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124)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125화
붉은 가면(4)
-우우우웅!
푸른빛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김시훈의 몸이 선명한 푸른빛으로 빛났다.
방금과는 비교하기 힘든 내공의 힘이 느껴졌다.
‘진짜 각성 머신이 따로 없네.’
남들은 평생에 한 번 하기도 힘든 각성을 벌써 두 번이나 이뤄냈다.
이 정도면 단순히 재능충이라고 부르기도 부족했다.
‘그래도.’
강우는 희미하게 웃었다.
흔히 노력으로는 재능을 넘을 수 없다고 한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재능의 벽이라는 것은 너무도 두껍고 높아 감히 노력으로는 넘볼 수 없었다.
‘인간이라면.’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은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달랐다. 그는 악마이며, 불멸자이며, 영원을 걷는 자다.
만 년이라는 시간을 살기 위해 발버둥 쳤다.
김시훈이 무신의 영혼을 받아들이건, 하늘이 내려준 재능을 가지고 있건 그 아득한 시간 동안 쌓아올린 ‘노력’을 넘어설 순 없다.
‘이걸 노력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단순한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도 처절했다.
삶에 대한 갈망.
죽고 싶지 않다는 원초적인 본능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고작 하늘이 내려준 재능 따위에 패배할 정도로 어설픈 것이 아니었다.
“하압!”
푸른빛에 휩싸인 김시훈이 쇄도했다.
손에 쥔 검을 놓았다. 딱.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파동의 권능이 그의 손가락에 집중됐다.
-파아아아앙!
검은빛 파동이 원형으로 퍼져나갔다. 피할 수 있는 공간은 없었다. 오로지 막아야만 하는 공격.
김시훈은 다급히 검을 들어올렸다. 검은 파동이 그의 전신을 휩쓸었다.
“크, 윽!”
김시훈의 무릎이 꺾였다.
방금 전에 각성을 한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몸에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게 사탄의 힘.’
창백하게 표정이 질렸다.
아득한 산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밑이 보이지 않는 심연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이길 수 없다. 처음부터 알고 있던 그 사실에 확신이 더해졌다.
지금 자신의 힘으로는, 저 악마를 결코 넘어설 수 없었다.
[나쁘지 않은 발악이었다.]“크윽.”
[하지만 송사리가 발버둥 쳐봐야 결국 그 정도겠지.]“제길….”
딸그락. 손에 힘이 풀렸다. 엘 쿠에로 블레이드가 바닥에 떨어졌다.
사탄이 그를 향해 다가왔다.
[분한가?]“…….”
[이성을 잃을 것 같나? 머릿속이 하얗게 불타 버릴 것 같나?]“닥쳐.”
조롱하는 사탄을 향해 욕지기를 내뱉었다. 사탄은 낄낄 웃었다.
[좋다. 바로 그 눈이다. 분노와 증오에 찬 눈빛. 그것이야말로 생을 이끄는 욕망이자 갈망이다.]“헛소리 하지 말고 이제 그만 끝….”
[끝내지 않는다.]“…뭐?”
사탄은 환희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이토록 재밌는 일을 끝낼 리가 없지 않은가.]“그게 무슨….”
[마음에 들었다. 네 분노와 증오가 나를 떨리게 만들었다. 흥분하게 만들었다. 전율하게 만들었다.]사탄이 손을 움직였다. 그의 손에는 아직도 목을 움켜잡힌 알렉이 몸을 움찔거리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죽어도 한참 전에 죽었겠지만 알렉은 보통 사람과는 격을 달리하는 신체능력을 가진 초인이었다.
목이 움켜잡혀 호흡이 차단된 상태에서도 1시간 이상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무슨 짓을 할 생각이냐.”
김시훈은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사탄의 손에 잡힌 알렉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이자를 구하고 싶나?]“…그렇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탄의 눈빛이 광기로 번들거렸다.
“…….”
[그러니.]-우드드득.
섬뜩한 파골음이 울려 퍼졌다.
