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26
정도마신 125화
이때, 중년 여인의 치맛자락을 잡고 있던 소년과 소녀가 상현 진인에게 울면서 말했다.
“안 돼요, 도사님! 저희 엄마를 죽이지 마요! 제발 살려 주세요!”
“허…….”
상현 진인은 가슴이 답답해지고 지금 이 모든 상황에 깊은 회의감(懷疑感)이 들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이냐?’
천하의 무당파 장문인이, 한 소년에게 자신을 먼저 죽이라는 말을 듣고 있었다.
그뿐인가?
태극신검이라 불리는 그가, 어린 소년 소녀에게 엄마를 죽이지 말아달라는 말을 듣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말이다.
다른 정도맹의 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장호와 중년 여인의 말을 듣고 영향을 받아, 너도나도 정도맹 고수들의 앞에 굳건히 서서 장벽을 만들었다.
그중 한 노파가 말했다.
“우리는 하북성에서 가장 가난한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병이 들어도 의원은커녕 몸에 좋은 죽 한 그릇 먹을 수 없지요. 그런 저희에게 사완악 공자님은 의원을 보내 주고, 몸이 나을 수 있을 만큼의 약재를 지원해 주었습니다. 이 늙은이의 손녀딸도 그렇게 살아났지요. 도사님들, 승려님들, 사 공자님은 좋은 사람입니다. 좋은 사람을 해치라고 옥황상제가 그럽니까, 부처님이 그럽니까? 나는 그런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
“사 공자님에게 사부들의 죄를 묻고 싶거든, 그냥 이 늙은이를 죽이시지요. 어차피 살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나는 사 공자님을 위해서라면 목숨이 아깝지 않습니다.”
사완악을 죽이려거든, 자신들을 먼저 죽여라.
정유문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천하에 내로라하는 고수들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이때, 사람들 너머로 사완악을 바라본 명문대파 고수들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사람들 뒤쪽에 숨어 그들을 바라보는 사완악.
그의 얼굴에는 통쾌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던 것이다.
사십오 인의 정도맹 고수들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공통적으로 스쳐 갔다.
‘사완악, 설마 이자는 이런 상황을 위해……!’
* * *
천의문의 회의실.
이군은 침중한 얼굴로 말했다.
“모든 것은 이런 상황을 위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는 비로소 사완악의 모든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사완악은 단순히 그를 악인으로 만들고자 하는 우리의 계획을 어긋나게 하기 위해 선행을 베풀었던 것이 아닙니다.”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노파, 칠군이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민초들을 방패로 삼기 위해…… 민심을 얻었다는 것인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고수들이라면, 그들에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을 테니…….”
“그리고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향한 복수이자 협박입니다.”
“복수? 협박? 그게 무슨 말인가?”
이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우리는 그를 태산으로 데려가 정도맹의 후기지수들을 죽이게 만들려고 했습니다. 그것이 실패한 후에도, 어떻게든 그가 정도맹의 고수들과 싸우며 손에 피를 묻히게 하려 했지요. 그래서 그는 같은 방식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칼을 겨눈다면, 죄 없는 민초들의 피를 봐야 할 거라는 뜻입니다. 만약 누군가 정말로 민초들을 죽인다면, 그때는 사완악이 그를 죽인다 해도 둘 중 누가 악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당연히 일반 백성을 죽인…… 하! 사완악! 그놈은 우리가 그를 악인으로 만들려고 했으니, 거꾸로 정도맹과 우리를 악으로 만들려고 했다는 것인가!”
이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반드시, 받은 대로 돌려준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칠군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를 위해 민초들까지 이용하여…… 지독하구나, 지독해.”
이때 한 여인의 음성이 들렸다.
“그게 왜 지독하죠?”
칠군이 고개를 돌렸다.
음성의 주인은 오군이었다.
“우리가 한 방식을 그대로 따라 했으니, 지독한 건 그가 아니라 우리가 아닌가요?”
“뭐라?”
오군은 말했다.
