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423)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424화
마검(魔劍) 잉그리움 (1)
“커허억!”
세상이 뒤집혔다.
깍지 낀 손에 내려찍힌 모압의 머리는 두개골이 움푹 들어가 버렸다.
그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고통에 찬 괴성을 내질렀다.
피부를 덮고 있는 끈적한 액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후욱, 후욱.”
강우는 거친 숨을 토해냈다.
가슴속 깊은 곳에 짓눌러 왔던, 필사적으로 참아왔던 감정을 한 번에 터트리니 온몸이 떨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형님.”
김시훈이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는 강우를 향해 다가왔다.
그는 복잡한 감정이 담긴 표정으로 강우를 바라보았다.
“그동안 참고 있으셨던 거군요.”
“…미안하다, 시훈아. 나 혼자 싸워 버려서.”
강우는 그제야 자신이 분노에 차서 홀로 날뛰었음을 깨달았다.
분명 자신만큼, 아니 자신보다 더 김시훈이 억눌러 왔던 감정은 클 것이다.
“아닙니다.”
김시훈은 담백히 고개를 저었다.
“아직 제 실력으로는… 형님의 도움이 될 수 없었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김시훈은 살짝 풀죽은 목소리로 답했다.
무형검을 대성하고 심검의 묘리를 깨달은 이후, 어느 정도 실력에 자신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일격.
그것도 전력을 쏟지 않은 가벼운 공격을 한 번 받아냈다고 형편없이 뒤로 튕겨 나가자 그동안 자신이 품어왔던 것이 자신감이 아닌 자만심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직, 부족해.’
턱없이 부족하다.
‘더 강해져야 해.’
그래야만.
김시훈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강우의 모습이 보였다.
악마의 손에 잔인하게 살해당했던 영웅들의 모습이 겹쳤다.
거칠게 주먹을 쥐었다.
‘형만큼은.’
절대로 죽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반드시 지킬 거야.’
김시훈은 다시 한 번 굳은 맹세를 마음속에 새겼다.
[구원자, 님.]엘룬이 떨리는 목소리로 강우를 불렀다.
강우에게 다가온 그녀는 안쓰럽다는 듯, 슬픔 가득한 눈빛으로 강우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당신처럼 훌륭하신 분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많은 슬픔을 간직해 오셨던 거군요.]그의 눈물을 닦아주는 엘룬의 눈은 강우를 향한 연민과 동정,
그리고 신뢰의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렇지.’
고개를 숙인 강우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모압을 깔끔하게 처리한 것부터 엘룬의 신뢰를 얻은 것까지.
돌발적인 전개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얻은 수확이 컸다.
‘이번엔 똥줄 좀 탔네.’
설마 진짜 사천왕이 등장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 씨이바. 남은 세 명은 대체 어떻게 하냐.’
모압은 자신을 가리켜 사천왕 중 네 번째 하늘을 지배하는 자라고 말했다.
그렇다는 얘기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세 번째도 있다는 의미.
‘지금 다 모압이 마지막 사천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루시퍼가 아직 남아 있긴 하지만, 이미 외모가 만천하에 공개되었기 때문에 다른 사천왕이 등장하면 혼란이 생기는 건 똑같았다.
‘이런 제기랄.’
머리가 복잡했다.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일단 지금 일에나 집중하자.’
아직 나타나지도 않은 다른 사천왕을 신경 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 당장 급한 것은 세계수를 부활시키는 것.
그리고 엘룬을 통해 마신의 시체가 있는 곳을 알아내는 것이다.
“으, 우으.”
그런 엘룬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한설아가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무는 것이 보였다.
‘어?’
강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등골을 타고 퍼졌다.
고개를 내려 지금 자신의 모습을 살폈다.
엘룬은 그의 슬픔을 위로해 주듯, 조심스럽게 그의 몸을 끌어안고 있었다.
‘안 돼, 임자!’
머릿속에 그려지는 최악의 전개에 강우는 창백하게 얼굴을 굳혔다.
“강우, 씨.”
한설아는 빛을 잃어버린 눈으로 강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그녀의 어깨를 잡는 손이 있었다.
“…리리스 씨?”
“쉿.”
리리스는 그녀를 향해 윙크를 하며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한설아의 눈에 잠시 갈등의 빛이 서렸지만, 이내 풀이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스!’
