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휘오오오오오오오오오!!
회오리의 기세가 워낙 강렬한 탓에 육안으로 대련장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확인은커녕,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뭐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두 명 전부 보이지 않아……!!”
여기저기서 시끄러운 아우성이 터져 나온다.
랭킹전의 최종 승자를 선포하는 순간 방해라도 하듯 발생한 거대한 회오리.
그 기이한 이상 현상이 대련장 주변을 꽁꽁 둘러싸고 있는 탓에, 내부의 일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회오리의 안에 들어가 있는 자.
나밖에는.
‘누구지?’
엎드려 있는 구건이의 앞에 나타난 이질적인 존재.
사람을 닮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이라 부를 수는 없는 녀석이었다.
키는 2m를 훌쩍 넘었고, 귀는 유달리 크고 뾰족했으며, 동공이 없는 두 눈은 희게 빛나고 있었다.
무엇보다, 산 송장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피부가 희고 창백했다.
‘V1’
눈에 이식된 디바이스, V1에 대상의 정보를 확인했다.
그러나 들려온 메시지는,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것이었다.
식별 불가. 정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
온갖 데이터를 다 긁어 오던 V1에서 이런 대답이 들려올 정도면, 이 세상에 놈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없다고 봐야 한다.
전신의 털이 곤두서는 기분이다.
모든 감각과 피부 세포가 눈앞의 대상에게서 경보 알람을 보내고 있었다.
헌터가 되고 난 이후로 이런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었던가?
시발.
태어나서 처음으로 ‘피식자(被食者)’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넌 뭐냐.”
날 선 목소리로 묻자 눈앞의 존재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뱀과 같이 비리고, 섬뜩한 느낌이 물씬 배어 나왔다.
스스로 아들이 되려 한 자를 데리러 왔다.>
아들이라.
나는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물었다.
“유지원을 그렇게 만든 게 네놈 짓인가?”
벌레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지는 않는다.>
“조금 전까지는 아들이라더니, 이번에는 벌레냐?”
놈의 입가에 띤 미소가 살짝 짙게 변했다.
신기한 놈이구나. 우리와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우리를 겁내지 않다니.>
“대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난 분명 원래 하던 말을…….
’교감(交感) – level 1’ 스킬 활성화>
‘V1’이 내게 창을 하나 띄운다.
임페리얼 타이거, 그러니까 대범이와 대화를 나눴을 때도 이런 창이 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보통 사람은 녀석과 대화를 나눌 수도 없다 이거로군.
“같은 질문 여러 번 반복하게 하지 마. 넌 누구고, 어디서 왔냐.”
그렇게 궁금해하지 않아도 곧 알게 된다.>
눈앞의 존재가 기다란 손을 뻗어 손가락 끝으로 구건이를 가리킨다.
“걔는 지금 부처님도 못 깨워.”
꿈틀.
그러나.
방금 한 말이 무색하게, 구건이가 몸을 움찔한다.
‘아니……?’
구건이의 몸 안에는 ‘백몽’의 성분이 꽤 많이 들어간 상태다.
부지성을 베었을 때보다 훨씬 더 긴 상처가 그의 옆구리에 남아 있었다.
제아무리 S랭크 나이트라 한들 한두 시간은 꼼짝없이 잠에 빠져야 할 터.
한데 구건이가 지금, 양어깨를 움찔거리며 몸을 일으킨다.
‘불가능해.’
지금까지 블랙 에테르와 백몽의 성분을 이겨 낸 생명체는 없었다.
스스로의 몸을 분리했으면 분리했지, 그 안에 담긴 극독을 이겨 낸 적은 전무했다.
그렇기에 헌터로서의 역량이 부족했을 때에도 마음껏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었다.
한데, 백몽에 취해 잠이 들었던 구건이가 스스로 몸을 일으키다니.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 힘든 장면이었다.
“끄르르륵…….”
물론 구건이의 상태가 멀쩡하냐고 하면 그건 아니었다.
몸만 움직이고 있을 뿐, 침을 질질 흘린 채 눈에 초점을 상실한 상태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네가 깨운 거냐.”
놈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유려하게 손을 뻗어, 자석처럼 구건이를 끌어당겼을 뿐.
구건이도 한 덩치 하는 체격이긴 하나, 놈의 신장이 워낙 크다 보니 동생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제 우리 아들이 되었으니, 내가 가져간다.>
“누구 마음대로……!”
