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ison-Eating Healer RAW novel - Chapter (232)
232화
“헬기 띄우겠습니다.”
사안이 워낙 심각하다 보니 도이수가 직접 내려와 정보를 전해 주었다.
마력 파장기가 감지한 위치는 서울의 한 오피스텔.
이레귤러 헌터들은 장소를 확인한 뒤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비수가 사는 곳이다……!’
헌터들은 장비를 챙기느라 분주하게 움직였고, 도이수는 비행 허가를 위해 담당 부처에 연락을 넣었다.
이레귤러 헌터들이 훈련을 하는 곳은 엄브렐라 인더스트리가 소유한 사옥 지하에 있었다.
도이수는 지하의 훈련장은 물론, 유사시에 헬기를 이륙할 수 있도록 옥상을 개조해 주었다.
“헬기 조종사를 준비시켜 주세요.”
“네.”
천해선의 요청에 도이수가 고개를 끄덕인 뒤 빠른 걸음으로 트레이닝 룸을 빠져나갔다.
“형. 헬기 조종은 저희도 할 수 있는데……!”
강정현이 천해선에게 급히 물었다.
일분일초가 아쉬운 상황.
조종사를 준비시키는 것보다 그들이 직접 올라가는 편이 빨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천해선은 눈을 감은 상태로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었다.
몇 초지만 영겁 같은 시간이었다.
강정현이 참지 못해 무어라 입을 열 무렵, 천해선이 손에서 푸른 기운이 넘실거렸다.
화악.
곧 천해선의 앞에 투명한 막이 생성되었다.
“다 뛰어내릴 텐데, 그러면 조종은 누가 할래?”
“……!”
천해선이 강정현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그를 타일렀다.
“마음이 급할수록 판단을 신중하게 내려야 해. 비수 옆에는 뽀리가 있고, 마침 철완 아저씨도 근처에 있을 테니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야. 내가 먼저 갈 테니까 나머지는 헬기 타고 와.”
“형은 어떻게 가려구요?”
“영계를 통해서.”
“……?!”
초록 기운이 넘실대던 막이 점차 투명하게 변해 간다.
천해선은 마리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통솔해 주세요.”
“네.”
남은 멤버라고는 강정현과 첸뿐.
인원을 생각하면 통솔이라고 할 것도 없었지만, 마리아는 천해선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다른 멤버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마음을 잘 추슬러 달라는 의미였다.
“그럼.”
천해선이 투명한 막 쪽으로 몸을 밀어넣었다.
다른 멤버들도 영계를 통해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 ‘문’을 통과할 수 있는 권리는 오로지 천해선만 가지고 있었다.
“제가 바보 같은 말을 했어요.”
사라진 차원의 문을 보면서 강정현이 스스로를 자책했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지금 가장 정신적으로 흔들릴 사람은 바로 천해선이었다.
그러나 천해선은 패닉에 빠진 자신과 달리 상황을 냉철하게 돌아본 후 정확한 판단을 내렸다.
“너무 담아 두지 말아요.”
마리아가 강정현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내심 그녀 또한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천해선이 보여 준 모습은 가까운 동료가 아니라 안면이 없는 제삼자를 구하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을 텐데.’
마리아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비됐습니다.”
천해선이 사라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도이수에게 연락이 온 것.
세 명의 이레귤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비상용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 * *
-오랜만이군.
아마 다른 날이었다면 일단 다리부터 후들거렸을 것이다.
크라수스 드래곤을 마주한 존재들은 언제나 그랬으니까.
하지만 오늘의 천해선은 사정이 조금 달랐다.
차원의 문을 통과하자마자 천해선이 크라수스 드래곤에게 급히 물었다.
“다른 곳으로도 갈 수 있지?”
-……뭐?
“차원의 문 말이야. 문을 열었던 곳 말고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해.”
까마득히 높은 곳에 있는 드래곤의 머리가 기묘하게 꺾였다.
-그러니까…… 차원의 문을 너희 인간 세계의 택배 용도로 사용하겠다는 건가?
황당함과 분노가 적당히 섞인 음성이었다.