리리스의 적절한 개입에 강우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리리스는 어떤 면에서는 그보다 몇 배는 더 한설아를 컨트롤 하는 데 능숙했다.
천사의 본능 때문에 이성이 희미해지는 와중에도 리리스의 말은 곧장 듣곤 했으니까.
‘그리고.’
아무리 한설아가 천사의 본능을 제어하는데 미숙하다고는 하나 대놓고 트롤링을 할 정도로 막 나가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그녀가 지닌 집착의 근본은 자신과 함께 있고 싶다는 것.
자신에 대한 집착이 강해진 만큼, 그에게 ‘미움받기 싫다’는 감정 또한 덩달아 강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자신에게 피해가 갈 일을 그녀가 저지르진 않을 것이다.
‘임자는 일단 좀 진정한 것 같고.’
이제는 세계수에 박힌 검은 가시라는 것을 제거해야 할 때였다.
강우는 엘룬과 떨어지며 몸을 돌리려고 했다.
그때였다.
-크그그그긍!!
[꺄악!]“엘룬 님!”
세계수의 뿌리가 크게 뒤흔들렸다.
엘룬은 몸을 웅크리며 고통스럽다는 듯 비명을 질렀다.
세계수의 뿌리에서 검은빛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
‘뭐야 이건.’
강우는 거칠게 표정을 일그러트린 채 엘룬을 부축했다.
“크으, 아.”
두개골이 박살 난 채 쓰러져 있던 모압의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세계수의 뿌리에서 흘러나온 검은빛이 그의 몸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샤아아아아앗!”
뱀이 내지르는 섬뜩한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반쯤 박살났던 모압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재생되기 시작했다.
그의 몸을 통해 흘러들던 검은빛이 주변을 향해 쏘아졌다.
“왕이시여!”
“형님!”
김시훈과 발록이 동시에 강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각자 패왕갑과 검을 꺼낸 둘은 강우를 향해 쏘아지는 검은빛을 튕겼다.
-쿠웅! 뿌드득!
튕겨 나간 검은빛이 세계수의 뿌리 하나를 박살냈다.
“형님, 이건….”
“일단 엘룬 님 좀 부탁할 게.”
강우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엘룬을 김시훈에게 맡겼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있는 모압을 바라보며 입가를 슬쩍 올렸다.
‘그래, 2페이즈도 있다 이거지.’
위성세계의 수호신이니 어쩌니 떠들어댄 것치고는 너무 허무하게 끝나길래 실망스러울 뻔했다.
강우는 입술을 핥으며 모압을 향해 다가갔다.
“크으으. 네, 놈.”
모압은 강우의 주먹에 내려찍혀 박살났던 머리를 한 손으로 만지며 날카롭게 눈을 떴다.
강렬한 눈빛으로 강우를 쏘아보았다.
“가만두지, 않겠, 다.”
이글거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강우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엘룬을 슬쩍 돌아보며 분하다는 듯 주먹을 쥐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거냐?”
입술을 깨물며 발을 굴렀다.
“이렇게 될 것은 이미 각오했다. 다른 사천왕들도 그랬지. 쉽게… 죽지 않았어.”
강우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이제는 익숙한 일이었다.
사탄도, 라키엘도.
손쉽게 죽음을 허용하지는 않았으니까.
그들은 모두 비열한 한 수를 속에 품고 있었다.
“아니, 그러니까 그 새끼들이 대체 누구냐고오오오오!!.”
모압의 절규가 울려 퍼졌다.
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 질리지도 않는군. 아직도 모른 척을 할 셈이냐?”
“아….”
모압이 열이 뻗친다는 듯 뒷골을 잡았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휘청였다.
“그래… 끝까지 그렇게 나오시겠다.”
모압은 더 이상 변명을 하는 것을 포기한 듯,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강우를 쏘아보았다.
“과연 죽어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보자고.”
그렇게 말하며 손에 쥔 연검을 바닥에 내던졌다.
맑은 쇳소리와 함께 연검이 바닥을 굴렀다.
“……?”
갑자기 무기를 버리는 모압을 바라보며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모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젠 네놈의 무의미한 쇼도 끝이다.”
모압은 크게 숨을 들이쉬며 허리를 곧게 폈다.
그는 솔직하게 자신의 실책을 인정했다.
‘놈은 강해.’
