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288)
288화
94. 치킨 런
1.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리멘 교단의 재정비는 마무리되어 갔다.
전투에 다시 나설 수 없는 병력은 곧장 서울 신전으로 보냈으며, 교단의 금고에 쌓여 있던 각종 광석들을 통한 수리 작업이 진행되었다.
지난번 전투로 가장 큰 피로를 느끼는 사람…… 아니, 동물은 바로 백설이였다.
『나 좀 쉴래.』
서울 신전으로 돌아오자마자 파업을 선언한 백설이.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어마어마한 전투마들을 유지하느라 신성력이 바닥이 나 버렸다.
윤기 나는 털이 트레이드마크였던 백설이의 상태는 따로 말할 것 없었다.
리멘이 슬쩍 와서 신성력을 나눠 주지 않았다면, 아마 한 달은 골골거렸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리멘은 마음이 너무 약해. 원래 체력은 극한에 이른 상황에서 강해지는 법이야.”
“그래도 아직 태어난 지 1년쯤 된 애한테 너무한 거 아니야?”
“내 고양이야.”
“내 고양이기도 한데?”
“신수잖아.”
“시우가 고양이라고 했잖아, 그럼 고양이지. 안 그래, 시연아?”
“리멘님 말이 다 맞아. 그런데 백설이는 내 고양이야! 시연이가 매일 밥도 주고, 놀아 주고, 쓰다듬어 줬어!”
리멘이 시연이가 자신의 정체를 간파했다는 걸 깨달은 건 1시간이나 지나고 나서였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지는 모습이 아주 귀여웠다.
……아, 내가 뭔 소리를.
아무튼 시연이는 백설이를 꼭 껴안은 채로 말했고, 나와 리멘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연이 고양이 해.”
“맞아, 나도 찬성이야.”
『왜 내 의사는 아무도 확인 안 해요?』
백설이가 툴툴거리는 건 가볍게 무시하기로 했다.
그렇게 잠시 후.
『오랜만에 시연이랑 술래잡기를- 허어어어억!』
“백설아아아아!”
축생과 시연이의 숨 막히는 추격전이 시작된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도망가는 백설이와, 엄청난 속도로 백설이에게 따라붙는 시연이를 바라보면서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시연이의 신체 능력이 몰라보게 성장했다.
이제는 진짜 어디 가도 해코지는 안 당할 것 같다.
그저 든든할 따름이다.
“애들은 하루가 다르게 크는 것 같아.”
리멘은 나를 따라 시연이를 바라보면서 아름답게 미소를 지었다.
“리멘.”
“응?”
“베이징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 테라한테 대충 들었어. 자세히는 알려 주지 않더라. 리멘, 너는 뭔가 알고 있지?”
내 질문에 리멘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은.”
“말해 줘.”
“짐작일 뿐이야. 짐작일 뿐인데…… 그래도 듣고 싶어?”
그녀와 나 사이를 가로막던 ‘인과율의 제한’은 거의 희미해졌다.
아직 일부 단어는 묵음 처리가 되지만, 그래도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기에는 이제 충분하다.
나는 천천히 리멘을 바라보았다.
내 시선의 의미를 파악한 리멘이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 갔다.
“고대 신들은 지금 영혼을 잔뜩 모으고 있어. 인간의 입장에서 영혼이 굉장히 애매한 개념이긴 하겠지만…… 사실, 영혼은 실존해.”
“나를 뭘로 보고. 이세계도 다녀온 사람인데, 영혼을 못 믿겠어? 마왕의 경우만 보더라도 알 수 있으니까 괜찮아.”
영혼에 대해서는 일찍이 이해했다.
육체를 완전히 소멸키셨던 마왕들이, 아주 조그만 조각을 통해 지구에서 부활하지 않았던가?
“영혼은 바로 그런 힘이야. 차원 간의 균형을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형태.”
“……그런 힘을 고대 신들이 모으고 있다?”
“막대한 힘이지. 전쟁이 오래 지속된 세계에서는 거대한 힘을 지닌 존재가 태어나기가 쉬워. 시우도 이미 한 차례 경험했잖아?”
그녀가 말하는 ‘존재’가 누구인지는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리멘.
전쟁이 끝난 이후, 에덴의 주신이 된 신격.
그녀가 바로 그 증거였다.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나는 한 가지 가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녀석들이 새로운 주신을…….”
“테라의 자리를 빼앗으려 들겠지. 녀석들이 원하는 새로운 질서를 세우기 위해서는 주신좌가 필요할 테니까.”
