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56
정도마신 155화
원독마가(怨毒魔家).
강호에 독공을 다루는 문파가 사천당문이 있다면, 마교에는 원독마가가 있었다.
물론 같은 계열의 무공이라 해도, 두 가문이 독을 사용하는 방식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사천당문은 극독을 배합하고 개발하여 그것을 음식이나 공기 중에 뿌려 상대를 중독시키는 ‘하독술(下毒術)’을 수련하는 가문이었다.
반면, 원독마가는 극독을 스스로 음독(飮毒)한 뒤, 마공을 운기하여 그 독의 기운으로 내공을 쌓아 ‘독인(毒人)’이 되는 것을 추구했다.
이렇듯 판이하게 다른 방식으로 독공을 수련하는 두 가문이지만, 하나의 공통점도 있었다.
최강은 아니지만 최악의 상대라는 것이다.
무공으로 따지면 사천당문보다 구파일방이나 다른 오대세가의 무공이 더 뛰어났다.
원독마가도 마찬가지.
그들은 서로 경쟁하는 칠대마가 사이에서 내공이나 무공의 초식적인 면으로는 가장 약하다고 평가 받는 가문이었다.
하지만 강호에서 가장 기피하는 대상은 사천당문이었고, 패도적이고 호전적인 성격의 마교인들조차 원독마가와는 싸움을 피했다.
그들이 지닌 독의 무서움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설령 더 강한 무공으로 싸움에서 이길지라도, 독에 당하여 목숨을 잃거나 불구가 되는 것을 원하는 무인은 아무도 없었다.
마교에서 원독마가를 보내 사천당문을 급습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그들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중 소림사와 무당파 다음으로 사천당문을 경계했다.
하지만 독을 흡입해 마공을 쌓는 원독마가의 무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사천당문의 하독술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반면, 사천당문 입장에서는 그들의 무공에 중독될 수 있으니 절대 이길 수가 없는 상성이었다.
또한, 원독마가의 가주 응계종은 마교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자였다.
그는 숨결마저 독성을 지닌 완벽한 독인이라는 마독지체를 이루었고, 성격 또한 안하무인이라 교주를 제외하면 호법들조차 그를 제어하기 어려웠다.
그런 천하의 응계종일진대…….
그는 현재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현종을 보고는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당황스러운 얼굴로 두 눈을 끔뻑일 수밖에 없었다.
“정체가 무엇이냐는 소리는 내가 해야 할 말이 아니오?”
현종의 되물음에 응계종은 상대의 옷차림을 찬찬히 살폈다.
회색 승복에 어깨부터 길게 걸친 붉은 가사.
이 독특한 승복 차림은 매우 상징적이어서 마교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었다.
“소림사…….”
현종은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나는 소림사의 현종이라 하오.”
현종은 나지막한 음성으로 말하였으나, 두 눈에서는 혁혁한 안광이 흘러나와 응계종에게 경고를 하는 듯했다.
응계종은 그 눈빛에 움찔하더니, 중얼거렸다.
“소림사의 현종이라고…….”
응계종은 애써 혼란스러움을 감추며 물었다.
“당신은 내가 누군지 모르시오?”
순간, 원독마가의 문도들은 가주의 태도에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교내에서는 사대호법이 찾아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안하무인의 가주였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나 앞을 가로막은 젊은 승려에게 이토록 조심스러운 말투라니?
현종은 그런 응계종을 가만히 바라보다 말했다.
“사악한 마교도들을 이끌고 나타난 자라는 것은 알겠소. 아마도 그 칠대마가라는 가문들 중 한 곳의 수장이겠지.”
응계종은 문득 고개를 들어 장내를 살펴보았다.
그가 거느리는 오십 명의 원독마가 무인들 중 열 명이 목숨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반면 사천당가의 무인은 두셋 정도가 중상을 입은 정도였다.
이것은 정말 예상외의 일이었다.
독에 대한 내성을 지닌 원독마가의 무인들이 사천당가의 무인들에게 일방적으로 밀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음? 저건!’
상황을 바라보던 응계종은 사천당문 무인들에게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입에 조약돌 크기의 푸른 구슬을 물고 있었던 것이다.
‘피독주?’
피독주란 독성을 막아주는 돌을 뜻했다.
물론 독을 다루는 사천당문이니 피독주가 있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원독마가 무공의 독성은 웬만한 피독주로는 막을 수 없기에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인데…….
‘저런 상급의 피독주를 한두 개도 아니고 수십 개를 갖고 있었다는 건가? 이대로라면 멸문하는 것은 사천당문이 아니라 우리 원독마가겠구나. 게다가 소림사의 고수들까지 합세하였으니.’
장내에는 사천당문의 무인들 외에, 현종과 같은 옷을 입고 있는 노승이 다섯 명이나 있었다.
그들이 소림사의 원로들이라는 것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있었다.
응계종은 다시 고개를 돌려 현종을 바라보았다.
원래라면 빠르게 이 젊은 중놈을 쓰러뜨리고 자신이 나서서 사천당문을 멸문시켜야 했다.
그것이 교주의 명령이었고, 응계종은 충분히 그럴 자신이 있었다.
이때 현종의 몸에서 금빛 광채가 한층 더 강렬해졌다.
현종은 응계종이 내공을 일으키고 있음을 눈치챈 것이었다.
마교에서 손꼽히는 초절정의 고수가 독공까지 익혔다면 아무리 현종이라고 해도 상대를 가볍게 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기운을 끌어 올린 응계종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원독마가! 모두 회군한다!”
그 말에 가장 놀란 것은 원독마가의 무인들이었다.
회군이라니? 지금 이곳에서 도망가겠다는 말인가?
