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antom thief Kim Seok-doo RAW novel - Chapter 72
75화 충돌 (6)
대역 죄인으로 몰려 그간 여러 수모를 당했던 김석두.
만약 레이나와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억울함을 품고 세상과 작별을 했을지도 몰랐다.
아니, 분명 그러했을 터.
그런데…….
“네 녀석이… 그 범인이라고……?”
“그렇다만.”
노 회장의 얼굴에 이죽거림이 새겨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네가 그런 일을 당하게 될 줄은 몰랐었지… 그리고 설마 누명을 뒤집어쓴 자가 괴도의 일을 물려받게 될 거라는 생각도 역시 못 했고.”
“네 녀석……!!”
석두의 표정이 급격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간 석두는 이름도 모를 진범 때문에 수많은 마음고생을 하며 지내왔다.
그런데 바로 그 진범이 눈앞에 있을 줄이야!
석두의 눈이 뒤집어질 만도 했었다.
“네 녀석만큼은… 반드시 내가 죽인다!!”
빠르게 노 회장을 향해 치고 들어오기 시작하는 석두.
노 회장이 비록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석두 역시 그에 못지않은 힘을 지니고 있었다.
드래곤으로부터 물려받은 힘.
그리고 드래곤에게 하사받은 힘.
두 가지의 힘이 서로 충돌하자, 주변에 엄청난 충격파가 형성되었다.
“네놈 때문에 수십의… 아니, 수백의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그럼에도 아무런 죄책감도 들지 않는다는 거냐!!”
“드래곤의 보물을 훔치고 다니는 괴도가 나에게 감히 그런 말을 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나.”
노 회장도 나름 할 말은 있는 모양인지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드래곤이 없었더라면… 모두가 다 행복해졌을 일이겠지.”
“드래곤의 아이인 네가 왜 드래곤에게 증오심을 품고 있는 거지?”
“자식이라고 모두가 다 부모를 존경하고 선망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괴도. 난 오히려 드래곤의 자식이었기 때문에 괴로운 기억밖에 간직하고 있지 않으니까!”
노 회장이 오른손을 내질러 다가오는 석두를 튕겨냈다.
뒤로 수십 미터를 날아가던 석두가 이내 무게중심을 잡으며 건물 옥상으로 착지했다.
그런 석두를 응시하며 노 회장이 과거를 회상하듯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드래곤… 그래, 내 아버지라 불린 그 존재는 나를 단순히 장난감 취급했을 뿐이었지. 드래곤에게 있어서 인간은 개미와도 같은 존재. 그 드래곤은 그저 인간 여자를 노리개 취급했을 따름이고, 그 여자에게서 태어난 나 역시도 마찬가지로 자식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저 어느 날 하찮은 여자 하나를 품에 안았던 흔적에 불과했지.”
존재를 무시당했다
그 분노가 지금의 노 회장을 만들어온 거나 다름이 없었다.
“우리 어머니는 드래곤의 장난감으로 농락당하다가 비참하게 삶을 마감하시게 되었고… 나는 마법을 부릴 줄 안다는 이유로 슬레이어에게 거둬들여지게 되었다. 드래곤을 사냥하는 집단… 나에게 있어서 상당히 매력적으로 들리는 조직이더군.”
“…….”
“이래나 저래나 너는 날 죽일 이유가 있고, 나는 너와 레이나를 죽일 이유가 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둘 중 누군가 한 명은 죽어야 싸움이 끝나겠지. 안 그런가?”
“…바라던 바다.”
김석두의 양손에 각각 불과 물의 기운이 어리기 시작했다.
물러설 수 없는 최후의 전투.
석두는 이 싸움에서 절대로 패배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노 회장도 마찬가지이리라.
* * *
퍼어엉!!
근처에 위치한 차량 한 대를 그대로 날려 버린 레이나.
수많은 병력들이 그녀를 제압하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레이나의 상대가 되진 못했다.
적룡파 빌딩 로비까지 내려오는 데에 성공한 김창민 일행은 오자마자 불쾌한 장면을 목격할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깔려 있는 수많은 핏자국들.
