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503)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504화
종말의 날 (1)
한 달이라는 시간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강우는 그동안 서울 전역에 걸쳐 펼쳐질 결계와 방위진을 준비했고, 바알과의 결전에 투입될 인원을 가려냈다.
당연히 그 정도의 일을 혼자서 처리할 수는 없는 노릇.
레이라와 김시훈, 리리스와 차연주 등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도왔다.
그렇게 정신없이 바쁜 일정이 끝나고,
‘드디어 내일인가.’
강우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구에 온 뒤로 정말 빠르게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했지만, 지난 한 달처럼 빠르게 느껴졌던 시간도 없었다.
“지금쯤 최종브리핑을 하고 있으려나.”
원래라면 자신도 참여하는 것이 맞으나, 레이라가 조금 쉬고 오라고 배려를 해줘 최종브리핑시간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뭐, 최종브리핑이라고 해도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지만.’
세계의 명운을 건 거대한 전쟁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전쟁과는 그 양상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는 건.’
치밀한 전략과 전술, 견고한 성벽과 완벽한 병력의 운용 따위가 아니다.
‘나랑 바알. 둘 중 누가 살아남는지에 따라 결정되겠지.’
그런 의미에서 지금 레이라가 가디언즈에게 열심히 브리핑하고 있는 내용은 ‘어떻게 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가 아닌 ‘어떻게 하면 피해를 덜 받을지’였다.
바알의 군세를 막았다고 해도 정작 강우가 바알을 이기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강우가 바알을 이겼다고 해도 그 사이 바알의 군세가 지구를 멸망시켜 버린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되도록 전투를 빨리 끝내는 게 좋겠지.’
할 수만 있다면, 그보다 좋은 선택지는 없었다.
“…….”
강우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한 달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지만,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결국 초월급 신격은 얻지 못했네.”
쯧, 강우는 혀를 차며 눈살을 찌푸렸다.
지난 한 달 동안 결전을 준비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초월급 신격이었지만, 여러 시도를 해봐도 결국 초월급 신격을 얻는 것은 실패했다.
‘아라카일이랑 나락의 군단을 포식했을 때 도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 얄팍한 바람을 조롱하듯, 시스템 창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최근에는 시스템이랑 교신도 안 되고.’
바알의 눈을 가리는데 전력을 쏟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티탄의 율법의 권한이 완전히 바알에게 넘어가고 있다는 증거일까.
자신을 ‘Eve’라고 소개했던 인공지능과는 현재 전혀 교신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쯧,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종말의 날까지 하루밖에 남지 않은 상황.
이제 와서 초월급 신격을 얻지 못했다고 꾸물거릴 여유는 없었다.
‘나도 이제 최종점검이나 해둘까.’
강우는 심장에서 흘러나온 막대한 마기를 움직여 가볍게 일주천(一周天)을 시키며 몸을 일으켰다.
그때,
“저… 강우 씨 여기 계신가요?”
끼익. 아파트 옥상의 문이 열리며 한설아의 모습이 보였다.
강우는 반가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야, 임자?”
“작전 브리핑이 이제 막 끝나서요. 강우 씨를 부르러 왔어요.”
“날 부르러 왔다고?”
“예. 레이라 씨가 마지막으로 다 같이 모여서 식사라도 하자고 하셔서요.”
“아, 그래? 나야 좋지.”
한설아는 살짝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이 내뱉은 말 중 ‘마지막으로’라는 단어가 날카롭게 가슴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내일 이후로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으.”
한설아는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깨물었다.
강우와 다시는 볼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등골을 타고 소름이 퍼졌다.
덜덜 떨리는 주먹을 굳게 움켜쥐었다.
일순, 그녀의 눈에서 빛이 사라졌다.
한설아는 강우에게 다가와 그의 팔을 더듬었다.
“…저기요, 임자?”
왜 갑자기 제 팔을 만지세요?