나는 파리한 얼굴의 존재를 향해 날아들었다.
물론 구건이 따위 어찌 되든 내 알 바 아니다.
하지만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와 깽판을 놓는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슈슉.
프라셀에서 백몽이 아닌 본연의 검은 칼날이 돋아 나왔다.
놈은 예상할 수 없을 만큼 강하다.
어설프게 재우고 어쩌고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파바박.
Lv.2의 독보를 극한으로 끌어올린 뒤, 환격을 이용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신형을 움직인다.
쾌속에 환술을 결합한, 내가 할 수 있는 최강의 한 수였다.
…….>
분명 달려드는 것을 보았을 텐데, 놈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는다.
손아귀에 잡혀 버둥거리는 구건이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을 뿐.
덕분에 나는 어려움 없이 놈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휘익!
그때였다.
무심할 정도로 가만히 있던 녀석이 갑자기 고개를 훽 꺾는다.
“!!!!!!”
내가 공격하고자 하는, 바로 그 방향 쪽으로 말이다.
동공 없는 흰 눈이 이쪽을 노려보는 광경은 정말이지 기괴한 것이었다.
‘파악당한 건가……!’
하나 이미 출수를 한 이상 손을 거둘 수는 없는 노릇.
나는 이판사판의 심정으로 힘껏 팔을 휘둘렀다.
푹!!!
‘통했어……!?’
다소 의외의 결과다.
정확히 노려보고 있었던 건 맞지만, 그렇다고 방어를 한 것도 아니다.
프라셀의 칼날이 정확히 놈의 목을 꿰뚫었고, 놈의 고개가 기이하게 꺾였다.
‘됐다……!’
블랙 에테르에 이만큼 베이고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없다.
나는 그제야 나를 옥죄고 있는 압박감에서 조금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런데,
꽈득.
불쾌한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목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그와 동시에, 놀랍게도 검은 칼날이 뚝 땅에 떨어진다.
‘부서졌다고……? 블랙 에테르로 만든 칼날이?’
나는 망연자실한 기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 대단한 프라니움도 뚫어 버렸던 칼날이다.
한데 놈은 목을 돌려놓은 것만으로 칼날을 두 동강 내 버렸다.
이 새끼.
도대체 뭐야?
낼름.
놈이 자신의 목에서 흐르는 액체를 손가락을 집어 혀에 넣는다.
피(?)에 묻은 블랙 에테르 성분을 확인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닿기만 해도 치명상인 물질을 스스로 집어넣다니.
일반적인 경우에는 자살행위와 진배없는 행동이었다.
……네가 이걸 왜 가지고 있지?>
“무슨 개소리야!!”
휘익.
찔러 넣는 것으로 소용이 없다면 목을 베어 버리면 그뿐.
그러나 이번만큼은 놈도 순순히 공격을 허락하지 않았다.
팟.
검은 칼날이 허공을 가르고, 놈은 저 멀리 떨어진 곳에 구건이와 함께 나타났다.
‘뭐지?’
이건 단순히 빠른 차원이 아니다.
단독이면 몰라도 구건이를 잡은 상태가 아니던가.
몸을 움직였다기보다, 공간 자체를 잘랐다 붙인 것 같은 느낌…….
“텔레포트라도 쓰는 거냐?”
이번에도 놈은 대답하지 않았다.
부지성이 나를 상대할 때 이런 기분이었을까?
저 개자식이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미안한 마음이 솟구친다.
운이 좋은 줄 알아라.>
“?”
오늘 내게 허락된 힘이 제한되어 있음을. 마음 같아서는 네놈을…….>
오싹.
다시 한번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 든다.
이건 내가 투지를 가지고 있는지와는 아예 별개의 문제다.
태초부터 정해져 있는,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 같은 위기감.
구건이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압박감이 차라리 선녀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냥은 못 가지.”
제멋대로 올 때는 언제고 이제는 마음대로 가 버리시겠다.
오기가 발동한 나는 모든 에테르를 끌어모아 적독사를 다시 불러내었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악!!
구속구를 차고 있었을 때도 주변 모두를 놀라 자빠지게 했던 놈이다.
에테르를 잔뜩 머금은 녀석은 이전보다 훨씬 더 큰 덩치로 나타났다.
“뭉개 버려.”
활시위처럼 몸을 뒤로 젖힌 적독사가 이내 대가리를 아래로 내리꽂는다.
