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595)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76화
이곳에 빛은 없다 (1)
“나 먼저 출근할게. 오늘도 새벽 늦게 들어올 테니까 먼저 알아서들 자고 있어.”
쾅!
차연주는 그렇게 말하면 다소 거칠게 현관의 문을 닫고 나갔다.
“아침도 안 먹고 출근이라니… 요즘 연주 일이 많이 바쁜 걸까요?”
한설아는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며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최근 한 5일 정도 차연주는 새벽에 잠깐 돌아왔다가 아침에 바로 출근하고는 했다.
잠도 평소처럼 강우와 함께 큰 침실 방에서 자는 것이 아닌 개인 방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바로 나갔다.
행동도 잔뜩 날이 서 있는 게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 음. 글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전에 길드에 골치 아픈 일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 때문인 것 같아요.”
한설아는 차연주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길드의 문제로 돌렸지만, 강우는 그것이 원인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너무 심했나?’
뭔가 분위기에 휩쓸려 평소 이상으로 잔뜩 차연주를 괴롭혀 버리고 말았다.
그 뒤로 단단히 삐친 차연주는 강우와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피해 다니고 있는 상황.
‘우리 연주랑 시간 좀 만들어야겠네.’
솔직히 좀 심하긴 했다.
이번에 따로 시간을 만들어서 단단히 화가 난 그녀에게 사과하고 마음을 풀어줘야 할 것 같았다.
화를 달래주는 것은 어렵지 않으리라.
이러니저러니 해도 꼬박꼬박 집에 들어오고 있고, 가끔 강우를 몰래 훔쳐보며 우물쭈물하고 있는 모습을 몇 번 봤으니까.
“흐흐흐. 아주 귀여워 죽겠다니까.”
부끄러워하며 몸을 배배 꼬고 있는 차연주의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볼 때마다 달려들어 끌어안아 주고 싶었다.
‘그래도 참아야지.’
일단 사과를 하는 게 먼저였다.
“예, 예? 갑자기 귀, 귀엽다뇨?”
“엉?”
자신에게 한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한설아는 괜히 얼굴을 붉히며 흘러내린 검은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올렸다.
잠깐 당황했지만 이내 자연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입을 맞췄다.
“우리 임자 너무 사랑한다고.”
“저, 정말! 그렇게 갑자기 그런 말을 하시면 어떻게 해요?!”
한설아는 버럭 소리치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참듯 파르르 몸을 떨던 그녀가 이내 방긋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강우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후훗. 저도 사랑해요, 강우 씨.”
‘아아.’
힐링 된다.
이렇게 한설아의 품에 안겨 믿지 못할 부드러움에 둘러싸여 있는 것은 그에게 있어 가장 행복한 시간 중 하나였다.
“…미안해요, 강우 씨.”
품에 안긴 강우의 머리칼을 상냥하게 쓰다듬고 있던 한설아가 살짝 침울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강우는 의문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올렸다.
“엉? 뭐가 미안해?”
한설아가 자신에게 미안할 일 따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설사 잘못을 했다 해도 임자가 한 일이라면 뭐든 웃으며 넘어갈 수 있었다.
“전에 충동을 억누르지 못해서 이상한 모습을 보여드린 거요.”
“아.”
확실히 서큐버스를 학살할 때 그녀의 모습은 좀 많이 위험해 보이긴 했다.
한설아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도 참고 싶지만… 한 번 충동이 오면 머릿속이 하얗게 타버려서 아무 생각도 안 나게 돼요.”
“흐흐. 그런 걸 걱정하고 있었어?”
“제가 생각해도 정신 나간 여자처럼 보였으니까요. 가, 강우 씨가 절 싫어하게 될까 봐….”
“그럴 일은 없어.”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단호한 목소리로 답했다.
자신이 한설아를 싫어하게 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임자가 정신이 나가건 말건, 이성을 잃고 충동에 휩싸이게 되건, 못나고,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건.”
그게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 옆에만 있어 주면 돼.”
다른 것은 다 필요 없다.
만약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자신을 구속하려 들더라도, 질투에 휩싸여 그에게 접근하는 다른 여자들을 참혹하게 학살하더라도, 집착과 욕망에 미쳐 광기에 휩싸이더라도.
아무런 상관없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한설아의 광적인 사랑은 뒤틀리고 일그러져 보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자신에겐 아니다.
“임자랑 같이 있는 지금 삶 자체가 내가 만 년 동안 갈망했던 욕망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녀는 존재 자체로 완벽하고 완전하며 무결(無缺)하다.
