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슬럼프 극복방법
석진아 씨를 통해 약간의 자신감을 얻고, 내가 향한 곳은 김형세 교수님이었다. 정만종 선생님이 한국에 없는 지금,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이제야 만종이의 높은 벽을 알게 됐다?”
“정확히는 어떤 식으로 세상을 보는지 알게 됐다고 할까요··.”
김형세 교수님은 내 말을 듣고 머리를 긁적이더니 날 신기한 듯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그걸 알게 됐지?”
“네?”
“사진을 보고 차이를 느껴서 슬럼프가 왔다면 이해를 하겠어. 그런데 만종이가 세상을 어떻게 보는지 알게 됐다고 했지?”
“네, 그랬습니다만··.”
“그러니까 어떻게? 천재들이 보는 세상을 알려면 그들이 말해주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어. 사진을 보고 추측했다고? 그게 가능하면 넌 모든 사진작가의 사진이 왜 그렇게 나왔는지 이해하고 찍을 수 있다는 소린데?”
김형세 교수님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며 나를 바라봤다. 시스템의 힘으로 알게 됐다고 하기에는 믿어주지 않겠지. 난 필사적으로 변명을 생각해내며 입을 열었다.
“정만종 선생님 밑에서 일하면서 선생님 사진을 정말 많이 봤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어느 날 느껴지는 겁니다. 선생님이 보는 세상은 나와는 다르구나, 이렇게 느껴지겠구나 하고 말이에요. 굉장히 명확하게 말이죠.”
“··놀라운 재능이라고 해야겠지? 지금 네가 말하고 있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 줄 아니?”
“대단한 건가요?”
“그 시야에다가 약간의 기술만 덧붙이면 넌 만종이의 사진을 본질에서 흡수할 수 있는 거야.”
“그 점에 대해서 문의드리고 싶어서요. 선생님이 보는 세상이 어떤 건 줄 아니까, 제 사진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졌어요. 지금 나름대로 자신감을 찾기 위해 애쓰는 중이고요.”
김형세 교수님은 난감한 듯 쓴웃음을 지었다.
“난 학생들에게는 그런 사진에 현혹되지 말고 사진을 꾸준히 찍으면 자기만의 스타일이 나온다고 충고하네만··. 자네는 상황이 다르다고 생각하네.”
“어떤 점에서 그렇죠?”
“자네는 이미 한 명의 어엿한 사진가야. 잘 찍는 건 물론이고, 최근에는 나도 놀랄 정도로 자기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지. 자네 같은 시기의 사진가가 다른 사진가 때문에 스타일이 무너지는 경우는 본 적이 없어.”
“최초로 목격하실 수도 있을지 몰라요.”
“슬럼프란 건 마음가짐에서들 나온다고 하지. 좋은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어울리고, 과거에 성공했던 경험을 떠올리거나, 성공하는 모습을 미리 그려보라는 원론적인 얘기를 꺼낼 수밖에 없군.”
난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에 놓인 커피를 마셨다.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사람은 모르긴 몰라도 나 하나뿐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만종이의 시선으로 본 세상은 어떤가?”
“평범한 풍경이 환상적인 풍경으로 변해요. 그 속에 사소한 물건 하나까지 존재감을 빛내면서 풍경을 더욱 아름답게 꾸며주죠. 게다가 선생님이 보는 색감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곳에 대고 셔터만 누르면 작품이 되는 거죠.”
“원래 미술 쪽으로도 소질이 있는 친구였어.”
“저하고는 출발선 자체가 다름을 알 수 있었어요.”
김형세 교수님은 고개를 저으시더니 나를 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 만종이도 자리를 잡는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 넌 보자·· 졸업하고 1년도 안 돼서 대중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사진을 찍었어.”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제 실력보다 나은 사진이 운좋게도 대중적인 인물을 담고 있었던 거죠.”
“자신을 좀 믿어. 날 처음 찾아올 때의 사진과 지금의 사진을 비교해보면 난 자네가 얼마나 큰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있어. 단기간에 자네처럼 발전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네.”
김형세 교수님의 말에 조금은 구원받은 느낌을 받았다. 나름대로 한 노력이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 것 같아서 기뻤다. 그것도 가장 힘든 시기에 존경하는 분이 이런 말을 해주시니까 말이다.
“감사합니다.”
