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oneer Simon RAW novel - Chapter 41
야망을 가져라 (1)
“결국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하는가? 이것이 왕국의 뜻이라면 원하는 대로 해주는 수밖에. 고난을 원한다면 신의 뜻에 따라 고난을 안겨주어야지. 그래야 간절히 신을 부를 것이니.”
크로이엘 교단의 추기경 알 리시온은 교황청에 보내는 문서에 서명을 하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금의 난국을 돌파하려면 정상적인 방법을 사용해서는 불가능했다. 비상한 방법으로 비상시국을 돌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알 리시온 추기경이 보낸 서신을 받은 교황청의 총무대신 크리스틴은 교황과 다른 추기경들에게 보이기 전에 문서에 적힌 내용의 사실관계를 먼저 확인했다.
“주신 크로이엘님을 카라이얼이라 칭하는 무리가 출현한 것, 그 다음으로 흑마법사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것인데 마신 트랄리온이나 마왕 엘케이온을 추종하는 무리를 말하는 것인가? 여기에 교단이 중심이 되어 신전을 건립하겠다는 말인가?”
교황청의 총무대신은 추기경이기도 했고 교황청의 모든 실무를 총괄하는 2인자이기도 했다. 아울러 이단과 악의 무리를 조사하는 이단심판관을 지휘하는 역할까지 수행하였다.
크로이엘 교단에서 마신 트랄리온의 위치는 독특했다. 주신과 더불어 세상을 구성하는 양대 축이지만 한편으로 악의 무리들이 추종하는 악신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부정도 인정도 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이었다.
마신 트랄리온이나 마왕 엘케이온을 추종하는 소환마법사는 악의 무리이기에 이단으로 밀어붙여 없애야 했지만 한편으로 세계를 유지하는 신 중에 하나인 트랄리온의 사도이기에 무차별적으로 멸종을 시킬 수도 없는 필요악 같은 존재였다. 자칫 마신 트랄리온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다가는 주신 크로이엘의 존재마저 부정을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흑마법사라고 통칭되지만 마신 트랄리온을 따르는 소환마법사는 마신의 사도이기에 암묵적으로 존재의 당위성을 인정하고 있기도 했다. 너무나 공개적으로 활동을 하지 않는 이상 묵인하고 있었다.
마신이나 마족과 자신의 영혼을 담보로 계약을 하는 자들이기에 주신 크로이엘의 대척점에 선 자들이었지만 한편으로 마신의 권속이기에 마신의 분노가 두려워서 인정을 하기도 했다.
자칫 마신이 분노하여 마족을 동원하여 인간이 사는 중간계를 침공하기라도 하면 재앙이 발생할 수 있었다. 이는 크로이엘의 가호로 해결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흑마탑을 토벌하자는 이런 주장을 하다니 이건 같이 공멸하자는 이야기가 아닌가? 여기에 신전을 포교를 통해 순차적으로 건립하는 것이 아니라 왕실직영지이니 왕실에서 건립하여 헌납하도록 협상을 하겠다고?”
물론 교황이 주신의 계시를 받았기에 흑마법사의 위험을 경고했지만 여기서 말한 존재는 스스로 마신이 되려는 미치광이들, 순수한 흑마법사를 지칭했다.
주신의 계시에 의해 거론이 될 만한 존재는 플라스콘 제국의 이스리알, 에카테리나 왕국의 헬로이안, 로크 왕국의 섬록 등 8서클에 도달한 흑마법사들이 그 대상이었다. 그 계시를 따르는 일은 그들의 행적을 추적하여 말살하는 것이지 마신 트랄리온이나 마왕 엘케이 온의 사도와 전쟁을 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이건 주신 크로이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사욕을 위해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자는 주장일 것이다.”
일국의 신도를 대표하는 추기경이 보낸 서신이기에 교황이 볼 수 있도록 올렸지만 거론이 된 흑마법사에 관한 것은 순수한 흑마법사의 무리가 아닌 마신 트랄리온이나 마왕 엘케이온의 사도라는 것도 같이 보고했다. 또한 신전 건립계획으로 인해 촉발된 갈등도 세세하게 보고했다.
“카라이얼이란 칭호를 거론하는 것에 대하여는 교단이 성립한 이후 어떠한 계시도 없었습니다. 이는 우리만이 아닌 그쪽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둘 다 신언에 의하면 맞는 명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신언을 정확히 적고 발음할 수가 없습니다.”
교황은 그런 말을 하고 더 이상 논평을 하지 않았다. 교단의 입장에서 카라이얼이란 말이 도는 것이 썩 반갑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빌미로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은 더더욱 바람직하지 않았다.
“또한 주신의 계시를 곡해하는 것은 그분을 따르는 사도로서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그 점을 명확히 하여 분란을 만들지 않도록 답신을 보내도록 하십시오.”
교황은 서신을 보고 그렇게 처리를 지시했다. 그러나 서신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그 서신에 담긴 악의가 눈에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신을 섬기는 사도가 악의를 가진 것 자체가 죄악이지만 그것을 함부로 말하기 쉽지 않았다.
