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Life Returner RAW novel - Chapter 88
25 화
진입 1일째.
북미의 길드원 시절,이 던전에 처음 들어왔을 때 나는 D 등급이었다.
A급부터 E급까지 다양하게 구성된 공격대를 꽉 채워서 였다.
공격대장의 얼굴은 가물가물하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그의 깊은 눈두 덩 이 속에 잠겨 있던 날카로운 눈빛뿐
이다.
던전에서 헤매고 다녔던 기간이 길 었던 덕분에 그 정도나마 기억하고 있 었다.
공격대장은 보스전에서 죽었다.
공격대를 위해 희생한 게 아니라,보 스 몬스터였던 바르바 대학장이 그를 집요하게 노렸기 때문이었다.
이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선 이번에 야말로 역경자와 마리의 손길이 필요 할 것이다.
퀘스트에 대한 설명을 마친 다음,주 요 몬스터를 다뤘다.
던전과 현실을 구분 짓는 푸른 막을
등에 두고서.
“감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은신하는 것들이 있거든. 두 종류.”
암살자와 저격수.
시스템에서 그것들의 직위를 그렇게 달아 놓았다.
“그리고 정신 지배는 아껴 뒀다가 하 라고 하는 녀석들에게만 써.”
대전 퀘스트 몬스터에 속하지 않으 면서도,그만한 괴력을 자랑하는 녀석 이다.
본격적인 공략에 앞서 퀘스트 아이 템부터 사용했다.
[ ‘역병을 증오하는 아이’를 사용 하였습 니다.]긴장하고 있던 우연희의 표정이 풀 렸다.
엄지손가락에 못 미치는 크기에 다 채로운 빛을 품고 있는 정령이었다.
우연희가 조심스럽게 손바닥을 펼치 자,정령이 거기에 내려앉으며 날개를 접었다.
그러나 보이는 것과는 달리 실물(攻 物)이 없는 게 정령이다.
“예쁘다.”
우연희는 처음으로 공포 영화가 아
닌,판타지 영화에 들어온 얼굴이 되 었다.
반짝이는 두 눈으로 정령에게서 시 선을 못 땐다.
하지만 이것들의 정체를 아는 나로 선 썩 달가운 기분은 아니었다.
어쨌든 지금은 그녀의 환상을 깨고 싶지 않았다.
“어어?”
갑자기 정령이 날아올랐다. 우연희 가 안타까운 소리를 냈다.
우연희가 목에 걸고 있는 아이템 때 문이었다. 바르바 고위 역병술사의 뼈 목걸이.
정령은 우리 주변을 맴돌다가 전방 을 가리켰다.
조그마한 팔과 더 조그마한 손가락 이 움직이자,우연희의 표정이 사르르 녹았다.
“긴장 풀지 말고 감각 세워. 진입한 다.”
진입 7일째.
직전의 던전에서도 그랬지만,이번 에는 여분의 아이템들을 더 많이 챙겨 왔다.
안전지대에 돌입하자마자 우연희는 새로운 아이템들을 장비했다. 반면에 나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신의 이름 을 단 방어구들은 단순히 피해 흡수력 만 높은 게 아니니까.
오히려 피해 홉수력 차이보다,충전 속도야말로 신의 이름을 달기에 충분 한 것들이다.
우연희가 목걸이를 바꾸고 있을 때. 나는 그녀를 향해 팔을 뻗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머리 뒤였다.
우연희는 나보다 한 박자 느렸다. 그 제야 상황을 간파했다.
내 손에 목이 쥐어진 쥐새끼의 복부
에 단검을 찔러 넣은 다음 목 언저리 까지 긁어 올렸다. 내장 기관이 쏟아 져 나왔다.
바들바들 떨리던 쥐새끼의 대가리도 힘없이 꺾였다.
기껏 들어온 안전지대인데…….
우리는 다시 오염되는 땅을 피해 걸 음을 옮겼다.
입구 초반,정령 때문에 잠시나마 밝 아졌던 우연희의 표정은 더 볼 수 없 었다.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은신 몬스 터. 그것들을 감지하기 위해 감각을 항시 곤두세우고 있는 건,처음 몇 시
간이나 쉽지 그 다음부터는 곤욕스러 운일이 분명했다.
하지만 스스로 결의를 다지고 있는 우연희의 얼굴에 대고,감각을 곤두세 우라고 질책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때.
먼저 날아간 정령이 벽 속으로 사라 졌다.
