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ease stop our Pope RAW novel - Chapter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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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화
3.
가족들에게는 양해를 구하고 다시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가족들이 전부 섭섭해할 거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나에게 전혀 불평불만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장 의외였던 건 시연이의 반응이었다.
-숨겨 둔 보물을 찾은 표정이야, 큰오빠! 우리는 여기서 재미있게 놀다가 돌아갈게, 헤헤. 어차피 오빠 있으면 마음껏 못 놀잖아?
시연이는 아마 섭섭했을 거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내가 돌아가는 것을 응원해 주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기특하던지.
하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였다.
시연이는 나만큼이나 인기가 많은 상태.
사실, 우리 가족들은 어디를 가도 관심을 받을 것이다.
나는 혹시 몰라서 에이든에게 가족들을 잘 지켜 달라고 부탁을 해 두었다.
거기에 미국 정부에서 온 힘을 다해 가족을 경호하겠다는 약속까지 해 줬으니, 별일이야 없을 것이다.
그렇게 가족 여행을 미뤄 둔 채로 돌아온 한국.
공항에 내리자마자 곧바로 신전으로 향했다.
내가 성지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라파르트 대주교가 나를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성하.”
“금방 돌아왔네요.”
“미국에 신전을 지으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겠는지요.”
“미국 LA 신전, 바로 건축 시작하라고 하세요.”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성지 안으로 들어섰다.
서울 성지는 잠시 통제 중인 상황이다. 여전히 우리 교단 병력의 재정비가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고, 성지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일괄적으로 휴가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아마 진영이 형네 결혼식까지는 계속 이렇게 통제를 할 것 같다.
결혼식 준비도 해야 하거든.
라파르트 대주교는 고개를 숙이면서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성하께서 이리 급하게 오신 걸 보면…… 가서 방법을 찾으신 거로군요.”
“아마도. 지금부터 그걸 확인할 생각이에요.”
부지런하게 앞으로 걷는다.
성지의 입구에서 신전까지 향하는 길은 꽃이 만발해 있었다.
마치 사시사철 봄인 듯, 아름답고 풍성한 꽃들이 곳곳에서 나를 맞이해 준다.
그 사이사이에서 열심히 꽃을 피우고 있던 페어리들이 나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교화아아아앙!”
“여행에서 벌써 다녀왔어?”
나는 페어리들을 향해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느낌이 좋다.
아니, 단순히 좋은 수준이 아니다.
지금껏 이 순간보다 기분 좋았던 적이 있었던가?
내 마음속에 품었던 확신이 자라나 내 온몸으로 퍼져 나간 것 같은 기분이다.
그 기대감을 애써 숨기면서 부지런히 정원을 걸어서 앞으로 향했다.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신목의 나뭇가지도.
성지 전체를 은은하게 품어 주는 꽃향기도.
모든 것이 나를 축복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모든 흔적으로부터.
“리멘.”
리멘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왜 여태껏 몰랐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그녀를 껴안고 손을 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녀가 무언갈 남겼으면 분명 내 곁에 남겼을 거라는 사실을.
그 뻔한 사실을 여태껏 왜 깨닫지 못했던 걸까.
나는 마침내 신전의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지어진 지 얼마되지 않은 리멘의 ‘얼굴 없는 신상’과 마주했다.
에덴의 교황청의 신상과 같은 크기로 제작된 신상.
드워프 토비의 솜씨로 에덴의 신상과 거의 동일하게 제작된 그 신상은 햇빛을 받아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럼 저는 잠시 물러서 있겠습니다.”
라파르트 대주교는 나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후, 빠르게 뒤쪽으로 물러났다.
더 이상 망설일 것도, 의심할 것도 없었다.
우우우웅.
품속에 고이 챙겨 온 자각의 손거울>을 꺼냈다. 손거울은 기분 좋게 신상과 함께 공명하기 시작한다.
파아아앗.
신상으로부터 뻗어 나온 희미한 불빛이 손거울에 닿으며 반사된다.