“슬럼프의 원인조차도 자네의 특별한 감각 때문이니까 너무 좌절하지 말고 좀 쉬면서 감각을 찾는 것도 좋을 거야. 아니면 차라리 일을 늘리는 것도 나쁘지 않아.”
“일을 늘려요?”
“네 스타일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일들도 있을 거야. 그런 일을 하면서 차차 자신감을 찾는 방법도 있겠지.”
난 고개를 끄덕거리며 김형세 교수님의 위로 섞인 조언에 감사드렸다.
***
사진작가에 따라 연예인 촬영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나 또한 연예인들과 작업을 많이 해보고 느낀 점은, 성격에 따라서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기가 많은 연예인일수록 시간은 부족하다. 한정된 시간 내에 좋은 사진이 나오지 않는다면, 사진가의 처지에서 그들을 다그치는 경우가 많다. 현장이 그렇게 흘러간다면 좋은 사진이 나올 확률은 더욱 줄어든다. 결국,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은 고스란히 연예인에 대한 원망으로 남기 마련이다.
“정말, 그때 길승우 씨 활약상 보고 어떤 자리라도 꼭 만들어주고 싶었는데, 의외로 사진 미션이라는 게 쓰일 일이 별로 없더라고요. 그나마 작가님이 만들어낸 포맷은 병신같은 PD 놈이 제 욕심을 내느라 말아먹은 것도 있었죠.”
난 정 PD의 말을 들으며 방송국에 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난 소속사의 부탁으로 이곳 방송국으로 나와 있다. 언루트의 바쁜 스케줄 탓에 방송가의 러브콜을 받아들이지 못하자, 그쪽에서 대신 제의한 게 나라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대표님은 꿩 대신 봉황을 원하는 거냐고 노발대발하셨고 방송국과의 사이가 나빠지게 되자 직원 한 명이 내게 이 사실을 말해줬다. 바쁜 스케줄 없으면 몇 번 정도 방송에 나가주시면 안 되겠냐는 눈빛을 하면서 말이다.
“근데 절 어디에다가 쓰실 건지 궁금하네요.”
“뭐 그림이야 뽑아낼 구석 많습니다, 작가님은 실력도 좋으시지만 일단 방송에 그림이 되거든요.”
“저 잘생기지 않았는데요?”
“호감형 얼굴이에요, 게다가 방송도 잘하시니.”
난 운 좋게도 무명 걸그룹을 사진 한 장으로 되살린 사진가라는 이미지가 붙어있다. 덕분에 나와 작업을 하게 되는 연예인들은 많든 적든 호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이래서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말이 존재하는 거다.
“그래서 전 무슨 프로그램으로 가게 되나요?”
“요즘 방송국에서 하는 란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들어보셨나요?”
“죄송합니다, 제가 TV를 많이 보는 편이 아니라··.”
“뭐 요즘 유행하는 포맷입니다. 기획사 연습생들 모아다가 데뷔시키는 프로그램이에요. 작년부터 유행이 시작돼서, 이제 끝물이죠. 뭐 시청률도 그렇게 잘 나오는 편은 아닙니다. 딱 기대만큼 이랄까. 아무튼, 거기 있는 PD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 자극을 줬는데, 이게 좀 성공이자 실패의 요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자극이죠?”
“뭐 독설을 하고, 압박 면접에 가까운 심사를 하는 거죠. 게다가 편집까지 곁들어지니 거기 출연자들은 죽을 맛이겠죠. 실제로 매회 우는 출연자들이 수두룩합니다.”
아니, 이 정도로 문제점을 자세하게 파악하고 있으면 바꿔야 하는 거 아닌가? 꿈과 희망을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문제는 그런 자극 덕분에 그나마 시청률이 유지된다는 점도 있다는 겁니다. 시청자들은 무간지옥에서 살아남은 친구들이 얼마나 크게 될지 기대된다는 말도 남기고 있으니까요. 솔직히 서바이벌에 심사위원이 힐링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 이것도 저것도 안 되기 마련이거든요.”
“그래도 출연자들은 힘들겠네요.”
“이건 우리끼리만 아는 얘기로 합시다. 출연해서 우울증에 걸린 친구들도 있고, 심지어는 자해 소동까지 벌어졌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숨통을 트일 구간이 없는 게 크겠죠. 그래서 우리가 길승우 작가님 같은 분들을 매회 투입하고 싶은 겁니다.”