대련장이 온통 회오리로 뒤덮인 지금, 주변 사정을 봐주지 않아도 좋은 상황이었다.
물리력으로 따지면 S급마저 격파할 수 있는 녀석이다.
대상을 고운 가루로 만들어 버릴 기세로, 적독사의 대가리가 놈의 지근거리까지 다가갔다.
킥킥.>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
그와 동시에 놈의 눈동자가 까맣게 변한다.
심연.
그렇게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지독히도 어두운 색깔이었다.
써걱.
-캬아……!!
적독사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대가리가 땅에 떨어졌다.
목이 뎅겅 잘려 나간 채로 말이다.
“울컥……!!”
적독사의 타격은 녀석을 소환한 내 쪽의 타격이기도 하다.
나는 치밀어오르는 역류를 컨트롤하면서도 눈을 부릅떴다.
이 믿기지 않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적독사를…… 이리도 간단하게…….’
칼로 두부를 잘라도 이렇게 간단하게 자르지는 못할 것이다.
S급이 아니고서야 제대로 반격조차 하지 못하는 적독사를 놈은 아무렇지도 않게 막아 내었다.
아니, 막아 낸 것도 모자라 일격에 무력화시켰다.
동물원 놀이에 어울려 줄 생각은 없다. 주제 파악이 소원이라면 뜻대로 해 주지.>
고오오오오오.
귓가에 매서운 바람이 스친다.
회오리의 세기가 한층 더 격렬해진다.
놈이 내게 향하던 시선을 거둔 뒤, 구건이의 머리채를 잡은 상태로 반대편 손을 들었다.
그러자,
팟.
언제 그 자리에 있었냐는 듯, 놈과 구건이가 사라져 버렸다.
저지하기에는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
게다가 지금은 한눈을 팔 시간이 없었다.
고오오오오오오.
살기 등등하게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회오리들이 한점으로 뭉치고 있었다.
바로 내 정수리 위에서.
“……!!”
그 기운이 날 겨냥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막을 수 있을까.
스스로 생각해도 확률이 높지 않아 보였다.
놈이 나타났을 때부터 이 회오리는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작용했다.
표면만 바람일 뿐, 에스퍼들이 만들어 낸 무형의 가림막과 비슷한 구조였다.
결계.
특정한 에너지로 만들어진 결계라 보는 것이 합당했다.
그 터무니없는 에너지의 바람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꽈리를 튼다.
모든 기운이 하나로 뭉치자, 곧 커다란 쐐기 모양으로 탈바꿈한다.
회오리가 응축되자 자연스레 대련장의 모든 시야가 트였다.
“????”
“나타났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저, 저 위 좀 봐!!”
관중들의 목소리를 신호탄으로 삼기라도 하듯, 커다란 쐐기가 내 쪽을 향해 하강한다.
“해선아!!!!”
비수의 비명 소리를 뒤로한 채 양손을 교차해 위로 쳐든다.
저 날카롭고 위험한 쐐기를 몸으로 때운다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
교차한 팔목에 있는 프라셀로 어떻게든 막아 볼 심산이었다.
쐐애애애애액.
눈으로 좇기도 힘든 보랏빛의 쐐기와 프라셀이 정면으로 충돌한다……!!
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번뜩이는 섬광과 귀가 시린 충돌음.
다리의 힘이 쫙 빠지고,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무식하고 지독한 에너지였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충격에 정신이 통째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프라셀은……?’
혹시나 싶어 프라셀을 바라보니 다행히 디바이스는 부서지지 않았다.
다행이군.
그런데.
왜 프라셀이 저 땅바닥에 박혀 있는 거지?
난 분명히, 손을 이렇게 위로 들고 있었는데.
몽롱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나는 멍한 눈으로 시선을 위로 돌렸다.
‘없다…….’
아무것도.
방어하기 위해 치켜든 손이.
거기에 차고 있던 프라셀이.
내 양쪽 팔이.
어깨와 연결되어 있던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보이지 않는다.
푸확!!!!
찢긴 양어깨에서 검붉은 피가 솟구친다.
시야가 점점 어두워지더니, 하늘이 위에서 아래로 영역을 넓혀 간다.
나 지금, 쓰러지고 있는 건가?
“해선아!!!”
“헌터님!!!!”
귓가에 웅웅 대는 처절한 목소리.
그것이 누구의 목소리인지 채 떠올리기도 전에, 나는 의식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