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47
정도마신 46화
사완악의 손에서 벗어난 나양조는 있는 힘껏 신법을 전개했다.
천기자의 제자들 중 가장 뛰어난 신법을 지닌 그는 양손에 이군과 팔군을 둘러업고도 바람같이 날아가고 있었다.
사아아악! 사아아악!
주변의 풍경이 눈 몇 번 깜짝일 때마다 계속해서 변해 갔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나양조의 안색은 조금씩 창백해졌고, 이를 악문 듯한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그는 내상을 입을 만큼 무리하면서까지 경신술을 펼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았고, 이름 모를 어떤 장원 마당에 도착해서야 피 한 모금을 왈칵 토하며 고꾸라져 무릎을 꿇었다.
홍안의 소년이 부르짖었다.
“육군!”
그리고 동시에 한 사내가 마당에 나타났다.
삼십 대 중반에 평범한 체격과 얼굴을 지닌 사내였다.
하지만 그를 보는 순간 육군 나양조와 홍안의 소년, 팔군의 얼굴에 안도감이 스쳐 갔다.
그는 바로 여덟 명의 군을 이끄는 대사형, 일군이었기 때문이다.
일군은 눈앞에 쓰러진 이군과 육군, 팔군을 보고 크게 놀란 듯했다.
하지만 그의 음성은 잔잔한 수면처럼 차분했다.
“무슨 일입니까?”
그의 눈빛은 피를 토한 나양조나 내상을 입은 홍안의 소년이 아닌, 두 눈을 시체처럼 감고 있는 서생 차림의 사내, 이군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홍안의 소년, 팔군이 빠르게 말했다.
“이군께서…… 은형영허천진을 사용했습니다.”
일군의 호수 같은 동공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그는 품에서 두 개의 단약을 꺼내 육군과 팔군에게 하나씩 주었다.
“두 사람은 이것을 복용하고 운기조식을 하십시오.”
두 사람은 그 약을 받아 바로 삼키고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두 사람의 상태 역시 가볍지는 않았던 것이다.
일군은 조용히 이군의 맥을 잡았다.
그는 언제나 침착하고 냉정함을 잃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육군과 팔군이 두 눈을 감는 순간부터 미세하게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품에서 침통을 꺼내 이군의 몸에 서른여섯 개의 장침을 놓고 일각을 기다린 뒤, 다시 침을 뽑았다. 그러고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오른손 장심을 이군의 심장 위에 얹었다.
이윽고 일군의 오른손에서 은은하고 영롱한 빛이 일어나며 따뜻한 온기가 이군의 몸 전체로 흘러 들어갔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먼저 운기조식에 들어갔던 육군은 이미 깨어나 호법을 서고 있었고, 신비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있는 일군의 이마에는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혀 흘렀다.
어느 순간, 이군의 입에서 숨통이 트이는 듯한 기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일군은 그제야 눈을 뜨며 손을 거두었다.
“정신이 드느냐?”
이군은 잠시 하늘과 일군, 육군, 팔군의 얼굴을 보고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일군, 감사합니다. 육군, 고생했습니다.”
육군, 나양조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답했다.
“이군의 진법 덕분이었지요. 일군, 이군의 몸 상태는 회복된 것입니까?”
일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상은 모두 치유되었습니다. 다만, 은형영허천진으로 세 개의 천심환을 사용했군요. 일단 안으로 들어갑시다.”
일군은 이군을 부축하여 일으켜 세웠다.
이군은 방 안으로 들어와 힘겹게 의자에 앉았다.
팔군은 그 모습을 보고는 왈칵 눈시울을 붉혔다.
“이군…… 미안해요…… 저 때문에…….”
이군은 여전히 창백한 안색이었으나, 홍안의 소년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오히려 제가 미안하지요. 가장 위험했던 것은 팔군이니까요.”
“아니에요…… 제가 만약 들키지만 않았더라면…….”
“자책하지 마세요. 팔군의 역용술은 우리 중 가장 완벽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흉내 내는 재주는 사부님도 따라 하지 못할 정도지요. 팔군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그를 감시하지도 못했을 겁니다.”
일군은 이군을 바라보며 말했다.
“세 개의 천심환만으로 그를 붙잡아 둘 수 있었느냐?”
이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가 만약 전력을 다했다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세 개의 천심환만으로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일군의 표정은 오히려 좋지 못했다.
이군은 서로 마음이 통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희는 그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옆에 있던 육군, 나양조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천심환 세 개로 그를 막을 수 있었으니 다행인 것 아닙니까?”
하지만 일군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아무리 은형영허천진이 뛰어나다고 해도, 영겁사령존의 힘을 천심환 세 개만으로 붙잡아 둘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
나양조는 그제야 뭔가를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령문의 신물은 분명히 반응하지 않았습니까?”
이군이 대신 말했다.
“즉, 사완악은…… 영겁사령존의 힘을 일부만 지니고 있는 것이지요.”
“그게 큰 문제입니까?”
“본래라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불가능한 일이라고요?”