정령이 만든 연구실로 통하는 통로 는 역병술사를 협박해서 만든 것과 차 이가 있었다.
기어 들어가야 하는 좁은 크기 다.
정령이 재촉한다.
빨리 들어가라고.
그렇게 확인한 연구실 규모는 중형 이었다.
최소 5개 이상의 소형 연구실이 이어 져 있는 그곳은 역병술사들로 넘쳐났 다.
뭉족의 생체 실험 및 각종 원석들을 오염시 키고자 온갖 연구가 활발하다.
바르바 군단의 야욕과 집념이 거기, ‘기에에엑’ 거리는 불쾌한 소리에 묻 어져 나온다.
우연희는 그쪽의 광경에 매료되었 다. 지금까지 우리가 상대해 왔던 몬 스터들이 하나의 문명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
그러다 결국 뭉족이 실험당하고 있 는 걸 보고 말았는지,그녀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나는 우연희에게 한 녀석을 가리켰 다.
우연희가 집게손가락을 빙글 돌렸 다.
정신 지배 하라고?
그런 수신호다.
저장 용기들을 가리켜 보이며 소리 없이 입술만 움직였다.
저것들을 지켜.
그녀의 두 눈이 검게 물들면서 일은 시작됐다.
저장 용기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녀 석이 우두커니 멈춰 버렸다. 그러고는 천장인 이쪽을 흘깃 올려다본 후 고개 를 빠르고 짧게 끄덕 였다.
우리는 F급 던전을 첫 공략했던 당 시처럼 신중을 기해 왔다.
도망쳐서 알림을 울리는 녀석이 없
도록,근근이 배치되어 있는 저격수를 사전에 감지하기 위해서,정신 지배 등 스킬 충전을 위해서.
게다가 도중에 E급 보스 몬스터로 있던 바르바 고위 역병술사와 조우했 기도 해서.
우리가 던전에 들어온 지도 열흘이 넘게 흘렀다.
[바르바 군단의 방해자:바르바 고위 역 병술사 2/3 ]
역병 연구실 15/20 바르바 역병술사 기/ 100]
S급 퀘스트 완료까지 70%가 넘게 진행됐다.
그것은 내 단독 퀘스트고.
우리 파티의 던전 퀘스트도 세 개를 완료하며,2만 포인트 이상과 플래티 넘 박스 세 개를 띄웠다.
물론 연구실에서 우연희와 나눠 가 진룬도개인당 두개씩.
진입 15일째.
우연희가 가장 강력해질 수 있는 순 간이 도래했다.
괴수.
공룡이 아닌가 싶은 저 녀석은 바르 바 군단의 생체 연구가 만든 결실물이
라고 봐도 무방한 녀석이었다.
하위 던전의 보스 몬스터 자리에 놓 아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녀석.
지배의 반지와 데비의 칼날 등으로 도망칠 수 있는 것들을 정 리하거나 클 리어 한 구역으로 몰아넣고 있는 동 안.
우연희는 저 녀석의 정신세계를 장 악하는 데 성공했다.
괴수가 거대한 몸체를 끌고 왔다.
거칠고 거대한 송곳니 사이에서 뿜 어져 나온 입김이 내 얼굴을 와락 덮 쳤다.
“역병은 면역이고,중급 방어막 이상
의 생체 능력을 가진 녀석이다. 느껴 져?”
괴수가 고개를 끄덕 였다.
그럼 말은 다 끝났다. 쥐새끼들을 몰 아넣은 구역을 가리 켰다.
잠시 뒤,축구공 같은 것들이 굴러 나오기 시작했다.
뭉개지고 뜯겨진 그것들은 전부 쥐 새끼들의 대가리로, 그만큼의 비명 소 리가 구역 하나를 가득 채웠다.
그건 몸풀기에 불과했다.
나는 괴수가 나오길 기다렸다가,우 연희의 진짜 육체를 한 팔로 껴안아 들었다.
“전방 어딘가에 고위 역병술사 한 마 리가 더 있다. 놈까지 끝내 놓자.”
진입 22일째.
드디어 였다.
다시 뼈 목걸이를 찬 우연희를 피해 내 어깨에 앉아 있던 정령이 날개를 폈다.
녀석의 날갯짓은 나를 S급 퀘스트의 종착역으로 보내는 신호 아닌가. 더욱이 시스템은 야박하지 않다.
