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Biopsy RAW novel - Chapter (339)
00339 천계(天界) =========================================================================
백련교주가 나를 지목할 줄이야!
나는 너무 황당한 일이라서 순간적으로 어떤 말을 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백련교주 앞이란 것도 잊고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저는 그럴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 왜?]
“진소청의 재능이 저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내 말에 백련교주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
[ 그건 내 고려대상이 아니다. 나는 백웅 네가 제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힐끔 망량과 진소청을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생각보다 침착한 얼굴이었다. 망량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전음을 보냈다.
[ 괜찮소. 그냥 받아들이시오. 어차피 순어구를 당신이 갖고 있으니 언제든 우리와 연락할 수 있소.]망량은 이런 상황도 상정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안정을 찾고 백련교주에게 부복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당황해서 실수를 했습니다. 크나크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 좋아…]
백련교주는 말꼬리를 흐리더니 육합전성을 울렸다.
[ 망량은 뇌신류 호법사자를 수행하는 우호법, 진소청은 좌호법으로 임명한다. 그대들은 본디 동료였으니 서로를 도와 교를 진흥시키기를 바란다.] “존명!”“존명!”
[ 그럼 첫 임무를 내리겠다.]
백련교주의 첫 임무!
우리는 그의 명령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백련교주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예상대로라고 해야 할까. 당연한 명령이지만 아주 어려운 명령이었다. 당장 우리만 해도 마음속에 칼을 품고 입교한 처지인데, 백련교에 대한 원한이 극한에 달해있는 각지의 뇌신류 전승자들이 과연 그 말을 들을 것인가? 지금껏 그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에 뇌신류와 백련교 중 무엇을 선택할지 갈등했던 것이다.
망량이 한 걸음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교주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말하라, 망량.]
“뇌신류의 전승자들을 그저 돌아오라고 해서는 무력으로 싸울 수밖에 없고, 저희는 그들을 일일이 제압할만한 여력이 없습니다. 뭔가 그들을 위한 은상(恩賞)을 마련해주신다면 최선을 다해서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 흐음…]
망량의 말에 백련교주는 약간 생각하는 기색이었다. 그러다가 말했다.
[ 그들에게 교에서의 높은 지위를 보장해주며 이청운의 유학(遺學)을 전해준다고 말하라. 이는 내 명예를 걸고 하는 말이다.] “……!!”[ 그러면 대부분은 돌아오겠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이었지만 내 옆에 있던 망량은 이마에 땀에 송골송골 나고 있었다. 교주의 의중을 어느 정도 읽었기 때문에 그 두려움을 느끼는 듯 했다. 망량이 간신히 대꾸했다.
“알겠습니다.”
[ 또한 너희가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천령단(天靈丹)을 내리겠다.]
천령단!
나는 그 말에 침음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신의 힘을 통째로 중계하는 단말이자, 무한대의 내공을 뽑아쓸 수 있는 최강의 육체! 그걸 내려준다는 건 무인으로서 거부하기 힘든 유혹이었다. 하물며 이번 백련교행 자체가 천령단의 습득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 온 게 아니었던가?
‘ 뭐지? 조건이 너무 좋아!’
아무리 생각해도 갓 들어온 뇌신류의 잔당에게 천하의 백련교주가 할만한 제안이 아니었다. 그렇다기보다는 차라리 대등한 상대와 교섭을 하는 듯한 후한 조건이었다. 백련교주가 아무런 조건이나 은상도 걸지 않고, 닥치고 해내라는 식으로 으름장을 놓아도 지금의 우리는 할 말이 없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나는 백련교주의 진의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꼭 해내겠습니다.”
[ 좋다.]
백련교주는 흡족한 듯 중얼거리고는 나를 검지로 지명했다.
[ 호법들은 이만 물러가고 호법사자 백웅은 나를 따라오라.] “네.”이윽고 망량과 진소청이 원로원 고수의 손에 이끌려서 사라지자, 나는 어영부영 그 자리에 부복한 채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오라고는 해도 백련교주는 발 뒤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러나 잠시 후 스치듯이 목소리가 지나갔다.
이 쪽.
휙!
나는 귓가를 스치운 목소리에 놀라서 황급히 옆을 돌아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발 안에 있던 백련교주의 신형도 이미 사라진 후였다. 나는 백련교주가 초고속 신법으로 내 옆을 지나가며 목소리를 남겼다는 걸 알아채자 모골이 송연했다.
‘ 괴물이다…!!’
나는 지난 백 년간 계속 무예를 연마해서, 이미 중원에서 최정상고수들과 겨루어도 문제없는 수준에 이르렀다. 내 동체시력과 기감은 보통 무림인의 것을 훨씬 초월해 있었다. 심지어 초절정고수의 쾌검조차도 찰나간에 존재를 간파할 수 있는게 나였는데, 지금 백련교주의 신법은 보이기는 커녕 ‘비치지도’ 않은 것이다!
