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60
정도마신 59화
소림사의 무공들은 주로 직선적이고 강맹(强猛)하다.
그래서 부드러움을 대표하는 무당파와 함께 최강소림(最强少林), 최유무당(最柔武當)이라는 말도 있었다.
대력금강장은 그런 소림사의 무공들 중에서도 강맹한 면으로는 가장 뛰어났다.
이 무공을 대성하면 손이 황금처럼 빛나고, 손으로 도검(刀劍)을 부러뜨릴 수 있으며, 화상(火傷)과 동상(凍傷)을 입지 않고, 독물조차 피부를 뚫고 들어올 수 없게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 무공에는 치명적인 단점들도 존재했다.
우선 대력금강장을 익히기 위해서는 심후한 내공이 필요한데, 단순히 내공뿐만이 아니라 팔 전체를 금강석(金剛石)처럼 단단해질 때까지 수련해야만 했다. 그야말로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는데, 문제는 이 조건이 충족되더라도 강맹함에 비해 초식은 단순하여 상대와의 전투에서는 그리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무공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즉, 대력금강장은 몸과 마음의 단련을 위한 무공이지, 상대를 제압하는 무공이 아니었다.
또한 소림사에는 같은 노력으로 더 높은 성취를 보일 수 있는 절학들이 즐비했다.
따라서 근래에는 소림사에서 이 무공을 연성한 승려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데 이 순간, 현종의 손이 황금빛으로 변한 채 어둠을 가르며 뻗어 나왔다.
깡!
마치 쇠와 쇠가 부딪치는 듯한 금속성이 쩌렁 울리며, 남궁준휘가 혼신의 힘을 실어 찌른 일검이 나뭇가지처럼 부러져 나갔다.
그리고 황금빛을 머금은 현종의 장심(掌心)이 남궁준휘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컥!”
남궁준휘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공중으로 날아 곤두박질치듯 반대편 벽에 부딪쳐 쓰러졌다.
뒤이어 날아갔던 검날의 반토막이 장내 어딘가에 떨어졌고, 잠시 적막이 흘렀다.
남궁준휘는 엎드린 채 미동조차 없었다.
설린은 놀란 음성으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주, 죽은 건가요?”
“아닙니다. 지금은 정신만 잃었을 것입니다. 잠시 그의 혈도를 봉하고 오겠습니다.”
설린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흘렀다.
남궁준휘의 행동은 어떤 벌을 받아도 마땅하지만, 그녀는 아직 사람의 목숨을 앗는 것에 태연할 수 없었다.
현종은 남궁준휘에게 다가가 점혈을 해 놓고 돌아와 설린과 눈을 마주쳤다.
이때 설린은 어둠 속에서 등불에 비친 현종의 얼굴을 보고는 속으로 자신도 모르게 감탄을 터뜨렸다. 훤칠한 키에 넓은 어깨, 짙은 눈썹과 빨려 들 것만 같은 눈동자, 칼날 같은 콧날에 부드러운 입술까지. 비록 그는 승려라 머리카락을 잘랐고, 설린은 남자의 외형에 큰 관심은 없었으나 현종은 그녀의 눈에도 정말 절세미남(絶世美男)이었다.
이때 현종이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설린은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쳐 자신의 옷을 내려다보고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남궁준휘 때문에 찢어진 옷자락 사이로 그녀의 속살이 언뜻언뜻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줄곧 감싸 쥐고 있었는데, 경황이 없어 그 사실을 잊고 있었다.
설린은 ‘어머!’ 하고 놀라며 황급히 옷을 여미었다.
“죄, 죄송합니다.”
설린은 부끄럽고 민망하여 하얀 얼굴이 홍당무처럼 물들었다.
그녀는 이 전각의 내부가 어두컴컴하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물론 현종 정도의 고수에게 이런 어둠 따위는 대낮과 다름없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현종은 별다른 내색 없이 다시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늦게 나타나 미안합니다.”
“별말씀을요.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현종 스님께서는 언제부터 이곳에 계셨던 것인가요? 아니, 그보다 어떻게 이곳을 아시고…….”