“강우 씨….”
한설아는 떨리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물웅덩이에 조약돌을 던지듯, 잔잔한 웃음이 물결처럼 번진다.
“저도… 저도 강우 씨랑 만나서 너무 행복해요.”
“우흐흐. 그러니까 그런 쓸데없는 고민 같은 건 하지 마.”
“네.”
한설아는 배시시 웃으며 입술을 겹쳤다.
“아 참, 근데 그건 좀 바꿔야 할 것 같아.”
“네? 바, 바꿔야 할 것 같다뇨?”
“임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거.”
한설아의 삶에는 지나칠 정도로 자신 외에는 없었다.
물론 그의 입장에선 고맙고 사랑스러운 일이지만 걱정이 되지 않을 순 없었다.
“연주나 리리스랑 같이 쇼핑을 간다거나… 에키드나랑 놀러 간다거나… 임자 혼자만의 취미나 놀 거리를 가진다거나.”
자신도 오락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한설아 만큼은 아니었다.
그녀는 무슨 수도사마냥 모든 유흥과 오락을 끊어내고 강우 하나만을 위해 온 시간과 정성을 바치고 있었다.
‘인생의 즐거움이 꼭 연인과의 시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이런저런 다른 즐거움도 마음껏 누리며 살게 해주고 싶었다.
“저는 강우 씨만 있으면….”
“그런 소리 하지 말고. 같이 있는 게 싫다는 말이 아니잖아?”
“으음.”
한설아는 잠시 고민에 잠겼다.
생각을 이어가던 그녀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는 듯 손뼉을 쳤다.
“그러면 이번 기회에 학원을 다녀봐도 될까요?”
“학원? 무슨 학원?”
“후훗. 요리 학원이요. 조금 다양한 요리를 배워보고 싶어서요.”
“음. 임자가 만들어주는 건 뭐든 다 맛있던데.”
“호호호. 고마워요. 그래도 더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어요. 제가 만들어준 요리를 강우 씨가 맛있게 먹어주는 걸 볼 때면 너무 행복하거든요.”
“그래?”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말릴 이유가 없었다.
“헤헤. 그러면 오늘은 학원을 좀 알아보러 다녀야겠네요~”
그녀는 싱글벙글 웃으며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후후후. 아주 입이 귀에 걸리셨네요, 마왕님.”
“아, 왔어?”
수호의 전당에 다녀온 리리스가 한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쿡쿡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정말, 우리 설아 볼 때마다 너무 착하고 귀여워서 타천사가 맞는지 의심하게 된다니까요~”
“임자가 타천사든 아니든 어차피 나한텐 똑같아.”
“어머나, 이거 저도 질투해버릴 것 같은데요?”
“우리 리리스도 똑같이 사랑함.”
“후훗. 그러면….”
“아, 근데 촉수는 싫어.”
“히잉.”
리리스는 귀엽게 입술 위에 검지를 올리며 콧소리를 흘렸다.
“아 참, 그나저나 마왕님에게 알려드릴 소식이 좀 있어요.”
“뭔데?”
“오늘 레이라 씨에게 들었는데 최근 수상한 종교 하나가 급격하게 세를 불리고 있다고 하네요.”
“수상한 종교?”
“예. 광명(光明)교라는 종교예요.”
“…….”
광명교.
이름만 들어서는 강우를 추종하는 세력이 모여 만들어낸 광휘(光輝)교와 비슷했다.
‘광휘교는 이제 지구에선 거의 없어졌지만.’
한때 에르노어를 통해 급격하게 전파됐던 광휘교는 이제 거의 지구에서 자취를 감췄다.
문화의 차이나 체계적이지 않다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강우가 3년간 심연 속에 갇혀 있는 동안 거의 관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금을 받지도 않고, 공부할 경전도 없으며, 예배하는 장소조차 따로 없는 종교가 오래 지속될 리가 없었다.
‘에르노어에선 아직 성황이라고 하지만.’
어쨌든 강우 자신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최상격 신격에 도달한 이후 신앙으로 얻어지는 신성의 양은 티끌에 불과했으니까.
‘아예 없는 것보단 낫지만.’
별 의미는 없었다.
어차피 티끌은 모아봤자 티끌이다.
광휘교를 신경 쓸 시간에 게이트를 들쑤셔 외계(外界)의 존재와 한바탕 싸우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었다.
“어떤 종굔데?”
