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of-standard grade analyst RAW novel - Chapter 481
480화
-최후의 전장(1)
숨 막히는 고요와 찢어지는 괴성, 얼어붙을 것 같은 섬?함과 신경이 타들어 갈 것 같은 공포가 한 곳에 모였다.
헤아릴 수 없는 광기, 끝을 알 수 없는 절망, 죽음을 바라게 될 혐오, 인지하느니 망각을 애원하게 될 추함의 존재들이 강림했다.
바로 지구와 태양계가 있던 그 자리에, 이현의 눈앞에.
[――――!] […….]몇몇은 침묵하고 몇몇은 이현을 보며 비웃음과 조롱을 날렸다.
그들이 꺼내는 사념 하나하나에 공간이 뒤틀리고 빛이 흩어졌으며, 사기가 우주를 가득 채웠다.
그 모든 것을 이현은 담담히 견디고 있었다.
아니, 이를 악물고 견뎌내고 있었다.
‘상상 이상이다.’
사도들이 두려워하던 티타누스의 힘을 온전히 계승하면서 그와 비슷한 우주적 존재가 된 이현이었다.
거기에 지금껏 몇이나 사도를 통째로 소멸시킨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인간 때부터 이현의 목숨을 몇 번이고 구해온 그의 생존 본능이 강렬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이들은 차원이 다르다고.
[놀란 모양이네?]살짝 굳어 있는 이현을 보고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용이 엉킨 거대한 구름의 형상을 한 이븐 자토스가 깔깔 웃어댔다.
한때, 이현을 유혹하려 했던 매혹적인 여성의 목소리였다.
그, 아니,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자 다른 7마리의 대사도들이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지옥에서 올라온 듯한 끔찍한 웃음의 합창에 이현은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나 강한 존재들이라니.’
규격 외의 신이 된 지금의 이현도 견디기 힘든 지독한 사기가 그를 덮쳐왔다.
만약, 이현이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이 웃음 하나만으로도 영혼이 뒤틀리고 더럽혀져 소멸했을 터였다.
아니, 반신의 격을 가진 상태였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터.
이현의 몸과 영혼이 사도의 천적이라 할 수 있는 규격 외의 힘 그 자체가 되어 버리지 않았다면, 절대 버틸 수 없는 힘이었다.
“후.”
하지만 이현은 이제 던전에 휘말렸던 한낱 인간도, 던전 보스도, 반신의 격을 가졌던 필멸자도 아니었다.
우주적 존재, 사도들이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규격 외의 힘의 보유자, 규격 외의 신이었다.
“[시끄러워.]”
언령. 이현의 말이 그대로 규격 외의 힘이 되어 우주에 퍼졌다.
그리고 그 순간, 거짓말처럼 대사도들의 웃음소리가 뚝 멈췄다.
웃음이 멈춤과 동시에 대사도들의 맹렬한 시선과 적의가 이현에게로 쏟아졌다.
이현은 그들을 보며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기선 제압은 좋은데, 너무 시끄러운 거 아냐?”
[―――!]아마 해석하면 ‘건방진!’ 정도가 될 사도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현은 가볍게 손을 흔들어 그 고함을 물리적으로 튕겨내었다.
그러자 다시 대사도들의 모습이 조용해졌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기에 얕보았지만, 이현의 정체는 엄연히 그들과 동급인 우주적 존재임을 깨달은 것이었다.
침묵을 깨고 입을 연 이는 바로 이븐 자토스였다.
[못 보던 사이에 힘을 다루는 게 많이 늘었네. 정말 놀라운 성장 속도야.]이현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그의 존재와 위험을 예측한 이븐 자토스였다.
그런 그녀조차도 이현이 이렇게 빨리 성장해 자신들의 숙적으로 부상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었다.
우주의 삼라만상을 모두 알고 있는 그녀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점이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있었다.
이현 역시 그 점을 눈치채고 있었다.
“다 시련을 선사해준 너희 덕분이지.”
[건방지긴.]이현의 조롱에 이븐 자토스가 불쾌함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모습이 예전 이현을 유혹했을 때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 어떤 존재도 종족과 격의 차이를 넘어 매혹될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여인.
우주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그녀가 빚은 가장 완벽한 미의 형상이었다.
물론, 이제 정신마저 규격 외의 힘으로 이루어진 이현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흥! 정말 요만큼의 빈틈도 없는 남자야.]자신의 매력이 통하지 않는 것이 불쾌한지 이븐 자토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메두사처럼 그녀의 머리카락으로 변한 수천 마리 용들이 전부 입을 열고 쉬이잇 대며 이현을 위협해왔다.
물론, 이현은 전혀 겁먹지 않았다.