“그게 가능해? 테라가 그렇게 쉽게 내줄 것 같지는 않은데.”
테라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지구의 유일한 신격이였다.
그런 그녀가 하루아침에 쫓겨나는 것이 가능할까?
하지만 뒤이은 리멘의 설명에 나는 침음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가능할 거야. 다른 차원에서 격을 쌓고 돌아온 고대 신들이 힘을 합치고, 전쟁을 통해서 영혼을 많이 모아 둔다면…… 충분히 가능해.”
“힘을 합친다는 건…….”
“하나가 되는 거지. 회합은 아마 누구를 중심으로 합칠지 토의하는 자리일 테고. 다른 신격의 격을 고스란히 넘겨받으면, 주신좌도 충분히 위협할 수 있을 거야.”
지난번에 조우했던 플루토를 떠올렸다.
나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었던 그런 녀석들이 하나로 합쳐진다면…….
정말 내가 그들을 막을 수 있을까?
“시우.”
나도 모르게 표정이 어두워졌던 것 같다.
리멘은 내 손을 살포시 잡으면서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내가 끝까지 책임질 거야. 그러니까 시우는 지금처럼만 해 줘.”
리멘은 나에게 빈말을 내뱉진 않는다.
그녀가 테라와 어떤 거래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그 모든 결정은 나를 위한 것이겠지.
리멘은 틀린 결정을 내린 적이 없다.
그리고 그건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거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이번만큼은 그녀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 불안감을 떨쳐 내기로 했다.
2.
리멘과의 대화 이후, 나는 가족들과 짧게 인사를 나눈 다음 다시 선양으로 복귀했다.
리멘 교단이 재정비를 하고 있는 사이, 대한민국의 본대는 빠른 속도로 베이징으로 향하는 길을 뚫고 있었다.
라파엘와 에이든의 활약이 도드라졌다.
요하 방어선에 병력을 공급하고 있던 게이트 두 곳을, 소수 병력을 이끌고 가서 박살 냈다고 한다.
방어선 이후 지역은 우리가 점령한 요동 지역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다.
거주민들이 대한민국 본대를 환영하는 분위기가 대부분이었으니,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없을 것이다.
“들어오는 정보에 따르면 현지민들도 베이징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이 안 된다고 합니다.”
“연락이 안 되기 시작한 기간은?”
“2주 정도. 가족을 찾으러 간 이들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베이징에서 굉장히 불길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만큼은 틀림없었다.
나는 선양에 설치된 임시 사령부에 앉아서 가만히 지도를 바라보았다.
대한민국 본대의 점령 작업은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한 가지 신경이 쓰이는 건, 몽골 쪽을 꿰뚫고 들어오는 고대 신의 병력들이다.
그들의 목적지는 얼추 정해진 것 같다.
“급속도로 남하하는 걸 봐서는 정화자의 뒤를 칠 것 같은데.”
“저희도 그렇게 분석 중입니다. 한데 이상한 첩보가 하나 있습니다.”
강채아 씨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을 이어 갔다.
“정화자가 민간인 학살을 자제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정화자는 여태까지 백정이라는 컨셉을 확실하게 지키고 있던 놈들이다.
녀석들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오로지 죽음만 남아 있었다.
그런 야차 같은 놈들이 학살을 안 하고 있다고?
어쩌면 고대 신의 목적이 무엇인지 짐작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테라의 말에 따르면 그 녀석은 회귀자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알고 있는 게 이상할 것도 없었다.
“녀석들도 따로 생각이 있는 거겠죠.”
“변수들을 계산해 봤을 때, 빠르면 3일 내로 베이징 앞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군공항들을 점령한 덕분에 보급에 숨통도 트였구요.”
제공권의 확보가 이렇게나 중요하다.
공중으로 보급이 가능해진 이상, 더는 보급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전쟁에 필요한 물자나, 구호에 필요한 물자는 미국에서도 지원이 들어오는 중이다.
최종 목적지까지 더 이상 장애물은 없었다.
“……마치 저쪽에서 우리를 베이징으로 초대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대충 비슷합니다.”
역시 감이 좋은 사람이다.
백명교는 우리를 위해 일부러 길을 비워 둔 것만 같다.
베이징에서 치러질 최종 결전.
현재, 베이징의 상황은 전혀 알 수 없었다. 결국, 우리가 그곳에 도착해야만 모든 사태의 진상을 파악할 수 있겠지.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저항이 없다시피 한 상황이라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베이징이 핵심입니다. 그 전까지 병력 손실은 줄일수록 좋습니다.”
