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45
44화
-가족을 위해(1)
환락의 도시 에피라.
이스메이아가 위치한 보에온 반도와 모레아 섬을 잇는 작은 섬에 있는 도시였다.
이 섬에는 양을 칠 초원도, 작물을 기를 땅도 부족했다.
때문에, 섬과 반도를 중개하는 상인들의 거점이 되어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화려한 즐거움의 도시, 에피라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섬과 반도의 부와 탐욕이 거쳐 가는 이곳은 화려한 문화와 예술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사우레노르들이 엄격한 격의 예절에서 벗어난 쾌락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했다.
에피라에서도 중앙도시의 뒤편, 동쪽 슬럼가는 그런 음습한 쾌락을 제공하는 거리였다.
사우레노르들은 번식기 외에 성욕을 느끼지 않는 종족이었다.
따라서 인간과 달리 성적 쾌락에 매달리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도 이들이 슬럼가를 찾는 이유가 있었다.
누군가의 위에 선다는 것.
사우레노르들은 오로지 격이 높은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우월감에 항상 목말라했다.
하지만 실제로 격이 높아서 이를 누릴 수 있는 자들은 한 줌에 불과했다.
그래서 격을 올리지 못했지만 이른바 ‘고귀한 즐거움’이라 불리는 쾌락을 느끼고 싶어 하는 자들은 재물을 가지고 이 슬럼가를 찾았다.
“성심을 다해 모십니다!”
“단돈 3드라크마면 하루 동안 고귀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자 없는 온전한 이들이 당신을 떠받듭니다! 50드라크마에 누구보다 격 높은 분이 되십시오!”
거리에 즐비한 낡은 건물들 입구에서 호객꾼들이 소리 높여 외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엔 낡았지만, 가게에 따라서는 실내를 귀족들의 집처럼 화려하게 꾸민 곳들도 있었다.
그런 방에서 매신꾼이라 불리는 몸 파는 이들이 대기하고 있을 터였다.
“안타까운 이들.”
긴 천으로 얼굴과 목을 둘러 정체를 감춘 한 사우레노르 여인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목청 높여 사람을 팔려고 하는 동포들을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금과 은 앞에서는 존엄과 위신도 헛것이야.”
저들은 스스로를, 혹은 동포를 인간 노예처럼 낮추어 고객에게 봉사를 제공했다.
그럼으로써 그들에게 거짓된 쾌락을 제공하면서 돈을 벌었다.
정상적인 이들이라면 몸을 파는 매신꾼이 될 생각 따윈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몸이 불구이거나 빚을 져서 정상적인 생활이 힘든 이들이 대다수였다.
개중에는 부정한 행위로 인해 격이 바닥까지 곤두박질친 이들도 있었다.
“문제는 알면서도 독배를 드는 어리석은 자들이지.”
더한 비극은 이러한 매신 행위로 인해 사는 자나 파는 자나 결국엔 격이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사는 자는 그걸 감수하고 잠깐의 쾌락을 즐길 뿐이었다.
반면 파는 자는 매일같이 매신 행위를 반복하면서 결국 헤르페톤만도 못한 처지가 된다.
매신꾼들은 결국 하루를 먹기 위해 자신의 격을 떨어뜨리며 사는 이들이었다.
“싸게 해드립니다요. 4오볼로스도 됩니다.”
꼬리가 반 토막이 난 매신꾼이 다가와서 호객을 하고 있었다.
빈민가의 노동자가 하루에 버는 일당이 1드라크마, 즉 6오볼로스였다.
그 일당도 되지 않는 돈으로 몸을 팔려고 하는 걸 보며 사우레노르 여인은 혀를 찼다.
아마 가난으로 인해 자신의 꼬리를 잘라 먹었을 거라 추측했다.
“일없어.”
사우레노르 여인은 단호하게 거절한 뒤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뒤에서 욕설을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녀는 일말의 연민으로 무시하고 넘어갔다.
‘저런 자를 혼내줄 여유 따윈 없어.’
지금은 그녀의 용무가 우선이었다.
거금을 들여 알아낸 정보대로라면 그녀가 찾는 이는 이 슬럼가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1므나나 들었어.’
1므나는 100드라크마였다.
빈민가의 노동자가 석 달 열흘을 벌어야 손에 쥘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녀의 형편으로는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지만 돈을 아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절실하게 그 사우레노르를 원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녀의 손에 넣어야만 했다.