“저는 이번 일로 깨닫게 되었어요. 우리는…….”
그때였다.
“우리는 이 세상을 위할 뿐이지.”
오군은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호수처럼 깊은 눈빛의 일군이 있었다.
일군은 그녀의 시선을 무시하며 말했다.
“그래서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고수들은 어찌했지?”
이군이 그 질문에 답했다.
“그들은 철수했습니다. 처음에는 인근에서 기다렸다가, 사람들이 돌아가면 다시 사완악을 급습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떠난 후에도 정유문의 마당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잤다고 하는군요. 사흘이 지난 후에는 모두 돌아갔지만, 열 명씩 조를 짜서 보초를 서고 있습니다. 만약 정도맹의 고수들이 다 함께 간다면 사람들은 다시 몰려들 것이고, 소수로 은밀히 암습을 가하자니 사완악을 당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군이 물었다.
“그럼 무림공적인 사완악을 그냥 두고만 보기로 결정했소?”
이군이 난감한 표정으로 답했다.
“정도맹도 그것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대악인이라면 이를 가는 소림사의 원로들조차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현암 방장이 이번 일로 크게 화를 냈다고 합니다. 소림은 당분간 사완악의 일에 일절 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칠군이 고개를 흔들었다.
“온 천하가 힘을 합쳐도 한 사람을 어쩌지 못하는군…….”
그녀의 말에 회의실에는 절망감이 맴돌았다.
하지만 이때, 일군이 말했다.
“그는 확실히 수호성의 기운을 타고났다는 뜻이지요. 안 그런가요, 오군?”
오군이 일군을 바라봤고, 일군은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
“직접 만나 보고 오지 않았습니까? 만나 보니 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뭐, 뭐라고?”
칠군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를 만나고 왔어?”
오군은 그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차가워진 음성으로 일군에게 물었다.
“제 뒤를 밟으셨나요?”
“아니. 우연히 알게 되었을 뿐이지.”
“…….”
오군은 일군이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
“그는 강하고, 용감하고, 속을 헤아릴 수 없는 신기한 사람이었어요.”
회의실의 제자들은 모두 놀랐다.
오군이 다른 사람을 이렇게 칭찬하는 것은 존경하는 사부님을 제외하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일군의 눈에 잠시 뜨거운 기운이 맴돌았다 사라지며 그가 말했다.
“오군이 그렇게 말한다는 건, 그의 그릇이 정말 범상치 않다는 뜻이지요. 그 말은 즉…… 이제는 더 이상 그를 방관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때는 정말 돌이킬 수 없을 테니까요.”
그 말에 모두가, 심지어 언제나 강경한 계책을 내놓던 이군마저 놀란 얼굴로 일군을 바라보았다.
“그 말씀은…….”
일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천의문이 그의 운명을 거둬야겠습니다.”
* * *
회의가 끝나고 오군, 연비려는 홀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그녀의 머릿속에는 온통 사완악뿐이었다.
지금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사완악과 나누었던 대화가 되풀이되고 있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은 올바를 때가 있지만, 그것은 오로지 소의 의지에서 비롯되어야 하겠지.’
‘그리고 만약 내가 그들을 구해야 한다면……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아볼 거다.’
‘다른 방법이 없다면요?’
‘그건 모를 일이지. 다른 사람의 눈에는 없어도, 내가 그 방법을 찾을지도 모르니까.’
‘만약 당신이 그 다른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혹은 당신이 발견한 그 방법이 잘못되어 열 명, 백 명의 아이들이 죽게 된다면요?’
‘내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때는 저 하늘을 욕하면 되는 거야. 원래 남 탓이 편하거든.’
그런데 그때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
연비려의 뒤편에서, 한 줄기 부드럽고 자상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녀는 돌아보지 않아도 대사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냥, 생각이 복잡해서요.”
“그 사람 때문에?”
연비려는 비로소 몸을 돌렸다.
일군이 웃으며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해야지만 나를 바라보는군.”
연비려는 말했다.