알렉의 머리가 찌그러졌다. 두개골이 터지며, 머리가 짓뭉개졌다. 검붉은 피와 새하얀 뇌수가 뒤섞여 흘러내렸다.
“어, 어…?”
김시훈의 입이 벌어졌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봤다는 듯, 이해하기 힘든 장면을 봤다는 듯 그의 동공이 격렬히 떨렸다.
알렉이 죽었다.
정의의 검이, 그의 우상이자 동경 그리고 그 이상의 존재가 죽었다.
눈앞에서. 허무하게.
“아, 아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단어가 되지 못한 언어의 편린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몸이 떨렸다.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했다.
분노.
사탄이 말했던 격렬한 분노가 폭발하듯 몸을 지배했다.
“이, 개자식이이이이!!”
떨어진 검을 움켜쥐고 전신의 힘을 쥐어짜내 찔렀다.
하지만 이미 힘이 빠질 대로 빠진 손으로는 검을 제대로 움켜잡는 것조차 힘들었다.
팅. 허망한 소리와 함께 검이 튕겨져 나왔다.
김시훈이 바닥을 굴렀다.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손에 힘이 담기지 않았다. 바닥에 쓰러졌다. 몸을 꿈틀거렸다. 그는 바닥을 기어서라도 사탄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래, 바로 그 눈빛이다.]사탄은 흡족한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처절한 김시훈의 모습에 사탄은 웃었다.
느긋이 걸어간 사탄이 김시훈을 들어올렸다. 증오에 찬 그의 눈빛을 직시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그 분노가, 증오가 너의 양분이 될 것이다.]“…….”
[처절하게 발버둥 쳐라. 발버둥 치며, 나를 기억하라.]사탄과 김시훈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나는 죽음이다. 나는 종말이다. 분노이며, 증오다.]붉은 가면이 기울어졌다.
[나는 사탄이다.]“…….”
김시훈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붉은 악마 가면이 머릿속에 깊게 새겨졌다.
[강해져라 인간. 분노를 양식 삼아, 증오를 거름 삼아 성장해라. 그리고….]낄낄. 악마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나를 죽여라.]-퍼억.
사탄이 내지른 주먹이 김시훈의 배를 쳤다. 간신히 붙잡고 있던 김시훈의 의식이 끊어졌다.
“후우. 말투 한번 개 같네, 진짜.”
김시훈이 기절하자 붉은 가면을 벗었다.
강우는 손발이 찌그러지는 듯한 오글거림에 헛구역질을 했다.
“사탄 이 새끼는 평소에 무슨 정신으로 이딴 말투를 사용했던 거야.”
김시훈에게 했던 말투는 실제 사탄이 사용하던 말투였다.
‘뭐, 말투만 같게 한 건 아니지.’
상황도 비슷했다.
처음 사탄과 싸울 때 강우는 패배했다. 압도적으로 짓밟혔다. 그 뒤에 그는 패배한 강우에게 말했다.
-강해져라 인간. 분노를 양식 삼아, 증오를 거름 삼아 성장해라. 그리고… 나를 죽여라.
‘그리고 진짜 뒤졌지.’
사탄의 최후는 꽤나 웃겼다.
설마 진짜로 자신을 죽일 정도로 그가 강해질 것은 예상 못했는지 온갖 똥폼을 잡던 사탄은 막상 죽을 위기에 처하자 추해졌다.
-아니, 대체 인간이 어떻게…. 어떻게 마해(魔海)를 손에 넣었단 말이냐!
“그러게 똥 싸지 말고 죽일 수 있을 때 죽여야지.”
강우는 가슴을 툭툭 두드렸다.
만마전.
그 끝을 알 수 없는 마기의 바다에 사탄은 잡아먹혔다.
가장 중요한 대공의 영혼은 지옥무구로 도망쳐 버려 먹지 못했지만 그가 가진 권능과 막대한 마기는 모조리 먹어치웠다.
‘다룰 수는 없지만.’
