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597)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외전 78화
이곳에 빛은 없다 (3)
[후응… 강우, 그럼 시훈이랑 같이 유럽으로 가는 거야?]스마트폰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에키드나의 목소리.
강우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엉.”
[안 그래도 나도 지금 영국인데!]“응? 유럽에 있었어?”
[응! 몇 시간 있다가 라이브 공연이 있거든!]그러고 보니 곧 아이돌로 복귀 준비를 한다고 들었다.
[흐응! 엄~청 큰 라이브야! 영국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 생방송으로 중계된 데!]에키드나는 거센 콧바람을 내뿜으며 으스대듯 말했다.
“뭐야, 복귀 라이브가 원래 그렇게 스케일이 커? 그것도 한국도 아닌 데서 하는데?”
에키드나가 해외에서도 꽤 인지도가 있다고 들은 적이 있지만 유럽 전역으로 생중계되는 거대 라이브에 낄 짬밥은 아닐 것이다.
“땜빵으로 들어갔구나.”
[때, 땜빵 아닌걸! 내 팬들도 잔뜩 와준다고 했는걸!]“푸흐흐. 그래, 그래. 알았다.”
사실 저런 큰 라이브에 땜빵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에키드나의 유명세는 이미 입증된 거나 다름없다.
[강우… 그, 라이브는… 못 와주는 거야? 내가 VIP석도 마련해 놓을게!!]“미안. 라이브를 직접 가는 건 좀 힘들 것 같아.”
에키드나의 라이브를 직접 보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그래도 지금 광명교의 일을 뒤로할 수는 없었다.
“나중에 시간 나면 인터넷으로 볼게. 그거 인터넷으로도 생중계하지?”
[우응. 그렇긴 한데…. 오늘 연주랑 설아도 못 온다고 하구. 다들 너무해!]“둘은 왜?”
[연주랑 같이 무슨 학원 등록 하러 간데. 기한이 오늘까지라 못 온다구 했어.]“아.”
그러고 보니 요리 학원을 다니겠다 했던가.
연주랑 같이 다닐 생각이구나.
‘과연 그 처참한 실력이 학원을 다닌다고 나아지겠냐마는.’
어쨌든 자신이 말한 대로 취미 생활을 즐기려 하는 것 같았다.
“미안하다. 다음에는 꼭 갈게.”
[흐응! 약속이야!]“오키.”
[그럼 난 이만 준비하러 가볼게!]뚝.
전화가 끊겼다.
강우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텅 빈 거실을 돌아보았다.
‘그나저나 임자도 오늘 바쁜가 보네.’
잘된 일이다.
애초에 한설아를 데리고 갈 생각은 없었으니까.
-달칵.
“어머? 강우 씨 집에 계셨네요? 시훈 씨 만나러 가셨다고 들었는데.”
“뭐, 뭐야?! 오강우 새끼 집에 있었어?”
그때, 현관문이 열리더니 차연주와 한설아가 들어왔다.
차연주가 기겁하며 한설아의 뒤로 숨는 것이 보였다.
“학원 등록은 끝난 거야?”
“아뇨. 이제부터 등록하러 가요. 유명한 셰프님이 하시는 학원이라서 가서 테스트 같은 것도 봐야 하나 봐요.”
“뭘 그렇게 본격적인 곳을.”
“후훗. 기왕 배우는 거 제대로 배우고 싶어요.”
“흐흐. 나야 좋은데… 연주는 가망 없지 않아?”
피식 웃음을 흘리며 한설아의 뒤에 숨은 차연주를 바라보았다.
차연주가 한설아보다 키가 더 큰 탓에 꽤나 우스꽝스러운 자세를 하고 있었다.
“나, 나는 기초반 들을 거거든!”
“그래? 근데 길드 일은 어떻게 하고? 요즘 바쁘다 하지 않았어?”
자신을 피해다니기 위해 억지로 바쁜 척을 한 것도 있지만, 실제 길드 자체에서 무슨 문제가 터졌다고 들었다.
“으… 그것도 좀 골치 아프긴 한데. 설아가 같이 안 가면 가만 안 놔둔다 해서.”
“내, 내가 언제 그랬니?”
“아니, 아까 전에는 무조건 따라와야 한다며!”
“그, 그거야. 혼자 다니기는 좀 그래서.”
“헹, 거 봐.”
티격태격하는 두 여인을 보며 강우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퍼졌다.
“잘됐네. 아, 그리고 나도 오늘부터 일이 좀 있어서 나가야 해.”
“일이요?”
“백수 놈이 무슨 일?”
