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Gil seung woo RAW novel - Chapter 153
153화 프로필 사진
연이은 경쟁에 지쳐 신경이 날카로워진 서바이벌 멤버들과 마주한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그것도 전원이 여자인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미션··인가요?”
“어쩌면 미션에 가까운 작업이라고 볼 수 있죠. 바로 여러분의 얼굴이 방송 화면이 아닌 한 장의 사진으로 시청자들과 대면할 수 있게 되니까요.”
예비 멤버들이 수근대기 시작한다. 대체 어떻게 찍어야 할지, 또 다른 뭔가가 숨겨진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대부분의 출연자의 얼굴에서 제작 PD가 뭔가 함정을 감추고 있을 거라는 확신 어린 불신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들의 걱정은 현실이 됐다.
“잠깐만요!! 아악!!”
긴 머리를 싹둑 잘린 참여자 중 한 명이 비명을 지른다. 헤어디자이너 분이 보시기에 얼굴형에 가장 어울리는 헤어를 연출하는 중이었다. 오랫동안 긴 머리를 고수하던 참여자 대부분이 공포에 질려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여러분들은 아이돌이에요. 지금 헤어스타일만 놓고 보면 그냥 일반인 같은 느낌만 들어요. 다들 너무 비슷하죠. 이 점은 여러분들도 알고 계실 거에요. 시청평에 많이 올라오죠? 누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의견이 많아요.”
헤어디자이너의 말에 한 참가자가 용기내에 손을 들고 말했다.
“누가 어떤 식으로 어떻게 머리를 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 말에 진행자는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잠시 후의 즐거움으로 놓아두죠.”
그리고 지금 그 즐거움이라고 부르는 사태가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난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이 시간 후에 이 애들을 달래며 촬영을 해야 하는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출연자들 마음에 준비는 좀 하게 하지. 머리카락을 자르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데 말이지.
“싫어!!”
또 한 명의 피해자가 나오는 시점이다. 저 정도 머리를 기르려면 꽤 많은 시간을 투자했겠다 싶은데··.
“죄송한데, 비켜주시겠어요?”
뒤에서 나는 목소리에 난 흠칫하며 자리를 이동했다. 한 여성 분이 의상이 걸린 이동 행거를 들고 나를 보고 있었다.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여성 분이셨다. 아마도 스타일리스트 분이신 거 같다.
“도와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아요.”
말을 꺼낸 날 몹시 무안하게 만들 정도로 단호한 거절이다.
“민 실장, 이 분이 사진작가 길승우 씨야.”
“잘 부탁드립니다. 저 가봐도 될까요? 출연자들 의상 확인해야 해서요.”
나와 인사를 나누게 하려던 PD가 무색하게도 그녀는 출연자들 쪽으로 향했다.
“사교성이 좀 부족한데, 그래도 실력은 있는 편이에요.”
전 PD가 변명하듯 내게 말을 했다. 난 그녀의 태도에 큰 불만은 없었다. 일을 하다 보면 별별 사람을 다 만나기 마련이니까.
“저도 좀 같이 가볼게요. 아무래도 사진 잘 나오는 의상은 따로 있으니까요.”
그곳으로 가보니 벌써 민 실장님이 참가자들에게 이런저런 스타일링을 해주는 중이었다. 한 스타일리스트당 7명씩 한다고 들었는데, 한 70명 정도가 할 수 있을 정도로 의상의 수가 많았다. 저렇게 많은 의상을 빌리기 위해서 발품 좀 팔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출연자가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요? 색이 저랑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머리가 바뀌었잖아요. 지금 이 의상이랑 헤어랑 매치가 좋아요.”
“너무 단순한데··.”
“더는 제가 할 말이 없네요.”
민 실장님은 쉽게 포기하는 점이 좀 인상 깊다고 해야 하나? 그리 열정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의상은 나쁘지 않았다, 그녀의 말대로 출연자의 헤어 스타일이나 외모를 봤을 때 어울렸다. 단순해 보이지만 그게 오히려 깔끔한 느낌을 줄 수도 있고, 소품을 이용하면 단순하다는 생각이 나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의상이었다.
“이거·· 너무 튀지 않아요?”
“눈에 띄면서도 과하지 않은 의상이에요.”
뭐랄까, 상대방과 의견을 나누면서 의상을 선택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안목을 믿고 의상을 선택하는 분이신 거 같다.
“저 민 실장님 죄송한데, 지금 의상들 모두 사진 촬영을 염두에 둬서 고르시는 거죠?”