“어서 오시죠.”
목적지인 가게 앞에 서자, 안대를 낀 애꾸 사우레노르 남성이 깍듯이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가게 주인인 것 같네.’
그녀는 각오를 단단히 했지만, 막상 가게에서 매신꾼을 찾으려니 망설이게 되었다.
평소의 그녀라면 이런 환락가에 절대 발을 들여놓지 않았을 것이다.
눈치가 좋은 가게 주인은 그걸 알아채고 ‘주문’하기 편하게 먼저 메뉴를 읊어댔다.
“원하시는 자가 있으신가요? 불구지만 전선에서 뛰던 건장한 자가 있습니다.
서사시를 통으로 외우는 시인도 있죠. 음악을 좋아하신다면 원하시는 만큼 칠현금을 뜯어 즐겁게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물론 말 잘하는 애꾸도 있고요.”
“…….”
“손님……?”
가게 주인이 말이 없는 그녀를 재촉하자, 한숨을 내쉰 사우레노르 여인이 입을 열었다.
“저주를 받아 타락한 자.”
가게 주인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녀의 주문은 매우 독특한 취향이었다.
‘생긴 건 멀쩡해 보이는데 괴팍한 변태로군. 그러니 얼굴을 가렸지.’
저주를 받은 자를 사는 이들은 대부분 아니, 백이면 백 변태들이었다.
저주를 받은 자를 가까이하면 격이 빠른 속도로 하락한다.
때문에, 그런 자들을 사는 자는 잔인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매신꾼이라 하더라도 그런 행위는 감내하기 힘들어했다.
‘저주를 받은 자들처럼 바닥까지 추락한 이들이 아니라면 받아주지도 않을 변태들 같으니라고.
제길, 오늘 재수 더럽군.’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지만, 이번에 받아들인 저주받은 자는 상태가 매우 심각했다.
‘딱 봐도 큰 죄를 저지른 게 분명해.’
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애꾸는 자신의 격이 뭉텅뭉텅 깎여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난 저주받은 자를 원한다고 했는데, 없어?”
애꾸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돈 벌자고 하는 일이었다.
못할 일은 없었다.
눈 딱 한 번 감으면 그만인 일이었다.
애꾸는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있다마다요. 그런 취향의 손님을 위해서 저희 가게는 다른 가게와 달리, 하나 데리고 있습죠. 다만 좀 연약한 자라 취급에 주의를 좀 해주십사…….”
가게 주인이 두 손을 앞으로 내저으며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에 최대한 공손함을 보였다.
이미 몇 번 그자를 사서 자신의 쾌락을 풀고 간 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괴팍한 변태들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원래도 상태가 좋지 않았던 그 저주받은 자는 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돈은 충분히 낼 테니 걱정하지 마.”
사우레노르 여인은 그렇게 말하곤 애꾸를 지나쳐 가게로 들어갔다.
애꾸는 직감적으로 진상 중의 진상 손님임을 알아챘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진짜 송장 치우게 생겼네. 손님! 금방 준비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애꾸는 서둘러 사우레노르 여인의 뒤를 따라 가게로 들어갔다.
* * *
“세상에, 이걸 쓸 수 있다고요? 또 규격 외가…….”
“규격 외 했지?”
이현이 히죽 웃자, 티타니아는 자신의 대사를 빼앗겼다며 입을 삐죽였다.
“그런데 문제는 규격 외의 격을 얻는 거야.”
“왜요? 지금껏 잘만 얻었잖아요.”
“이제는 내 격이 1성이잖아. 이걸 포기해야 하나 싶어서.”
규격 외의 격을 얻으려면 격이 완전히 사라져 0이 되어야 했다.
즉, 어렵게 격을 올려 다다른 1성의 경지를 다시 포기해야 했다.
“[명령] 스킬도 사용하지 못할 테고, 정신의 보호도 받기 힘들 거야.”
“그리고 제 봉인이 해금된 게 취소되지 않으리란 법도 없겠죠?”
여기서 가장 뼈아픈 손실은 이현의 정신적 보호가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격의 보호를 받은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지만, 이현은 되돌아간다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해졌다.
‘있다가 없는 게 더 힘든 법이야.’
중독자의 전형적인 핑계 같지만 사실이었다.