강우는 광명교라는 사이비 종교 단체가 나타나 그를 조사하러 간다 말했다.
“저, 저도 갈래요!”
“그런 일이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나도 같이 갈까?”
“아니, 괜찮아. 지금은 어차피 조사 단계니까.”
고개를 저으며 함께 가겠다는 그녀들을 말렸다.
그의 말대로 지금 당장은 광명교에 대해 조사만 하는 단계일뿐더러, 전도사라는 존재가 김시훈에게까지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강자라는 것을 안 이상 그녀들까지 위험에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그리고.’
차연주와 한설아에게 광명교가 벌이고 있는 끔찍한 의식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자신에겐 별 감흥이 없는 얘기였지만, 그녀들에겐 다를 테니까.
“그럼 이만 가볼게. 둘이 잘 다녀오고.”
“정말 같이 안 가도 되나요?”
“걱정하지 말고 연주랑 같이 있어.”
강우는 한설아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는 몸을 돌렸다.
척.
돌아서는 그의 어깨를 차연주가 잡았다.
“응? 왜?”
“…….”
얼굴을 붉힌 채 우물쭈물거리며 몸을 꼰다.
이내 기어들어 가는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나, 나는…?”
“흐흐.”
귀엽기 그지없는 차연주의 모습에 강우의 입에서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한설아에 이어 차연주에게도 입을 맞춰주었다.
차연주는 얼굴을 홱 돌리며 중얼거렸다.
“…이걸로 용서했다 생각하지 마.”
“이번 일 끝나면 제대로 사과할게. 미안해.”
“하아. 여튼, 어디 다치지 말고 와야 한다?”
“옹야.”
고개를 끄덕이며 김시훈이 기다리고 있는 수호의 전당으로 향했다.
* * *
“여기가 집회 장소야?”
“예.”
강우는 가늘게 뜬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김시훈이 안내해 준 장소는 프랑스에 위치한 거대한 슬럼가였다.
건물들은 하나 같이 허름했고,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였다.
거리 전체에서 역한 오물 냄새는 물론 쥐와 벌레들이 들끓었다.
“…사이비 종교가 퍼지긴 딱 좋은 환경이긴 하네.”
원래 가진 것 없고 잃을 것 없는 이들일수록 이런 종교에 잘 빠지게 마련이다.
“저깁니다, 형님.”
“엉.”
강우와 김시훈은 주변 사람들에 맞춰 허름하고 누런 때가 낀 옷들로 갈아입고 집회 장소로 향했다.
-웅성웅성.
낡은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코를 찌르는 악취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곧 시작할 겁니다.”
“너한테서 도망친 그 전도사 놈이 나오는 거냐?”
“그것까진 잘 모르겠습니다.”
“흠.”
일단 보면 알겠지.
김시훈과 함께 인파 속에 섞여 잠시 기다리니 곧 말끔한 정장을 갖춰 입은 청년 하나가 단상 위로 올라갔다.
청년의 목에는 황금으로 만든 듯한 천칭 문양의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그리고 이곳에 모여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봄바람을 연상케 하는 온화한 목소리.
어린아이를 잡아 죽이는 사이코패스 같은 의식을 치른다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점잖은 인상이었다.
청년이 단산 위로 올라서자 집회에 모인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한층 더 술렁이기 시작했다.
“우선 광명의 말씀을 전달 드리기에 앞서 기도의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지그시 두 눈을 감은 청년이 나지막이 말했다.
우우우우웅!!
후광처럼 청년의 등 뒤에서 찬란한 황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황폐한 거리를 비추는 황금의 빛.
태양이 떠오른 듯 어두컴컴한 분위기의 거리가 순식간에 황금빛 물결에 뒤덮였다.
“아아.”
“광명의 축복을!”
“낙원으로의 인도를!”
황금빛 물결이 집회에 모인 수천 명의 사람들 사이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빛에 휩싸인 사람들의 눈빛에 순간 황금빛 안광이 스쳤다.
물론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던 강우의 몸속에서 황금빛은 들어왔다.
‘이게 그 집단 최면인가?’
알 수 없었다.
황금빛이 흘러들어 왔다고는 하나 강우 자신에겐 아무런 변화도 없었으니까.
그냥 좀 포근한 느낌이 드는 것 외에 최면 같은 정신적인 영향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아!”
“구원을… 저희에게 구원을!!”
빛에 휩싸인 다른 사람들도 딱히 최면에 빠진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피부가 맑아지고, 피로에 찌들었던 눈빛이 총명하게 빛났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쓰러져 있던 이들은 자리에서 일어섰으며, 병이 들린 듯 연신 기침을 하던 사람은 환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
그래.