“거, 지방 방송은 끄자고.”
[언제까지 그렇게 건방지게 나올지 두고 보겠어.]이븐 자토스는 용들의 입을 다물게 한 뒤 주변을 둘러보았다.
[네가 그렇게 아끼던 행성은 어디 갔지?]“없어. 네가 올 줄 알고 미리 없애 버린 지 오래다.”
이현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으르렁거렸다.
그런 이현의 모습에 교태로운 목소리로 탄식하며 이븐 자토스가 입술을 핥았다.
[아쉽네. 통째로 으스러뜨려 네가 괴로워하는 표정을 즐기려고 했는데 말이야.]“…….”
[나 혼자 보기엔 아까워서 다 같이 구경하려고 동료들을 데려왔는데, 내 체면이 말이 아니네?]이븐 자토스의 말에 다른 대사도들이 킥킥댔다.
이현은 그런 그녀를 보며 입가에 진한 미소를 그렸다.
“혼자 오기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고?”
이현의 이죽거림에 대사도들의 웃음소리가 멈췄다.
“내가 네가 계획한 걸 족족 박살 내니까 아무리 본체라도 혼자 오기 겁났던 거 같은데? 아니야?”
[…….]이현의 말이 맞아서 침묵한 것이 아니었다.
[미친놈이군.]“극찬 고마워.”
한도를 초과한 어이없음에 그 이븐 자토스가 할 말을 잃어버리게 한 이현은 그 표현에 히죽 웃어 보였다.
그녀가 분노를 끌어 올리며 이현에게 경고를 날리려고 한 순간이었다.
[어이, 이븐 자토스. 언제까지 수다나 떨고 있을 건가.]형언할 수 없는 기괴한 형상을 한 대사도 하나가 앞으로 나서며 으르렁댔다.
[느아타 콰라브아.]느아타 콰라브아라고 불린 이는 끊임없이 생성되고 무너지는 부정형의 육체를 지닌 대사도였다.
그의 부정형의 육체에서 불쑥 끔찍한 모습의 얼굴 하나가 솟아오르더니 이현을 노려보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권속보다도 못했을 인간이랑 말을 섞을 여유가 있나? 얼른 처리하고 돌아가자고.]권태와 짜증이 가득한 그의 말투에 이븐 자토스의 목소리와 말투가 바뀌었다.
파르륵.
자신의 부정형 몸체에서 튀어나온 나방을 입으로 잡아 으적대며 느아타가 불만을 토로했다.
[나는 당장이라도 십이선과 총관의 목을 베고 싶다고!]느아타 콰라브아.
그는 사도 중에서도 호전성이 가장 강한 이로, 언제나 살육과 죽음을 원하는 이였다.
행성 따위 알사탕처럼 씹어먹는 다른 대사도들과 달리, 그는 항상 자신이 점령한 행성의 생명체들을 서로 싸우게 만드는 거로 유명했다.
자신과 대등하게 싸울 상대가 없기에 살육과 전투의 흥분을 대리만족하는 끔찍한 취미를 가진 이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대사도들도 평범한 지적 생명체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같이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종말이자 지옥이었다.
이현은 그런 대사도들을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시간을 벌어야 한다.’
이현은 이곳에 오기 전, 청명이 자신에게 말해준 것을 떠올렸다.
* * *
“너에게 알려줄 게 있다.”
새로운 지구의 창조와 거주민들의 이주가 시작됐을 무렵, 청명이 이현에게 말을 걸어왔다.
“정찰대의 보고에 따르면 지구로 향하는 이가 이븐 자토스만 있는 게 아니라더군.”
청명은 8명의 대사도들이 모두 오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힘에 대해서도 알려주었다.
하나하나가 은하계를 순식간에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아니, 그래도 지구를 없애기 위해 대사도가 모두 온다구요?”
아연실색하는 이현에게 청명이 한숨을 내쉬며 유감을 표했다.
“네가 너무 그들의 관심을 끌었어. 사실 티타누스의 힘을 계승한 시점에서 피할 수 없는 일이긴 했다.”
규격 외의 힘이 부활했는데 대사도들이 움직이지 않을 리 없다며 청명은 혀를 찼다.
이현 역시 심각한 표정으로 침음성을 흘리다가 입을 열었다.
“꼭 싸워야 합니까?”
“그들을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간 분명 이쪽의 낌새를 눈치챌 거다.”
지구와 스카라반, 무 행성의 이전은 모두 완료한 지 오래였지만, 아직 옮길 게 많은 에트나 행성의 이전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이미 이븐 자토스가 에트나 행성의 위치를 알고 있었기에, 만약 이현이 그들을 무시한다면,
“제 흔적을 찾아 에트나 행성으로 오겠군요.”