영계를 도와준 점을 높이 사 기껏 차원의 문을 개방해 주었건만, 이곳을 환승 게이트로 사용하겠다는 말인가?
하지만 천해선은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빨리 알려 줘!”
-허락하지 않겠다.
“그래?”
천해선의 입술이 묘하게 비틀렸다.
그는 아주 위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럼 내일 당장 영계가 쑥대밭이 될 텐데?”
-……!
슈웅 하고 크라수스 드래곤이 머리를 아래로 내린다.
천해선의 머리보다도 큰 눈동자를 번뜩이며, 크라수스 드래곤이 위협적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말 길게 할 시간 없어. 우리 중에 버프 능력 가지고 있는 애 알지? 이대로 마인의 손에 넘어가면 실종된 헌터들이 전부 각성한 키메라가 될 거다.
-……그게 정말인가?
“아이씨! 시간 없다고!”
케어해 줘야 하는 대상이 있다면 침착했겠지만, 감히 크라수스 드래곤을 케어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그래서 천해선은 그동안 쌓여 있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당장에 브레스를 뿜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었다.
하나 크라수스 드래곤은 이토록 감정적인 모습에 도리어 호기심을 느꼈다.
-좋다. 자초지종은 나중에 듣지. 만에 하나 내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다면…….
“서울시 송파구 문정동……!!!!”
드래곤의 말 따위는 무시한 채 천해선이 주소를 외쳤다.
-……그렇게 일일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 네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으니 머릿속으로 그 장소만 상상하면 될 것이다.
파앗.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천해선이 차원의 문을 열고 뛰쳐 들어갔다.
휘잉.
천해선이 난리 법석을 떨었던 자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다.
이제는 텅 빈 공허함과 바람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고맙다는 인사도 하지 않는군.
말이 투레질을 하는 것처럼, 크라수스 드래곤이 콧김을 쒸익 하고 내뿜었다.
-실종된 헌터들이 전부 키메라가 돼서 나타난다는 말인가. 그것도 ‘각성’을 한 상태로…….
각성 상태의 키메라는 그 존재 하나하나가 수호령에 필적하는 수준이 될 것이다.
만에 하나 천해선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영계의 운명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워진다.
크라수스 드래곤은 상념에 잠긴 채 천해선이 넘어간 차원의 문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 * *
저릿저릿.
비수의 집 앞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느낌이 왔다.
이루 형용할 수 없는 불길한 기운이 바닥 아래에서 느껴졌다.
‘계단을 이용해야 하나?’
아니.
그러기에는 너무 시간이 많이 흘렀다.
천해선은 에테르를 끌어 올린 채 한 손을 들었고, 곧 그 방향으로부터 커다란 독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부숴.”
-캬아아아아아아아아악.
하늘 높이 있던 적독사의 대가리가 그대로 바닥을 찍는다.
쾅!!!!!!!!!!!!!
적독사가 한차례 혀를 낼름거리며 주변을 확인한다.
천해선은 적독사를 곧바로 회수했고, 녀석이 뚫은 공간으로 몸을 날렸다.
“……!”
내부를 살펴본 천해선이 이를 빠득 갈았다.
‘늦었어……!’
이곳에 들어왔을 때와 달리, 마력의 기운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인과 비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바닥에 육철완이 널브러져 있었다.
“?”
그런데, 육철완의 상태가 이상하다.
바닥에 누워 정신을 잃은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온몸에 미세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저씨!”
한달음에 육철완의 곁으로 간 천해선은, 이내 차갑게 피가 식는 기분을 느꼈다.
육철완이 부릅뜬 눈에는 흰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마치 마인들처럼 말이다.
게다가 스스로 숨통을 조르기라도 하듯 한쪽 손으로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상태가 이상해.’
천해선은 육철완의 팔을 되돌리려 했다.
그러나 그의 손은 주술에 걸린 것처럼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천해선 정도의 힘이라면 능히 팔을 풀 수 있었겠지만, 지금의 육철완은 본연의 힘에 ‘무언가’가 더해진 듯한 느낌이었다.
“x발…….”
천해선이 욕설을 뱉은 뒤 메루스의 기운을 끌어 올렸다.
아무래도 마인들과 싸운 후유증 때문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부우웅.