말 그대로,
‘낙원’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광경.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광명을 따르겠습니다!!”
“아아, 광명이여!!”
수천 명의 사람들이 고개를 숙인 채 광적인 환호성을 내지르며 기도를 시작했다.
기도 자세가 좀 특이했는데, 양손을 엑스자로 교차에 양쪽 가슴 위에 올린 자세였다.
‘이범베?’
자세가 왜 이래 이 새끼들.
어쨌든 주변 사람들에 맞춰 엑스자로 팔을 교차해 가슴 위에 놓은 강우는 광적인 외침을 터뜨렸다.
“종말에서의 구원으으으을!! 낙원으로의 인도르르으으으을!!!”
기차 화통을 삼킨 것처럼 거대한 포효가 광장을 뒤흔들었다.
“오오오!!”
목청이 터질 듯 외치니 주변 사람들이 시선이 강우에게 모였다.
“빛을 믿습니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강우는 다시금 목이 터지라 외쳤다.
그를 바라보던 사람들이 씨익 엄지를 추켜세웠다.
곧이어 그들 또한 광적인 환호를 내지르며 낙원을 울부짖었다.
“으아아아아아!!”
“우리에게 구원을!!!”
“광명이여어어어어어어!!”
퍼져나가는 광기.
“혀, 형님?”
김시훈의 눈빛이 당혹스럽게 변했다.
강우는 답하지 않고 기괴한 괴성을 있는 힘껏 터뜨렸다.
“끼요오오오오오옷!!!”
“아아! 이 절절한 함성!!”
“자네도 광명의 뜻을 깨우쳤구만!!”
거리의 노숙자로 보이는 이들이 그 누구보다도 열렬히 환호성을 터뜨리고 있는 강우에게 와서 어깨에 손을 올렸다.
“형제여!!!”
“아아, 그래!! 우리는 형제지!!”
“광명의 믿음을 따라 외칩시다!!!”
“오오오오오오!!!”
“광명이여어어어어어어!!!”
광장을 뒤흔드는 포효 이후로 점점 더 증폭되는 광기.
광명교의 신도들은 서로 서로의 어깨에 팔을 올린 채 함성에 맞춰 몸을 좌우로 흔들기 시작했다.
강우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흘렀다.
이 순간,
그들은 【하나】가 됐다.
“여러부우우우우운!!! 빛을 믿습니까아아아아악!!”
광란의 중심에 선 강우가 다시금 포효했다.
“믿고 말고오오오오오오!!”
“우릴 구원해 줄 빛이여어어어어어어!!!”
“낙원으로 인도하소서어어어어!!!!!”
강우가 내지른 포효에 따라 광명교의 신도들이 목이 터지라 소리쳤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빛의 이름 아래 하나가 된 겁니다!!! 느껴지십니까, 여러부우우우운!! 이 찬란한 빛이이이이이이!!”
“느껴지네!! 아아!! 느껴져!!!!”
“어떤 느낌이 드는지 말해보십쇼오오오오!!”
“더없이 따스하고 포근한 빛!!!”
“배고픔도 느껴지지 않아!!!”
“고통도!! 슬픔도 없어!!!”
“이 빛이야말로 우리를 낙원으로 이끄는 빛일세!!!”
역시.
저 황금빛은 배고픔과 고통을 일시적으로 잊게 만드는 역할이었나.
‘집단 최면이 아니라, 집단 마약이었군.’
어쨌든 효과를 알았으면 됐다.
“여,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단상 위에 서 있던 온화한 인상의 청년이 다급한 표정으로 외쳤다.
더 이상 기도라 부를 수도 없는 광란의 현장을 보며 퍽 당황한 모양.
“이러지 않으셔도 광명의 빛은 여러분을 구원할….”
청년의 말을 자르며 강우는 울부짖었다.
“여러부우우우운!! 외칩시다아아아아!!! 영혼을 다해!! 생명을 불태우며!!! 빛의 구원을 기도합시다아아아아아아!!!”
“광명이여어어어어!!!”
“우릴 구원하소서어어어어!!!”
절정에 도달한 광기 속에서,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끼요오오오오오옷!!!”
“끼, 끼요오오오오오옷!!”
“끼에에에에에에엑!!!”
“끼요오오호호호호홋!!!”
폭발하는 광기.
절정을 넘어선 광란 속에 청년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
“여, 여러분 제, 제발 진정을…!”
그 목소리는 광란의 함성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