그 자리에 배석한 고위 사제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간 후에 교황과 총무대신인 크리스틴만 남았다.
“알 리시온 추기경에 대한 탄핵 의견이 곳곳에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에카테리나 왕국의 사제들은 아직 행동에 나서고 있지 않지만 그들도 적지 않게 불만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더구나 무리하게 신전건립문제마저 밀어붙이는 상황이라 사제들을 비롯하여 일반 신도들까지 반감이 크다고 합니다.”
총무대신의 말이 끝났어도 교황은 그저 눈을 감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런 일은 자주 있는 일이기에 총무대신 크리스틴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이런 일은 인간의 일이라 우리가 해결을 해야 합니다. 일단 기다려보고 상반기 대주교 및 추기경 합동회의가 있으니 그때 처결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대주교 회의와 추기경 회의는 같은 것 같으면서도 엄밀히 말하면 달랐다. 대주교는 모두 추기경이었지만 추기경이 모두 대주교는 아니었다. 추기경들 중에는 대주교로 있다가 물러난 사제도 있고 교황청에서 고위직을 맡아 추기경에 서임이 된 경우도 있고 드물게 주교 중에서도 일부를 추기경으로 서임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대주교 및 추기경 합동회의가 사실상 교황청에서 개최되는 가장 중요한 회의가 되었다. 물론 추기경 회의를 하기 전에 대교구장인 대주교 회의를 먼저 갖는 것이 관례였다.
애쉬톤 산에서 동쪽으로 계속가면 역시 바닷가에 도착한다. 물론 험준한 산을 몇 번 넘어야 했기에 사이먼은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고도가 2000m가 넘는 산을 몇 개나 넘어가야 하기에 전에는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산을 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그 산에 사는 몬스터가 가장 문제였다. 그러나 이제는 전에 만나서 낭패를 당한 오거도 이길 자신이 있기에 감행을 했다.
사이먼은 매일 수련과 사냥을 하다 보니 지루한 기분이 들어 분위기 전환 차원에서 탐험을 하기로 했다. 날도 이제 봄이 지나 여름을 앞두고 있기에 노숙을 하는데 지장이 없어 보였다. 물론 산이 깊은 곳에 자라는 값비싼 약초도 채취하는 것도 하나의 목적이었다.
‘4서클이 되었으니 포션도 만들 수가 있다. 그동안 몬스터를 사냥하여 필요한 재료나 장비도 어느 정도 준비를 했다. 아직 갖추지 못한 몇 가지 약재를 구하면 제조가 가능하다.’
물론 포션을 만드는 재료는 꼭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비슷한 효능을 가진 재료라면 서로 대체가 가능했다. 재료가 좋으면 그만큼 포션의 효능이 좋고 재료가 좋지 못하면 효능이 떨어졌다.
사이먼은 서칭(탐색) 마법을 전개하여 마나를 포함한 식물을 찾기 시작했다. 마법사들이 실험재료를 찾기 위해서 야외에 나갈 때 사용하는 마법이었다. 무조건 약초를 눈으로 찾는 것보다는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사이먼은 기준치 이상의 마나를 머금은 식물 대부분을 채취했다. 대부분 포션을 만드는데 사용이 가능한 약초였기 때문이다. 목적지는 동쪽의 바닷가였지만 바쁘게 갈 이유가 없기에 산을 꼼꼼하게 훑어갔다.
사이먼은 약초를 채취함에 있어 배운 대로 멸절은 시키지 않았다. 뿌리가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필요한 부분만 채취를 했고 뿌리가 필요한 경우에도 일정한 크기 이상만 채취를 하였다.
산은 높이에 따라 자라는 식물이 달랐다. 또한 같은 산이라도 방향에 따라 역시 달랐다. 바람이나 일조량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산 하나를 돌려면 10여일 이상이 소요되기도 했다.
‘마나포션을 만들 수만 있다면 수련의 시간을 훨씬 단축할 수도 있다.’
사이먼은 약초도 채집을 하지만 종종 몬스터와 사투를 벌이기도 했다. 전과 달리 강한 몬스터를 만나면 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싸웠지만 종종 예상한 것보다 강한 몬스터가 있었다.
강한 몬스터는 포션을 제조하는데 필요한 재료를 주기에 반드시 잡을 필요가 있었다. 특히 트롤의 피가 필요했기에 보이기만 하면 잡았다. 그러나 트롤의 경우 가족을 이루는 경우가 많아 두 마리 이상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렇기에 사냥이 쉽지만은 않았다.
사이먼은 몬스터를 해체하면서 흑마법도 같이 수련을 했다. 흑마법 중에서 몬스터 사체가 필요한 경우도 많았는데 사체가 있으니 연습을 했다.
‘몬스터 사체에도 음의 마나가 많구나.’