이것은 현종이 등장했을 때부터 줄곧 설린의 머릿속에 일어난 의문이었다.
“소승은 처음부터 설린 문주와 함께 이곳에 왔습니다.”
“예?”
“저는 배분이 높다 보니 연회장에는 굳이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완악과 설 문주님에게는 내일쯤 따로 찾아가 인사드릴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현종은 잠시 머뭇거리며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말씀하시기 곤란한 일이라도 있는 건가요?”
“아닙니다. 다만…… 제가 곡차를 조금 마셨습니다.”
“곡차요……?”
“예. 그러다 보니 문득 그날처럼 완악과 한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곡차라면 술을 뜻했다.
현종은 조금 민망한 얼굴이었고, 설린은 다소 심각한 분위기 속에서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뻔했다.
“정유문에게 배정된 처소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찾아갔는데…… 제가 일부러 약간의 기운을 흘렸으나 아무런 반응도 없더군요.”
현종은 사완악이라면 자신이 의도적으로 뿜어낸 기운을 반드시 느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사완악은 나타나지 않았고, 현종은 자신이 정유문의 처소를 잘못 알았나 싶어 다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제가 바라보고 있던 처소에서 한 여인이 갑자기 검을 들고 급히 나왔습니다.”
“……저였군요.”
“예.”
내공이 심후한 현종은 어둠 속에서도 한눈에 그녀를 알아볼 수 있었다.
현종은 매우 놀랐고 의아했다.
설린이 무슨 연유로 이 밤중에 검을 들고 처소를 나와 어디론가 향하는 것일까?
현종은 직감적으로 그녀가 어떤 일에 휘말렸다고 생각했고, 은밀히 뒤를 쫓았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바로 이 전각이었는데, 이때 현종은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전각 주변에 기이한 진법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현종은 심상치 않음을 느껴 인기척을 숨기고 은신했는데, 돌연 남궁세가의 소가주 남궁준휘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 이후부터는 설린 문주가 겪은 일 그대로입니다. 제가 처음부터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이유는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무슨 음모를 꾸미는 것인지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설린 문주를 위험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설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에요. 저자는 매우 능청스럽고 거짓말을 잘하니 현종 스님께서 바로 나타나셨다면 어떤 식으로든 바로 오리발을 내밀었겠죠.”
현종도 바로 그런 점을 우려한 것이었다.
설린은 속으로 현종을 다시 봤다.
‘현종 스님은 정직하고 선한 분이시지만, 한편으로는 심계가 매우 깊으시구나. 이런 점은 사 공자님과 닮았네.’
첫 만남부터 느낀 것이지만, 겉보기로는 분위기가 정반대여도 알고 보면 참 여러모로 비슷한 두 사람이었다.
이때 현종이 물었다.
“이제 설명을 해 주십시오.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아…….”
설린은 현종에게 낮에 연회장에서 있었던 일부터 시작해서, 갑자기 전음이 들려온 것과 서찰, 납치된 구휘에 관련된 것까지, 사완악과 그녀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개인적인 대화를 제외하고는 모두 말해 주었다.
현종은 그 말을 듣고는 심각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이건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군요. 우선…….”
현종은 기절해 있는 남궁준휘를 힐끗 쳐다본 후 말했다.
“저자의 실력으로는 처소 밖에서 설린 문주에게 전음을 보내기 어렵습니다. 또 낮에 그런 일이 있었다면 서찰을 설린 문주의 처소에 미리 숨겨 놓을 틈도 없었겠지요.”
설린도 같은 생각이었다.
“남궁세가의 소가주가 구휘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아요.”
“즉, 설린 문주를 이곳으로 오게 만든 사람은 따로 존재한다는 말이지요.”
“그럼 저 사람은 그 누군가의 지시를 받은 것일까요?”
현종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명령보다는 이용당했을 확률이 높겠습니다. 저자가 오늘 보였던 행동은…… 세상에 알려지면 절대 용납될 수 없는 악행이었습니다. 남궁세가의 소가주나 되는 신분이 직접 저지를 일은 아니라는 거지요. 하지만 그는 낮에 있었던 일로 복수심에 눈이 멀어 있었을 것이고, 누군가 그것을 이용하여 이번 일을 꾸민 것은 아닐까, 소승은 그리 추측됩니다.”
