?”
“네. 제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요.”
이현이 눈을 가리키며 힘주어 말하자 나진의 얼굴이 환해졌다.
“세상에, 그게 여기에 있을 줄이야!”
나진이 양손을 맞잡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기뻐했다.
“신기하네요.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던 게.”
티타니아도 놀랐다는 듯 입을 살짝 벌릴 정도였다.
이현은 아주에게서 [애각창의 장신구]를 얻고서는 애각창을 복구시킬 재료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이후 던전 마켓을 수시로 뒤져가며 다른 재료를 찾았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재료 중 하나가 이곳에 존재했다니.
티타니아가 곰곰이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원래 이 행성 출신 아티팩트였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럴 가능성도 있지. 던전 마켓을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던 애각창의 재료가 여기에서만 두 개가 나왔어.”
유주의 친부모가 가지고 있었을지 모르는 [애각창의 장신구].
그리고 개방의 신물인 [타구봉-애각창의 부러진 자루].
이 두 개가 무 행성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다른 하나도 여기에 있을 수 있다는 소리네?”
나진의 말에 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행성에서 사도를 물리치면서 그에 관한 정보도 좀 찾아봐야겠어요.”
“정말? 이현아 사랑해!”
나진이 환호성을 지르며 이현에게 안겨들었다.
“하, 하하.”
이현은 자신에게 안겨드는 나진에게 당황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을 본 티타니아의 눈이 매서워졌다.
“고마운 건 알겠으니, 이제 좀 떨어져욧!”
억지로 나진과 이현을 떼어내고 씩씩대는 티타니아의 모습에도 나진은 싱글벙글했다.
“드디어 나도 좋은 무기를 얻는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까 너무 기대하지 말아요.”
“그래도 가능성이 생긴 거잖아.”
아이처럼 좋아하는 나진의 모습에 티타니아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좋아요?”
“그럼요! 저번에 티타니아가 빙의했을 때 얘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몰라요.”
크라쉬와의 결투에서 티타니아가 잠시 빙의한 부러진 애각창은 [수복된 애각창(B)]이 되었었다.
F급 아티팩트에서 B급이 된 애각창은 나진이 놀랄 정도의 위력을 발휘했다.
“그러니 온전한 애각창의 위력은 얼마나 될지 기대가 안 될 수가 없잖아요.”
환하게 웃으며 창을 볼에 비비는 나진의 모습은 섬뜩할 법도 했지만,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꼭 구해줘야겠네.’
이현은 나진의 그런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누나, 그것 때문인데요.”
이현은 자신이 떠올린 작전을 나진과 티타니아에게 설명했다.
이현이 설명을 마치자 티타니아가 우려를 표했다.
“정말 그걸로 될까요?”
“걱정하지 마. 내 작전이 안 통한 적 있었어?”
당당하게 자신의 가슴을 치는 이현의 말에 부정할 수가 없었기에 티타니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애석하게도 없었네요. 그 작전으로 가죠.”
* * *
저녁 시간이 되자 이현 일행이 머무르는 전각의 식당에 푸짐한 식사가 차려졌다.
회의를 마치고 푹 쉰 이현 일행을 유주가 찾아와 대접했다.
“어머니는 급한 일이 있으셔서 함께 저녁을 드시지 못할 거 같대요. 제가 대신 사과드려요.”
“아니야. 너도 앉아. 같이 먹자.”
“네, 사부님.”
나진이 자신의 옆자리를 톡톡 두드리며 유주를 부르자, 그녀가 환한 얼굴로 다가와 앉았다.
“푹 쉬셨어요? 불편한 점은 없으셨나요?”
“전혀. 정말 좋은 곳이었어.”
“다행이네요, 헤헤.”
유주가 안심했다는 표정을 짓자 그 모습이 귀여운 듯 나진이 그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앗! 사부님, 아이 취급하지 마세요. 저도 이제 열여덟인걸요.”
유주가 토라진 듯 입을 삐죽이자 나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미안해. 그래도 나한텐 아직 아기처럼 보이는걸. 안 그래, 이현아?”
“솔직히 좀 그렇죠?”
“도 대협마저도…….”
이현이 웃으며 나진의 말에 맞장구치자 유주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좌절했다.
“티타니아 공은 그렇게 생각 안 하시죠?”
“응? 어아요?”
입에 음식을 한가득 밀어놓고 웅얼거리는 티타니아의 모습에 유주는 포기하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마음 편히 드세요.”
“응응!”
저녁 식사는 화기애애하게 잘 끝났지만, 토라진 유주의 입은 여전히 삐죽 나와 있었다.
이현은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곤 사탕을 건넸다.
“자, 삐지지 말고 이거 먹어.”
“츄팝스!”
잠시 눈을 크게 뜬 유주였지만, 곧 고개를 홱 저었다.
