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Don't Propose to Me! RAW novel - chapter 92
‘여신님.’
그게 코스탄스의 유일한 후회였다.
“…….”
베니에게 행복을 내려 주십시오.
코스탄스는 진심을 담아 한마디씩, 힘을 주어 기도했다.
그녀의 말을 가로챈 절 용서하지 마시고, 억울한 베니 갤린느를 도와주십시오.
아무것도 모르는 베니 갤린느를 가엽게 여겨 주십시오.
나까지 구원하느라 베니 갤린느를 구원하길 소홀히 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녀에게, 베니 갤린느에게.
행복을 내려 주십시오.
* * *
오전 8시경, 교황령 항구.
“나단. 유진은 어디 있죠?”
라히에는 고요한 바다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물었다.
아침 공기가 매우 차가웠다. 불어오는 칼바람에조차 라히에는 끄떡도 없었다.
“……예하의 방에 있습니다. 눈치가 빠른 아이입니다. 오늘은 절대로 보육원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래요?”
라히에는 저 멀리서부터 보이는 어선에 눈을 가늘게 떴다. 겉보기로는 상처 하나 없는 멀쩡한 어선이었으나, 라히에는 거기서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아니, 사실 그보다 일찍 좋지 않은 상황을 짐작했었다.
그러니까 비밀 사제한테서 무전이 끊겼을 때부터.
“유진의 눈치가 그렇게 빠르던가요?”
라히에 물음에 나단은 그를 흘끗 보았다.
“예하만큼이나 빠릅니다.”
“……같잖은 변명은 소용없겠군.”
라히에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으나, 그게 끝이었다.
다가오는 어선 위, 사제의 면면을 하나씩 살피던 라히에의 얼굴도 냉기가 돌만큼 차가워졌다.
“…….”
마침내 교황령에 도착한 사제들은 모두 죄지은 표정이었다.
“예하……!”
배가 도착했음에도 사제들은 육지에 올라가지 못하고 쭈뼛쭈뼛 서 있었다. 그러다 라히에를 발견하고 다들 눈물을 터트린다.
“고생했어요.”
그 모습이 갸륵해 라히에는 배에 내려가 사제들을 안아 주었다.
“교황령 영해 직전까지 왔으나…… 군함이랑 군용기가 어선을 노렸습니다.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예하.”
베니와 코스탄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사제 두 명도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분들을 데려오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예하…….”
라히에는 사제의 등을 토닥였다.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사제들은 직업을 버리고,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용감해요. 저는 당신들을 나무랄 자격이 없습니다.”
“흡, 예하……. 남은 사제들은 토람드에 잡혔습니다.”
“그건 저한테 맡기세요. 그리고 여러분은 아이들을 지키셨습니다. 칭찬해 주고 싶어요.”
라히에는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이를 안고 있던 소년을 쳐다봤다.
“너도 고생 많았구나.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
“……세스예요.”
라히에는 눈꼬리를 접었다.
“세스. 보육원엔 너와 같은 친구가 많아. 너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아이도 있으니 한번 만나 보지 않으련?”
“……네.”
“그래, 우선은 쉬는 게 좋겠어. 에녹. 사제들과 아이들한테 편안한 방과 따뜻한 음식을 내주세요.”
라히에의 명령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무리가 움직였다. 그들은 사제들의 팔을 지탱하고 육지로 끌어 올린 뒤, 쉴 곳으로 안내했다.
어느덧 고요한 교황령 해안가에는 라히에와 나단만이 남았다.
“예하,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단은 사제들이 가자마자 표정을 무섭게 굳힌 라히에를 발견했다.
“조용히 배편을 준비해 주십시오, 나단.”
“…….”
“지금 당장 토람드로 갑니다.”
* * *
나는 군인들이 건넨 빵과 딸기잼, 버터, 따듯한 스튜를 보았다.
“욱!”
