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234)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235화
전면전 (2)
눈 덮인 대지.
높게 솟은 산에서 검은 먹구름과 같은 어둠이 흘러내렸다.
내리쬐는 태양빛을 잡아먹는 어둠.
그 산의 주변만 밤이 된 것처럼 어둠이 내려앉았다.
산의 내부.
흙과 돌로 가득 차있어야 할 산의 내부는 인공적인 방법으로 깎여나가 있었다.
내부에 만들어진 거대한 기지.
그곳에는 2만여 명이 넘는 사람들과 악마들이 도열해 있었다.
도열해 있는 인간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한 악마, 벨페고르의 입에서 나지막한 하품이 흘러나왔다.
휠체어와 닮은 바퀴달린 의자에 앉아 있던 그는 마음에 들지 않다는 듯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왜 이렇게까지 계획이 앞당겨진 거지?]귀찮음이 묻어나오는 목소리.
일어서서 따지는 것도 귀찮다는 듯 휠체어에 늘어지게 앉은 그는 연신 불만을 토로했다.
“사정이 생겼다고 들었다.”
전신을 피 묻은 붕대로 휘감고 있는 괴인의 입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갈고리로 쇠를 긁어대는 듯 불쾌한 목소리였다.
벨페고르는 옆에 선 괴인, 혈마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사정?]“마왕이 나타났다고 하더군.”
-쾅!!
이어지는 그의 말에 벨페고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뭐, 라고?]그가 몸을 일으키자 혈마객의 눈이 빛났다.
‘벨페고르가 일어났다고?’
환 대륙과 지구를 합쳐 벨페고르만큼 나태한 존재는 본 기억이 없었다.
그는 멀쩡한 육체를 가지고 있음에도 움직이기 귀찮다는 이유로 항상 이동식 의자에 앉아 생활했고, 사도들을 통해서 정기적으로 이뤄지는 보고 또한 듣지 않았다.
지옥무구라는 신기(神器)에 영혼만 남은 채로 갇혀 있던 시절에도 오로지 귀찮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육체를 재구성하는 것을 뒤로 미뤘던 악마였으니 그 나태함이 어디까지인지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
‘신성’을 얻기 위해 마의 근원을 흡수하는 일도 귀찮아서 제대로 하지 않을 정도로 극도의 나태함을 가지고 있는 악마, 그것이 벨페고르였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그런 벨페고르가 몸을 일으켰다.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대공의 위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한심한 작태.
공포에 질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혈마객은 눈살을 찌푸렸다.
“마왕이 그 정도 인가?”
사실 그는 오랜 기간 악마교와 활동하면서 마왕에 대한 얘기는 거의 듣지 못했다.
과거 사탄과 벨페고르, 마몬이 그에게 고전했다는 얘기를 들은 정도.
[그 정도냐고? 그 정도, 냐고?]벨페고르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그래봤자 놈의 본질은 인간이 아니었나?”
혈마객 본인이 인간에서 마공으로 악마의 육체를 가졌기에 알 수 있었다.
인간의 육신은 그 근본에서부터 악마와 다르다.
그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힘을 손에 넣기 위해 그는 피나는 노력을 반복해야 했다.
‘오래 걸렸지.’
몸 안의 마기를 움직였다.
‘대공’이라고 불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절대자의 운명을 타고난 존재와 동일 선상에 서기 위해 그는 천 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을 마공에 매달려야 했다.
수천, 수만에 달하는 인간의 피를 흡수해가면서.
‘그럼에도.’
결국 사탄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인간이라는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인간, 이라고?]벨페고르의 눈이 떨렸다.
손을 뻗어 혈마객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잘 들어라. 놈은 괴물이다. 정신 나간 괴물!!]인간이라니.
누가 감히 마왕을 인간이라는 이유로 무시한단 말인가.
아니, 사실 처음에는 벨페고르 자신도 그를 무시했다.
마왕, 정확히는 그가 마왕으로 불리기 전.
모든 대공을 향해 그가 전쟁을 선포했을 때도 귀찮다는 이유로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그리고.
일곱 대공은 모조리 패배했다.
씹어 먹혔다.
단 하나의 괴물에게.
[아아, 어째서. 왜 이런 일이…. 부, 분명 죽었잖아. 내가 직접 느꼈다고!!!]차원의 벽에 갈린 채 사라지는 그의 기운을 느꼈다.
지옥무구에 영혼이 갇힌 꼴사나운 상태였지만, 분명히 느꼈다.
미칠 듯한 희열에 잠기기도 했다.
마왕이, 그 정신 나간 괴물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는 전율했다.
그런데.
살아 있다고?
[으, 아아.]벨페고르는 공포에 몸을 떨었다.
혈마객은 그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천마(天魔)를 만난 무인을 본 것 같군.’
그가 살았던 환 대륙에서도 저런 어마어마한 ‘공포’로 군림하는 존재가 있었다.
천마(天魔).
그와 만난 존재들은 지금 벨페고르처럼 공포에 집어삼켜져 이성을 잃곤 했다.
‘마왕이 그 천마와 동급이라고?’
어림없는 소리.
혈마객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지구에 온 이후 사탄과 벨페고르, 마몬 등 지옥의 군주들과 만났지만 천마와 비교하면 그들은 하찮게 느껴졌다.
그는 모든 마인(魔人)의 정점이자, 신이였다.
‘마왕이라는 놈이 아무리 날고 기어봤자.’
감히 천마에 비할 수 있을까.
괜히 그가 금단의 주술을 사용하여 차원을 넘어 도망쳐 온 것이 아니었다.
환 대륙에서 그는, 결코 지배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이곳으로 온 것이다.