“흥! 도 대협께서 아직 저를 잘 모르시나 본데, 저는 이제 당과에 홀랑 넘어가는 아이가 아니랍니다.”
“그래? 아쉽네.”
이현은 짐짓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너 주려고 챙겨온 이 과자들은 그냥 우리가 먹어야겠다.”
“네?”
이현이 꺼내 든 가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과자들을 본 유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캐러멜 팝콘, 페페로, 말랑 흑우, 꺼북칩스…….”
모두 던전에 있을 때 유주가 좋아했던 과자들이었다.
유주는 동공이 지진이 난 듯 흔들리고 흘러나온 군침을 저도 모르게 꿀꺽 삼켜야 할 정도였다.
“너 좋아한다고 나진 누나가 하나하나 골라서 챙겨온 건데. 어쩔 수 없네. 그쵸, 누나?”
이현이 나진을 보며 웃자 그녀 역시 일부러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눈물을 훔치는 척했다.
“우리 아주가 내 마음을 몰라주네.”
“사, 사부님, 그, 그게 아니라!”
유주가 과자와 나진을 번갈아 보며 울상을 짓다가 결국 항복했다.
“아주는 과자가 좋아요! 어린아이 할게요!”
정말 아이처럼 과자를 품에 쓸어 담는 유주의 모습에 나진과 이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순간 창피함에 유주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지만, 그래도 과자 하나를 뜯어 입에 넣자 행복한 표정이 되었다.
“헤헤, 맛있다.”
“어머, 유주야. 저녁을 먹고 군것질을 하는 거니?”
“어, 어머니? 코, 콜록!”
그때 들어온 은미환의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에 사레가 들리긴 했지만.
한바탕 소란이 지나고 나서 은미환이 면목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과년한 딸이 나이가 찼는데도 아이 같기만 해서 부끄럽습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놀린 탓이에요.”
나진이 웃으며 유주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귀엽기만 한걸요.”
“사부님…….”
사제 간의 우애 좋은 모습에 분위기는 다시 훈훈해졌다.
잠시 식후의 차를 입에 머금고 향을 즐기는 시간이 지나자, 이현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맹주께선 바쁘신 듯합니다.”
“맹주라는 자리가 그렇죠. 특히 요즘같이 혼란한 시기에는요.”
은미환이 짧게 한숨을 토해내곤 다시 입을 열었다.
“마교의 세력이 점점 흉흉해지고 있어요. 이곳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당장 급한 불은 아닙니다만…….”
언제 이곳까지 마교의 겁화가 들이닥칠지 모른다며 은미환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유주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현은 그런 둘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 맹에 계신 손님들도 그 일 때문에 찾아왔나 보군요?”
“어머, 알고 계셨습니까?”
은미환이 놀란 듯이 되묻자 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연하게도요. 그리고 예의에 어긋나는 일인 걸 알지만, 그분들의 대화도 좀 엿들었습니다.”
이현이 거기까지 말하자 은미환이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원래는 맹의 기밀이지만, 은인들께는 말씀을 드려도 될 것 같군요. 상의드릴 일도 있었으니까요.”
“상의요?”
이번엔 이현이 되묻자 은미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우리 남무림맹에 간절히 원하는 게 있어요. 바로,”
“내공심법이군요.”
“맞습니다. 각 문파의 비전을 가지고 와서 거래하자고 하더군요.”
여기까지는 이현 일행도 아는 이야기였다.
“받아들이셨습니까?”
“아니요.”
은미환이 고개를 젓자 이현이 의아해하며 되물었다.
“왜죠? 남무림맹에도 도움이 되는 것들 아닙니까?”
“그렇기야 하죠. 저희의 부족함을 채워줄 소림의 외공, 내공을 올려줄 선단, 개방의 정보력까지 모두 귀한 것들이죠. 하지만….”
거기까지 말한 은미환은 이현과 나진을 똑바로 보며 입을 열었다.
“[춘잠토심결]은 몽중현녀께서 저희에게 내려주신 금과옥조와도 같은 내공심법. 그 무공의 주인이 저희가 아니기에 함부로 전해 줄 수 없습니다.”
“맞아요. 사부님의 허락 없이 무공을 전수할 수는 없죠!”
은미환과 유주의 단호한 표정에 나진이 난처한 듯 웃었다.
“아, 그게 그렇게 되나?”
기실 그녀도 던전 마켓에서 산 무공을 배운 것이었기에, 자신이 [춘잠토심결]의 주인이라는 자각이 없었다.
이현은 그런 나진과 유주 모녀의 모습을 보며 살짝 웃다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무공 가르쳐주어도 됩니다.”
“정말인가요?”
이현은 놀라는 은미환과 유주를 보며 진한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대신, 제가 하자는 대로만 해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