뭔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 때문에 흥분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자신의 패배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눈앞의 인간은 기이할 정도로 강했다.
모압 자신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다면.’
모압은 눈을 빛냈다.
검은빛이 쏟아져 나오는 세계수를 돌아보았다.
세계수는 더 이상 뿌리를 비틀며 저항하지 않았다.
완전히 타락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
그의 입가가 올라갔다.
‘일단 계획은 성공했군.’
세계수를 타락시킨다는 일차적인 목표는 완수했다.
이것으로 그의 주인은 원하던 것을 손에 넣었을 것이다.
‘이젠.’
모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의 주인과 나눴던 짧은 대화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세계수를 타락시킨 후에 ‘가지’는 어떻게 하냐고?
그의 주인은 관심 없다는 듯 손을 저으며 말을 이었다.
-그건 네가 가져.
-저, 정말입니까?
-응응. 그 팔랑거리는 검도 바꾸는 게 좋잖아? 톡 치면 부러질 것 같으니까 말이야.
주인은 낄낄 웃으며 말했다.
가벼운 어투였지만, 그 말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가지’에 담긴 힘이 얼마나 막대한지는 모압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시이이잇.”
보랏빛 혀를 날름거리며 낄낄 웃음을 흘렸다.
“인간, 하이엘프가 성검을 만들 때 뭘 사용하는지 아나?”
“…뭐?”
너무도 뜬금없는 질문에 강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이엘프가 성검을 만들 때 뭘 사용하냐니.
그걸 갑자기 왜 지금 물어본단 말인가.
“시잇, 엘룬, 너라면 알고 있겠지?”
[설, 설마 당신….]엘룬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떨리는 눈빛으로 모압을 바라보았다.
모압은 낄낄 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하이엘프는 성검을 만들 때 세계수의 가지를 사용하지. 그것도 아주아주 적은 양만 사용한단 말이야.”
그는 손가락을 구부려 작은 원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입가를 비틀어 올렸다.
“반대로 마검을 만들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까?”
[모, 모압!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요!]엘룬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모압은 광기에 찬 웃음을 터트렸다.
“크흐흐! 기껏 세계수를 타락시켰는데 그 가지를 버려두면 그보다 아까운 일이 어딨겠어?”
그는 검은빛이 쏟아지는 세계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세계수의 뿌리에 박힌 ‘검은 가시’가 천천히 빠져나왔다.
타락한 세계수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검은 가시에서는 숨 막히는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 안 돼.]엘룬은 창백한 표정으로 몸을 떨었다.
타락한 세계수의 기운을 흡수한 검은 가시는, 세계수의 ‘가지’로 변해 있었다.
세계수의 가지를, 그것도 일반적인 가지보다 몇 배에 달하는 기운을 지닌 가지를 사용해 만들어 낸 마검이라니.
그 안에 어떤 힘이 담겼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아찔했다.
[구, 구원자님! 어서 모압을 막아야 해요!]“예.”
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압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는 아직 잘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저대로 놔두면 안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멈춰라, 모압!”
강우는 전신에서 찬란한 광휘를 내뿜으며 외쳤다.
“시이잇!”
모압은 웃음을 토해내며 양팔을 벌렸다.
“이미 늦었다! 오라! 세계수의 마검(魔劍), 잉그리움이여!”
쿠구구구궁!!
검은 가지에서 무시무시한 마기가 쏟아져 나왔다.
타락한 세계수의 기운을 머금은 가지가 날카로운 검의 형태로 변하기 시작했다.
2미터에 가까운 대검으로 변한 검은 가지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마검 잉그리움은,
“마검이 너희를 파멸로 인도할 것… 어?”
강우가 있는 방향으로 뽈뽈뽈 날아갔다.
강우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마검을 바라보며 표정을 굳혔다.
‘어, 뭐야.’
뽈뽈뽈.
‘오지 마.’
뽈뽈뽈뽈
‘나한테 오지 말라고 이 새끼야.’
뽈뽈뽈뽈뽈.
‘저리 꺼져 제발.’
-띠링.
[마검 잉그리움이 당신을 주인으로 인식합니다!] [잉그리움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마검의 지배자’ 칭호를 획득했습니다!]‘아니 씨발.’
뽈뽈뽈뽈뽈뽈.
‘뭔데 이거.’
왜 내 쪽으로 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