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19)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0화
안드라스 길드(2)
발록.
강우가 팔천지옥을 넘어 구천지옥에 발을 디뎠을 때 처음 만났던 강력한 악마였다.
일곱 대공을 제외하고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악마인 발록은 강우와 한 번 싸우더니 그에게 영원한 충성을 맹세한다며 무릎을 꿇었다.
‘지긋지긋한 놈이었지.’
뇌가 근육으로 차 있는 게 아닐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단순하고, 뜨거운 놈이었지만 그래도 강우가 지옥에서 가장 정이 많이 든 부하 중 하나였다.
“…일단 나가서 얘기하자.”
“하하하! 알겠소!”
강우는 기절해 있는 다른 한 사내를 어깨에 들쳐 메려고 했다.
“내가 들겠소, 형님.”
태수는 기절한 사내를 번쩍 들어 어깨에 멘 후 게이트 밖으로 나갔다. 그래도 나름 건장했던 사내의 몸을 태수가 들자 마치 어린애를 드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봐도 몬스터 같은데.’
사냥한 먹잇감을 들쳐 멘 몬스터처럼 보이는 태수의 모습에 강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 * *
“감사합니다!”
밖으로 나가자 김태현은 강우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제가 꼭 도닥붕에서 벗어나 강우 씨에게 받은 은혜를 갚겠습니다!”
“도닥붕?”
“도적은 닥치고 붕대나 감으라는 말이요, 강우 형님. 도적 계열은 딜도 탱도 애매해서 파티에서 잘 껴주지 않아 생긴 말이요.”
“아하.”
강우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김태현은 굳은 결의가 담긴 눈빛으로 강우를 향해 허리를 숙이더니 몸을 돌려 돌아갔다.
강우는 그런 그의 등을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은혜를 만들어두는 건 좋은 일이지.’
최소한 생각 없이 적을 늘리는 것보다는 몇 배는 좋은 일이었다.
혹시 누가 아는가, 정말 김태현이 그의 호언장담대로 도적의 한계를 벗어던지고 높은 자리에 군림하는 플레이어가 될지.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코 해가 되는 일은 아니었다.
강우는 김태현에게서 시선을 돌려 태수를 바라보았다.
태수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강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잘 조련된 곰 하나를 옆에 두고 있는 기분.
‘문제는 이놈을 어떻게 할까 인데.’
하는 말로 봐서는 쉽게 그에게서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넌 레벨이 어떻게 되냐?”
“12레벨이요. 얼마 전에 2차 각성을 했소.”
“음…. 기초 교육은 안 받은 거야?”
“난 1차 각성 개화 특성이 C등급이라 그냥 바로 사냥을 해서 레벨을 올렸소.”
“호오.”
1차 각성 특성이 C등급이라는 건 꽤나 높은 수치였다.
강우는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태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2차 각성 특성은 무슨 등급인데?”
“후후. 2차 각성으로는 A등급 특성을 개화했소.”
“…….”
자신 있게 대답하는 태수를 바라보며 강우는 눈을 빛냈다.
‘생각보다 훨씬 재능이 있는 놈이잖아.’
2차 등급에서 B등급 특성만 나와도 꽤나 재능이 있는 플레이어로 분류됐다.
그런데 B도 아니고 A등급이라니, 기대를 웃도는 등급의 특성이었다.
‘아까 그놈들이 고전한 이유가 있었군.’
레벨 자체는 12레벨로 상당히 낮았지만 특성 등급이 높은 탓에 꽤나 분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왜 길드에는 안 든 거야? 그 정도 등급이면 어디든 갈 수 있었을 텐데.”
“안 그래도 어디 길드로 갈지 알아보고 있던 중이었소. 뭐, 이제는 길드에 들어갈 필요가 없지만.”
“……?”
태수는 뜨거운 시선으로 강우를 바라보며 주먹을 굳게 움켜쥐었다.
“형님의 의협심에 반했소! 이 사나이 강태수! 앞으로 형님을 따르고 싶소!”
“흠….”
콧김을 내뿜으며 외치는 태수를 바라보며 강우는 팔짱을 끼었다.
‘괜찮은데?’
처음에는 조금 귀찮다고 생각했지만 태수의 특성 등급을 듣고 나니 생각이 살짝 바뀌었다.
지금 당장은 큰 도움이 되지 못하겠지만 태수는 투자할 가치가 충분한 재능 있는 플레이어였다.
‘2차 때 높은 등급이 나온 플레이어는 3, 4차 각성에서 더 좋은 특성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했으니까.’
어쩌면 S급, 혹은 그 이상의 특성을 태수가 개화할 가능성도 있었다.
‘부하로 두기 나쁘지 않아.’
혼자서 움직이는 것이 익숙한 그에게 함께 싸울 동료는 딱히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을 하는 부하라면 얘기가 달랐다.
한 손으로 할 수 있는 일보다는 두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귀찮은 일을 대신해 주는 것만으로도 부하를 둘 가치는 충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우는 자신을 향한 굳은 충성심이 느껴지는 태수를 바라보았다.
부하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부하의 능력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건 자신에 대한 변치 않는 충성심. 결코 뒤통수에 칼을 꼽아 넣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태수와 같은 인간을 부하로 받아들이는 것은 여러모로 이득이 되는 일이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후면 설아 씨도 2차 각성을 한다고 했지.’
