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58
정도마신 157화
“정식으로 인사하겠소. 나는 마교의 오대 교주요.”
마교의 오대 교주!
이 사내가 정녕 혜성같이 나타나 오백 년 만에 탄생한 마교의 교주란 말인가?
설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날…… 만나 보고 싶었다고요?”
사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로가 함께 마주 보고 싶었소, 설린 문주. 당신이 나를 본 적은 있지만, 내가 당신을 보는 것은 처음이니 말이오.”
설린은 사내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내는 그녀의 마음을 읽은 듯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자신의 왼쪽 뺨을 설린의 오른쪽 뺨에 갖다 대듯 가까이하며 속삭였다.
“나를 언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으시오? 그때 당신이 분명히 내게 말하지 않았소? 나는…….”
사내의 음성이 그녀의 귓가에만 들릴 정도로 작아졌다.
그의 말을 들은 설린의 눈이 크게 떠졌다.
“그, 그게 당신이었다는 건가요?”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는 정말 반가웠소. 나를 알아봐 준 건 오직 당신뿐이었으니 말이오. 아, 그리고 당신에게 매우 고마움을 느끼고 있소. 당신이 아니었다면, 내가 강호로 나오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테니까.”
설린은 충격을 먹은 듯 멍하니 서 있었다.
마교의 오대 교주는 말했다.
“사실 당신을 이곳에 데려오는 건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었소. 사완악은 물론, 현종도 가볍게 볼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궁금했소. 어떤 여인이기에 현종의 마음을 그토록 흔들어 놓았는지. 그런데…….”
“……!”
오대 교주는 돌연 그녀에게 다가가 양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이유가 있었군.”
오대 교주는 설린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아름답고…… 매력 있는 여인이야.”
설린은 몸을 비틀어 그의 손을 떨처내려 했지만 아무 소용 없었다.
그의 손은 마치 땅에 깊게 뿌리내린 나무처럼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강하게 그녀의 어깨를 조여 왔다.
설린은 마치 거미줄에 걸린 듯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어리고 나약한 소녀 문주가 아니었다.
설린은 사완악을 만난 이후로 많은 일을 겪으며 심적으로 단단해졌다.
그녀는 차분하고 냉정한 얼굴로 마교의 교주를 가만히 노려봤다.
그 모습에 오대 교주의 눈에서는 이채가 흘렀다.
“설린 문주. 나는 원래 당신을 취하고 죽일 생각이었소. 당신이 죽는다면 사완악과 현종은 크게 좌절하고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오. 그 두 사람이 아니라면 천하에서 나를 막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말이오.”
설린은 그의 무서운 말에도 오히려 조소를 터뜨렸다.
“확실히 당신은 그분들과는 다르군요. 사완악 공자님은 가벼운 듯 보여도 품격이 있고, 현종 스님은…… 누구보다 대장부 같은 분이고, 존경스러운 분이죠. 그에 비해 당신은 무공은 강할지 몰라도 저질스럽고 사내답지도 못하네요.”
순간, 오대 교주의 전신에서 마기가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감히……!”
“컥!”
어느새 오대 교주의 오른손이 그녀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설린은 숨이 막히고 본능적인 두려움이 마음을 덮쳐왔으나, 오히려 눈에 힘을 주고 그를 노려봤다.
‘이 사람에게 어떤 일을 당할지언정,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겠다.’
그것은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일까?
스르르.
오대 교주는 손에서 힘을 빼고는 그녀를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오히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닌가?
오대 교주는 기이한 욕망이 담긴 눈빛으로 설린을 위아래로 살펴본 후 말했다.
“하지만 생각이 바뀌었소, 설린 문주. 나는 당신을 내 곁에 두어야겠소.”
* * *
‘허를 찔렸군.’
사완악은 제갈세가로 향하며 생각했다.
그의 옆에는 연비려가 함께 있었고, 뒤로는 천하 팔대고수 중 한 사람인 개방의 용두방주 방욱과 백여 명에 이르는 개방 고수들이 따랐고, 사천당가 제일의 고수인 독왕(毒王) 당온추와 사천당가의 장로 세 명도 있었다.