중형 연구실을 하나로 인식하지 않
고,거기에 부속되어 있는 소형 연구 실 각각을 퀘스트 상의 ‘연구실’로 잡 는다.
사실상 중형 연구실 하나만 더 박살 내 놓으면 끝인 것이다.
그런 내 홍분이 우연희에게 전해졌 다.
일주일 전 괴수를 정신 지배 했던 파 장에 더불어,은신하는 것들 때문에 지긋지긋한 두통에 시달리던 그녀의 입가에 비로소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아마 나도 웃고 있었던 것 같다. 문 득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으니까.
“가자.”
이미 세 번에 거쳐 같은 전략을 반복 해 왔기 때문이었다.
우연희가 조종하는 역병술사는 멍청 히 서 있지만은 않았다.
저장 용기 근처에서 머물며 동족의 등에 마법을 꽂아 넣었다.
정령은 역병술사들이 죽어 나갈 때 마다 온 몸을 떨어 대고 있었다. 목소 리를 낼 수 있는 존재였다면,쾌락이 가득 찬 신음 소리를 내고 있을 거다.
역병술사 대가리 하나에 날갯짓 한 번.
역별술사 대가리 두 개에 날갯짓 두 번.
한 번에 세 개 이상의 대가리가 떨어 져 나오면 아주 숨이 넘어갈 지경이 다.
저것의 꼴사나운 행태를 보는 것도 이 번으로 마지막이다.
빠지직!
몰살 끝,벼락 줄기들로 녀석들의 연 구 실적들을 휩쓸어 나갔다.
고위 역병술사,그냥 역병술사의 퀘 스트 완료 조건은 채웠다.
남은 건 연구실 5개 파괴뿐.
[ 연구실을 파괴 하였습니 다.] [ 연구실을 파괴 하였습니다. ]마지막이다!
[ 퀘스트 ‘바르바 군단의 방해자’를 완료 하였습니다.] [ 바르바 군단의 연구 속도가 저하 되었 습니다.]심장을 울리는 메시지 아닌가!
역병에 찌든 남아메리카 대륙의 광 경이 뇌리 속에서 번뜩여 대듯,퀘스 트 완료 보상을 떠올리는 메시지 또한 내 눈앞에서 번쩍였다.
[ 완료 보상으로 ‘첼린저 박스’가 지급 됩 니다.]모든 색채의 광휘를 휘감은 박스. 이 박스를 고대해 왔었다.
일선의 데비의 칼을 띄운 이후로. 시작의 장까지 다시는 못 볼 물건인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 여기 내 눈 앞에 당당히 나타났다.
무엇이든 좋다.
스킬,인장,아이템.
무엇이 됐든지 간에 나를 한 단계 도 약시켜줄 것이다.
눈 밑이 바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때 내 손을 감아 오는 따뜻한 온기 가 있었다.
우연희 였다.
그녀가 내 손을 잡으며 더할 수 없는 기쁨의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 었다.
그녀의 두 눈에는 어쩐지 눈물까지 맺혀 있었다.
“축하해.”
그녀가 말했다.
그 순간 박스가 열리기 시작했다.
첼린저 박스의 빛에는 치유 효과가 있다고 말했던가?
부상뿐만이 아니라 방어막 수치에도 영향을 주는 그것이,아직 충전되지 못한 피해 흡수량을 한계치까지 채운 다.
나는 그러한 메시지들을 날려 버리 며 광휘가 집약되는 광경에 집중했다.
가슴으로 쏟아지면 인장,손으로 쏟 아지면 아이템,전신으로 퍼지면 스 킬!
광휘는 손을 향해 쏟아졌다.
황급히 두 손을 받쳤다.
[ 아이템 ‘라의 태양 망토’를 획득 하였습 니다.] [ 라의 태양 망토(아이템)효과: 모든 저항력 20% 상승,축복 ‘라의 가호’ 랜덤 발생,아이템 ‘라의 태양 검’ 변 환가능
물리 피해 흡수력 : 15000/15000 마법 피해 흡수력: 15000 /15000 등급: S] [ 새로운 종목들이 추가 되었습니다. 대상: 영혼 저항력,정신 저항력,부패 저 항력,공포증 저항력, 권능 저항력……. ]
금강 역사의 수호 장갑이 띄우지 못 한 종목들이 일제히 추가되고 있었다.
본 시대에서는 그 존재를 알 수 없었 던 저항력들까지.
더 놀라운 것은 무기로도 변환이 가 능하다는 점에 있었다.
