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fect Crime with Telekinesis RAW novel - Chapter 189
189화. 어때, 죽이지?
“뺏겼다고요? 누구한테 말입니까?”
내 물음에 한숨을 푹 쉰 박인섭이 답했다.
-얼굴도 못 봤어. 비겁하게 똥 싸고 나오는데 뒤에서 백초크를 걸더라고.
그대로 기절을 해버렸다고 한다.
흔적이 남지 않은 건 물론, CCTV도 없는 장소라 추적도 할 수 없었다고 하고.
‘백초크라······’
평범한 기술이지만 그놈이 떠오른다.
스컬의 킬러였던 킴, 그가 블룸에서 케이로 활동할 당시 나와 화장실에서 붙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백초크에 당해서 기절하기 직전까지 내몰렸었는데, 배경과 기술이 똑같아서 그런지 그때 일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었다.
“다른 건 놔두고 반지만 가져간 겁니까?”
-그래. 지갑이나 다른 건 아무것도 안 건드렸어. 다친 데도 없고.
당신 다친 건 내 알바 아니고.
“휴우…… 스컬이네요.”
위치추적장치라도 심어져있던 건가?
아니면 해골가면을 체포한 경찰들을 뒤져서 알아낸 건가?
뭐가 되었던 참 방심할 수 없는 놈들이다.
그때 당시 사이먼에게 직접 경고를 한 일도 있으니 분명 내가 반지를 취했다고 여기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네 생각대로 그놈들이 맞겠지.
“반지에 대해 알아보라고 부탁한 건요? 뭐 좀 나온 거 있어요?”
-그 반지에 조각된 사자얼굴모양 기억해?
“네.”
-그게 라이언 가문이라고 유럽 대부호 집안의 상징 같은 거더라고.
스컬의 배후, 라이언 가문.
이미 실비아가 얘기해준 부분이기에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정보였다.
상징이 그 사자대가리라는 건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다른 건요?”
-그것 말고는…… 없어.
영양가 없는 정보가 끝이라니.
진짜 도움이 안 되네.
“알겠습니다. 이만 끊을게요.”
-야, 야. 잠깐만.
“왜요?”
-정황상 라이언 가문과 스컬이 연관이 있는 모양인데 조심해. 알아보니까 그 집구석이 유럽뿐만이 아니라 세계 정재계에 뻗어놓은 인맥이 엄청나다는 말이 있더라고.
라이언? 로스차일드? 록펠러? 뭐든 상관없다.
방해가 된다면 다 없애버리면 그만이니까.
나는 박인섭의 전화를 끊고 케이시, 라크, 그리고 실비아를 다시 불러 모았다.
된통 당한 직후라 그런지 세 사람의 표정은 썩 좋진 않아 보였다.
“실비아.”
“네.”
입이 댓발은 튀어나온 거 보니 삐졌네.
“너무 그러지마. 내가 그 반지 만드는 방법을 욕심내서 그런 거 아니잖아.”
“알아요. 난 그냥······ 그걸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에요.”
“너도 알다시피 그건 누군가가 안다고 해서 실행할 수 없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네오사이트가 없는 한 알아도 만들 수 없는 게 그 반지다.
재료가 없는데 어떻게 만들겠나.
“그리고 그걸 아는 사람이 너랑 나, 그 노인네만이 아닐 수도 있고.”
“무슨 말이에요? 또 누가 안다고요?”
“해골가면, 그놈이 끼고 있던 반지 기억 안 나?”
“……!”
무리도 아니다.
그녀는 당시 그 반지의 영향력 때문에 끙끙 앓고 제대로 서있지도 못했으니까.
기억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알겠어? 그것도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게 분명해.”
“스컬과 라이언 가문, 그리고 메리엄······ 그러네요. 왜 그걸 모르고 있었을까요.”
그때 케이시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잠깐만. 실비아, 스컬의 헌터가 네오휴먼의 능력이 담긴 반지를 지니고 있었다고?”
“맞아, 서훈 씨가 그를 죽이고 얻은 검은색 반지가 원인이었어. 그땐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초능력자를 약화시키는 능력이 담긴 반지였던 것 같아.”
케이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이상한데······ 그런 게 있는데 왜 지금까지 우리를 상대할 땐 사용하지 않았던 거지?”
“수명이 단축된다는 걸 알고 있었겠지. 그때 가면을 벗긴 헌터의 얼굴도 노인이었어. 아마 반지에 생기를 빼앗겨서 그랬던 게 분명해.”
팩트를 무시하는 건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건지 모르겠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 말에 반박했다.
“그것보다는 사용할 필요가 없었을 걸?”