남궁세가에는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지원을 갔던 사완악이 이토록 많은 인원과 함께 이동하는 이유는 연비려가 가져온 정보 때문이었다.
‘마교도의 숫자가 백 명이 넘는다고 했어요.’
남궁세가나 사천당가를 침입한 마교도의 숫자는 대략 사오십 명이었다.
즉, 칠대마가는 한 가문당 그 정도의 무인이 존재한다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백 명이 넘는 숫자라면?
적어도 두 가문, 많으면 세 가문까지도 합공을 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다른 곳도 아닌, 제갈세가에 말이지.’
정도맹의 회의에서, 마교의 이러한 기습을 예상한 사람은 현종이었다.
현종은 당시 이런 말을 했었다.
‘구대문파는 산속 깊은 곳에 있어 많은 숫자가 공격을 감행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소림사를 먼저 공격한 것은 강호인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 위해서이니 논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림사를 공격한 것도 칠대마가가 아니라 사대악인이었습니다. 사대악인은 소수이고 초절정의 고수들이기에 오히려 그런 장소가 더 유리했을지 모르니까요. 즉, 마교의 교주, 혹은 그 수뇌부는 단순한 욕망으로 강호를 침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힘이 쓸데없이 소모되는 것을 피하고 있습니다. 즉,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아마도 천하의 진정한 주인이 되고 싶은 것이겠지요.’
사람들은 그 말에 모두 놀람과 두려움을 느꼈다.
과거, 오백 년 전의 마교는 전혀 달랐다.
그들은 오로지 본능적인 욕망에 충실했고, 강하기는 하지만 싸움의 구도는 매우 단순했다.
그렇기에 정파 무림은 치밀한 전략과 전술, 그리고 혜성같이 나타난 영웅들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당금 무림에 나타난 마교는?
오히려 정파인들의 머리 위에서 놀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들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단번에 소림사에 타격을 입히고 모용세가를 멸문시켰다.
정파 무림은 그러한 낌새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만약 사완악과 현종이 아니었다면, 소림사 역시 강호에서 사라져 버렸을 것이고 강호는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을 것이다.
‘개방은 여러 곳에 퍼져 있기에 한 번에 궤멸시키기에는 적합한 대상이 아니지요. 그렇기에 제 생각에 마교는 오대세가를 먼저 무너뜨릴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마접단이라는 정보 조직이 있어 강호 사정에 밝을 것입니다. 가주가 중상을 입고 고수들이 부상을 당한 남궁세가가 그들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그다음은 사천당가입니다. 사천당가는 뛰어난 독공과 암기술을 지니고 있기에, 마교의 입장에서도 껄끄러운 존재일 것입니다. 마지막은 하북팽가입니다. 하지만 하북팽가는 비교적 우선순위에는 없을 것입니다. 이곳 정도맹에서도 멀지 않은 위치에 있으니까요. 하지만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는 없습니다.’
현종이 그렇게 말했을 때 누군가 물었다.
‘제갈세가는 어떻소?’
그에 대해 현종은 제갈세가의 가주 제갈중용에게 물었다.
‘제갈세가에는 침입자를 대비한 기관진식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까?’
‘물론이네.’
‘예. 그래서 제 생각에 제갈세가가 공격당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제갈세가는 적은 인원으로 많은 인원을 상대할 수 있고, 하수가 고수를 이길 수 있는 요새와 같은 곳입니다. 넓은 전장에서 전투를 한다면 다른 오대세가보다 약할지 모르지만, 침공하는 적을 막아 내는 수성은 사천당가보다 뛰어날 것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불필요한 희생을 기피하는 마교의 입장에서는 제갈세가를 굳이 건들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현종의 혜안이 매우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현종은 가장 위급해 보이는 남궁세가로 사완악을 보냈고, 사천당가에는 자신이 소림사의 고수들과 함께 갔다. 하북팽가로는 팔대고수 중 한 사람인 무당파의 장문인, 태극신검 상현 진인과 다른 구파의 고수들이 모두 집결했다.
그리고 이러한 예상은 그대로 적중하여 마교의 귀검마가는 전멸했고, 원독마가는 절반에 가까운 문도를 잃으며 도망쳤다.