처음 보는 그것이 지금.
내 손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6권끝)
체니는 지쳐 있었다.
정부에서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퍼 펙트한 전쟁이었다고 선전하지만,직 접 참전 중인 체니의 입장에서는 전혀 아니었다.
체니 같은 용병들은 점령 지역의 치 안을 유지하는 일을 맡았다. 테러리스트들이 어린아이한테도 폭
탄 조끼를 입혀서 보내오는 게 일상이 었고,그때마다 고통스러운 결정을 강 요받았다.
돈이 절실한 입장이 아니었다면 진 즉 고향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고향에는 소아암에 고통받고 있는 어린 아들이 있었다.
어느 날 화이트 워터의 간부가 계약 연장 서류를 들고 나타났다.
“다음 차례는 이라크야. 지금부터 파 견 계약 연장을 독촉하는 걸 보면 기 정사실화된 셈이지.”
“조건은 같습니까?”
“그래. 하지만 자네 평이 좋더군. 그
래서 더 나은 제안을 할까 하네.”
간부는 새로운 서류를 테이블에 올 렸다.
체니는 파견 지역과 고용 업체의 이 름부터 훑었다. 그런데 거기는 전장이 아니었다.
고향인 텍사스주 안일 뿐더러 고용 업체 또한 전쟁 산업과 거리가 멀었 다.
그런데도 연봉이 30% 이상 상승 계 산된 계약서였다.
체니는 이해할 수 없었다.
“뭐하는 곳이고,저는 어디에 배속되 는 겁니까?”
“일단은 유해 위험 물질 처리소라고 해 두지. 거짓도 아니니까. 어쨌든 진 실은 계약서에 서명을 한 뒤에 듣게 될 거네.”
까짓것 전장보다 위험 하겠는가. 어린아이의 이마에 총구를 겨눌 일 도 없을 뿐더러,정기 휴가 때마다 아 내와 아들을 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체니가 펜을 들었다.
“영락없이 방공호 같군요.”
유해 위험 물질 처리소는 위장이었
다. 실제로 지상 외부에 그런 시설을 갖추고 사업이 돌아가고 있긴 하지만, 진짜는 지하에 있었다.
“그게 맞아. 냉전 시기 때 지어졌다 더군.”
이데마가 대답했다. 체니의 사수로 배정받은 요원이었다.
그는 체니도 잘 알고 있는 인사였다.
화이터 워터 훈련생 시절,이데마는 뛰어난 훈련 성적을 거두며 좋은 계약 을 따냈다고 알려져 있었다. 꼭 이데 마뿐만이 아니다.
체니는 여기에서 걸출했던 훈련생들 의 낯익은 얼굴을 여러 번 목격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왔지?”
“예.”
“멀리 돌아왔군. 훈련소 성적이 나쁘 지 않았던데,아쉽네. 빨리 합류했다 면 지금쯤 2급 레벨을 달았을 텐데 말 이야.”
“아직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다. 제 가 3급 레벨이라는 것 외에는.”
“서두를 것 없어. 따라와.”
체니가 볼 때 방공호를 고쳐서 만든 여 기는,보안 정도가 상당했다. 들어오는 출입구는 하나.
창고까지 내려가는 길마다 강화 차 단문을 설치하여 어김없이 요원들을
배치해 두었다.
고성능 감시 카메라가 어디에나 존 재했다.
누군가 창고까지 침입하기 위해선 관문을 차례대로 통과할 수밖에 없고, 그 이전에 이미 유해 위험 물질 처리 소라는 위장 사업의 전 영역에 걸쳐 삼엄한 경비 태세가 갖춰져 있었다.
‘무엇을 보관하고 있는 거지? 마약인 가……
“마약 같은 걸 지키고 있다 생각하겠 지?”
체니가 깜짝 놀란 눈을 부릅떴다.
“아닙니다.”
“처음엔 다 그래. 나도 그랬지. 이 정 도까지나 보안을 유지해야 한다면,대 체 얼마만큼의 약이 쌓여 있는 건가 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통로는 길고 좁았 다.
그보다 체니는 동작감지 센서에 반 응해서 움직이는 감시 카메라들이 신 경 쓰였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넌 바깥에 배치될 거다. 보직이 옮 겨지지 않은 이상,창고에 들어가 볼 기회는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거
지. 뭘 지키고 있는지 똑똑히 눈에 담 아 둬. 문제가 발생한다면,그것들을 회수하는 것도 우리 몫이니까.”