황금빛 기운이 천해선의 어깨에서 손으로, 그리고 육철완의 경직된 팔로 이동을 시작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육철완의 손이 풀려 버렸다.
스륵.
“아저씨. 정신 차려 보세요.”
“케엑, 켁.”
생리적인 반응이 나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육철완의 동공은 뒤집혀 있었다.
샤르르…….
천해선이 메루스를 거두어들이고 치유력을 불어넣어 보았으나, 경련이 조금 잦아들 뿐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했다.
‘이러다가 죽겠어.’
몸의 떨림이 점점 심해지고, 입에서는 게거품이 일고 있었다.
평소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던 동네 아저씨가 완전히 악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치유력도 통하지 않고 메루스도 통하지 않는다.
천해선은 곧 품 안에서 다섯 가지 빛깔을 품은 꽃을 꺼내 들었다.
위중한 상황을 대비해 항상 가지고 다녔던 신의 치료제.
천해선이 ‘금영화’를 육철완의 이마에 눕혔다.
스르르…….
스스로 의지를 가지기라도 한 듯, 금영화가 잘게 부서지며 육철완의 머리 주변에 퍼진다.
‘다행이다. 효과가 있어.’
이제는 단순한 빛무리로 변해 버린 금영화가 서서히 육철완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손이나 발 같은 다른 신체는 가만 놔두는 걸 보니, 아무래도 육철완의 머릿속에 뭔가 특별한 기운이 스며든 것 같았다.
주륵.
육철완의 귀에서 검붉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피……? 아니야.’
그건 힘을 다한 마력이 액화한 물질이었다.
천해선은 검은 액체를 손가락으로 털어 버린 뒤 다시 한번 육철완의 몸을 흔들었다.
“아저씨. 일어나 보세요……!”
“으음…….”
과연 금영화의 효과는 탁월한 것이었다.
악귀 같았던 육철완의 얼굴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왔고, 사시나무 떨듯 경련하던 몸도 안정을 되찾았다.
“헌터님!!!!”
육철완이 무어라 말하기 전에, 이레률러의 나머지 헌터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마리아를 비롯한 멤버들은 현장을 돌아보며 말문을 잇지 못했다.
가히 쑥대밭이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주차장이 아수라장으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들은 육철완의 상태를 확인한 뒤 주차장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녔지만, 간절히 찾고 있는 대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마인도 없고 비수도 없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명백했지만, 마리아는 덜컥 겁이 나서 천해선에게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마인들이 데려간 거냐?”
모두가 묻고 싶었던 질문을 첸이 대신 해 주었다.
천해선은 육철완을 안전하게 눕힌 뒤 첸에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
모든 헌터들의 얼굴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인간계에 마인들을 셋이나 투입시켜 비수를 데려갈 줄이야.
나름대로 대비를 했다고는 하지만, 비수의 곁을 24시간 내내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뽀리가 비수 옆에 있던 건데…….’
갑자기 천해선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뽀리는?”
그제야 다른 동료들도 아차 싶은 얼굴로 주차장을 수색해보았고, 이내 비수의 차 안에서 기절한 뽀리를 발견해 냈다.
“이런…….”
마리아가 뽀리를 품에 안고 어마 무시한 양의 치유력을 쏟아부었다.
몸 곳곳에 박혀 있던 유리가 천천히 밀려 나가고, 여기저기 난 상처가 서서히 아물어 갔다.
-꾸.
머리를 흔들며 뽀리가 의식을 찾았다.
녀석은 불안한 눈을 이리저리 흔들더니, 이내 천해선의 가슴팍으로 날아와 안겼다.
-꾸…….
“…….”
목소리에는 물기가 다분하고, 자그마한 몸이 쉴 새 없이 들썩였다.
뽀리는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슬퍼하고 있었다.
비수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꾸…….
자그맣게 울음소리를 내는 뽀리를 보며 마리아의 눈이 그렁그렁해졌다.
나머지 동료들 또한 슬픔과 분노를 삭이느라 애쓰는 모습이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천해선이 뽀리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고는 자기 자신에게 다짐하듯, 작은 목소리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다시 데려올 거야. 이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