“글쎄요. 아직 정확한 정체가 드러나지는 않았다고 해요. 하지만 지구는 머지않아 종말을 맞이할 테니 모두 낙원으로 대피하자, 뭐 그런 수상쩍은 말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사이비네.”
종말 어쩌고 지껄이는 종교 중 제대로 된 종교를 본 적이 없었다.
“나한테 보고할 정도면 꽤나 퍼져 있는 상태라는 거지?”
“네. 그리고 최근에 시훈 씨가 조사하던 것도 광명교와 관련된 일이라고 하네요.”
“아.”
어째 최근 김시훈과 영 연락이 안 되다 싶었다.
‘이 일을 조사하고 있었구나.’
김시훈이 직접 조사할 정도라면 꽤나 사태가 심각한 모양.
“시훈이는 그럼 아직도 조사 중이야?”
“아뇨. 일단 조사를 마치고 돌아왔다고 해요.”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직접 가서 얘기 좀 들어봐야겠네.’
이런 건 역시 조사를 한 본인에게 직접 찾아가서 듣는 것만큼 좋은 게 없었다.
‘오랜만에 시훈이 새끼 얼굴도 좀 보고.’
최근 통 보질 못했더니 괜히 한번 만나고 싶어졌다.
“나 그럼 시훈이 좀 만나고 올게.”
“같이 가드릴까요?”
“아니. 어차피 뭐 얼굴 보고 얘기 잠깐 듣고 오는 건데.”
강우는 리리스를 뒤로 한 채 수호의 전당으로 향했다.
게이트를 넘어서자 새하얀 복도가 보였다.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진 수호의 전당의 복도를 걸었다.
“오랜만이네요, 강우 씨.”
“아이고~ 제수씨. 잘 지냈어?”
강우는 손을 흔들며 편한 말투로 물었다.
원래는 존대를 사용했지만, 가끔 이렇게 편하게 말하기도 했다.
이제는 레이라와도 꽤 친해졌으니까.
“좀 바쁘긴 했지만… 잘 지냈어요. 그나저나 무슨 일이세요?”
“시훈이 좀 보러왔어.”
“아. 시훈 씨라면 방에 계세요.”
“흐흐. 요즘 둘 사이는 좀 어때?”
“아주 좋죠. 근데….”
“근데?”
“최근 좀 절 피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엥?”
김시훈이 레이라를 피해 다닌다니?
“혹시 그 강아지 귀 뭐 이런 거 억지로 씌우려고 한 거 아냐?”
“아뇨, 그런 건 아닌데… 정확히 말하면 사긴 샀는데 얘기는 아직 안 꺼냈어요.”
“사긴 샀구나.”
우리 시훈이 불쌍해서 어쩌냐.
“하아. 일단 한 번 만나보세요. 요즘 왜 그렇게 쌀쌀맞으신 건지 모르겠네요.”
레이라는 풀이 죽은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흐흐. 걱정하지 마, 제수씨. 내가 딱 알아보고 올 테니까.”
“제가 물어봤다느니 괜한 소리 하지 마시고요.”
“오키.”
강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김시훈의 방문을 두드렸다.
“…형님?”
기척을 감지한 건지 문을 두드리자마자 김시훈이 밖으로 나왔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김시훈의 모습.
언제봐도 눈이 부실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런 김시훈을 보며,
강우는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오, 오랜만입니다, 형님.”
강우를 발견한 김시훈은 꽤나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었다.
“최근 연락을 못 드려 죄송합니다. 조사하고 있던 일이 좀 길어져서요. 아, 우선 안으로 들어오세요. 혹시 마실 거라….”
“야.”
김시훈의 말을 자르며, 강우는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형님…?”
김시훈이 당황에 찬 표정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강우는 김시훈의 어깨 위에 손을 올리더니,
-부욱!!
난폭하게 그의 셔츠를 잡아 찢었다.
“뭐, 뭐 하시는 겁니까, 형님!!”
김시훈이 대경하며 뒷걸음질 쳤다.
강우는 재빠르게 따라붙으며 반쯤 찢어진 셔츠를 마저 잡아 뜯었다.
유명한 조각가가 정성스럽게 조각한 듯 탄탄한 근육이 자리 잡은 김시훈의 상반신이 드러났다.
“뭐 하는지는 내가 물어보고 싶은 말인데.”
강우는 거칠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훤히 드러난 김시훈의 상반신을 노려보았다.
그곳에는─
“어떤 씹새끼가 이랬냐?”
왼쪽 가슴에서부터 골반 바로 위까지.
흉측하게 짓이겨진 상처가 김시훈의 몸을 가로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