“그는 좋은 사람이에요.”
일군은 다시 한번 웃었다.
“알고 있어. 그는 대단하고 좋은 사람으로 태어났으니까. 내가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도 사매는 알고 있잖아.”
“…….”
연비려는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사매의 질문은 언제나 어렵지만, 한 번 대답해 보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은 올바를 때가 있지만, 그것은 오로지 소의 의지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일군은 조금 의외라는 듯 눈에 이채를 띠며 물었다.
“사매의 생각인가?”
“네. 한 번 생각해 봤어요.”
일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 때문이겠군. 사매는 마음이 여리니 말이야.”
그는 하늘을 보며 말을 이었다.
“듣기 좋은 말이라고 생각해.”
이번에는 연비려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
“듣기 좋은 말이요?”
일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다면, 이상적이라는 뜻이지.”
“…….”
“하지만, 세상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으니까. 절대적이고 어쩔 수 없는 것. 그런 것들이 있으니까.”
“……다른 방법을 찾을 수도 있잖아요?”
일군은 씁쓸한 미소로 말했다.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절대적이고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그렇군요.”
“바람이 차군. 이제 그만 들어가지.”
일군은 그렇게 말하고 뒤를 돌아 거처로 돌아갔다.
연비려는 그 뒷모습이 어쩐지 슬프게 느껴져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생각했다.
‘사형과 그는…… 참 다른 사람이군요.’
* * *
사천회(邪天會).
정파 무림에 정도맹이 있다면, 사파 무림에는 사천회가 있었다.
한때는 정도맹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사파 무림의 연합.
그 사천회의 회주이자, 전대에는 천하 칠대고수로, 현재는 천하 팔대고수 중 한 사람으로 불리는 사야권왕(邪夜拳王) 마양은 눈앞에 나타난 사내를 보며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지금…… 뭐라고 했나?”
사내는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사천회주 마양. 내 수하가 되라고 했다.”
“하하…… 하하하하!”
사천회주 마양은 정말 오랜만에,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정말이지, 이렇게 웃긴 녀석은 수십 년 만에 만나는 것 같았다.
“상식을 지나치게 넘어 버리니 오히려 흥미가 생기는군. 내가 누군지 알면서도 감히 그딴 말을 지껄인단 말이지?”
마양은 그의 흰 수염을 쓰다듬고는 말했다.
“말이라도 해 봐라. 네놈이 뭔데 나보고 너의 수하가 되라는 말이냐?”
사내는 사천회주 마양을 가만히 응시하다 말했다.
“나는 마교의 오대 교주, 천마이니라.”
“뭐? 마교? 천마?”
마양은 이 얼토당토않은 말을 늘어놓는 사내의 정체가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커헉!”
마양은 수십 년 만에 웃긴 녀석을 만난 것처럼, 수십 년 만에 원초적인 비명을 내뿜었다.
사내의 오른손이 다섯 손가락 그대로 마양의 살갗을 뚫고 갈비뼈 사이를 파고들어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는 손가락을 굽히며 힘껏 잡아당겼다.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마양의 입에서 처절한 비명이 튀어나왔다.
“끄아악! 끄아아아악!”
사내가 손을 털며 말했다.
“절백마조(絶魄魔爪). 마교의 무공 중 하나다. 처음 써 보는 것인데 나쁘지 않군. 어떤가? 이제 수하가 될 마음이 생기는가?”
“이, 이 미친 새끼……!”
마양은 이를 악물며 전광석화와 같이 일권을 내뻗었다.
지금의 마양을 있게 해 준 성명절기, 사야신권이 권풍을 일으키며 사내의 가슴에 구멍을 뚫으며 관통했다.
아니, 정확히는 사내가 남긴 잔상을 뚫고 지나갔다.
“……!”
마양은 가슴이 섬뜩해짐을 느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사내가 무심한 얼굴로 마양을 바라보고 있었고, 사내의 전신에서는 마치 어둠을 압축시켜 놓은 듯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너, 너는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