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320)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321화
여신의 분노 (2)
‘와, 뭐야 이거.’
가슴을 부여잡은 채 몸을 웅크리고 있던 강우의 몸이 움찔 떨렸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 당황스러운 심정.
‘뭐 이렇게 격하게 반응하는 거야?’
자신이 수호자로 선택받은 것은 바로 조금 전.
가이아가 자신을 자식처럼 여기며 아낌없는 사랑을 보내겠다고 신성을 걸고 맹세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좀 뜬금없게 느껴졌다.
‘언제부터 날 그렇게 사랑했다고….’
마치 다른 집에 양자로 들어가자마자 양어머니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사랑을 보내는 모습.
기분이 나쁘진 않았지만 당황스러운 것이 사실이었다.
“나의 아이야, 괜찮으냐?!”
가이아가 바닥에 쓰러진 채 고통스러워하는 강우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눈물이라도 쏟을 것처럼 글썽거리는 눈으로 강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조금이지만 진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뭐지 진짜?’
강우는 의문에 찬 눈빛을 지으면서도 연기를 이어갔다.
“쿨럭! 쿨럭! 괘, 괜찮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뭐가 괜찮다는 것이냐!!”
가이아가 버럭 소리치며 강우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투명한 눈물을 흘리며 파르르 몸을 떨었다.
“제발, 제발 죽지 말거라… 알렉에 이어 다른 아이까지 잃을 수는 없다.”
“…….”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 나왔다.
강우는 그 이름을 듣자마자,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원래부터 수호자로 선택된 인간을 끔찍하게 아끼는 성격이었군.’
그렇지 않았다면 몇 년 전에 사탄의 손에 의해 희생당한 알렉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으리라.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공포감.
그리고 그녀의 화신(化神)인 레이라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모습이나, 김시훈을 대하는 태도.
가이아는 애초에 그녀가 수호자로 선택한 인간을 정말로 ‘친자식’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신성을 걸고 맹세한다는 말까지 한 거구나.’
그 말에 어느 정도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말이 상투적으로 내뱉는 말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어기게 되면 신성이 일부 소멸하는 등의 제약도 있으리라.
‘진짜 날 자식처럼 여기기로 결심한 거였어.’
하긴.
‘이제까지 내가 해준 게 많긴 하지.’
사실 가이아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은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다.
수호자로 선택하기 전부터 큰 관심을 지니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건….’
강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절로 올라가려는 입가를 필사적으로 내린다.
‘너무 좋은데?’
단순한 트롤러라고 생각했던 가이아의 반전 매력.
신의 권속이 된 것만으로 만족하려 했는데 설마 그 신이 자신을 진짜 자식처럼 아껴줄 줄이야.
솔직히 기대했던 것 이상의 성과였다.
‘크으, 누가 감히 이런 가이아 님을 보고 호구라고 말한 거냐!’
가이아를 무능하다 욕했던 사람들의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 심정.
그녀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완벽한 존재였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여신의 마음을 조금 더 뒤흔들어놔야 할 때.
“하아, 하아.”
강우는 가슴을 움켜쥔 채 거친 숨을 토해냈다.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이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제 괜찮습니다.”
“…….”
가이아가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 말하지 않았던 것이냐.”
“…….”
“말하거라, 나의 아이야.”
어딘가 엄하게 느껴지는, 가이아의 목소리.
강우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잘 못 손을 대면 산산이 부서질 것 같은 미소.
“잃어버리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가이아의 시선을 피하며, 충격받은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김시훈을 응시했다.
김시훈에 이어 차연주와 우리엘을 둘러본다.
“손에 쥔 것들이 너무 많았거든요.”
“…….”
침묵이 흘렀다.
가이아는 한껏 일그러진 표정으로 호통을 쳤다.
“이… 이 멍청한 것!”
따악!
강우의 머리에 강렬한 충격이 느껴졌다.