“당연하죠, 보면 아시잖아요.”
민 실장님은 그것도 모르겠냐는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네, 그렇게 보여서 얘기한 거예요. 저 원피스 되게 괜찮아 보이네요, 어두운 배경 놓고 찍으면 좋은 사진 나올 것 같네요. 그럼 전, 실장님만 믿고 촬영 준비하겠습니다.”
“저기요.”
“네?”
“그, 알아봐 주셔서 감사해요. 제 말투가 원래이래요. 딱히 작가님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니에요.”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사과를 하시는 게 어색해 보인다. 말투가 문제인 건 의식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난 출연자들이 묵고 있는 집 지하에 임시로 만든 촬영장을 꼼꼼하게 살피고, 조명이나 모니터를 확인했다. 시간이 지나고 예쁘게 차려입은 출연자들이 촬영장으로 들어왔다.
“오늘 촬영을 진행해주실 포토그래퍼를 소개합니다. 러버걸스 역주행을 이끈 기적의 사진을 찍으신 분이죠. 그 후에도 언루트 앨범 재킷과 화보집, 그리고 각종 패션잡지와 광고에도 활약하고 계신 분입니다. 길승우 사진작가님.”
굉장한 찬사 어린 소개를 받고 난 쑥스러운 얼굴을 하며 앞으로 나왔다.
“오늘 촬영은 그동안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지 못한 자신의 매력을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하는 작업입니다.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 될 줄 알았는데, 여러분들 모습을 보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겠네요. 헤어하며 의상이 새롭게 느껴지죠?”
“네!”
“그 새로운 기분을 그대로 담아서 즐겁게 촬영을 진행해보죠.”
난 카메라를 들고 촬영장으로 나선 한 출연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어떻게 생각한 포즈 있어요?”
그녀는 나름 과감하게 다리를 뻗고 카메라를 향해 시선을 맞춘 채 웃었다. 성인여성을 흉내낸 여학생의 모습이 보여서 난 웃었다.
“포즈를 취할 때는 의상이나 자신의 얼굴을 고려해야 해요. 지금 포즈는 한 5년 있다가 하면 되게 잘 어울릴 것 같다. 일단, 좀 움직여볼까요?”
처음으로 나와 좀 부담스러울 만한데도 그녀는 나름 여러 가지 표정과 동작을 취하며 나를 기쁘게 했다.
“굉장히 잘하고 있어요. 오, 지금 표정 아주 좋다. 그대로 멈춰서, 한 장만 더.”
첫 촬영이 너무 쉽게 넘어가서 난 조금 마음을 놓았다. 아마추어라고 해서 좀 긴장했는데, 연습생 시절에 훈련을 받았는지 카메라 앞에서 아주 자연스럽다.
하지만 두 번째 출연자가 나오면서 상황은 조금씩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표정이 너무 한 가지다. 조금 웃거나, 아니면 조금 화를 내거나 하는 표정 지어볼래요? 아··.”
첫 번째 출연자가 특별한 거였다. 이게 보통 아마추어의 반응이지, 카메라 앞에서 긴장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거.
“춤하고 노래 중에서 제일 잘하는 게 뭐에요?”
“네? 네?! 저, 둘 다 못해요. 저 래퍼입니다.”
“아아, 래퍼구나. 어떤 노래 때문에 랩에 흥미가 생겼죠?”
“어릴 때 페스틱 선배님들 노래를 듣는데, 내 얘기 같고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열심히 연습했어요.”
얼굴 클로즈업 사진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나온 거 같다. 문제는 뻣뻣해 보이는 저 몸을 어떻게 좀 하고 싶은데··.
“작가님, 이거 쥐여줄까요?”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민 실장님이 꽃다발을 들고 내게 묻고 있다.
“좋은 생각 같네요. 라영아, 그 꽃다발 두 손으로 들어. 네가 동경하던 페스틱 선배에게 받은 거라고 가정해봐. 아니,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냐는 허탈한 표정 말고··.”
그래도 꽃다발 덕분에 여러 가지 모습이 나오고 있다. 난 촬영을 마치고 내 뒤에서 촬영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민 실장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번 사진은 모두 민 실장님 덕분이네요. 적절한 소품이었어요. 앞으로도 뭐 생각나는 거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그래도 돼요?”
“네? 안될 이유가 있나요?”
“보통 사진가분들은 이런 식으로 끼어드는 거 좋아하지 않던데··.”