그리고 그 빛줄기는 신전 옆에 위치한, 리멘이 이곳에서 가장 사랑했던 정원으로 뻗어 나갔다.
마치 길을 알려 주는 것만 같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미소를 지으며 그 빛이 향한 곳으로 걸어갔다.
기분 좋은 바람이 내 이마를 스쳐 지나갔고, 향긋한 꽃내음이 콧속으로 스며 들어온다.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가볍다.
“조금만 기다려.”
어디선가에서 그녀가 내 목소리를 듣고 있지 않을까?
가볍지만 힘 있게, 그렇게 한 걸음씩 빛을 따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손거울에서 뻗어 나갔던 빛은 꽃이 만개한 정원의 한가운데에서 멈추었다.
나 역시 빛이 머물고 있는 가운데로 나아갔다.
은은하게 빛나는 비석 하나가 정원의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도 기억하는 비석.
리멘이 서울 성지에 현신한 후, 직접 만들었던 아름다운 비석.
「꿈들이 잠시 쉬는 곳」
비석에는 리멘이 직접 새겨 넣은 아름다운 필체가 적혀 있었다.
비석 뒤를 수놓는 꽃이 지금처럼 아름다울 순 없을 것 같다.
수많은 이들의 꿈이 잠든 이곳에 리멘의 꿈도 함께 잠들어 있던 걸까?
누가 알려 주지도 않았지만 이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금방 깨달았다.
에덴에서 가져온 돌을 품속에서 꺼내 비석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손거울이 내 손에서 벗어나 스스로 하늘 위로 떠오른다.
파아아앗.
비석과 돌에서 동시에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빛은 거울에 반사된 후, 동시에 나를 비추었다.
눈앞이 찬란한 빛으로 물든다.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야.”
그 빛이 나를 어디론가로 인도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겼다.
리멘은 멀리 있지 않았다.
리멘은, 내가 평생을 걸쳐 찾겠다 다짐했던 그녀는, 안식처에 잠들어 있었다.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아니,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다.
“다 왔어.”
테라의 마지막 선물은 결국 나를 리멘에게로 인도했다.
그녀가 쉬고 있는 안식처로.
그 안식처는 바로 나였다.
4.
[자각의 손거울>이 당신을 내면으로 인도합니다.]눈을 한 번 감았다 뜬다.
비석이 세워진 정원이 아니라 아주 익숙한 내 집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익숙한 복도가 눈에 들어왔다.
신전의 복도.
이곳이 에덴인지, 지구인지 분간할 수는 없었다. 두 곳 모두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하지만 이제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은 딱히 의미가 없는 일이다.
이곳은 어디까지나 나의 내면.
테라가 나에게 남긴 선물이기도 하다.
복도를 지나 잠시 본당으로 향했다.
원래라면 신도들이 앉는 의자와 리멘의 신상으로 가득했을 곳이지만, 이곳에는 그런 것들이 없었다.
대신 누군가의 추억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안녕! 나는 리멘이라고 해. 많이 당황스럽지? 나 같아도 그랬을 거야.』
빛기둥 속에서는 어떤 장면들이 재생되는 중이었다.
처음은 리멘과 내가 처음 만났던 장면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건, 그 장면 속에는 오로지 나만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1인칭 시점으로 찍힌 영상이었다.
전지적 리멘 시점이라고 해야 할까.
그 옆의 빛기둥 속에서는 다른 장면이 재생되고 있었다.
내가 처음 마수들과 조우하여 피를 흘리며 싸우는 장면부터 시작해서, 내가 에덴에서 행했던 모든 일들.
이곳은 나를 위한 박물관이나 다름없었다.
리멘이 눈에 담아 두었던 나의 모든 순간들이 이곳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쉰다.
우우우웅.
내가 그 기억들을 되돌아보고 있을 때, 품속에서 작은 진동이 느껴졌다.
꺼내어서 확인해 보니 선지자의 나침반>이었다.
혹시 몰라서 에덴에서 챙겨 온 성유물.