그럴수록 체니는 더 궁금해졌다. 대 체 뭘까. 대체 뭐지?
마지막 차단문의 보안 절차를 통과 했다.
그런 체니와 이데마 앞에 펼쳐진 건, 정면을 큼지막하게 막아선 은행 금고 문이었다.
그 앞에서 체니가 마지막 차단문의 요원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요원이 수화기를 들었다.
uCat Food Warehouse. 코드 번호 公次文”
마침내 금고문이 열리며,체니는 서 서히 벌어지는틈새를 노려보았다.
예상과는 달랐다. 안은 마약이 수십 kg 단위씩 쌓여져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금괴나 다른 보석으로 채워 져 있지도 않았다.
체니는 이데마를 따라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다양한 크기의 캐비닛이 질서 정연 하게 창고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한편 각 캐비닛당 내용물 확인이 가
능하도록 강화 유리창이 존재했고,내 용물 명찰표가 어김 없이 붙어 있었다.
체니가 이데마를 쳐다보자,이데마 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제야 자유로이 발걸음을 움직일 수 있게 된 체니는 가장 가까운 캐비 닛으로 다가갔다.
그런 체니의 등 뒤로 이데마의 목소 리가 부딪쳤다.
“눈으로 보기만 해. 조금이라도 손대 는 즉시,넌 아프가니스탄에서 돌아오 지 못한 걸로 처리되니까. 득. 뭘 그리 놀라고 그래.”
웃으면서 넘긴 소리였지만,결코 거
짓이 아닌 것 같았다.
실제로 마지막 차단문에 있었던 요 원들의 총구가 문 바깥에서 번뜩이고 있었다.
체니는 침을 삼켜 넘겼다. 그리고는 강화 유리 너 머를 들여 다보았다.
‘가죽 장갑? 그냥 가죽 장갑이잖
체니의 시선이 명찰표로 옮겨졌다.
「분류 번호: F- 0001 이름: 사냥 장갑」
그때부터 체니는 캐비닛의 유리창
너머를 훑으며 움직 였다.
내용물은 다양했다.
안경,셔츠,바지 등 지금 시절의 문 화에 동떨어지지 않은 것도 있는 반면 중세 시대에서나 쓸 법한 흉갑과 각종 무기류까지 무척 다양했다.
「분류 번호: E-0112 이름: 크시포스 강화사의 철퇴」
그러던 체니의 발목을 붙잡은 건 장 검 하나였다. 검날에 새겨진 기하학적 인 무늬가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 었다.
「분류 번호: D-0190 이름: 고결한 심판자의 최후」
심지어는 원시 문명의 것으로 추정 되는 것까지 있었다.
「분류 번호: C-0051 이름: 고위 역 병술사의 뼈 목걸이 j
체니는 무엇에 홀린 둣 방공호 끝까 지 이동했다.
거기에서야 사방 군데로 고개를 돌 리는 체니 였다.
일 층으로만 둬서는 모든 내용물을
보관할 수 없기 때문에,캐비닛들은 겹겹이 쌓여져 있기까지 했다.
체니의 두 눈 안에 담긴 건 온통 캐 비닛들뿐이었다.
체니와 이데마는 지상으로 나왔다. 이데마가 벤치에 앉아 제 옆을 툭툭 쳐 보였다. 체니는 멍하니 서 있다가 급하게 앉았다.
이데마가 웃었다.
“그것들은 고양이 사료,여기는 고양 이 사료 창고. 그게 정식 코드명이 다.”
“그것들은 미스터리한 물건들인지 요?”
“미스터리?”
“초자연적인 능력을 가진 고대의 유 물 같은,그런 거 왜 있지 않습니까. 믿기진 않지만 그것 외에는 달리 설명 할길이 없습니다.”
체니는 고양이 사료 창고의 보안 정 도를 떠올리며 말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보 안 레벨이 올라가면 자연히 알게 될 일이지. 신입들은 저기부터 시작해.” 이데마가 먼 전방을 가리켰다.
둘이 앉은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지 만,방사능 마크가 찍힌 경고문들이 철창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일정한 거리로 경비 초소가
존재했는데,이데마가 가리킨 건 그중 하나였다.
“전장에서는 테러리스트들과 싸웠겠 지만 지금부터는 따분함과 싸워야겠 지. 이만한 일은 죽었다 깨도 못 찾을 거 라고 장담하지. 궁금한 점은?”