보호가 사라지면 이현은 정말 미쳐 버릴지도 몰랐다.
“하지만 규격 외의 격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현이 길게 탄식했다.
그런 위험 부담을 안고서라도 꼭 필요한 것이 규격 외의 격이었다.
“어쩌지?”
“그러면 격석(格石)을 만들어 격을 임시 보존하면 되겠네요.”
이현이 머리가 터져라, 고민하고 있자, 티타니아가 간단히 해답을 내어놓았다.
“뭐? 격석?”
“슬러그 스톤과 비슷한 거예요. 불순물 없는 주인님의 순수한 격을 실체화시켜 보석으로 만드는 거죠.
대상을 지정하지 않고 격을 양도하면 몸 밖에서 격석으로 굳어질 거예요.”
“뭐야, 그렇게 좋은 방법을 왜 이제야 알려주는 거야?”
격을 따로 보관할 수만 있다면, 좀 더 다양한 활용이 가능할 터였다.
“설마 이번에도 던전 지식의 등급이 모자라서 그런 거야?”
그럼 어쩔 수 없다며 한숨을 쉬려는 이현의 귀를 티타니아가 쭉 잡아당겼다.
“아야!”
“뭐든지 다 제 탓으로 돌리지 말아 줄래요? 이번엔 주인님 탓이거든요?”
이현의 신체 밖에서도 격석이 형태를 유지할 수 있으려면 일정 수치 이상의 격이 필요했다.
그게 아니라면 양도할 대상도 없이 바깥으로 흘러나온 격은 그대로 흩어질 뿐이었다.
“그 수치가 놀랍게도 100, 딱 1성이네요.”
“어, 흠, 큼! 그, 그랬어?”
“네. 거기다 격석을 만든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주인님은 모르고 있잖아요.”
격석은 크라쉬의 슬러그 스톤 같은, 찌꺼기나 다름없는 물건이 아니었다.
이현의 순수한 격이 결정화된 격석은 누구라도 그걸 손에 넣는 순간, 그 격을 흡수할 수 있었다.
“우리 던전에 있는 몬스터가 흡수하면 그나마 천만다행이죠! 행여 헌터나 다른 던전의 존재들이 먹으면 그대로 날리는 거예요!”
때문에, 격석을 만들 때는 극도의 주의와 비밀 유지가 필수였다.
그래서 티타니아도 지금까지 이현에게 따로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미안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머쓱해진 이현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티타니아에게 사과를 했다.
티타니아는 이현의 귀를 놓아주었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콧방귀만 뀌었다.
“됐거든요? 요즘 주인님 보면 아주 기승전 제 탓이죠? 뭐만 하면 등급이 낮아서 그런 거냐니!”
진짜 화가 단단히 났는지 티타니아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기…… 티타니아?”
“나 안 해! 파업할 거야!”
가출이라도 할 기세로 날개를 펼쳐 포로롱 날아올랐다.
“나 찾지 말아요! 흥! 나 없이도 잘하는지 보자!”
이현은 난감해졌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의 말대로 티타니아가 없으면 이현이 힘들어진다.
“소고기 구워줄게.”
멈칫.
날아가던 티타니아의 속도가 느려졌다.
이때다 싶어 이현은 비장의 카드를 배팅했다.
“업진살로.”
“흐, 흥! 그런 거로 제가 화가 풀릴 거 가, 같아요?”
“업진살 살살 녹는다, 업진살!”
하지만 거절하기엔 너무 맛있는 업진살이었다.
“……아이스크림 얹어서요.”
“오케이, 내가 금방 다녀올게.”
티타니아를 다룰 방법을 터득한 이현이 히죽 웃었다.
한바탕 고기 파티가 끝난 후,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물고 이야기가 재개되었다.
“어떻게 하는 게 효율이 제일 높을까?”
이현은 손거울로 자신의 정보를 확인했다.
「격 : 112/200
규격 외의 격 : 30/????」
격석으로 만들 100의 격을 제외하면 양도할 수 있는 격은 12뿐이었다.
‘생각보다 적어.’
저번의 전투로 아슬하게 격을 1성으로 올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른 수가 있었다.
이현은 크라쉬의 슬러그 스톤을 살펴보았다.
「잔류 격 추출(20)」
새로 얻게 될 규격 외의 격을 사용하면 추가로 격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양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없는 것보단 나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