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159
정도마신 158화
호북성 북부의 융중산(隆中山).
과거 제갈공명은 유비를 만나기 전, 융중산에 초막을 짓고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중원의 인재들과 교류를 맺으며 명성을 쌓았다.
훗날 제갈공명의 후손들은 그가 기거했던 이 융중산의 앞에 장원을 짓고 세가를 이루었으니, 그것이 오늘날의 제갈세가였다.
제갈세가는 오대세가 중 선천적인 골격이나 무공의 깊이로 따지면 상당히 떨어지는 편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별명은 신기제갈(神機諸葛).
이들은 제갈공명의 후손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을 만큼 오성이 뛰어나 무림의 크고 작은 일들을 현명하게 해결하는 재주가 있었다.
또한 이들은 제갈무후가 남겼다는 수많은 자료들로 학문을 익히고 심도 깊은 연구를 대대로 거듭하여 기문진법(奇門陣法)과 역리(易理), 토목기관지술(土木機關之術)에 관해서는 중원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깊은 조예를 지니게 된 가문이었다.
“과연 제갈세가의 진법은 남다르군요. 사부님의 말씀은 겸손이 아니었습니다.”
천의문의 이군, 백신우는 제갈세가에 도착하여 진심으로 감탄을 터뜨렸다.
그는 사부 천기자에게 오로지 진법만을 배웠고, 천의문의 진법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자부해 왔었다. 그러나 제갈세가에 도착하여 세가 내에 깔린 진법을 마주하는 순간, 생전에 사부가 해 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제갈세가의 기문진법은 천의문의 것과는 궤를 달리하면서도 그 위력은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또한 정교한 솜씨로 만들어 내는 기관진식은 그야말로 일품이니라.’
물론 감탄한 것은 백신우만이 아니었다.
제갈세가 역시 백신우가 지닌 진법의 지식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그들의 눈은 반짝였다.
천의문이 이곳에 온 것은 정도맹 회의에서 결정된 사안이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백신우와 제갈세가의 사람들은 서로가 지닌 지식을 교류하며 더없는 기쁨을 만끽했다.
그렇게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마교와 맞설 수 있는 진법들을 연구하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빠른 진척을 보이고 있었는데…….
쾅!
천지를 뒤흔드는 폭음.
“저, 저들이 폭약을 쓰기 시작했어요.”
천의문의 팔군, 구휘는 발을 동동 구르며 말했다.
제갈세가의 장로, 제갈천의 표정은 더없이 어두워졌다.
“도대체 어디서 저런 엄청난 위력의 폭약이…… 아직은 버티고 있지만 만약 폭약이 더 있다면 장원 밖의 진법은 무너지고 말 것이오.”
그때였다.
꽈앙!
“…….”
꽈앙!
천의문주 백신형은 다급하게 말했다.
“지하에 비밀 통로가 있다고 하셨지요? 제갈세가의 분들은 그곳으로 빠져나가십시오. 이곳은 저희 천의문이 어떻게든 막아 보겠습니다.”
그러자 한 노인이 노기 가득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노인은 새하얀 백발에 이마에는 주름이 깊었으나, 단정히 정돈된 머리칼과 옷차림, 그리고 깊고 맑은 눈빛은 한 명의 대학자를 보는 듯한 인상이었다.
“칠절(七絶) 노야…….”
노인은 제갈세가의 전대 고수이자, 절정에 이른 재주가 일곱 가지나 있다 하여 칠절서생(七絶絶書生)으로 불렸던 제갈공이었다.
“지금 우리보고 세가를 버리고 도망치라는 건가? 그것도 자네들을 희생양 삼아서?”
백신형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마교도의 숫자가 백이 넘습니다. 아무리 제갈세가라 해도 저들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빠져나간다면 정도맹과 힘을 합쳐 다시 저들과 싸울 수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제갈공은 헛웃음을 터뜨리고는 백신형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자네들이 도망가게.”
“예?”
“과거 제갈무후께서 국운(國運)이 다한 것을 모르고 끝까지 충성하였겠는가?”