‘언젠가는.’
그의 눈빛에 진득한 광기가 서렸다.
지금이야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사탄의 말을 따르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들 모두를 죽이고 정점에 서겠다는 욕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도 이번 전쟁은 반드시 승리해야 했다.
[도, 도망쳐야 해.]“뭐라고?”
혈마객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대체 마왕이 뭐라고 저렇게까지 반응한단 말인가?
[나는 돌아가겠….]-콰득!!
몸을 돌린 벨페고르의 어깨가 갑작스럽게 뻗어나온 어둠에 잡혔다.
-쿵!
그 어둠이 벨페고르의 몸을 다시 의자에 처박았다.
일렁이는 어둠 너머.
장막처럼 어둠을 두른 채 붉은 악마 가면을 쓰고 있는 존재가 걸어 나왔다.
[앉아라, 벨페고르.] [사, 탄…!]벨페고르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붉은 악마 가면을 쓴 존재를 노려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마왕이 살아 있다니! 대체 무슨 소리냐 그게!!]절규하듯 외쳤다.
사탄은 벨페고르의 어깨에 올린 손에 힘을 더했다.
-쿠구구궁!!
거대한 산 전체가 뒤흔들렸다.
[크윽!]무시무시한 마기에 벨페고르는 신음을 흘렸다.
사탄은 복잡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나도 모른다.] [뭐…?] [대체 무슨 방법으로 마왕이 살아남았는지 모른단 말이다.]씹어뱉듯 답했다.
마왕의 부활.
애초에 지구에 도착한 이후, ‘마의 근원’을 발견하면서 세운 기나긴 계획에서 그 변수는 고려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차원의 벽에 갈려나갔다.
지옥무구의 힘을 이용하면 구멍을 뚫고 안전하게 차원의 벽을 넘을 수도 있었지만 아몬을 시켜 일부러 차원을 관리하는 ‘우주의 섭리’에 정면충돌하도록 만들었다.
설사 그 대상이 신이라도 그곳에 살아남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마왕은 살아남았다.
죽지 않았다.
[…….]침묵이 흘렀다.
벨페고르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망설임 없이 답했다.
쿵. 벨페고르가 다시금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싸운다고? 제정신이냐, 사탄?!] [다른 방법이 뭐가 있다는 거지?]사탄은 차갑게 얼어붙은 눈빛으로 벨페고르를 노려보았다.
마왕과의 타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난 천 년간의 전투로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놈은 말 그대로.
미쳤다.
[우, 우리 계획에 동참시키던지 하는….] [놈은 우리를 먹잇감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너도 알고 있지 않나? 일곱 대공들이 모두 어떻게 되었는지.] [그래도 놈은 수하가 된 자에게는 이빨을 드러내지 않잖아!] [그래서, 수하가 되시겠다?]사탄이 가늘게 눈을 떴다.
마왕의 수하로 들어가는 것.
그것만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가 두렵다고 해도 그들은 대공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지배자의 피가 흐르는 그들은 애초에 ‘누군가의 아래로’ 들어간다는 개념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크읏….] [집어치워라. 더 이상 마왕이 힘을 복구하기 전에 그를 죽여야 한다.] [힘을 키운다고?] [놈에 대해서 어느 정도 조사를 했다.]사탄은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놈은 우리와 달리 2년 전쯤에 지구에 도착한 것 같더군.] [2년.]벨페고르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사탄이 무슨 말을 할지 예상이 간다는 듯한 눈빛.
[놈은 인간들 사이에서 정체를 숨기고 힘을 기르고 있었더군.] [그렇다는 말은….] [그래.]사탄은 고개를 끄덕였다.
[놈도 차원의 벽에 갈리고 나서 힘을 잃었다는 얘기지.] […….]벨페고르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대화를 듣고 있던 혈마객이 끼어들었다.
“그런데 이번 전쟁에 천사도 끼어들지 않았나?”
[라파엘….]사탄의 몸을 휘감은 어둠이 출렁였다.
마왕의 수작질로 인해 천사들과의 전면전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적어도 수십 년 이후에야 맞붙었을 적.
[생각해 둔 것은 있다.]라파엘을 상대하면서, 동시에 마왕을 죽일 수 있는 방법.
예전이라면 불가능했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한 방법이 하나 있었다.
사탄은 도열해 있는 악마교도들과 악마들을 내려다보았다.
[그건 그렇고 칼기아는 어디있지?]“모르겠다. 예언의 악마를 조사하겠다고 어딘가로 간 이후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하더군.”
[이번에도, 인가.]사탄은 불쾌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뭐… 일단은 이걸로 됐나.]어차피 칼기아는 직접적인 전투에서는 큰 역할을 할 수 없다.
그가 힘을 발휘하는 것은 소환과 흑마법.
아몬과 비슷하다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존재였다.
사탄은 단호히 말했다.
[그리고 그를 죽이는데 성공한다면….] […….]벨페고르는 굳게 입을 다물었다.
꿀꺽. 침이 삼켜졌다.
사탄이 무엇을 말하는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마해를, 얻을 수 있겠군.] [그렇다.]벨페고르의 눈이 탐욕에 차올랐다.
그의 나태함을 지워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달콤한 보상.
[좋아, 그 계획이라는 걸 말해봐라.]벨페고르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탐욕에 찬 두 눈이 번들거렸다.
‘2년이라.’
짧은 시간이다.
영생을 살지 않는 인간에게조차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
‘가능하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2년이다.’
찰나에 가까운 시간.
‘아무리 그 괴물이라고 할지라도.’
에이, 설마 2년 만에 힘을 되찾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