해골가면, 스컬에서도 헌터라 불린다는 그놈은 다른 놈들과 질적으로 달랐다.
직접 상대해본 경험에 의하면 설사 열 개의 반지를 착용한 메리엄이라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으니까.
“인정할 건 인정해. 퀸시 입장에서는 그 반지가 없어도 상대하기 힘든 놈들이잖아.”
“그럼 그 헌터는 왜 한국에서는 그걸 사용한 걸까요?”
“내가 말 안 했었나? 그놈, 날 죽이러 왔던 거야.”
그때 케이시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자신이 흘린 정보가 있으니 착각하는 것이었다.
“예전에 소속킬러 두 놈을 내가 죽였었거든. 아마도 그래서 헌터놈이 반지까지 끼고 한국에 왔을 거야.”
“킬러를 둘이나 죽였었다고요?”
케이시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되물었다.
“뭘 그렇게 놀라? 킬러보다 더 급이 높은 헌터라는 놈도 죽인 난데.”
“그, 그렇죠.”
심경이 복잡할 거다.
자신이 흘린 정보, 그리고 그에 대처하기 위해 보낸 그레이 알렉세이의 죽음.
그 모든 게 어그러지며 자책을 했을 텐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놈들은 반지에 대해서 알고 있어. 정황상 그리 많은 걸 알고 있는 것 같진 않지만 확인은 해둘 필요가 있다는 거야.”
나는 케이시에게 CIA와 스컬의 분쟁상황에 대해 물었다.
그녀는 본 브레이커 프로젝트와 관련해 퀸시의 움직임을 조율하고 있으니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었다.
“여러모로 지지부진한 상황이에요.”
가장 큰 문제는 미국 내에서 정치적인 압박이 들어왔다는 것.
케이시는 정황상 스컬의 배후인 라이언 가문이 움직였다는 것이 확실하다고 말해주었다.
“스컬과 커넥션이 있는 군산복합체만이 아니라 전혀 상관없는 유력 정치가문들까지 나섰어요. 아마 표면적인 부분만 건드리고 이대로 종결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요.”
“역시 만만한 놈들이 아니네. 미국을 움직였는데도 빠져나가다니.”
“아쉽긴 해요. 조금만 더 파고들면 실체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더 파고들어봐.”
“……네?”
“조사만 하라는 거야. 움직이는 건 내가 할 테니까.”
사자모양의 반지가 걸리긴 한다.
그 반지의 광역 디버프는 각성하기 이전보다 더욱 내 능력을 약화시켜버리니까.
하지만 힘을 완전히 먹통으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니 조합만 잘 한다면 상대해봄직 하다는 판단이었다.
반지 중에는 내 능력이 약해져도 최대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보조스킬이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라크.”
시선을 돌려 의자에 걸터앉아 있는 그를 불렀다.
“……네.”
나한테 죽을 뻔해서 그런지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그는 트라우마가 생긴 듯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있었다.
“메리엄에 대한 감시를 해줘야겠는데. 할 수 있겠어?”
“감시라니요?”
“그 노인네가 네오 셀로 뭘 하려는지 목적을 알아내야 하잖아.”
이젠 불사의 능력도 없어졌을 테니 강도 높은 고문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니 일부러 풀어주고 감시를 붙여두는 것이다.
라크의 능력은 플로우의 영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눈치 채기 어려울 정도로 은밀하니 이 이상의 적임자가 없었다.
“스컬, 그리고 메리엄. 퀸시가 가진 과거의 잔재는 내가 다 없애줄게. 그러니 그전까진 무조건 나한테 협조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라크에게 고갯짓을 했다.
“나가지.”
“어딜 말입니까?”
“DGSI에.”
“지금 가자는 말입니까? 내일 저희 쪽으로 인계될 거잖습니까.”
답답한 소리 한다, 정말.
“내 손에 들어왔다가 풀어주면 얼씨구나 잘도 믿겠다.”
“아……”
“스스로 탈출했다는 생각이 들게끔 해야 안심하고 움직이지 않겠어?”
“그렇겠네요.”
나는 손가락에 낀 새로운 반지들을 만지작거리며 그를 떠올렸다.
“서두르자고. 할 일이 많아.”
가는 김에 장씨, 그놈에게 빚진 것도 갚아야 하니까.
***
“이런 젠장!”
장 폴름은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들고 있던 서류를 내팽개쳤다.
지난 이틀 동안 가능한 모든 분석을 다하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원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지만 능력은 사라진 게 맞아.’
본인도 도저히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상황으로 봤을 때 일시적인 문제는 아닌 듯 보였다.