대공의 권능은 만마전이 봉인 당하기 전에도 다룰 수 없었다.
마기를 다루는데 아득한 경지에 올라선 강우로도 ‘대공의 권능’만큼은 불가해의 영역이었다.
“그나저나.”
시선을 옮겼다.
쓰러져 있는 김시훈의 모습이 보였다. 조금 심했나,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 김시훈에게는 큰 자극을 줄 필요가 있어.’
김시훈은 모든 걸 갖추고 있었다.
하늘이 내려준 재능과 검황이라는 훌륭한 스승, 시스템의 수혜까지.
하지만 한 가지 그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다.
‘절박함.’
김영훈과 김재현이 잡혀 들어갔다.
김시훈의 입장에서는 그의 삶을 짓누르던 무거운 짐덩이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지금 그를 움직이는 동기는 강우처럼 되고 싶다는 동경밖에 없었다.
‘그거로는 부족하지.’
애들 장난이 아니었다.
강해지기 위해서는 절박해야 했다. 처절해야 했다.
그래야만 알게 모르게 다가오는 안일함을 찢어버리고 성장할 수 있었다.
‘이해해라, 시훈아.’
다소 과격한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종속의 권능으로 ‘절박해져라’라는 명령을 해봤자 실제 절박한 것과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네 검은 더러워져야 한다.’
피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검이 되어야 했다.
중요한 순간에 망설임 없이 적의 목을 날려버리는 검이 돼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
‘알렉처럼.’
강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머리통이 터진 알렉에게 다가갔다. 손을 뻗었다. 검은 불꽃이 알렉의 시체를 불태웠다.
“일단 이걸로 끝인가.”
알렉을 처리했고, 김시훈을 자극시켰다. 각성은 덤이었다.
이제는 그 ‘가이아’라는 인물이 김시훈에게 접근하길 기다리면 됐다.
“기다리는 동안 이 빌어먹을 레벨 제한부터 풀어야 할 텐데.”
특성은 둘째 치고 만마전의 봉인을 약화 시키는 것도 중요했다.
레벨 제한에 대해 생각하자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뭐 방법을 알아야 해제….’
이어지던 생각이 끊어졌다. 귓가에 청아한 방울소리와 함께 푸른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수호자를 처치하였습니다.] [레벨 제한을 막고 있던 시스템의 기운이 약화되었습니다.] [한계 레벨이 69로 상승하였습니다.] [누적된 경험치가 적용됩니다.] [레벨이 10상승합니다.] [7차 각성에 도달하였습니다!] [힘 스탯 +11, 민첩 스탯 +9, 체력 스탯 +8, 지혜 스탯 +4 상승하였습니다!]‘어라?’
두 눈이 커졌다. 레벨 제한의 해제. 그가 그토록 바라던 일이 상상도 못한 타이밍에 이루어졌다.
‘수호자를 죽이는 게 레벨 제한을 푸는 거였어?’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만약 알렉을 죽이지 않았다면 알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강우는 시스템 메시지를 차분히 살폈다.
‘보통은 59레벨의 벽을 한 번 뚫으면 89레벨까지 레벨 제한은 없다고 들었는데.’
89레벨, 즉 9차 각성의 끝에서 다시 한번 ‘재능의 끝’에 막히는 것 말고는 원래 레벨 제한은 없는 게 맞았다.
‘하지만 난 69레벨에 레벨이 제한됐어.’
이제는 더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시스템. 그것이 그의 성장을 의도적으로 억누르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제한을 푸는 게 수호자를 죽이는 거라고?’
강우의 시선이 쓰러져 있는 김시훈에게 향했다.
아주 잠깐. 정말 사알짝 입가에 군침이 돌았다.
“아냐.”
강우는 고개를 저었다. 욕망을 떨쳐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냐.”
김시훈은 그에게 진심어린 충성을 맹세한 부하이자, 영혼이 섞인 동료가 아닌가.
“시훈아….”
형 믿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