가이아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일단 에르노어 대륙으로 가는 임무는 보류하겠다. 지금 이런 상태의 네게 위험한 임무를 맡길 수 없다.”
“아뇨. 그건 안 됩니다.”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다.
강우는 가이아의 손을 붙잡았다.
여신을 응시하는 영웅의 눈은 뜨거운 빛으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가야 합니다.”
확고한 의지가 서린 목소리.
가이아의 눈빛이 떨렸다.
“에르노어 대륙으로 가는 게이트를 여는 것에만 해도 몇 개월이 걸립니다. 그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네가….”
“가이아 님.”
강우는 마주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가야 합니다.”
“…….”
가이아의 입이 굳게 닫혔다.
사실 그녀 또한 알고 있다.
가야한다는 것을, 마신의 사체를 제거하고 에르노어의 수호를 얻어야 한다는 것을.
만약 정말로 급한 일이 아니었다면 강우와 김시훈에게 이런 위험한 임무를 맡기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의 아이야….”
눈빛이 떨린다.
그녀는 강우의 뺨을 쓰다듬으며 젖은 목소리로 고개를 숙였다.
“네게 이런 무거운 짐을 맡기게 되어… 너무나 미안하구나.”
마음 같아서는 강우의 안에 자리 잡은 마기를 몰아내주고 싶다.
하지만 수호자로 선택했음에도 마기의 흔적이 느껴진다는 것은, 이미 돌이키기 힘든 수준까지 강우의 몸속에 마기가 퍼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여기서 신성을 사용해 억지로 마기를 제거했다가는, 강우의 목숨이 위험했다.
강우의 몸 안에 자리 잡은 마기를 제거하는 방법은 하나.
이 모든 일의 원흉인 라키엘을 제거하는 것뿐이다.
그녀는 살기어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타락의 성좌가 지구에 있다고 했느냐.”
여신은 짙은 분노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그녀의 질문에 대답한 것은 우리엘이었다.
“예, 그렇습니다. 라키엘은 지구에 숨어 무언가 계략을 꾸미고 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가이아는 가늘게 눈을 떴다.
그녀의 몸에서 숨 막히는 기운이 흘러나와 주변을 압박했다.
“세라핌의 날개여, 에르노어 대륙으로 통하는 게이트가 준비되는 동안 그대에게 라키엘을 찾는 임무를 맡겨도 되겠느냐.”
“물론입니다.”
우리엘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임무가 아니라도 그는 시간이 남을 때마다 라키엘의 흔적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엘은 여덟 장의 날개를 펼치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대신,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말하거라.”
“강우가 맡은 임무를, 저도 함께 수행하고 싶습니다.”
우리엘은 강우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허가하겠다.”
가이아는 망설이지 않고 답했다.
우리엘이 임무에 참전하는 것은 그녀 또한 바라는 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타락의 성좌여.”
그녀는 지구 어딘가에 숨어 있을 라키엘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우르르릉!
“신성에 걸고 맹세하겠다! 나,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네게 가장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사하겠노라!”
쿠구구궁.
가이아의 눈에서 섬뜩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나의 아이를 건드린 죗값은… 결코 녹록치 않을 것이다.”
최고위(最高位)격 신의 분노가 대지를 뒤흔들었다.
* * *
“푸흡, 푸헤헤헤헿!”
집으로 돌아온 강우는, 이제껏 참아왔던 웃음을 터뜨렸다.
배를 움켜쥔 채 크게 몸을 숙였다.
-나의 아이를 건드린 죗값은… 결코 녹록치 않을 것이다.
‘어후, 아주 반해 버리겠어.’
가이아의 말을 떠올리자 히죽히죽 입가가 올라갔다.
‘완벽해.’
딱 바라는 구도가 완성됐다.
‘마기에 잠식되어 가는 영웅과, 그를 지키려는 여신.’
이 구도라면 자신에게서 마기의 흔적이 느껴진다고 해도 전혀 어색할 것이 없었다.
그의 정체가 들킬 위험성이 더욱 줄어들었다는 의미.