“아….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라기엔 눈빛이 너무 무서운데요.
“…….”
한설아는 강우의 팔을 가볍게 움켜쥐며 말을 이었다.
“사실… 마음 같아서는 강우 씨를 억지로라도 데리고 가서 도망치고 싶어요.”
“도망갈 때 제 팔다리는 붙어 있는 거죠?”
“…예?”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강우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손을 들어 한설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알잖아.”
도망친다고 해도, 바알은 계속해서 그를 따라올 것이다.
바알과의 싸움은 더 이상 선택의 영역이 아니었다.
자신과 바알.
둘 중 하나는 죽어야만 이 굴레를 끊을 수 있다.
“예. 알고 있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 임자.”
강우는 한설아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내가 이길 테니까.”
“…….”
한설아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레이라 씨가 있는 곳으로 갈까? 다들 이미 모여 있는 거지?”
“예. 아 참, 근데 수호의 전당이 아니라 다른 쪽에서 모인다고 해요. 그… 발록 씨 집에서요.”
“발록 집에서? 거긴 또 왜?”
“수호의 전당에는 천사들이 있으니까요.”
“아….”
강우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쪽까지는 날아서 가자.”
강우는 한설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한설아가 수줍은 표정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강우는 그녀의 무릎 아래로 손을 내려 번쩍 안아 들었다.
물론, 세라핌의 날개를 지닌 한설아에게는 굳이 강우에게 안기지 않더라도 공중을 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지만, 여기서 눈치 없게 그 사실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탁.
한설아를 안아 든 강우는 아파트 난간에서 가볍게 발을 박찼다.
거리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았다.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 거리는 꽤나 ‘시끌벅적’했다.
“저게 다 가짜라니 믿기지 않네요.”
한설아는 네온사인으로 번쩍이는 거리와, 그 거리를 거닐고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래야 바알을 속일 수 있으니까.”
쳐들어가려고 하는 장소가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유령도시가 되어있다면 당연히 의심부터 하지 않겠는가.
강우는 그런 상황을 막고자 사람들이 쭉 빠져나간 서울을 ‘마해의 열쇠’를 통해 채워 넣었다.
‘질퍽이가 고생하긴 했지.’
마해의 열쇠는 단순히 무기의 형태를 넘어 원하는 모든 것으로 그 형태를 바꿀 수 있다.
강우는 질퍽이를 시켜 사람과 비슷한 형태의 인형을 만들어 서울 전역에 뿌려 두었다.
“…….”
한설아는 굳게 입을 다문 채 강우를 올려다보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지만, 저 인형들을 만들기 위해 강우가 얼마나 고생했을지 그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이번 전쟁이 중요하다는 의미겠지.’
한설아는 강우의 목을 끌어안은 팔에 힘을 더하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이렇게 바로 곁에서 그의 온기를 느끼고 있음에도,
“…….”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불길함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 * *
붉게 타오르는 하늘.
핏빛 모래로 이루어진 언덕 위에 한 소년이 서 있었다.
멍한 눈빛의 소년은 언덕 아래에 도열해 있는 어마어마한 숫자의 악마들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준비는 다 끝난 거야?”
“예.”
멍한 눈빛의 소년, 바알의 물음에 아몬이 허리를 숙였다.
움켜쥔 지팡이를 가볍게 찍으며 말을 이었다.
“아라카일이 멋대로 행동하다가 마왕에게 당한 건 좀 예상 밖이었습니다만….”
아몬은 불쾌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마왕을 배신하고 바알의 밑으로 들어오겠다기에 받아줬건만, 멋대로 움직여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래도 대세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아라카일과 나락의 군단이 없다고 하더라도 바알의 군세는 아직 어마어마한 전력을 갖추고 있었다.
애초에 그들의 목표는 단순한 지구의 멸망이 아닌, 삼원(三元)의 세계를 포함한 모든 세계를 멸망시키고 구천지옥의 영향 아래 두는 것.