“…….”
“물론 자네의 말도 일리가 있네. 하지만 때로는 피할 수 없는 싸움도 있는 법이지. 오히려 자네들이 있기에 우리의 싸움이 어리석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겠군. 우리가 저들을 막는 동안 지하 통로로 도망치게.”
제갈세가의 사람들은 제갈공의 말에 깊이 감명받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백신형은 그들이 뜻을 꺾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놔둘 수는 없었다.
‘이곳에서 제갈세가가 멸문하는 것은 큰 손실이다. 그들의 기문진법은 앞으로 마교를 상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할 테니…….’
백신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함께 시간을 끌어 보지요.”
제갈공의 눈에서 이채가 흘렀다.
백신형의 말에 어떤 희망이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시간을 끈다고?”
“천의문에서 가장 경공이 뛰어난 친구를 정도맹으로 보냈습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오래 걸리겠지만…… 그 사람이라면 다를 것입니다.”
“그 사람?”
“사완악 소협. 그가 이곳에 도착한다면…… 저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제갈공은 놀랍다는 듯 백신형을 바라봤다.
그 역시 사완악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도맹에서 이곳까지 순식간에 도착하는 것은 둘째 치고, 그 한 명만으로 저 마교도들을 상대할 수 있다는 말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의 무공이 그토록 대단한가?”
“그가 없다면 강호는 마교를 막을 수 없습니다.”
“허어…….”
그때였다.
꽈앙!
마지막 폭발음이 울리며 제갈세가 전체에 약한 강도의 지진이 일어났다.
제갈세가의 장로가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진법이……!”
뒷말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결국 제갈세가의 장원을 보호하고 있던 진법이 깨져 버린 것이다.
제갈공의 표정에 비장함이 일어났다.
“좋네. 한 번 버텨보세. 제갈세가는…… 그리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걸세.”
* * *
창영마가(槍影魔家).
마교의 십대마공 중 하나인 창영마공은 이름 그대로 창술 무공이었다.
창영마공을 극성으로 익히면 창의 그림자가 하늘을 뒤덮어 어둡게 만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극쾌의 창술이었다.
귀검마가의 모든 무인들이 오로지 검술을 익히는 것처럼, 창영마가의 무인들은 모두 창영마공에서 파생된 창술을 익혔다.
창술은 전장에서 가장 유용하게 쓰이는 병기인 것처럼, 창영마가는 개개인보다 단체를 이루었을 때 훨씬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가문이었다.
혈천마가(血天魔家).
혈천마공은 상당히 특이한 무공이었다.
혈천마공을 익히면 단전이 파괴되어 그 기능을 사용할 수 없는 신체가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공을 익힐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혈천마공은 온몸에 퍼져 있는 혈관과 근육에 내공을 쌓는다.
그것은 곧 신체를 극한으로 발달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즉, 혈천마가의 무인들은 내공이 아닌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외공을 익히는 집단이었다.
그들은 병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신체 모든 부위를 무기로 삼았다.
순수한 파괴력만을 놓고 본다면, 혈천마가는 혼원마가와 더불어 칠대마가 중 수위를 다투는 가문이었다.
진암마가(眞暗魔家).
진정한 어둠.
그 속에서 날아오는 하나의 비수.
진암마공은 암살자의 무공이었다.
혹독한 훈련을 통해 완성되는 진암마가의 은신술은 눈앞에 바로 있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밀했다.
진암마가의 무인들이 어떤 암기를 쓰고, 어떤 수법으로 사람을 죽이는지는 같은 칠대마가의 마교인들조차 알지 못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하나.
진암마가는 마교에서 규율을 어긴 고수를 처단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지금까지 진암마가의 표적이 되어 살아남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었다.
꽈앙!
네 번째 폭약이 터지며 마침내 제갈세가의 진법이 깨졌다.
적색의 무복을 입은 혈천마가의 무인들은 굶주린 맹수들과 같이 세가 내부로 뛰어들었고, 그 뒤를 녹색 무복의 창영마대가 장창을 세우고 따라갔으며, 흑색 무복의 진암마가는 어둠에 묻혀 사라졌다.
