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46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468화
습격 (2)
“키에에에에에엑!!”
“키르르륵!”
황금빛 화염이 타오른다.
마치 지상에 태양이 나타난 듯, 압도적인 열기의 겁화(劫火)가 하늘을 뒤덮고 있던 벌레들을 덮쳤다.
끔찍한 괴성과 함께 메케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구름처럼 몰려 있던 벌레들이 검은 재가 되어 쏟아져 내렸다.
마치,
검은 눈이 내리고 있는 것과 같은 광경.
“크, 크윽.”
끔찍한 겁화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괴물 하나가 침음을 삼켰다.
공중을 날며 벌레를 통솔하고 있던 괴물의 모습은 다른 벌레들과 달리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인간의 모습이라고 해도 몸 전체에 나무뿌리처럼 힘줄이 돋아나와 있고 뒤통수에서 튀어나온 끈적한 점성을 지닌 녹색 줄기가 허리까지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가 인간이 아닌 외계(外界)의 존재라는 것을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 일격에 코, 코크로치들의 반이 사라졌다고…?”
외계의 괴물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검은자위로만 이루어진 눈을 부릅떴다.
코크로치만이 아니었다.
상위 개체인 메두사도, 패러사이트를 무한히 양산해 내는 둥지조차 갑작스럽게 솟구쳐 오른 겁화에 그 숫자가 크게 줄어들었다.
실로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격.
그가 모시는 ‘왕’이라 할지라도 과연 가능할지 알 수 없는 공격이었다.
“…아, 알려야 해.”
메두사가 죽은 것은 그렇다 쳐도 둥지까지 파괴된 것은 전황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일이었다.
둥지는 패러사이트의 핵심.
주변의 대지를 잠식하고 패러사이트를 무한히 양산하는 전략 병기였다.
왕은 정복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이런 변수가 나타난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외계의 괴물은 등에서 투명한 날개를 펼쳐 붉은 균열 안으로 날아올랐다.
균열의 안으로 들어가자 무수한 ‘둥지’들에 침식당한 대지가 보였다.
마치 대지 자체가 거대한 혈관에 뒤덮인 것과 같은 끔찍한 광경.
패러사이트에 의해 완전히 지배당한 세계.
한때 ‘환(晥)’이라고 불리던 대륙의 말로(末路)였다.
“와, 왕이시여.”
무수하게 늘어져 있는 둥지 중 가장 거대한 둥지에 도착한 외계의 괴물은 낮게 머리를 조아렸다.
거대한 왕좌에는 반듯한 인상의 중년 사내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앉아 있었다.
겉보기에는 인간과 구별을 할 수는 없는 외모였지만, 그 육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존재가 누구인지는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발광하는 절제인가.]육성으로 말하는 것이 아닌, 머릿속에 직접 울려 퍼지는 듯한 목소리.
눈을 감고 있던 중년 사내가 천천히 눈을 떴다.
검은자위만으로 이루어진 섬뜩한 눈이 외계의 괴물을 향했다.
“보,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패러사이트 무리를 통솔하던 외계의 괴물, ‘발광하는 절제’는 다급한 목소리로 지구에서 일어난 이변을 보고했다.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중년 사내의 눈빛이 점차 빛나기 시작했다.
“코, 코크로치만이 아닙니다. 선봉대에 투입됐던 둥지의 숫자도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호오.]중년 사내는 흥미롭다는 듯 왕좌에 몸을 기울였다.
그는 천천히 팔을 들어 올리며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원래’ 이 몸의 주인이었던 존재를 떠올렸다.
[실망스러웠지.]쯧, 가볍게 혀를 차며 말했다.
환 대륙의 최강자라 불리던 무인(武人)라기에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지만, 막상 붙어보니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아.]패러사이트의 왕은 왕좌에 앉은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환 대륙에서는 지독히도 오래 지속된 권태(倦怠)를 깰 만한 존재는 발견하지 못했다.