어쩌면 당연한 사실인데도 직접 사체를 해체하고 나서야 그 사실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동굴에서 나오는 음의 마나가 순수하다면 몬스터에서 나온 마나는 어딘지 모르게 오염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고 죽음의 기운, 사기마저 감돌고 있었다. 이렇게 오염이 된 마나를 특별히 암흑의 마나라고도 했다.
사이먼은 한 달 가까이 약초 채집과 몬스터 사냥을 하다가 원래 가려고 했던 곳에 도착하지 못하고 은신처로 돌아왔다. 마법배낭이 가득 차서 더 이상 물품을 넣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돌아오자 채취한 재료를 가공하여 포션을 만들 준비를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다양한 마법을 사용하면서 좀 더 마법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알 리시온 추기경은 교황이 보내온 서신, 일명 교시를 받아들고 이를 부드득 갈아붙였다. 자신의 요청이 완곡한 어조로 써져 있지만 모조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신 트랄리온의 사도들에 대하여 손을 쓰지 말라는 말인가? 한데 그들이 트랄리온의 사도인 소환마법사라는 것을 교황청에서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이지?”
알 리시온은 혼잣말을 하고 있지만 상당히 큰 소리로 스스로 반문을 했다. 사제들이 사적으로 교황청의 사제들에게 서신을 보낼 수도 있지만 교황청에 가는 공식적인 서신은 무조건 그의 손을 거치도록 했기에 절대로 흑마법사의 정체를 교황청에서 알 수가 없었다. 휘하의 이단심판관들을 동원하여 사제들의 동태마저 살피고 있기에 그가 아는 한에는 그런 정보가 교황청에 알려질 수 없었다.
“이단심판관을 움직이는 총무대신 크리스틴이 로크 왕국의 추기경인 레시튼을 지지한다고 하더니 결국 훼방을 놓은 것인가? 더구나 교시가 나만이 아닌 왕국의 여섯 명의 교구장인 주교들에게도 내려온 것은 나의 행동을 철저히 제약하겠다는 의도이겠지.”
알 리시온은 최후의 수단이라 생각한 것마저 좌절이 되자 두 손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쾅 소리가 그의 집무실에 울려 퍼졌다. 분노를 마음대로 표출할 수가 없으니 애꿎은 탁자만 내리쳤다.
“더구나 신전건립은 강요가 아닌 신도들의 자발적인 헌납의 산물이 되어야 하며 신도들의 믿음과 헌신이 없이 세워진 신전에 주신께서 기뻐하지 않는다니 결국 신전건립마저 방해를 한다는 말인가?”
알 리시온은 자신이 추진하는 모든 정책이 부정을 당하자 화를 낼 기력마저 없는지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런 것과 반대로 다른 여섯 곳에 위치한 교구장인 주교의 집무실에서는 교황의 서신을 받자 추기경 알 리시온의 전횡에 참을 수밖에 없었던 울분을 그나마 달랠 수 있게 되었다.
교서에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신도의 믿음과 헌신을 기반으로 한 신앙만이 세상을 구원하는 것이라는 상투적인 내용이었지만, 그것만으로 현재 진행되는 추기경의 전횡에 대항할 힘을 충분히 부여해 주었다.
교구장인 주교들은 교황이 포교에 진력하라는 교시를 내린 덕분에 각기 인접한 지역에 포교 사제를 파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추기경인 알 리시온은 교단중심주의에 위배가 된다고 생각하여 사제들의 포교마저도 사실상 금지를 시킨 상황이었다.
금지의 이유가 신도가 주신 크로이엘을 믿고 따라야 하는데 그 사도인 사제를 믿고 따르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논리 때문이었다. 즉, 교단이 신도를 장악하여야 하는데 포교를 하는 과정에서 사제 개개인이 신도를 장악하고 그것을 빌미로 사제가 교단의 권위를 무시하고 신전의 주인이 되려고 한다는 이유였다.
그렇기에 주교들은 자신의 교구 안에 왕실직영지가 있어도 포교 사제를 보낼 수가 없어 교세를 확장할 수가 없었다. 현재는 기존에 나가있던 포교 사제마저 대부분 철수를 시킨 상황이었다.
사제의 주된 역할이 신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이지만 일반인들에게 사제는 고위치료사였다. 그렇기에 사제가 파견이 되어 있으면 부상을 당하고 병에 걸려도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그런 사제가 철수를 하면 아쉬운 것은 교단이 아니라 각 영지의 영주와 영지민이었기에 알 리시온 추기경은 그런 배짱을 부렸다.
있다가 없으면 불편하여 불만을 표출하지만 그것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적응을 하기 마련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으레 신전이나 사제가 없는 것으로 적응을 했고 각 지역에 마법 상점이 자리를 하면서 사제의 치료를 포션으로 대체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포교를 나갈 수 있게 되었으니 알 리시온 추기경의 교단 중심의 신전건립계획은 사실상 폐기가 되고 말았다.
전에야 포교를 자제하라는 추기경의 지침 때문에 자제를 했지만 그보다 더 높은 교황이 포교를 독려한 덕분에 그런 것에 구애될 필요가 없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