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ay away from my family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위기 상황에서 마법을 쓸 줄 아는 능력자들이 방어를 돕는다는 건 무척 힘이 되는 소리였다. 경비대장의 얼굴이 살짝 밝아졌다.
그러자 마법사가 덧붙였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오. 형제들의 의견은 나와 다를지도 모르니까.”
“혹 그렇다고 한들 말만이라도 감사하오. 돕는다면 사례하겠소.”
“아, 사례란 형제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좋은 단어지. 특히 혹한의 숨결을 준다고 하면 몇 명은 무조건 도우러 달려올 거요. 다만…….”
마법사의 시선이 화면을 힐끗했다.
우왕좌왕하던 마수들이 점점 다른 방향으로 산개하고 있었다.
“저 마수들을 뚫고 립시산으로 돌아가기는 좀 버거울 것 같군. 오고 가는 길에 덕을 좀 볼 수 있겠소? 어쨌든 자발루텐시를 돕기로 한 건 그쪽 때문인데.”
그러자 세르비투스의 예쁜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무례하군요. 결국 이쪽을 돕겠다 선택한 것은 당신입니다. 괜한 이유를 들먹이며 파베가 무슨 책임이라도 있는 것처럼 구는 건,”
“그래. 그건 내가 해 주마.”
파베는 까칠하게 대응하는 제자의 말을 중간에 잘랐다.
이곳을 방어하는 데 힘을 많이 쓰고 있기는 했으나, 사람 한 명 순간이동시키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준은 아니었다.
“립시산 영역 안쪽까지 이동시키는 건 무리야. 바로 근처 좌표로 보낼 테니 거기서부터는 알아서 이동하도록 해.”
“알겠소. 그 정도면 충분하오.”
“올 때는 전령새를 보내고. 내 신호는 알고 있느냐?”
“지금 주시오.”
“오냐.”
둘은 즉석에서 전령새 신호를 교환했다.
세르비투스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치였으나 끼어들지는 않았다.
경비대장이 말했다.
“이리 도움을 주어서 고맙소, 마법사. 이름이…… 아까 뭐라 했었더라?”
“파베 크로슈.”
“그래, 파베 크로슈. 어쩐지 친숙한 느낌이 드는 이름이야. 혹 세간에 이름을 떨친 적이 있소?”
그리 묻는 경비대장은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기색이었다.
파베가 대답했다.
“아마 이따금 옛이야기에서 듣긴 했을 거다. 아마 마법사가 아니라 정령사로서겠지만.”
“흠? 그건 무슨 소리요?”
“그리고, 오늘 도움에 감사할 필요도 없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 오히려 내 쪽에서 너희에게 사과해야겠지.”
“…….”
경비대장은 맥락을 알 수 없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를 직감한 세르비투스가 입을 열려 했으나, 파베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세르비투스의 손을 잡아 끼어들지 못하게 하고서 진중하게 말했다.
“내 이름은 파베 크로슈다.”
성벽 위의 대원들은 아까 들은 이름을 왜 다시 말하느냐 묻는 듯한 반응이었다.
파베는 거기에 대고 이어 일렀다.
“150년 전 크로슈 가문을 세운 가문의 시조이지.”
“아……!”
경비대장은 바로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었으나 경비대원 하나가 감탄성을 터뜨렸다.
얼굴에 주근깨가 많은 빼빼 마른 청년이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맞아요, 파베 크로슈! 반룡 왈라이카 공과 함께 당대를 풍미했던 크로슈의 주인!”
크게 외치는 청년의 눈이 별처럼 반짝거렸다.
“150년 전 가문을 세우고 행적이 묘연해졌다 들었었는데. 그럼 마법사님이 150년 전 그 인물이라는 뜻이에요? 아, 그러고 보니. 옆에 계신 그 엘프님이 전설 속의 그 엘프님?!”
청년의 말은 파베 크로슈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은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중구난방이었으나, 경비대장은 대충 그 결을 이해했다.
두꺼운 입술 사이로 묵직한 음성이 신음처럼 흘러나왔다.
“그렇다면, 당신이…….”
“이런 일을 겪게 만들어서 미안하다.”
파베가 자세를 고쳤다.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한 세르비투스의 태도에 아랑곳없이 고개를 숙였다.
“마수들이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건 아마 나와 관련이 있는 모양이야. 과거의 망령이 나타나 괜한 너희가 피해를 보는구나.”
“…….”
성벽 위가 조용해졌다. 맥락을 이해한 사람도 이해하지 못한 사람도 다 같이 만드는 정적.
파베의 목소리만 바람과 함께 울렸다.
“여기까지 풍문이 닿았는지는 모르겠으나, 현재 대륙 각지의 마수들이 립시산 근처로 이동하고 있다. 왕실에서는 그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각지의 귀족들과 연합하여 세력을 구축하는 중이며, 나와 내 가문 또한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는 형편이지.”
“…….”
“아직 마수들이 립시산으로 모이는 명확한 이유는 찾아내지 못했지만, 이 현상을 해결할 방법은 어느 정도 가닥이 잡혔다. 앞으로 사흘 안에 결판을 볼 계획이야.”