하필 지금 능력이 사라졌다는 게 수상했지만 거짓말 탐지기도 동원하고 최면요법까지 사용하고도 아무런 소득이 없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게된 것이었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됐지.”
원인을 찾지 못하거나 그녀의 능력이 다시 생기지 않는다면 책임을 떠나 어떤 죄를 뒤집어쓰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다미앙 프랑시스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인사들은 몰카영상까지 의심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딥 페이크를 비롯한 영상조작기술의 발전.
그 때문에 그들은 직접 걸음을 해서 자신들의 눈으로 능력을 확인하려 했었다.
하지만 정작 초능력을 확인하지 못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만도 아방가르드까지 장 폴름을 의심하는 데 한몫을 해버린 상황이었다.
‘알랭 베르트랑, 그 새끼만 입을 열었으면 아무 문제없었을 텐데······’
아마도 G3센터에서의 일 때문에 그런 것일 터.
당시에는 사이커스와의 충돌을 염려해 자신을 도왔지만 이후로는 현장에서 목격한 일에 대해서 함구해버린 것이었다.
-불사의 능력은 사전에 들은 적도 없고, 현장에서도 보지 못했습니다.
불사의 능력이 촬영된 장소는 몰카영상 하나인데다 목격자까지 그런 식으로 나와버리니 장 폴름이 반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대로는 조작영상과 허위정보를 보고했다는 사유로 간첩행위로 몰리게 될지도 몰랐다.
“골치 아프군.”
장 폴름은 품속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치익.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멍하니 흡연을 만끽하던 그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남은 하루를 생각하자 그들의 동향이 어떤지 확인을 하려는 것이었다.
“나다.”
-네, 국장님.
전화를 받은 요원은 사이커스 일행들을 감시하고 있는 감시조의 조장이었다.
“그쪽 상황은 어때?”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어제 도착했다는 여자는? 신원파악 됐나?”
-분석팀 얘기로는 신원불명이라고 합니다. DNA 채취해서 계속 조사해보겠습니다.
노인의 신원도 그렇고 초능력자들은 자신의 신분을 꽤 철저히 숨기고 살아온 모양이었다.
정보기관인 자신들이 알아내기 힘든 걸 보면.
“블랙은?”
-지금 방에 있습니다. 한시도 눈을 떼지 않을 테니 염려 마십시오.
“오늘 밤은 예의주시해. 혹시라도 움직인다면 오늘일 테니까.”
삼일이라는 짧은 기간을 약속한 만큼 그러진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모를 일이었다.
기다리지 않고 탈옥시키려고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특이사항 생기면 바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고.”
장 폴름은 전화를 끊으며 담배를 깊게 빨았다.
넘쳐나는 문제에 머리가 아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잊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담배맛은 달았다.
그리고 연기를 내뱉는 그때였다.
“후우······!”
담배연기가 희미하게 사람의 얼굴형태를 그리더니 흩어졌다.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나타난 얼굴.
그의 뇌리에 투명화라는 초능력이 번쩍 떠올랐고, 반사적으로 손이 품속으로 움직였다.
“……윽!”
이번엔 바인딩일까.
온몸이 꽁꽁 묶인 듯 움직이지 않았고, 장 폴름은 식은땀을 주르륵 흘리며 허공을 응시했다.
“실내에서는 금연이야. 에티켓도 몰라?”
“누, 누구냐?”
상대는 사이커스의 초능력자.
블랙의 일행은 아직 호텔에 있으니 다른 능력자를 암살자로 보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때 말했지? 거짓말이라면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고.”
“브, 블랙? 어떻게······”
“여긴 집무실이니까 몰래카메라 없지?”
“……”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야 상대가 자신을 어쩌지 못할 것이란 판단이었다.
하지만,
“없네. 고마워, 알려줘서.”
그는 독심술이라도 하는 건지 속내를 간파하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설마 날······ 죽이려고 온 거요?”
“그럼 뭐하려고 왔겠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소? 어떻게 요원들의 눈을 따돌렸는지 모르지만 내가 죽으면 당신이 용의자가 될 거요.”
“난 호텔에 있잖아. 그리고 널 죽이는 건 알 키사스의 테러범이야.”
“뭐요?”
그 순간 서훈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죽은 알 키사스 조직원 중 한 명의 것으로 변했다.
그가 입고 있던 옷도 마찬가지였다.
“어때, 죽이지?”
서훈은 수염이 덥수룩한 중동인의 얼굴을 한 채로 씨익 웃었다.
그리고 장 폴름의 손을 움직여 안주머니에서 총을 꺼내 관자놀이에 갖다 대었다.
“자, 잠깐! 내 말을……!”
“알라후 아크바르.”
-타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