지루하고, 비루했다.
아득한 세월을 최강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서서히 죽어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진화(進化)에 대한 무한한 욕구는 패러사이트의 본능.
그는 끝없는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존재를 찾기 위해 차원을 넘어 삼원(三元)의 세계에 도달했다.
정확히는,
[그자가 그러면 바알이라는 놈이냐?]바알이라는 존재를 찾기 위해.
“그, 그건 모르겠습니다.”
발광하는 절제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바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자는 악마라고 들었으니까요.”
악마가 그토록 찬란한 황금빛 기운을 사용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흐음.]패러사이트 왕은 실망스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내, 왕좌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패러사이트 왕은 입가를 올리며,
붉은 균열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후우.”
강우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서울의 상공 전체를 뒤덮고 있던 벌레의 무리가 잿더미로 변해 눈처럼 쏟아지는 것이 보였다.
“나쁘지 않네.”
강우는 입가를 올리며 가볍게 몸을 풀었다.
탐식의 불에 대한 성취가 올라가며 이런 광범위한 공격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신성의 소모가 너무 심하긴 하지만.’
탐식의 불을 완벽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기에 신성을 섞어서 사용해야만 했다.
마기야 마해를 통해 무한히 공급받을 수 있다지만 신성은 한 번 소모하게 되면 보충하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렸다.
‘일단은 여기까지만 해둘까.’
신성을 펑펑 쏟아부으며 범위 공격을 난사하다가 정작 중요한 보스와 싸울 때 신성이 모자랄 가능성이 있었다.
지금은 민간인들을 학살하는 벌레들을 한 차례 뒤로 물러나게 한 것만으로 족하다.
남은 벌레들은,
-콰지직!
-콰드드드득!
“형님!”
“강우 형!”
김시훈과 김태현이 겁화 속에서 살아남아 도망치고 있는 벌레들을 처리하며 강우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왔다.
일반인들에게는 재앙이나 다를 바 없었던 괴물들도 김시훈과 김태현 앞에서는 그저 크기만 좀 큰 바퀴벌레에 불과했다.
둘의 검이 한 번 반짝일 때마다 우후죽순으로 벌레들이 쓸려나갔다.
‘그렇지.’
강우는 씨익 웃었다.
애초에 이런 상황에서 무분별한 신성의 소모를 아끼기 위해 김시훈을 키워뒀던 것이다.
‘이 일이 터지기 전에 신격을 각성시켜 둬서 다행이네.’
위기의 순간 착실히 키워둔 안전자산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니 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 괴물들은 대체….”
김시훈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강우의 일격으로 많은 숫자가 줄긴 했지만, 아직 서울 상공에서 날아다니는 벌레의 숫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김시훈은 하늘에 나타난 거대한 균열을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외계의 침입이… 시작된 겁니까?”
“그렇다고 봐야지.”
강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세계에서 넘어온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황금빛 기운이 넓게 대지에 퍼졌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지.”
우적우적.
바닥에 쓰러진 벌레들을 포식의 권능으로 흡수한 강우는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포식의 권능은 포식한 대상의 기억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의 습성이나 특징, 약점 같은 것들은 파악하는 것이 가능했다.
“패러사이트….”
머릿속에 흘러들어온 정보를 통해 그들이 ‘패러사이트’라는 외계의 생명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생긴 것만 벌레 같은 놈들이 아니었군.’
그들은 철저하게 상위 개체의 명령을 따라 움직였다.
벌이나 개미와 비슷한 습성.
‘다른 점은.’
강우는 가늘게 눈을 떴다.
가볍게 발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라, 포식의 권능을 통해 얻은 정보를 확인했다.
“…저게 ‘둥지’인가.”
고층 빌딩의 옥상 위에 고치처럼 생긴 거대한 붉은 덩어리가 보였다.
붉은 덩어리에서는 거대한 줄기가 뻗어 나와 건물을 잠식하며 그 몸집을 키우고 있었다.