에덴에서부터 나침반의 자침은 줄곧 나를 가리켰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나침반은 본당의 반대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나는 나침반을 따라서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길게 이어진 신전의 복도를 지나서 햇볕이 내리쬐고 있는 밖으로, 계속해서 걸어갔다.
얼마쯤을 걸었을까.
지평선 끝까지 꽃과 나무로 가득한 풍경이 나를 반겨 준다.
신비로우면서도 경이로운 모습이었다. 자칫하다가는 이 끝없이 펼쳐진 정원 속에서 길을 잃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길을 알려 주는 나침반이 있었다. 그렇기에 자침이 일러 주는 쪽을 향해 마냥 걸었다.
꿈이나 다를 바 없는 세계였으나 여전히 내 감각은 생생했다.
현실처럼 따듯한 바람과 향기로운 꽃내음. 그러나 이곳은 현실과 딱 한 가지가 달랐다.
『시우가 나 때문에 불행해지면 어떻게 하지.』
『항상 나를 위해서 싸워 줬어.』
『나도, 나도 시우를 지켜 줄 수는 없을까?』
바람을 타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걱정과 미안함으로 가득한 목소리.
내가 찾아 헤맸던 그 목소리였다.
나는 그 목소리를 하나도 빠짐없이 귀에 담으면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방법을 찾아내야만 해.』
『시우가 불행해지는 길을 걷고 싶지 않아.』
오랜 시간 동안 쌓아 온 그녀의 고민과 걱정이 고스란히 귀에 들려왔다.
항상 내 앞에서는 웃어 주었던 리멘이었다.
이건 그녀가 나에게 숨기고 싶었던 목소리들이다.
그녀가 어째서 이 수많은 고민들을 숨겼는지도 안다.
리멘이 불안해하면 내가 불안해하니까.
그녀는 기꺼이 이 고민들은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답답하기는.”
리멘의 목소리 속을 걸어간다.
『테라의 계획대로 시우에게 무거운 짐을 맡길 수는 없어.』
『더 이상 시우를 희생시킬 수는 없어.』
『차라리 내가.』
목소리 속의 리멘은 결국 결론에 도달한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기나긴 고민 끝에 도달한 결론이 바로 지금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시우라면 나를 찾아 줄 거야.』
『만약 나를 찾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시우가 계속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저 멀리서 푸른 거목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리멘의 목소리를 머릿속에 새기며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사랑해, 시우.』
『다시 보고 싶어.』
『우리 다시 볼 수 있겠지?』
내 볼을 타고 무언가 흐른다.
아무래도 내가 지금 울고 있나 보다.
나는 눈물을 닦아 내면서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물론이야.”
마침내 거목이 자리 잡고 있는 언덕에 도착했다.
나침반 속의 자침은 정확히 그 거목을 가리킨다. 그렇기에 주저 없이 언덕을 올랐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라파엘이 나를 에덴으로 보내 주지 않았다면.
에덴에서 리멘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과연 내가 지금 이 순간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그랬을 리가.”
이 소중한 순간은 결국 내가 지금까지 쌓아 온 인연들로 인해 완성되었다.
이 인연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나는 이 순간을 마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여태껏 나는 나와 리멘이 지구와 에덴을 구원했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나와 리멘이 지켜 냈던 모든 인연들이 결국 우리를 이곳으로 인도했다.
그렇기에 이건 기적이다.
우리가 지켜 낸 이들이 우리에게 선물한 기적.
“아.”
눈부시게 아름다운 한 존재가 거목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었다.
긴 잠을 자는 듯, 그녀의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잠들어 있는 그녀를 조심스레 껴안으면서 말했다.
“나 왔어.”
잠시 후, 잠들어 있던 그녀가 눈을 뜬다.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는 시우가 나를 납치해 가는 거야?”
그 말에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한 번쯤은 당해 줘. 그게 공평한 거잖아.”
“음, 그럼…… 못 이기는 척 당해 줘야겠네?”
나는 몸을 살짝 기울여 그녀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지.”
우리 교황님 좀 말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