벌떼와 같이 달려드는 그들의 모습은 가히 공포 그 자체.
제갈세가가 아니라 중원의 어떤 문파라도 한순간에 무너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때.
천의문의 이군, 백신우의 음성이 나직하게 읊조려졌다.
“쇄지령망파진(鎖地靈網波陣).”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제갈세가 장원의 땅 전체가 마치 파도처럼 물결치기 시작하며, 마교도들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것이었다.
반면, 천의문의 제자들과 제갈세가의 사람들은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 듯 똑바로 서 있었다.
“또 진법인가? 지긋지긋하군.”
창영마가의 가주, 야율고는 불쾌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는 물결치는 땅 위에서도 전혀 흔들림 없이 지나칠 정도로 꼿꼿하게 서 있었는데, 자세히 보면 그의 발바닥이 지면에 닿지 않고 공중에 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절정의 고수이기에 가능한 기예.
하지만 창영마가의 일반 무인들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재주이기에, 그들은 제자리에서 허우적거리며 중심을 잡느라 기운을 소모하고 있었다.
“클클, 모일수록 강하다는 창영마가가 물에 빠진 생쥐 꼴이로군.”
쇠를 긁는 듯한 웃음소리에 야율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에게 이런 무례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마교 전체에서도 얼마 되지 않았다.
바로 혈천마가의 가주, 진마광이었다.
“시끄럽다. 혈천마가라고 해도 다를 것은…….”
야율고는 문득 말을 멈추었다.
처음에는 창영마가와 마찬가지로 비틀거리며 중심을 잡지 못하던 혈천마가의 무인들이 어느새 흔들리는 지면을 순간순간 땅으로 박차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혈천마가의 무공이 창영마가보다 뛰어나서가 아니라, 신체를 극한으로 단련하는 혈천마가의 특성 때문이었다.
진마광이 앙천대소를 터뜨리며 말했다.
“하하하. 이봐, 야율고. 우리 혈천마가가 겨우 이딴 진법에 전전긍긍하는 한심한 가문으로 보였나?”
야율고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그것은 곧 창영마가에게 한심한 가문이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진마광. 한 번 해 보자는 것이냐?”
“크크. 그것도 나쁘지 않지. 하지만 교주님의 명이 우선이다. 창영마가는 뒤에서 구경이나 하고 있거라. 저놈들은 우리 혈천마가가 죽일 테니!”
진마광은 말이 끝마치기도 전에 이미 쏜살같이 신법을 전개하고 있었다.
“누구 마음대로……! 완영은 뭘 하는 거냐?”
완영은 진암마가 가주의 이름이었다.
그는 지금 이 진법을 어디선가 펼치고 있는 사람을 찾아내는 중이었다.
야율고는 본래 진암마가의 가주가 진법사를 찾아내 죽일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진마광이 저렇게 도발하며 나서자 가만히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버러지 같은 것들. 너희는 기다렸다가 진법이 깨지면 움직인다.”
야율고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노려보며 말하고는 번개같이 신법을 전개했다.
* * *
제갈세가의 장내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혈천마가의 무인들은 맹수보다 뛰어난 신체 능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물결치는 땅 위에서 싸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제갈세가의 무인들은 그 진법 안에서 또 다른 진법을 펼쳐 대항했다.
그러자 서로의 실력은 매우 비등해졌다.
“클클, 네놈은 누구냐? 제법이구나.”
진마광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청년을 상당히 놀란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가 제갈세가의 무인들을 도륙하기 위해 신법을 펼치던 중, 한 사내가 하늘에서 떨어지듯 나타나 장법을 날렸다.
진마광은 감히 어떤 미친놈이 자신에게 먼저 달려드는지 헛웃음을 내뱉으며 그놈의 머리통을 날려 버릴 기세로 일장을 내질렀다.
그런데 웬걸?
사내의 장력에는 생각보다 심후한 내공이 실려 있었고, 진마광의 공격에도 전혀 밀리지 않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