“……여기를 노리는 집단이 있습니 까?”
“현재로썬 없다. 다만 세상에 나가서 는 안 될 물건이라는 것만큼은 분명하 지. 혹시나 말하는데 이상한 마음은 품지 않았으면 좋겠군. 우리에게는 아 무런 쓸모없는 물건이거든. 네가 들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이데마의 시선이 외곽으로 돌아갔 다. 체니도 이데마를 따라 고개를 돌 렸다.
차량 한 대가 진입하고 있었다.
“새로운 고양이 사료들이 도착했나 보군.”
“……어디에서 오는 것들입니까?”
지금까지 성모 마리아처럼 상냥했던 이데마의 표정이 싹 지워졌다.
체니는 입술을 닫았다. 말없이 장비 를 챙겨서 일어나야 할 때란 걸 깨달 았다.
체니는 이데마가 가리킨 초소로 걸 음을 옮기며 진입 차량을 쳐다보았다.
여기의 요원들도 합세해,차량 트렁 크에서 철제 궤짝들을 꺼내고 있었다. 삼엄한 경비 속에서.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배낭과 양손에 쥐고 왔던 드랍 아이 템들부터 요원들에게 넘겼다.
우연희도 마찬가지였다. C등급 던전 부터는 드랍 아이템의 수준이 좋아서 줄곧 챙길 수 있는 한도만큼 챙겨 왔 었다.
그 외에도 보관 처리해야 할 게 더 있었다. 가죽 주머니 안에 든 것은 이 번 던전의 보스 몬스터였던,크시포스 군부장의 마석이다.
그것까지 건네준 후 요원들이 준비 해 둔 샤워 천막으로 향했다.
간이 샤워 부스라 호스에서 나오는 물이 시원스럽지는 않지만,온몸에 찌 든 핏물들을 지워 내는 용도로는 제격 이었다.
이 시절의 문명에 맞지 않는 아이템 들,그러니까 망토 같은 것들은 전용 가방에 챙겨 넣은 뒤 천막에서 나왔 다.
잠시 후 우연희도 수건으로 머리를 털면서 나왔다. 그녀가 날 보며 희미 하게 웃었다.
이번에야 비로소 역경자와 마리의 손길을 쓰지 않은 것을 자축하는 미소 였다.
하지만 격했던 공략의 피로가 남은 것은 여전했던지라,힘이 빠진 미소였 다.
그녀가 비틀거렸다.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너도 힘들잖아.”
우연희는 조금도 모를 거다. 본 시대 에 견주어 우리가 얼마나 비정상적인
존재인지.
“오늘 17일이다.”
그래서 뭐?
우연희가 그런 눈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깨달았는지 우연희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떻게 됐어?”
“어 떻게 됐을 것 같아?”
우연희의 시선이 바로 요원들에게 향했다.
우리가 쓰는 언어가 한국어라는 것 쯤은 비밀도 아니 었다. 나와 우연희는 드랍 아이템을 철제 보관함에 정리하 고 있는 요원에게 다갔다.
그녀가 물었다.
“어떻게 됐어요?”
“예?”
“한국,16강 진출했어요?”
요원은 동공이 흔들렸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미국 인이라고. 월드컵에 크게 관심 없어. 그나마 그쪽에 관심이 있는 요원이 있었던지, 요원이 다른 요원을 가리켜 보였다.
“진출했습니다.”
그 말 한 마디에,우연희는 근사한 내용물을 띄운 것처럼 두 주먹을 움켜 쥐었다. 그러고는 통증이 밀려오는지
얼굴을 구기는 것이 었다.
살기등등한 눈알을 부라리며 크시포 스 군단장을 물고 늘어 졌던 여자는 순 간 사라져 있었다.
그 자리에 놓인 여자는 6월 4일 자의 폴란드 경기를 마지막으로,나머지 경 기들을 놓쳐 버린 작은 붉은 악마 한 명이었다.
“한국 최고였어요.”
요원이 말하자 우연희는 안타까운 탄식을 내뱉었다. 그런 다음 반짝이는 두 눈으로 나를 올려 다봤다.
“한국으로 돌아가긴 늦지 않았을까? 16강 경기 말이야.”
“뉴욕으로 향하면 현지 교민 팀하고 합류할 수 있긴 하겠는데,그 몸으로 되겠어?”
우연희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 였다.
“이것까지 놓치면 울어 버릴지도 몰 라. 16강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