고작 사천당문을 상대로 등을 돌리고 도망치라니?
심지어 이번 기습이 교주의 명이라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있었다.
사천당문이 아니라 정도맹 전체와 싸우라고 해도 교주의 명이라면 목숨을 바쳐야 했다.
하지만 그들의 가주, 응계종은 이미 경신술을 펼쳐 사천당문의 담장을 넘어가고 있었다.
자신들의 독공이 전혀 통하지 않는 피독주까지 준비한 사천당문을 상대로, 가주가 없이 싸우는 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다.
‘혹시 우리가 모르는 어떤 작전이 있는 것일까?’
원독마가의 무인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황급히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런……!”
현종은 응계종을 놓친 것에 대해 잠시 후회했다.
설마 마교 칠대가문의 가주이자 초절정의 고수인 상대가 이렇게 쉽게 도망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에 미처 대응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저들을 이대로 보낸다면 훗날 더 큰 피해를 입을 것이다.’
현종은 황급히 사천당가의 가주, 당효붕에게 전음을 날렸다.
-가주님과 다른 분들은 이곳을 지켜 주십시오. 혹시 저들의 함정일지 모르니 저 혼자 추격해 보겠습니다.
당효붕은 현종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알겠다는 뜻.
그 순간, 현종의 신형이 응계종을 쫓아 날아올랐다.
* * *
그날 밤.
사천당가의 뒷마당에서 한 승려와 아름다운 여인이 서 있었다.
바로 현종과 설린이었다.
현종은 설린에게 사천당문으로 함께 가자고 제안했었고, 설린은 그를 따라온 것이었다.
설린은 쉽게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그 원독마가의 가주 같은 사람이 일곱 명이나 있고, 그보다 더 높은 직분의 호법들도 있다고 했었죠? 마교는 정말 무서운 집단이군요.”
“제가 부족한 탓이지요.”
현종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응계종은 서쪽으로 도망을 쳤고, 원독마가의 무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동쪽으로 도망을 쳤다.
현종은 잠시 고민하다 가주인 응계종을 잡는 것이 중요했기에 서쪽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소림사의 신법을 극성으로 펼쳤음에도 끝내 그를 잡지 못했다.
응계종이 도망친 것과 현종이 따라가기 시작한 시간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그의 경신술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니까.
설린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들의 교주라는 사람은 얼마나 대단한 무공을 지니고 있을지…… 솔직히 두려워요.”
“완악이 다칠까 봐 걱정되십니까?”
“네?”
현종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내뱉고는 황급히 다시 말했다.
“제 말은……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와 완악, 그리고 강호의 고수들이 힘을 합치면 충분히 그들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설린은 현종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현종이 다급히 말했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설린은 잠시 주저하다가 말했다.
“사천당문에 함께 오자고 하셨을 때, 하셨던 말씀 기억나시지요?”
현종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 마음이 정리되었다고 했지요. 이제 예전처럼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네. 그래서 이 야밤중에 잠시 나와 달라는 현종 스님의 편지를 보고도 특별히 다른 할 말이 있는 줄 알고 나왔던 거예요. 하지만 아직은 저희 사이가 조금 불편한 것 같네요.”
그 순간이었다.
당황해하던 현종이 의아한 얼굴로 설린을 바라봤다.
“예전처럼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다는 건 진심으로 드린 말씀입니다. 그런데…… 잠시만요. 제가 나와 달라고 편지를 썼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러자 설린 역시 의아한 얼굴로 현종을 쳐다봤다.
“오늘 밤, 긴히 할 말이 있으니 자정에 사천당가의 뒷마당으로 나와 달라는 서찰을 제 처소에 남겨 놓으셨잖아요.”
“예? 제가 말입니까?”
설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품에서 하나의 서찰을 꺼냈다.
“현종 스님께서 쓰신 서찰이 아니라고요?”
설린은 과거 정도맹에 갇혀 지낼 때, 현종과 편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기에 그의 필체를 잘 알고 있었다.
현종은 설린에게 빠르게 서찰을 건네받아 펼쳤다.
-설린 문주님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자정에 사천당가의 뒷마당으로 나와 주십시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현종.
현종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것은 틀림없이, 현종 자신의 필체였다.
“이, 이상하군요. 저는 이 서찰을 쓴 적이 없습니다. 정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현종 스님은 이곳에서 저를 기다리고 계셨지요?”
“저는 그저 생각할 것이 있어 달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설린의 표정이 굳어졌다.
현종의 말을 의심해서가 아니었다.
현종은 스님의 신분으로도 연모의 마음을 당당하게 밝히는 사람이었다.
이런 것으로 거짓말을 할 사람이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서찰은 누가 써서 그녀의 처소에 두었다는 말인가?
그리고 어떻게 이 서찰은 현종의 필체로 쓰여 있는 것일까?
무엇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설린과 현종은 본능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그때였다.
“이곳입니다.”
어떤 사내의 음성과 함께 한 사람이 하늘에서 떨어지듯 나타났다.
깜짝 놀란 현종의 몸에서 금빛 광채가 밤하늘을 밝히듯 일어났다.
세상에 누가 있어 현종에게 기척도 들키지 않고 이렇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일까?
사내는 흰 얼굴에 학자처럼 차분한 인상을 지닌 중년인이었다.
현종은 설린을 보호하듯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서 그녀를 등 뒤로 서게 하며 물었다.
“누구시오?”
하지만 중년인은 현종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고개를 살짝 숙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번쩍!
마치 온 세상을 밝히는 듯한 번갯불이 현종의 눈앞에서 번쩍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현종과 설린은 그 순간 정신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