평소 내가 즐겨 먹는 식단이었으나 지금은 입맛이 싹 사라진 건 물론 음식을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올라왔다.
“임신인지 확인해 봐.”
어김없이 찾아온 대령은 내 앞에서도 말을 막 뱉었다. 임신이라니.
“연인인 코스탄스와 다녔잖소. 당신도 한 번은 이 증상이 임신이라고 의심하지 않았소?”
대령이 개 짖는 소리를 왈왈 뱉었다.
“이미 확인했으나 임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왜 먹질 못하지?”
“그게…….”
대답한 군의관은 내 눈치를 보았다. 그제야 대령이 의미를 알아차리고 빵 한 덩어리를 반으로 뜯었다.
“억지로 먹지 않는 거군. 그게 당신에게만 손해인 걸 모르오?”
그는 내게 빵 반쪽을 내밀었다.
“드시오.”
“……코스탄스를 보게 해 준다면 먹겠어요.”
“그는 잘 있소.”
“그러니 보고 싶어요.”
“……하아.”
대령이 한숨을 길게 뱉었다.
“기관에 도착하면 볼 수 있을 거요. 그러니 먹어. 이렇게 굶다가 당신이 그토록 찾는 코스탄스도 보지 못한 채 죽겠어.”
“내가 죽으면 당신들이 손해죠.”
나는 일부러 날카롭게 말했다. 코스탄스를 보기 전에 죽을 의향은 없으나, 앞에 있는 대령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싶지도 않았다.
“…….”
내 반항을 꺾지 못하자 대령의 목에 핏줄이 돋았다. 반복되는 실랑이로 그도 꽤 지쳤는지 손에 있는 빵을 구겼다.
한순간에 빵 덩어리가 납작해졌다.
“당신의 위치를 모르는군, 베니 갤린느.”
대령의 본색이 나타났다. 그는 교화하지도 못할 죄인을 보듯 나를 쳐다봤다.
“당신은 범죄자야. 우리 토람드를 배신하고 칼을 꽂은, 배신자의 딸. 토람드인 모두가 널 경멸하고 욕하지. 망할 년.”
“…….”
“군이 없으면 넌 사람들에게 맞아 죽었을 거다. 어쩌면 진작에 굶어 죽었을지도 모르고. 그러니 순순히 굴복하고 처먹어.”
대령은 손에 있던 빵 덩어리를 내게 던졌다.
“……날 범죄자라 부르지 마요.”
“그럼 뭐라고 불러 줄까? 배신자?”
그의 조롱에 나는그가 했던 것과 똑같이 앞 빵을 그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대령의 얼굴이 순식간에 접힌 빵처럼 구겨졌다.
“배신자라고도 부르지 마요. 당신이 날 알아요? 어렸을 때부터 연구소에 갇혀서 친구 없이 홀로 자랐어요. 그러다 우연히 본 설계도에 미래까지 잡히고 말았죠!”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그건 다 당신이 만든 미래야. 원하지 않았더라면 당장 정부에 찾아가 설계도를 나불거렸어야지.”
“무슨 이유로? 란도국과 어떤 접촉도 없던 아버지를 14년간 희대의 배신자로 만들어 놓고, 혹여 몸속에 설계도가 있을까 아버지 시신을 멋대로 들쑤셨던 정부한테 내가 왜?”
“당신은 다 알지 못해.”
“알지 못한다고요? 그건 당신이겠죠. 정부가 그토록 바라던 녹 원이 무엇인지는 정확하게 아세요? 아, 설마 녹 원과 비슷하지만 그 효능은 녹 원의 10퍼센트도 안 된 파괴 무기를 보고선 녹 원에 대해 잘 안다고 나불거리는 건 아니죠?”
“베니 갤린느!”