고작 지구 하나를 멸망시키지 못할 리가 없었다.
거기에 더해,
“비장의 카드를 하나 준비해둔 것이 있습니다.”
“비장의 카드?”
“예.”
아몬은 주름진 입을 씨익 올렸다.
품속에 있던 검은 구슬을 하나 쓰다듬었다.
그 구슬 안에서는, 한 악마의 영혼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흐~응.”
바알은 관심 없다는 듯, 심드렁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 다리를 파닥이며 언덕 아래 도열한 그의 군세를 내려다보았다.
“율법의 감시가 막혔을 때는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말이야.”
“걱정하지 마십시오, 놈들은 어떤 대비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몬은 짙은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애초에 선공권을 쥐고 있는 건 이쪽이었다.
그들은 언제, 어디로 바알의 군세가 들이닥칠지 전혀 모르는 상황.
승리는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번에 바알 님께서 마해를 손에 넣으신다면 티탄의 율법의 모든 권한이 바알 님에게 넘어갈 것입니다.”
“히히히!”
바알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딴 건 필요 없어.”
우둑.
바알의 머리가 있을 수 없는 각도로 꺾였다.
90도로 꺾인 머리를 돌려 아몬을 응시했다.
“그거 무슨….”
“티탄의 율법 따위,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
“전쟁에서 이기는 것도, 삼원의 세계를 구천지옥의 영역으로 만드는 것도 관심 없어.”
“그게 무슨….”
“나는 말이야.”
빙글, 바알은 춤을 추듯 몸을 돌렸다.
“그놈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만 증명할 수 있으면 돼.”
“…….”
“무기력하게, 비참하게, 처절하게, 발버둥 치는 걸 볼 수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다른 건.
마왕(魔王)이라는 존재 외에 다른 모든 것은.
“다 필요 없어.”
광기에 찬 눈이 번들거렸다.
“히, 히히히!! 히히히!!”
바알은 혓바닥을 길게 내민 채, 미친 듯이 광소를 흘렸다.
“저기, 아몬.”
“…말씀하시지요.”
“마왕이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해? 놈에게서… ‘그게’ 사라진다고 해도 말이야.”
바알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물었다.
아몬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자는… 버티지 못할 겁니다. 마해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결국 마왕이 아니니까요.”
“히히히! 그렇지? 놈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지?”
바알은 신경질적으로 웃으며 몸을 떨었다.
“아, 아아.”
쾌락과 흥분이 뒤섞인 눈빛으로 붉게 타오르는 하늘을 응시했다.
“히히히! 넌, 아무것도 아니야.”
보이지 않는 존재를 향해, 들리지 않는 말을 울부짖는다.
“내가, 먼저였어. 응? 알고 있어? 내가 너보다 더 먼저였다고!!!”
허억, 허억.
숨이 거칠어질 정도로 울부짖었다.
바알은 입가를 비틀어 올리며 낄낄 웃었다.
“후아.”
한바탕 웃음을 터트린 바알은 붉은 언덕 위에 대자로 뻗었다.
“히, 히히. 드디어, 드디어 여기까지 왔어.”
마왕에게 비참하게 패배한 후,
다시 힘을 되찾고, 마신의 심장을 손에 넣고.
마왕과 마주하기까지.
얼마나,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던가.
“너는 그때 날 비웃었지.”
자신을 향해, ‘아무것도 아니’라고 조롱하던 마왕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드득.
뼈가 으스러질 정도로 세게 주먹을 쥐었다.
바알은 언덕 위에 누운 채 고개를 들어 올렸다.
붉게 타오르는 하늘은, 어째서인지 오늘따라 유난히 고요하게 느껴졌다.
“폭풍전야, 라고 했던가?”
그 말이 딱 어울리는 고요함.
“히, 히히. 네 말이 맞는지, 내 말이 맞는지는.”
종말의 날.
그날 있을 전투의 결과가 말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