“영겁사령존은 선대 중 비교할 바 없이 가장 뛰어나셨던 십이대(十二代)께서도 간신히 제압했던 자입니다. 그리고 영겁사령환에는 그의 기운과 혼백이 봉인되어 있었지요. 우리는 그것이 깨어나는 순간, 사완악의 정신이 그에게 지배당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자미성의 기운을 각성하지만 않는다면 말입니다.”
조용히 듣고 있던 팔군이 한 가지를 깨달은 듯 말했다.
“혹시 영겁사령존의 힘을 일부만 지니고 있다는 건, 그 혼백에 지배당하지 않았다는 뜻인가요?”
이군은 답했다.
“그렇습니다. 사완악은 영겁사령존에게 지배를 당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압을 한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영겁사령존의 기운은 일부 사라지고 일부 흡수되었겠지요.”
이군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했습니다. 영겁사령존은 살의와 욕망이 끝이 없는 혼백이니, 조금만 자극하면 알아서 날뛸 것이라 여겼지요. 하지만 자미성의 기운이 봉인되고, 사대악인의 손에서 자란 사완악이 영겁사령존의 혼백을 제압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일군 역시 표정이 밝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담담한 음성으로 이군을 위로했다.
“네 잘못이 아니다. 봉인된 영겁사령존의 혼백은 사람의 마음이 사라지고 오로지 악의만으로 가득한 원령이었다. 그것을 정신력으로 이겨 내는 것은 사부님조차 자신이 없다고 하셨으니. 사완악, 그자가 대단했던 것이다.”
팔군이 물었다.
“그럼 이제 큰일 아닌가요? 제가 지금까지 지켜본 사완악은 충동적이고 즉흥적이지만 심계가 깊고, 한번 심기가 틀어지면 지독할 정도로 물고 늘어지는 사람이에요. 그는 우리의 계획을 방해하기 위해서 스스로 마음에도 없는 협행을 하고 있어요. 아마 본인이 원하는 대로 우리의 뜻을 알아내기 전까지 결코 멈추지 않겠죠. 영겁사령존의 원령마저 제압한 그가 작정하고 대협이 되겠다는데, 어떻게 악인으로 만들 수 있겠어요?”
육군 나양조도 팔군의 말에 동의하는 듯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때 이군이 조용히 말했다.
“분명 우리의 계획에 큰 차질이 생긴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아주 절망적이지는 않습니다. 자미성의 기운은 여전히 봉인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팔군이 말한 것처럼, 그의 협행은 스스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닙니다. 단지 우리에 대한 반발심에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위기를 보고 진심으로 동정하거나 분노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에게서 느꼈던 폭발적인 살의, 영겁사령존의 악한 기운은 여전히 그의 안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흑사방의 방주를 죽인 것은 그의 첫 살인이었으나, 그는 조금의 망설임이나 죄책감도 없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대성했다고 해도, 구천살심공과 탈정미혼공의 영향에서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요. 충동적이고 즉흥적인 그의 성격에는 그런 원인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점을 잘 이용해야 합니다. 스스로 악인이 되지 않겠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지요.”
* * *
“휘아는 다시 돌아왔을까요?”
길을 걷던 설린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사완악은 그녀를 보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름 동안 그 질문만 열세 번째야.”
“어? 그랬나요?”
사완악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꼬맹이의 검술 실력도 제법 늘었다는 거 알잖아.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다니까.”
“그렇겠죠? 그래도 참 이상한 일이에요. 갑자기 사라져서 나흘이나 돌아오지 않다니.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나흘 전, 구휘는 아침부터 보이지 않더니 저녁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설린과 정유문의 사람들은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나, 일단은 다음 날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다음 날이 되어도 구휘는 돌아오지 않았고, 사흘째, 나흘째도 마찬가지였다.
설린은 매우 걱정이 되었으나 사완악과 함께 정도맹으로 떠나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정유맹에 남은 사람들에게 구휘를 잘 찾아보라는 부탁을 남기고 여정에 올랐다.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사라지다니…….”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 설린 문주도 그 꼬맹이랑 지낸 것은 일 년이 전부잖아. 사람에게는 누구나 말 못 할 비밀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설린은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이상하게 불안하네요. 왠지 휘아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져요. 물론 그럴 리 없겠지만요.”
사완악은 그런 설린을 보며 속으로 놀랐다.
‘여인의 육감이 무섭다더니.’
사완악은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그 녀석들한테도 하북성을 다 뒤져 보라고 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
그 녀석들이란 만사무를 비롯한 사령문의 문도 네 사람이었다.
설린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사완악은 멀리 보이는 거대한 담벼락을 발견하고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오, 드디어 도착이군!”
땅을 보고 걷던 설린이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탄성을 내뱉었다.
“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누각(樓閣).
장엄하게 펼쳐진 외벽.
그 거대한 울타리 안쪽은 마치 하나의 마을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넓었고, 많은 건물들과 연못, 광장들이 있었다.
황제의 궁궐을 방불케 할 정도로 큰 규모의 장원.
바로 현재의 강호무림을 이끌어 가는 중심지, 정도맹(正道盟)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