“…….”
아마도 경비대장은 그녀의 말을 대략적으로 이해한 모양이었다.
파베가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 상황을 야기한 장본인으로서, 모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이곳 결계를 유지하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이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없어.”
“…….”
“립시산의 마법사들을 제외한 증원을 끌어올 생각이다. 내가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이곳이 안전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해 방비해야겠지. 물론 이것만으로는 내가 끼친 손해를 다 배상할 수 없겠지만.”
파베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그녀가 단단하게 약속했다.
“차후 추가 배상에도 성실히 임하겠다.”
“…….”
“이미 전국적으로 어음을 벌여 놓은 꼴이라 빠르게 적절한 배상을 할 수 있다 말하긴 어렵구나. 하지만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안정화에 전력을 쏟을 생각이야.”
사건만 무사히 해결하고 나면, 대마법사의 능력으로 여러 의뢰를 해치울 수 있을 것이다.
파베는 차근차근 시간을 들여 배상을 해 나갈 작정이었다. 어쩌면 앞으로 남은 생애 내내.
그 말을 들으며 턱수염을 매만지던 경비대장이 말했다.
“그럼…… 지금 저기 몰려온 마수들은 당신을 죽이려고 온 거요?”
“아니, 그건 아니다. 마수들이 이곳으로 몰려온 이유는 나도 알지 못해. 어쩌면 배가 고픈 까닭이 조금은 섞여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마수들이 립시산으로 집결하는 이유도 아직 알지 못한다고 했지. 그렇다면 어째서 이 사태가 당신의 책임이라는 거요?”
“남부를 다스리는 드래곤 로드 예네프시카가 그리 말하더구나. 이 사태는 나로 인한 것이며, 립시산 아래 해답이 있을 것이라고.”
도시를 순찰하고 주정뱅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내는 평범한 삶을 누리던 경비대원들에게는 지나치게 아득한 이야기였다.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 이야기.
그러나 성벽 저 멀리서 어슬렁거리는 마수들은 현실이었고, 성채를 반구형으로 감싼 놀랍고도 거대한 마법 또한 실제였다.
오랜 근속으로 잔뼈가 굵은 경비대장은 노련한 사람이었다. 이런 생뚱맞은 상황에서도 이성과 냉철을 놓지 않을 만큼.
상황을 제 방식대로 이해한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약하자면 당신은 150년 전 자취를 감추었다던 전설 속의 인물이고, 마수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립시산에 모이기 시작했고, 당신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틀 뒤에는 떠나야 한다는 거요?”
“그래.”
“떠나기 전엔 립시산의 마법사와 다른 인원들을 불러 성 방어를 도울 것이며, 수성 중 발생한 손해는 차후 배상하겠다는 거고.”
“면구하지만 그렇다.”
경비대장의 부리부리한 눈이 파베 크로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여자치고 크긴 하지만, 그보다는 한 뼘도 더 작은 파베 크로슈를.
보기 드문 금빛 눈동자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눈을 두어 번 깜박인 대장이 물었다.
“그래서, 발생한 문제는 잘 해결할 수 있소?”
“최선을 다해야지.”
“최선을 다하는 게 아니라 꼭 성공해야 할 거요. 뭘 어떻게 해결할 작정일지는 모르겠소만 손해 배상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배상할 사람이 살아 돌아와야 하지 않겠소?”
“…….”
덥수룩한 수염을 두른 두꺼운 입술이 씩 웃었다.
“갑자기 마수니 드래곤 로드니 150년 전의 인물이니 알 수 없는 일투성이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해결해야지. 제안 받아들이겠소.”
“……고맙다. 이 도움은 결코 잊지 않겠다.”
“그나저나 옛이야기 속 영웅이 살아 돌아오다니. 이거 이번 일 잘 넘기면 나도 당신 무용담에 한 줄 정도는 적히는 것 아니오? 자발루텐시의 경비대장 얀센이 파베 크로슈를 도와 마수들에게서 도시를 지켜냈노라고.”
짐짓 유쾌하게 말하는 경비대장의 눈이 푸근하게 휘었다.
부러 분위기를 띄워 주는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파베는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마법사를 원하던 대로 립시산 근처에 이동시켜 주고, 마법을 통해 마수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들은 구심점을 잃고 흩어지고 있었으나 립시산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성으로 가까워지는 중이었다.
“마수들이 이곳 성벽에 도달하면 어떻게 되겠소?”
“대부분 이곳이 성벽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거다. 그런 마법이니까.”
“인지하는 놈이 나오면?”
“다른 방법으로 해결해야겠지.”
파베는 가볍게 대꾸하며 전령새를 소환했다.
왈라이카에게 상황을 알리고, 자발루텐시로 증원을 요청해야 했다.
“스승이 되어서 도움은 못 될망정 제자들을 못살게 구는구나. 그쪽도 사람이 부족할 텐데.”
그러나 당장 자발루텐시가 가장 위험한 것은 사실이었다. 파베는 한숨을 삼키고서 전령새를 날려 보냈다.
그리고 잠시 후, 예상치 못한 증원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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