거기에 더해 자신을 향한 가이아의 애정을 더욱 애절하게 만드는 역할도 했다.
‘그나저나.’
강우는 아찔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했어.’
마기의 지배자 특성을 지나치게 신뢰했던 게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었다.
‘설마 마기의 흔적을 찾아낼 줄이야.’
주의를 기울여 마기를 감췄음에도 완전히 흔적을 지우지 못했다.
‘괜히 최고위격 신이 아니라는 건가.’
강우는 쯧, 혀를 차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설아와 에키드나, 할키온은 어디 갔는지 집 안에 보이지 않았다.
‘자, 이제 어쩐다.’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일단 라키엘 탓으로 모조리 돌리기는 했지만, 앞으로가 문제였다.
“이 새끼 이거 너무 썼는데.”
라키엘을 너무 우려먹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당연.
이미 벌려 놓은 일이 너무 많아 도저히 수습하기 어려울 정도로 떡밥만 많이 뿌려두었다.
“슬슬 손절할 때가 됐는데 말이지.”
올라갈 대로 올라간 라키엘 코인.
더 이상 라키엘 하나에만 올인하기에는 상황이 녹록치 않았다.
‘근데 진짜 라키엘이 살아 있는 이상 함부로 손절하기도 좀 힘든데.’
머리가 복잡해졌다.
라키엘을 손절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나중에 진짜 라키엘이 나타날 것을 생각하면 쉽게 선택하기 힘든 것이 사실.
“일단은… 좀 더 상황을 지켜볼까.”
지금 당장 급할 일은 없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임무를 수행하려는 모습에 가이아에게서 점수를 더 딸 수도 있지 않은가.
‘크으, 이래서 사람은 빽을 잘 둬야 한다는 거야.’
무려 지구의 주신이 든든한 빽이 되니 이보다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었다.
가이아를 잘만 구슬린다면 앞으로 창창한 미래가 펼쳐질 것은 의심할 것도 없는 상황.
‘믿습니다, 가이아 님!’
강우는 주먹을 불끈 쥔 채 번쩍 들어올렸다.
* * *
-후우우웅.
황폐해진 대지 위에, 먼지바람이 일었다.
뒤틀리고 쪼개진 암석 사이에 적막이 맴돌았다.
열장에 달하는 칠흑의 날개를 지닌 존재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라키엘.”
그의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라키엘이라 불린 존재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얼굴 전체에 썩은 곰팡이가 피어오른 끔찍한 괴물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제정신으로 하는 짓이냐.”
“…….”
라키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어둠으로 물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까지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뿐이지.”
“하!”
괴물이 헛웃음을 친다.
“드디어 봉인에서 풀려났다 했더니 타락의 성좌가 미쳐버렸군! 바울리 님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호통 치는 괴물.
라키엘은 깊게 가라앉은 그를 응시했다.
“고통의 성좌여. 네가 아무리 말해도 나의 결심은 바뀌지 않는다.”
활짝 펼쳐진 열장의 날개.
그 사이로 검은 뇌전이 튀었다.
고통의 성좌, 라고 불린 괴물이 아드득 이를 갈았다.
“기어코 우리를 배신하겠다는 게냐!!”
불 같은 분노를 토해낸다.
이내, 입가를 비틀어 올린다.
“크흐흐. 라키엘, 네가 지금 빛으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과연 네 말을 믿어줄 존재가 있을 것 같으냐?”
“…….”
“이미 타락한 천사의 말을 과연 누가 믿어줄까? 응!? 세라핌을 손에 넣고 싶어 수천수만의 존재를 타락시킨 네 죗값이 어찌 가벼워질 수 있을까!”
조롱하는 목소리.
라키엘은 무거운 표정으로 날아올랐다.
“…알고 있다.”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하지만.”
그렇기에,
그러므로,
그러니까,
“나는… 속죄할 것이다.”
허공에 떠오른 라키엘의 몸이 푸른 균열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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