힐러인 한설아와 탱커인 태수를 함께 파티를 짜게 만든다면 꽤나 괜찮은 파티를 하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키울 만한 가치가 있어.’
태수가 가진 재능을 생각해 본다면 나쁘지 않은 투자였다.
“좋아. 앞으로 내가 널 이끌어주지.”
“오오! 고맙소, 강우 형님!”
태수는 흥분에 찬 목소리로 눈을 빛냈다.
“그럼 지금 바로 안드라스 놈들의 아지트로 쳐들어가는 거요? 흐흐. 내가 이 한 목숨 바쳐서 형님을 지켜드리겠소.”
“아니, 안드라스 길드에는 나 혼자 갈 거야.”
“엇…. 왜, 왜 그러는 거요?”
“태수야.”
강우는 낮은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태수의 몸이 움찔 떨렸다.
강우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이번에 고작 안드라스 길드원 두 명한테 죽을 뻔했지?”
“그, 그렇소.”
“지금 네가 정말 날 지켜줄 수 있다고 생각해?”
“…….”
묵직한 팩트에 태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 자신도 지금 강우의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강우는 풀이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태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괜찮아.”
“강우 형님?”
“넌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약하다면 강해지면 될 문제야. 그렇지?”
강우의 말에 태수의 표정에 화색이 돌았다.
“암! 그렇지! 이 강태수의 이야기는 아직 시작도 안 한 셈이요!”
“그래.”
“흐흐흐. 금방 강해져서 형님의 방패가 되어드리겠소!”
열의에 찬 태수의 외침에 강우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믿고 있으마.”
“형님 연락처 좀 알려주쇼. 내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달려오겠소.”
“아참, 안 그래도 부탁할 게 하나 있어.”
“오, 말만 하쇼, 형님.”
부탁이라는 말에 태수는 의욕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얼마 있으면 내 아는 사람이 기초 교육을 수료할 거야. 그 사람하고 파티를 짜서 레벨 업을 해줬으면 해.”
“호오. 혹시 어떤 계열인지 알려주실 수 있소?”
“힐러 계열이야.”
“그렇다면 오히려 내 쪽에서 부탁하고 싶을 정도요. 딜러는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우니 좋은 파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소.”
태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럼 나중에 연락할게.”
“강우 형님은 이대로 안드라스 길드로 가시는 거요?”
“글쎄….”
강우는 바닥에 쓰러진 채 기절해 있는 사내를 내려다보았다.
검을 사용하고 있던 이 사내를 이용하면 안드라스 길드의 아지트가 있는 장소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안드라스 길드를 상대하는 건 문제가 안 돼.’
한국을 주름잡고 있는 대규모 길드라면 몰라도 중소규모의 길드에 불과한 안드라스 길드라면 지금 강우 혼자의 힘으로도 충분히 상대해 볼 수 있었다.
3차 각성이 이후 만마전의 봉인이 한층 더 약해지면서 강우는 20레벨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강우의 힘은 단순히 스탯과 레벨로만 따질 수 없었다.
그에게는 무려 만 년 동안 쌓아 온 전투기술이 있었다.
다소 스펙에서 밀린다고 하여도 상대를 압도하는 것이 가능했다.
‘문제는 어떻게 들키지 않고 들어가느냔데.’
침묵의 권능처럼 기척을 숨길 수 있는 권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반인에 비해 감각이 뛰어난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장시간 완벽하게 기척을 감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혹시라도 발각되면 그 의식이란 것의 단서를 놓칠 수도 있어.’
그렇게 되면 안드라스 길드에 대해서 조사를 하는 의미 자체가 없어졌다.
“흠….”
강우는 가만히 눈을 감은 채 고민에 잠겼다.
“으으. 여긴…?”
그때, 기절해 있던 사내가 머리를 움켜잡은 채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강우는 타이밍 좋게 일어난 사내의 목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커헉!”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친절하게 대답해 줄 수 있지?”
“커흡! 헉억!”
“알았으면 고개를 끄덕여.”
사내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쿨럭! 쿨럭! 쿨럭!”
“이름이 뭐지?”
“가, 강철호입니다.”
“좋아, 철호야. 아까 전에 분명 너희가 습격한 플레이어를 ‘살려서 데려가야 한다’라고 말했지?”
“…….”
강우의 질문에 강철호는 굳게 입을 다문 채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의 이마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기,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래?”
강우는 발을 들어 마치 공을 차듯 그의 머리를 거칠게 후려쳤다.
-뻐억!
“커헉!”
“자, 이제는 좀 기억났어?”
“으, 으으….”
“아직 부족해?”
“아, 아닙니다!”
강철호는 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태수는 장인(?) 같은 솜씨로 심문을 이어가는 강우를 바라보며 입을 쩍 벌렸다.
“새, 생포하라고 한 이유는 저자를 ‘제물’로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제물?”
“그렇습니다.”
“그 의식인가 뭔가의?”
강철호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을 들은 강우는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생각 이상으로 미친놈들이었군.”
그 의식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을 산 제물로 바친다는 점에서 굉장히 원시적인 형태의 의식일 가능성이 컸다.
“흠.”
안드라스 길드가 예상 이상으로 광기에 잠식되어 있는 길드란 사실을 알게 된 강우는 가늘게 눈을 뜬 채 생각에 잠겼다.
‘제물이라….’
그때, 강우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강우는 강철호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부탁이 하나 있는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