한창 난리가 날 줄 알았던 적룡파 빌딩 주변의 모습은 고요 그 자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항하는 모든 이들을 레이나가 다 정리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파괴된 장비들.
쓰러져 있는 사람들.
어느 하나 레이나에게 저항할 의사가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단 한 명이 이 모든 것들을 해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후~!”
가볍게 한숨 한 번 내쉬는 것으로 모든 소감을 토해 낸 레이나가 뒤를 돌아봤다.
“아, 이제 내려왔어?”
“…….”
“…….”
뭐라 해줄 말이 없었다.
격렬한 싸움을 예상하고 내려왔지만, 레이나가 전부 다 정리를 해버렸기 때문에 다른 이들은 할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이 한 번의 싸움이 끝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곧 있으면 지원 병력들이 몰려올 겁니다.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 두는 게 좋겠군요.”
빠르게 상황 판단을 내린 창민이 부하들에게 순차적으로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 레이나는 저 멀리서 벌어지고 있는 석두와 노 회장의 싸움을 지그시 응시하고 있었다.
노 회장이 드래곤의 자식이라는 건 이미 레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드래곤이라고 전부 다 착하지만은 않았기에 노 회장과 같이 드래곤에 대한 비정상적인 분노를 품고 있는 사람이 나오는 것도 전혀 이상하진 않았다.
다만.
‘뒤처리 정도는 제대로 해야 할 거 아니야.’
어느 드래곤이 저지른 결과물인지 레이나는 잘 알지 못했다.
하나 그 피해가 그녀 본인에게 오게 되었으니, 이런 불만 정도는 가질 수 있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한편,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린 창민이 그녀에게 다가와 물었다.
“레이나 님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나?”
“네. 지금 당장 본거지로 쳐들어가셔도…….”
본거지라 함은 슬레이어를 의미했다.
현재 슬레이어는 석두와 그의 일행들을 잡기 위해 병력들을 이곳으로 투입한 상태였다.
큰 공격을 한 번 막아냈으니, 이 기세를 이용해 적의 본거지를 급습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레이나는 고개를 수평으로 흔들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슬레이어란 조직은 계속 유지되어야 해. 그냥 놔두는 게 좋을 거 같아.”
“하지만 그 조직은… 레이나 님을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 아닙니까?”
“엄밀히 말한다면 드래곤을 견제하기 위한 세력이지, 나 하나만을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은 아니야. 그리고…….”
레이나의 눈이 순간 가늘어졌다.
“슬레이어 같은 조직이 있어야 훗날 우리가 정말 정신이 나가서 폭주를 하는 사태가 와도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 테니까. 안 그래?”
“…….”
“우리가 원하는 건 이 세상의 파멸이 아니야.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인생을 즐기며 살고 싶을 뿐이지. 세상의 파괴를 원하는 드래곤이 나타난다면, 분명 다른 드래곤들이 나타나 슬레어어와 협업을 해 그 드래곤을 죽이게끔 시스템을 갖추게 만들어둬야지. 안 그랬다간 정말 이 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깊은 생각을 가지고 계셨군요.”
“조금만 생각해도 충분히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이야. 너무 추켜세우진 마.”
슬레이어는 변화해야 했다.
좀 더 체계적이고 조직다운 모습으로 변모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노 회장의 독점 체제를 석두가 그의 손으로 직접 무너뜨릴 필요가 있었다.
김석두.
그는 이제 괴도를 넘어서…….
그보다 더한 역할을 해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 * *
노 회장의 얼음창이 석두의 보호막을 꿰뚫었다.
바로 앞까지 날아든 얼음 창을 그대로 오른 주먹으로 내질러 파괴시킨 석두가 이번에도 다시 한 번 접근전을 시도하기 위해 날아들었다.
노 회장의 바로 앞까지 치고 들어온 석두가 왼손을 수평으로 뻗었다.
“불이여!!”
석두의 손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대한 불의 기둥이 노 회장의 바로 앞까지 근접했다.