지금 상황하고 말하는 것 하고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전 정신과 의사가 아닌데요.”
“하하, 물론 알고 있습니다. 작가님이 찍는 사진을 보면 나조차 모르던 매력을 끄집어낸다고 하더라고요. 게다가 장점은 더욱 돋보이고, 단점은 가려주는 마술 같은 사진을 찍는 일도 하고 있다면서요.”
“그런 말이 도는 줄은 몰랐네요. 사진을 잘 봐주신 사람들의 과찬이겠죠.”
“서바이벌에 참여한 그 친구들을 사진 속에 아름답게 담고, 기운 좀 나게 하시면 좋겠습니다. 서채연 씨가 인터뷰로 그러더라고요. 길승우 씨 사진 덕분에 다시 배우 활동을 할 기운을 얻었다고 말입니다.”
“하하, 원래 그 누나 혼자서 일어설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냥 절 좋게 봐주셔서 한 말 같네요.”
“많은 걸 바라지는 않겠습니다. 계속 달리기만 하면 지치니 좀 휴식 같은 존재로서 들어가면 하는 거죠.”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나는 로 투입됐다. 싫은 일은 아니었다, 어리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친구들을 사진에 담는 건 기쁜 일이니 말이다. 게다가 방송의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 난 알고 있다. 적어도 젊은 층에서는 이름이 꽤 알려지겠지. 그렇게 된다면 절대 길승호 야구선수의 동생으로 불리는 날이 끝날지도 모른다.
“일단은 프로필 사진 찍는 것부터 해볼까요?”
회의실에서 작가들과 PD들과 함께 방송에 관해서 얘기를 나눴다.
“인터넷 투표할 때 프로필 사진이 가지각색이라고 얘기가 나와서요, 좀 더 통일성이 필요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각 소속사에서 보내준 사진이거든요. 기획사에 따라서 퀄리티가 천차만별이에요. 그래서 말도 많이 나오고 있고요.”
난 작가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참가자 수가 49명이라고 하니, 각자 특색에 맞춰서 찍기는 불가능할 것 같고, 교복이나 간단한 캐쥬얼 차림으로 찍겠구나라고 생각했다.
“예비 멤버들 스타일을 바꿔서 사진을 찍는 거로 분량 좀 잡으려고 해요.”
난 작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 많은 사람을 스타일링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아, 걱정하지 마세요. 스타일리스트들은 따로 섭외해서 진행할 예정이에요.”
마침 잘됐다 싶었다. 최근에 일하면서 나와 호흡을 맞출 스타일리스트를 구하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작업에 따라 스타일리스트가 바뀌어서 촬영하는데, 곤란을 겪는 일이 꽤 있었다. 서로 간의 호흡이라든지 취향을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7명씩 한 조로 묶어서 진행하는 게 좋을 것 같죠?”
“그럼 스타일리스트는 최소 7명을 섭외해야겠군요.”
작가들이 서로 얘기를 나누다가, 내 스케줄에 대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길승우 작가님, 이 정도로 진행을 할까 합니다. 작가님은 남은 예비 멤버들 프로필 사진과 나중에 최종 멤버들 사진을 찍어주시면 좋겠습니다. 2번 정도 얼굴을 비추시는 거죠.”
사흘이나 나흘 정도면 크게 부담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묵묵히 작가들의 의견을 조율하던 전 PD가 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프로필 촬영 날짜는 내일까지 알려드리겠습니다. 꼭 잘 좀 찍어주세요. 지금 우리 프로가 독하다는 명성만 있지, 멤버들 인기가 없거든요. 이번 기회에 한 명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네요.”
“일단 그렇게 하려면 방송에 나온 모습을 뛰어넘는 사진이 나와야겠네요.”
난 전 PD의 말에 동조하며 대답했다.
“그런 사진이 나오면 좋겠죠. 하지만 그게 쉽나요.”
“한번 보면 기억에 남을만한 사진을 찍어보겠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한가지 정도 요구조건이 있는데요.”
“그게 뭐죠?”
난 웃으며 그에게 어렵지 않은 요구사항을 말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괜찮은 생각이라고 하며 투표 전에 일을 마무리하겠다는 대답을 했다.
사진을 통해서가 아닌 방송을 통해서 사람들과 마주하는 건 꽤 오랜만의 일이다. 난 조금은 기대되는 마음으로 이 일을 기다릴 셈이다.
# 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