다만 한 가지, 현종의 생각을 비웃듯 무너뜨린 것이 바로 제갈세가에 대한 침공이었다.
사완악은 딱히 그 이유를 추측할 수가 없었다.
현종이 돌려 말했지만, 제갈세가는 한마디로 무공만으로 따지면 다른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 보다 한참 부족했다.
즉, 내버려둬 봤자 아무 위험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면, 침공하기에는 피해가 큰, 비효율적인 곳.
‘심지어 남궁세가나 사천당가보다 더 많은 전력을 보내다니. 어째서일까?’
사완악이 이 같은 생각에 빠져 있을 때, 연비려의 걱정 섞인 음성이 들려왔다.
“사형들이 버틸 수 있을까요?”
“글쎄.”
사완악은 굳이 길게 대답하지는 않았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천의문이 현재 제갈세가에 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제갈세가에 있는 이유는, 천의문의 진법과 제갈세가의 기관진식에 대한 지식을 합쳐 마교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진법들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사완악은 천기자와 천의문에 대한 분노가 여전했지만, 그들의 능력까지 폄하하지는 않았다.
천의문은 확실히 여러 방면에서 뛰어났고, 특히 오래전부터 강호의 위기나 마교와 같은 자들에 대항하기 위해 쌓아 둔 대처 능력들이 많았다.
제갈세가의 기관진식에 그들까지 있다면, 쉽게 무너지지는 않으리라.
‘그리고 그들이 마교의 손에 죽는다 해도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마교의 손에 죽어야 한다.
그것이 자신에게 지은 죄를 직접 묻지 않는 조건이었으니까.
하지만 사완악은 그 마음속의 말을 굳이 내뱉지는 않았다.
연비려는 사완악의 분노에 공감했고, 사부 천기자의 계획 때문에 마음고생을 심하게 한 어머니를 생각하면 슬픔이 치밀어 올랐다.
또한 그녀 스스로도 큰 충격을 받았기에, 사완악에게 그들을 용서해 달라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연비려는 여전히 사형제에 대한 정이 남아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표정에는 간절함과 조급함이 배어 있었다.
사완악은 그 모습을 보면서, 한때 어머니라 불렀던 채보령이 떠올랐고, 할아버지와 같았던 구득소가 떠올랐다.
어쩌면 자신은 그런 연비려를 누구보다 잘 이해할지도 모른다.
사대악인과 사완악.
그들의 관계도 그와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완악은 연비려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들이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 걱정해도 달라질 것은 없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최대한 빨리 그곳에 도착하는 것이다. 내가 먼저 가겠다.”
사완악은 그렇게 말한 뒤, 뒤에서 따라오는 개방의 방주, 신주대일랑 방욱에게 전음을 날렸다.
-당신들은 이곳에서 잠시 운기조식을 하고 오시오.
쉬지 않고 이동한다면 더 빠르게 도착할 수는 있겠지만, 그만큼 내공의 소모가 심할 수밖에 없다. 기껏 제갈세가에 당도한다 해도, 기진맥진하여 제대로 된 싸움을 할 수 없다면 매우 어리석은 일이었다.
-당신은 쉬지 않겠다는 뜻이오?
사완악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다시 한번 전음을 날렸다.
-나는 당신들이랑 다르니까.
-……
-그럼 이만.
그 순간.
신주대일랑 방욱과 다른 수십 명의 고수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사완악이 돌연 땅을 강하게 박차더니 승광신법을 펼치며 그야말로 한 줄기 질풍이 되어 날아갔기 때문이었다.
방욱 역시 천하 팔대고수 중 한 사람이고 개방의 경공술에 큰 자부심이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서 사완악을 보고 나니 자신은 그저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저 사람이 강호를 위해 마음을 돌린 것은…… 그야말로 하늘의 도움이구나.’
방욱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외쳤다.
“모두 멈추시오. 우리는 이곳에서 한 시진가량 운기조식을 하고 다시 출발하겠소.”
그 말에 모든 무인들이 신법을 멈추었을 때.
사완악은 이미 그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