그러나 노 회장 역시 만만치 않았다.
“아직 멀었군!”
노 회장의 바로 앞에 마나의 두터운 장벽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석두는 그의 방어벽을 제대로 깬 적이 없었다.
석두 홀로 노 회장을 쓰러트리는 건 꽤나 힘든 일이기도 했다.
역량의 차이도 있을뿐더러, 노 회장은 석두보다 경험이 더 많은 사람이기도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쓰러뜨리려면 적어도 필살의 한 수가 필요했다.
불의 기둥이 사그라들 무렵.
바로 앞까지 돌진한 석두가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그가 그 무언가를 휘두르는 순간.
째쟁!
“……?!”
노 회장의 표정이 급격하게 변했다.
그가 쳐놓은 마나벽에 금이 간 것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쩌저적!!
금이 가더니, 방벽이 완벽하게 파괴되어 버렸다.
“이런……!”
믿기 힘든 일이 발생했다. 석두의 마나력으로 노 회장의 두꺼운 방벽을 뚫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닐 터였을 텐데, 문제는 석두가 전과 다르게 너무나도 우습게 노 회장의 벽을 뚫어버렸다는 점이었다.
“뭔가 중요한 걸 잊고 있지 않았나.”
김석두의 말에 노 회장의 시선이 그의 손에 들려 있는 물건 쪽으로 향했다.
기다란 장도.
그 물건은 분명…….
“드래곤의… 보물!!”
마법 대 마법의 대결로 몰고 가면 석두가 노 회장을 제압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극히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석두는 한 가지 비수를 갖춰왔다.
그가 괴도가 된 이유.
괴도 김석두가 목표로 삼고 있는 것.
바로 잃어버린 드래곤의 보물을 다시 찬탈해 오는 것이었다.
석두가 들고 있는 건 바로 그가 되찾아온 드래곤의 보물 중 하나인 ‘명검 적월도’였다.
“젠장……!!”
노 회장의 가슴팍에 거대한 화염구가 생성되었다.
하지만 그 순간, 또 다른 특이 현상이 발생했다.
한 명이었던 김석두의 모습이 순식간에 20… 아니, 50여 명 가까이 늘어난 것이었다.
분신 마법도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보자마자 노 회장이 작게 읊조렸다.
“망상 실현기인가……!”
“정답이다.”
석두의 목소리를 낸 쪽은 노 회장이 응시하고 있는 50여 명의 김석두 중 한 명이 아니었다.
바로 뒤에 몰래 이동한 김석두였다.
그의 목에 걸린 채 밝게 빛을 뽐내고 있는 드래곤의 보물 중 하나.
미래 예지안을 지니고 있는 천리안 수정구였다.
노 회장이 마법을 발동시킬 것까지 미리 천리안 수정구로 들여다본 석두는 망상 실현기를 통해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 노 회장을 교란을 시키고, 뒤로 돌아들어가 빈틈을 노리는 데에 성공했다.
이윽고…….
“이게 나의 마지막 일격이다……!”
명검 적월도가 정확하게 노 회장의 심장을 꿰뚫었다.
순식간에 세 가지 드래곤의 보물을 활용한 석두의 승리였다.
“커억……!”
입에서 피를 토한 노 회장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설마 김석두가 자신이 지금까지 모았던 드래곤의 보물들을 활용할 줄은 몰랐었던 것이었다.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석두는 자신의 비장의 한 수로 아껴뒀던 모든 전력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그는 승리라는 달콤한 과실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후후… 설마 드래곤의 보물을 이용할 줄이야…….”
“괴도니까.”
짧은 한마디로 모든 것을 압축해 버린 김석두였다.
그에게 일격을 맞은 노 회장의 생명의 불꽃이 천천히 사그라들어 가기 시작했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노 회장은 김석두를 보며 마지막 말을 들려줬다.
“분명 후회할 걸세…….”
그 말을 끝으로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린 노 회장.
말없이 그를 내려다보던 김석두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후회를 하고 말고는… 내가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