“녹 원이 그냥 폭탄인 줄 아세요? 그건 한 번에 팡! 터지는 게 아니라 10단계로 이루어진 고도의 대분열이에요. 수많은 원소, 또는 원자를 투자해 천문학적인 자본으로 만들어야 할 1단계의 대분열을 녹(nok) 이라는 단 하나의 원자가 다 대체할 수 있지요. 그러니 원리와 설계만 알면 힘을 그리 쓸 필요 없이 순식간에 10단계로 만들 수 있는데, 얼마나 효율이 좋을까요.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 성능이 얼마나 좋은지 말하자면요, 녹 원 하나를 어딘가 던지면 정부들이 견제하는 란도국을 한 방에 날려 버릴 수 있고, 지켜야 할 토람드인조차 한 번에 잿더미로 만들 수 있어요. 녹 원은 4대 원소와 밀접한 관계를 이루고 있어서 당신들이 마시는 물과 전기, 원료, 심지어 여기 있는 공기까지도 다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아주 시간 대비 효용이 끝내주는 지구 멸망 무기예요.”
“…….”
끊어짐 없이 줄줄 뱉는 내 말에 방 안에 있던 군인들이 모두 행동을 멈추었다.
좁은 방의 공기가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가라앉았다. 대령도 내 말에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는지 어안이 벙벙한 채다.
나는 흥분을 서서히 가라앉혔다. 괜한 사람한테 사실을 토로하니 허한 감정만 남는다.
“아버지와 연구원들이 실험으로 본 건 3단계의 녹 원이었다고 해요.”
목이 나갔는지 말할 때마다 목구멍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나도…… 그걸 실제로 보지 못했어요. 아직 10살도 안 된 아이를 그곳에 데려가는 게 더 이상하니까요. 어쨌든 3단계 실험에 가볍게 성공하고 난 뒤, 연구소의 분위기는 장례식과 같았어요.”
아직 던지지 않고 남은 빵 반 덩어리를 보았다. 저런 빈약한 것들만 먹으며 아버지가 만든 게 바로 녹 원이었다.
“위력에 놀란 연구원들이 이 정도에서 연구를 멈추자 청원하였으나, 정부에선 10단계까지 개발하길 요구했어요. 나와 친하게 지냈던 연구원 한 명은 참다못해 자살했고요.”
어디선가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걸 다 보고 자랐어요. 그래서 녹 원보다는 내 삶이 더 중요해 당신 말대로 그 망할 정부에 망할 설계도를 갖다 바치려고 했고요. 근데도 그러지 못한 건, 나를 돌봐 주던 교수님이 말렸고…… 그 탓에 돌아가셨기 때문이에요.”
내 얘기는 여기까지였다.
“…….”
드륵. 가만히 있던 대령은 의자를 뒤로 뺐다.
“……우리한테 말해도 아무 소용 없소.”
그러더니 대령이 식판을 내 쪽으로 쭉 밀었다.
“먹고 살아서 방금 했던 말 그대로 수상 앞에서 이야기하시오.”
“……그럼 뭔가 달라지나요?”
내 물음에 방 밖을 나가기 전 대령이 대답했다.
“당신 말대로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오.”
“…….”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코스탄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요. 그는 안전하오. 위급한 고비는 넘겼소.”
“…….”
“내일이면 기관에 도착하니 그때까지 무리하지 마시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문이 닫혔다.
* * *
칸드어 교수님.
나를 위해 연구와 미래, 행복 등 모든 걸 포기하신, 나의 두 번째 아버지.
교수님에겐 내가 불행이었을지라도 나에게 교수님을 만난 건 두 번 다시 없을 행운이었다.
탁월한 심리학 교수답게 교수님은 무너진 나에게 삶을 가르쳐 주셨고, 제 딸처럼 키워주었다.
행복했다고 말할 순 없으나, 그래도 교수님 덕에 나는 적어도 사람답게 살 수 있었다.
〈이, 이럴 순 없어요! 차라리 지금이라도 정부에 가서 다 말할래요! 제가 기억하고 있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