최대한 손실을 줄인 상태로 도착하는 것이 핵심이다.
지도를 다시 살펴보았다.
목적지인 베이징이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저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나조차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는 지금껏 마주하지 못했던 최악의 위협에 놓이게 될 것이라는 것.
전 세계에서 고대 신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었으니, 나 역시 그들에게 좋은 소식을 들려줘야 했다.
“진군 속도를 조금 높입시다.”
내 말에 강채아 씨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알겠습니다.”
“이레귤러들은 아끼지 말고 투입하세요. 그놈들이 몸으로 때우는 게 제일 나아요.”
“이레귤러들을 적극적으로 투입하겠습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아마 강채아 씨에게도 이번 전쟁은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이레귤러를 네 명이나 동원할 수 있는 지휘관이 몇이나 되겠어?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으면 아낌없이 쓰는 게 맞지 뭐.
쓴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안 그래?
3.
그로부터 2일 후.
베이징 경계로부터 북동쪽으로 20km 지점.
“다시는 너랑 같이 안 싸운다. 적어도 휴식은 하게 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네 소원대로 박 터지게 싸웠잖아. 뭐가 불만이야?”
“정도란 게 있다. 2일 동안 고작 6시간 재우면서 싸우라는 게 말이 돼?”
“부족을 통합한 위대한 대족장이라면 가능할 줄 알았지.”
“이건 대족장이 아니라 대족장 할아버지가 와도 힘들어할 거다. 내 장담하지.”
에이든은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나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중이다.
대한민국 본대는 말도 안 되는 속도로 길을 뚫었다.
내가 이레귤러를 마음껏 사용하라고 하니까, 강채아 씨는 진짜 마음껏 사용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거다.
비록 에이든이 지쳤지만……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해 줄 수 있었다.
샤르르륵.
내 손에서 뻗어 나간 신성력이 에이든의 몸에 깃들었다.
그러자 에이든의 얼굴이 눈에 띄게 나아졌다.
“피로가 씻겨 나간 기분이지?”
“다음부터는 네가 도와 달라고 해도 안 도와줄 거다. 그것만 알아 둬. 적어도 술을 마시면서 휴식할 시간은 줘야 하는 거 아니냐?”
“아, 그것 때문이었어? 전투하면서 좀 마시지.”
“그렇지 않아도 챙겨 온 건 이미 다 마셨다. 다음부터는 나를 부리려면 반드시 충분한 양의 술을 준비해 둬라.”
피곤해서가 아니라,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해서 그랬던 거구나.
이런 알코올중독자 야만인 같으니라고.
나는 미리 준비해 온 양주 하나를 녀석에게 던져 주었고, 에이든은 웃으면서 양주를 낚아챘다.
“이번에는 봐주지.”
“그래도 너랑 라파엘 덕분에 시간 많이 줄였다. 전쟁 끝나면 한턱 쏠게.”
“크게 쏴야 할 거다.”
에이든은 양주를 병째로 들이켰다. 그리고 대충 입가를 닦아 낸 다음, 저 멀리 베이징의 하늘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 갔다.
“딱 봐도 재밌는 전장이 될 것 같다. 기대 이상이야.”
“재밌는 전장?”
“싸우다가 죽을지도 모르는 곳이란 뜻이지. 그만큼 재밌는 게 또 어디 있을까?”
이놈도 결국 스릴 중독이다.
쿠우우웅.
그때, 주변을 정찰하고 있던 라파엘이 내 옆에 가볍게 착지했다.
그는 슈트의 헬멧을 해제하면서 말했다.
“강력한 차원 반응입니다. 탐지기가 모두 터졌습니다.”
“터졌어요?”
“예. 내구도를 아득히 뛰어넘는 차원 반응이란 뜻이죠. 뭔지는 몰라도 베이징에서 차원과 관련된 일이 벌어진다는 소리입니다. 이거, 정말 설레는걸요. 잘하면 제가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 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천천히 베이징 쪽을 바라보았다.
수십 갈래로 찢긴 하늘.
종지부를 찍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으로 희뿌연 불안감이 스며들어 오는 듯했지만, 애써 그 불안감을 무시했다.
불안해할 필요는 없었다.
내가 할 일은 그저 리멘과 내 사람들을 믿고 나아가는 것 뿐이다.
보이는 것에 집중하자.
나는 다시 한번 크게 한숨을 뱉어 냈다.
에덴과 지구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순간이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