“제가 보통 사진가가 아닌가 보죠.”
나름대로 우스갯소리였는데 민 실장님의 표정이 급격하게 ‘뭐 저런 놈이 있나’하는 표정으로 바뀌고 있다. 난 헛기침을 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더 좋은 장면 나오겠다 싶으면 언제든 의견 주세요. 전 그런 의견 아주 환영합니다.”
다시 촬영을 진행하면서 난 첫 번째 참가자가 굉장히 특별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손이 너무 이상해요. 손목으로만 변화를 주려고 하지 말고, 크게 크게 움직여볼까요?”
“턱선이 아주 예쁜데, 지금 보이지 않아요. 조금 보여줄래요? 어? 아니 제가 무슨 이상한 요구한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부끄러워해요.”
“조금 인형 같은 느낌으로 가보기로 했죠? 손에 힘 빼고 좀 늘어지는 기분으로. 느지막이 일어나서 햇살이 비치는데 꼼짝도 하고 싶지 않다는 기분 있죠. 하하, 그렇다고 눈을 감고 목에서 힘을 빼지는 말고요.”
“조금 앞으로 갈 테니까, 놀라지 말아요.”
민 실장님도 중간중간 끼어들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생각보다 이목구비가 반듯해서 의상이 죽네요. 좀 바꿔도 될까요?”
“토드백 하나 붙여주면 그림이 더 살 것 같아요.”
“키가 작고 좀 왜소해서 벨트를 착용했는데 부족하네요, 악세서리 하나 추가시켜도 되죠?”
저런 영역은 내가 아직 모자라기 때문에 그녀의 의견이 큰 도움이 되었다. 게다가 열이면 열, 그녀의 충고에 따라 변화시킨 스타일링이 더 낫기도 하고 말이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첫 번째 팀의 촬영을 끝내고 난 시간을 봤다. 예상보다 빨리 찍었고, 결과물도 좋았다. 성공적인 첫걸음을 자축하며 난 잠시 뒤에 있을 두 번째 팀의 컨셉을 확인했다.
***
얼마 뒤에 전 PD는 작가들과 함께 웃으면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사진 공개한 거 반응 괜찮지?”
전 PD의 말에 작가가 입을 열었다.
“고화질의 사진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해놓으니까 반응이 있긴 하더라고요. 드디어 대형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우리 프로그램이 언급되고 있어요.”
“잘 나온 사진이 한 둘이 아니니까, 사진을 보고 프로그램에 유입되는 시청자들이 늘고 있죠. 클로즈업 사진도 호평일색이고 말이죠.”
전 PD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길승우 작가님이 그걸 요구하시더라고. 한 인원당 전신 샷과 클로즈업 샷을 공개하고 누구나 쉽게 퍼갈 수 있게 만들어달라고 말이야. 고화질로. 절대로 홈페이지에서만 볼 수 있게 하지 말아 달라고 하더라고. 사진도 잘 찍지만, 이런 파급력까지 계산할 정도면 보통은 아니야.”
작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 출연자들도 자신의 사진에 기뻐하더라고요. 대부분 의견이 내게 이런 모습이 있을 줄 몰랐다는 거예요. 몇몇 출연자들은 얼굴이 크게 나왔다느니, 옷이 이상하다느니 하는 애들도 있지만, 제가 보기엔 원판보다는 훨씬 나아요.”
“또 고무적인 건 사진 속 외모하고 방송 모습 하고 괴리감이 있으니까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거 같아요. 진선이만 해도 사진에서는 차갑고 도도한 모습인데, 실제 성격은 빙구미가 넘치잖아요.”
“어떤 곳에서는 방송 짤을 만들어서 사진하고 비교하더라고요.”
작가들의 말에 전 PD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언루트 특별 출연하는 것보다 길승우 사진작가님 섭외하는 게 시청률에 훨씬 도움이 되네. 앞으로도 종종 부탁드려야겠어. 요즘 세상에 사진가가 뭘 얼마나 할 수 있겠나 생각했는데 반성 중이야. 길승우 작가님 또 출연하시기로 했지?”
전 PD의 말에 작가가 대답했다.
“네, 최종멤버가 정해지면 앨범 재킷하고 화보 맡아주시기로 했습니다.”
“섭섭하지 않게 출연료 책정해 드려. 촬영하는데 필요한 거 뭐든 지원해드리고 말이야.”
전 PD는 통계업체에서 내놓은 시청률 표를 보고 다시 한 번 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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