내가 멸혼보의 최대속력을 낸다고 해도 지금 백련교주같은 신법을 발휘할 수 있을지는 전혀 장담할 수 없었다. 내 예감으로는 백련교주의 신법에 반절이나 따라갈지 의문이었다. 그 사실에서 나는 절망적인 사실을 한가지 더 깨달았다.
지금의 나는 백련교주에게 일초지적에 불과하다.
방금 전에 지나가면서 스치듯이 수도(手刀) 한방만 날렸어도 내 목이 달아났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산이 높다. 저런 괴물을 상대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수행을 해야하는 것인가? 나는 지긋이 입술을 깨물고는 백련교주의 기(氣)를 따라서 움직였다. 백련교주가 말한 방향에는 마치 보라는 듯이 백련교주의 방대한 기가 느껴졌기 때문에 따라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약 오십 장 정도를 갔을까? 나는 웬 꽃이 가득 피어있는 정원에 도착해 있었다. 인조적으로 꾸며진 아름다운 정원이었는데 곳곳에 나무도 심어져 있었다. 조형이 잘 되어 있는지 그저 한 폭의 그림처럼 향기가 만발한 장소였다.
그리고 백련교주는 그 정원의 한가운데에 서서 고요히 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복장은 예전에 황궁결전에서 보았던 것과 같았는데, 금색 수실이 새겨진 자색 장포를 입고 있었으며 관(冠)을 머리에 쓰고 있었다. 또한 얼굴에는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아무런 표정이나 형상도 새겨지지 않은 무면(無面)이었다.
백련교주가 내게 물었다.
[ 백웅. 이 나무가 무엇인지 알고 있나?]나는 힐끔 나무를 쳐다보았다. 치렁거리는 잎새와 모양을 보았을 때 저 나무는 단 하나의 수종(樹種)을 의미했다. 나는 조용히 대꾸했다.
“용화수(龍華樹)입니다.”
용화수는 흔하지는 않으나 곳곳에서 보이는 품종이었다. 보리수나무라고도 했으며 치렁대는 잎새가 인상적인 큰 나무였다. 천축에서 전래되었다고 알고 있었다. 내 대답에 백련교주가 용화수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내가 아무런 정보도 없이 백련교에 입교했다면 백련교주의 이 말에 의아함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백련교주가 소교주의 괴질을 고치기 위해 남만 이남으로 전설을 수집하러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 배경에는 용화수의 신력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다.
용화수란 건 불교에서 말하는 미래불(未來佛)이 하생(下生)한다는 전설의 나무로서 백련교의 설화수이기도 했다. 백련교주는 소교주의 괴질을 어떻게 고칠지 고민하다가 그 대안으로 무생노모에게 큰 공양을 하기로 마음먹었고, 그 제물이 될만한 용화수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내가 흑백련을 그에게 주었으니 괴질이 치유되었고, 이제 용화수는 필요가 없게 된 셈이다.
백련교주의 말이 이어졌다.
[ 내가 그대를 제자로 삼은 이유가 궁금하겠지.] “네, 그렇습니다.”[ 망량이 말하지 않아도 진소청의 재능이 더욱 뛰어나다는 정도는 보자마자 알 수 있었지. 저 나이에 이미 의념절기를 뛰어넘었으니, 그와 같은 재능을 지닌 자는 태어나서 단 한 번밖에 보지 못했다.]
누구를 말하는 걸까?
내가 내심 궁금해하고 있을 때 백련교주가 말했다.
[ 망량과 진소청이 억지로 내 흥미를 그대에게서 돌리려는 걸 모를 줄 알았는가? 또한 진소청이 중심인 척 하고 있으나 그대가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라는 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진소청보다 무위는 약하고, 망량보다 두뇌가 별로라… 충분히 흥미롭지.] “……”
아프다.
왠지 백련교주가 사실만 말하는데 아픈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간에 백련교주는 대조직을 이끄는 교주답게 일견만으로 우리의 관계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나는 내심 그를 경계하며 말했다.
“저를 죽이실 겁니까?”
보통 이런 경우 의심스러운 자들을 모두 쳐내버리는 게 무림세력의 통례다. 누군들 꿍꿍이를 품고 있는 고수가 달갑겠는가. 나는 순간 이번 삶의 끝이 다가온다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았지만 백련교주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 나는 함부로 사람을 농락하지 않는다. 하물며 너희처럼 재능있는 자들이라면 그 재능이 아깝지. 적을 제거하기는 쉬워도 아군을 만들기는 힘든 일이니 섣불리 행하지 않으니 걱정 말아라.] “음…”나는 순간적으로 백련교주의 그릇이 느껴진 기분이 들었다. 저 무덤덤한 말투 속에는 절대적인 자신감과 자존감, 동시에 패주로서의 여유와 포용력이 존재하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가 아무리 애를 써봤자 자신에게 굴복할 것이라는 강한 신념마저 있었기에 나는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 과연 무림최강세력의 절대자구나…!!’