-쩌꺽.
몸집을 키우던 붉은 덩어리가 갈라지며 수백 마리의 패러사이트가 우르르 쏟아져나왔다.
강우는 가디언즈의 증표를 들어 올렸다.
“레이라씨.”
[아, 네! 가, 강우 씨!]증표를 통해 레이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 또한 서울에서 날뛰고 있는 패러사이트와 싸우고 있는지 주변의 괴성이 증표를 통해 들려왔다.
“민간인의 구조에 투입된 간부들에게 전해주세요. 고층 빌딩 옥상에 있는 붉은 고치 같은 걸 우선적으로 처리해 달라고요.”
“그건 생각해둔 바가 있습니다.”
[…….]레이라는 짧게 침묵했다.
[예. 강우 씨를 믿을게요.]레이라다운 빠른 결단.
그녀는 강우와의 연락을 끊고 바로 둥지를 우선적으로 처리해달라는 명령을 가디언즈에게 전달했다.
“…그럼.”
강우는 증표를 안에 집어넣은 후 가볍게 눈을 감았다.
-연주야.
-크읏! 너, 너 대체 어디 있어?! 이 미친 벌레 새끼들은 또 뭐고?
머릿속에 차연주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녀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지금부터 내 신격의 일부를 전달해 줄 테니까, 최대한 민간인을 습격하는 패러사이트 먼저 처리해줘.
-…….
-지금 근처에 아이리스도 있지?
-어, 응.
차연주는 자신의 화신이 된 이후, 서울 쪽에 자리 잡은 에르노어 파병군들과 함께 활동하고 있었다.
광휘의 신의 화신이 되었으니 본격적인 포교에 앞서 지구에 광휘교가 퍼지게 된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에르노어 대륙인들과 친분을 쌓기 위해서였다.
-에르노어 파병군들의 힘을 빌려서 민간인들을 대피시켜 줘.
-그러면 너는….
차연주는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무언가 말하려고 하다가 이내 말을 끊었다.
지금 상황에서 강우를 걱정하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짓인지는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알았어. 지금 바로 움직일 게.
차연주의 대답을 들은 강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김태현과 김시훈이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둥지 근처에 패러사이트를 통솔하고 있는 상위 개체가 있을 거야. 너희는 그 상위 개체를 우선적으로 처리해줘.”
“형님은….”
“시훈아.”
김시훈의 말을 자르며, 강우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부탁할게.”
“…….”
김시훈은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입술을 씹었다.
김시훈의 손에 푸른빛으로 빛나는 무형의 검이 만들어졌다.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형님.”
힘이 들어간 대답에 강우는 씩 웃었다.
“강우, 형….”
김태현이 초조한 표정으로 강우를 불렀다.
그의 뺨에는 붉은색 피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가 봤던 미래(未來)의 광경.
불타오르는 하늘과, 찢어발겨진 대지.
그리고….
시체로 이루어진 거대한 언덕.
“걱정하지 마.”
강우는 김태현의 어깨를 붙잡으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 미래는… 내가 오지 않도록 막을 테니까.”
“…….”
멍하니 입을 다물고 있는 김태현을 뒤로 한 채, 강우는 몸을 돌렸다.
‘자, 어디.’
고개를 들어올렸다.
하늘을 불태우는 듯한 붉은 균열이 보였다.
“가볼까.”
멍청하게 기다리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병신처럼 당하고만 있을 생각은 없었다.
‘외계(外界)와 지구가 연결됐기 때문에 습격받는다면.’
이쪽에서도 그들을 습격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아, 근데 씨바 솔직히 벌레는 먹기 싫은데.”
뭐, 어쩌겠는가.
‘그래도 쟤들도 귀중한 단백질 공급원이니까.’
맛이 무엇이 중요하리.
중요한 것은 맛이 아닌 영양이었다.
-콰아아앙!!
강우가 거칠게 발을 박찼다.
붉은 균열을 향해 거침없이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