“그래. 그리고 새로운 지구로의 이주를 눈치채겠지.”
“안 됩니다.”
이현이 이를 악물며 고개를 저었다.
던전 마켓이 있던 거대한 블랙홀은 아무리 이븐 자토스라 하더라도 쉽게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지만, 지금처럼 이주를 위해 개방한 상태라면 상황이 달랐다.
마치 빗장이 열린 성문을 뚫고 들어오는 야만족들처럼 새로운 지구를 짓밟을 게 뻔했다.
“최대한 서둘러보지. 대신 누군가가 시간을 끌어야 해.”
지구가 있던 자리에서 그들을 상대하며 이주가 끝날 때까지 시간을 끌어야 했다.
이현은 그 역할은 당연히 자신의 몫임을 깨달았다.
“이주가 끝나고 블랙홀을 다시 닫을 때까지만이면 되는 거죠?”
“그래. 하지만 어려울 거다.”
청명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이현을 바라보았다.
“네가 티타누스의 힘을 온전히 계승했다는 건 알아. 하지만 경험은 아니지. 솔직히 8마리의 대사도를 동시에 상대하면 넌 순식간에 죽을 거다.”
“그건 해 봐야…….”
“티타누스도 못 했던 일이야. 그럴 수 있었다면, 이미 진즉에 대전쟁은 우리의 승리로 끝났겠지.”
전성기의 티타누스도 하지 못했다는 청명의 말에 이현은 더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럼 어쩌죠?”
“최대한 버텨. 그러고 나면…….”
청명이 이현의 귀에 자신의 작전을 속삭였다.
그의 계획을 들은 이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버텨보죠.”
아니, 버틸 수밖에 없었다.
최후의 전장이 될 옛 지구의 터에서 모든 것이 결정 날 테니까.
* * *
‘이를 어쩐다.’
시간을 끌어야 하는 이현의 입장에서 간식을 해치우는 것처럼 후딱 일을 처리하려는 느아타의 태도는 달갑지 않았다.
더 좋지 않은 것은 8마리의 대사도가 동시에 덤빈다면, 아무리 이현이라도 순식간에 쓰러질 게 분명하다는 점.
이현은 방법을 찾아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렸다.
[아버지께서는 우리 모두 여기에 오길 원하셨다. 아버지를 실망하게 하지 않으려면 일을 확실히 끝내야 해.] [그래서 여기 왔잖아! 그러니깐 빨리 해치우고 가자고! 저런 놈 따위 다 같이 밟기만 해도 끝나잖아!]그때, 부정형의 몸체를 끔찍하게 뒤틀며 분노하는 느아타의 모습을 본 이현의 머릿속에 괜찮은 방법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이현이 입을 열고 이죽거리기 시작했다.
“어휴, 내가 무섭긴 한 가봐? 8마리 전부 덤비지 않으면, 나랑 상대할 용기도 없지?”
[…….]분노를 쏟아내던 부정형의 몸체가 마치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멈췄다.
그리고 어떤 말로도 묘사할 수 없는 끔찍한 얼굴이 솟아올라 이현에게 분노를 쏟아내었다.
[감히, 이 몸에게 용기가 없다고 한 거냐?]“그래. 나랑 싸우기 무서우니까 다 같이 힘을 합치자고 조르는 거 아냐.”
이현은 한껏 이죽거리는 표정으로 느아타를 도발했다.
“이해해. 나랑 싸우는 게 오죽 무서웠겠니. 차라리 십이선이나 총관하고 싸우는 게 낫지. 안 그래?”
스스로가 십이선이나 총관보다 낫다니.
말도 안 되는 도발임에도 불구하고 이현의 말은 느아타의 머릿속 이성의 끈을 끊어놓는 데 성공했다.
[크핫핫핫핫! 드디어 미친 게냐? 이 하루살이만도 못한 것이!]“그런 하루살이가 무서워서 도망가려는 게 어디 누구시더라?”
이현이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마지막 일격을 넣었다.
“자신 있으면 나랑 붙어보든가. 혼자서 말이야.”
으드득, 으드득.
느아타의 부정형 몸체가 꿈틀대더니 날렵한 몸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내가 오늘 여기서 너를 끝장을 내고 총관의 목을 베러 가지.] [느아타!] [시끄러워, 이븐 자토스. 그리고 너희도. 아무도 나서지 마라. 이건 내 싸움이다.]다른 대사도들에게 경고하고 나선 느아타를 보며 이현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좋았어, 일대일로 시간을 끌자.’
하지만 진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느아타 콰라브아를 보곤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 힘들지도?’
삼두육비의 모습으로 무기를 휘두르는 느아타가 이현에게로 달려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