그릇만으로는 내가 보아왔던 그 어떤 자보다 넓다. 비견할 수 있는 건 십이율주 정도일까?
내가 속으로 감탄하고 있을 때 백련교주가 말했다.
[ 후후후…]
의미불명의 웃음을 흘린 백련교주는 문득 용화수에 손을 갖다대었다.
파사삭!
“헉!”
나는 깜짝 놀랐다. 높이가 일 장을 훨씬 넘어보이는 아름드리 용화수가 순식간에 쪼그라들어서 폐목(廢木)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보아도 순식간에 생기(生氣)를 빨린 모습이었기에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화아앗
놀라운 건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백련교주가 다시 한 번 쓸어내듯이 용화수에 자신의 손을 스치자, 말라비틀어졌던 용화수가 육안에 보일 정도로 꿈틀거리면서 생기를 되찾기 시작한 것이다.
생사(生死)를 조율하는 권능(權能)!
만물의 기를 자유자재로 흡수하고 창생할 수 있다는 뜻이었으므로 나는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저건 전설로만 전해지는 흡성대법(吸成大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도리어 원전보다 더욱 강력할지도 모른다.
백련교주는 한 차례 용화수를 죽였다 되살려내는 기행(奇行)을 선보인 후 말했다.
[ 백웅이여. 그대는 기(氣)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뜬금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세계 만물에 퍼져 있는 힘이며, 생명력을 유지시켜주는 근원이며, 초인적인 힘을 발생시켜주는 원동력입니다.”
[ 대체로 무림에서는 그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지.]
“아닙니까?”
[ ……]
잠시 침묵하던 백련교주가 하늘을 쳐다보았다.
[ 지금까지 무극(武極)에 이르기 위해 무수한 수련을 거치던 도중, 한 가지를 깨닫게 되었지. 그것은 내가 이룬 원영신(元靈身)이 신허(神虛), 즉 태허(太虛)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무슨 말씀이신지…”[ 태허(太虛)란 기(氣)를 일컫는 말이다. 태허즉기(太虛卽氣), 기가 흩어진 모습이 바로 태허인 셈.]
그렇게 말한 백련교주는 갑자기 손가락을 들어서 하늘을 가리켰다.
[ 보라. 이 세상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그가 무엇을 말하는지도 이해를 할 수 없다.
내게 있어서 백련교주의 말은 이해불가한 광인(狂人)의 말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분명히 초상승의 무학경지를 말하고 있을 게 분명했기에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멈칫거리자 백련교주는 손가락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 지금은 죽었지.]
짧게 대답한 백련교주는 갑자기 침묵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마치 주변을 감싸안는듯한 폭력적인 기세에 가까웠다. 그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압박감 때문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가 발하는 의념이 소스라치게 내 위험감각을 자극하고 있어서 뇌수가 녹아흐를 것만 같다!
광기의 함묵(含默).
그 함묵이 끝났을 때 백련교주는 내 눈앞에서 허깨비처럼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장내에는 그가 남긴 육합전성이 떠돌았다.
[ 임무가 끝난 후 찾아와라. 그때는 오늘의 이야기를 마저 해 주겠다.]풀썩!
“헉… 헉…”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부들거리는 손을 들어서 땅바닥의 흙을 쥐었는데, 그마저도 용이치 않을 정도로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헉…”
너무나 높다.
백련교주가 살의를 품은 것도 아니고 그저 자신이 서 있는 진경에서 위의(威意)를 펼친 것 뿐이었는데도, 나는 그 만변하는 형상 속에서 도저히 버텨내지 못한 것이다.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의념절기만큼의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것 – 그것은 교주의 경지가 심즉상(心卽想)에 이르러서 주변을 마음대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 진소청. 정말로 할 수 있겠소? 저런 괴물같은 자에게 도달할 수 있겠소?’
아니, 아니다.
진소청이 백련교주에게 도달할지가 걱정되는 게 아니다.
저런 백련교주조차도 진정한 신(神) 앞에서는 벌레같은 존재라는 게 너무나 무섭다. 백련교주는 말 그대로 무림의 절대자인데도 신에게 처참하게 죽었던 과거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내가 얻어야 할 목표는 너무나 멀리에 있었다.
과연… 내가 [옛 지배자]를 쓰러뜨릴 수 있을까?
“……”
나는 흙을 꽉 쥐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다리에 힘을 주고 입술을 꽉 물며 일어섰다.
“씨발… 어쩔 수 없지!”
그래도 해야 한다.
그래도 할 것이다.
이 전생(轉生)과 나의 삶이 허락하는 한, 내 동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미래를 만들고야 말겠다. 억울하게 절대자의 유희에 짓눌려죽는 처지에 속하지 않도록 하고 말겠다. 그것이 바로 나의 각오다.
신을 이기는 게 우스갯소리라 하더라도 – 마찬가지인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