설린은 현종의 추리가 그럴듯하게 여겨졌다.
“그게 누구일까요? 설령 다른 사람이 있다고 해도 휘아에 대해서는 어떻게 알고 있을까요?”
이번에는 현종도 눈썹을 찌푸릴 뿐 바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는 전각 내부를 한번 훑어본 뒤 말했다.
“아까 저자가 말한 것으로 보아 이곳에 펼쳐진 진법은 내부의 소리가 외부로 나가지 않게 차단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묘하게 내공의 기운마저 감추는 느낌입니다. 누군가를 해하려는 목적의 진법은 아니지만, 보통 실력이 아닙니다.”
현종은 이어서 말했다.
“분명한 건 그의 목표는 설린 문주가 아니라 완악이라는 것입니다. 남궁준휘는 설 문주를 완악의 여인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건 아마 뒤에 있는 그 누군가가 꾸며 낸 말이겠지요. 이것은 매우 특이한 점입니다. 그 누군가는 완악을 해치려는 게 아니라, 완악에게 큰 고통을, 혹은 분노를 일으키려고 하는 것이 목적 같기 때문입니다.”
현종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듯 중얼거렸다.
“비범한 무공을 지니고 있고, 기묘한 진법까지 펼칠 수 있는 사람. 정도맹 내에서 이런 일을 대범하게 계획할 수 있고, 정유문의 사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사람. 직접 나서지는 않으며, 남궁세가의 소가주를 교묘하게 이용할 수 있는 사람…….”
현종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만만치 않은 상대입니다. 도무지 짐작 가는 사람이 없군요. 아마도 완악에게 어떤 원한을 가진 자인 것 같으니, 완악의 생각을 들어 보는 것이 좋겠지만…….”
이때 설린이 갑자기 입을 열었는데, 그녀의 말과 현종의 말이 똑같이 겹쳐졌다.
“사 공자님께 오늘 일은 말하지 않았으면 해요.”
“완악에게 오늘 일은 말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쳐다봤다.
현종은 조금 놀란 듯 말했다.
“설린 문주도 저와 같은 생각이십니까?”
“예? 아…… 현종 스님의 생각은 무엇인지요?”
“제 생각에 완악이 오늘 일을 알게 되고, 만약 짐작 가는 사람이 있다면 곧바로 찾아가 응징을 하려 할 것입니다. 또한 완악의 성격이라면 남궁세가 또한 가만히 두지 않겠지요.”
설린은 듣고 보니 현종의 말이 매우 일리 있다고 생각되었다.
사완악은 당하고 가만히 참고 있을 성격이 절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되면 일이 너무 커질 수도 있습니다. 완악의 무공은 정말 뛰어나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적이 생길 위험이 있지요. 그러니 제 생각에는 설린 문주께서 완악과 대화를 하며 과거에 어떤 원한이 있는 존재가 있었는지 은근히 물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설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 저도 같은 생각이었어요. 현종 스님과 뜻이 통했군요!”
현종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렇습니까?”
물론 이때 설린의 진짜 속마음은 조금 달랐다.
‘사 공자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 일을 알게 된다면 어쩌면 실망할지도 몰라.’
어찌 됐든 그녀는 오늘 남궁준휘에게 자신의 속살을 보이고야 말았다.
비록 아무 일도 없었고 현종이 그 증인이라고 해도, 그녀는 사완악이 이 일로 인해 조금의 불쾌감이나 꺼림칙함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현종 스님의 말도 맞아. 아무리 사 공자님이라 해도 남궁세가와 정면으로 맞서게 되면 너무 위험해.’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는 괜히 하나의 연합처럼 불리는 것이 아니다.
오대세가 또한 오랜 세월 동안 서로 경쟁을 하면서도 외부의 위험 요소가 나타나면 한 가족처럼 힘을 합쳐 왔다.
따라서 남궁세가와의 싸움은 오대세가 전체와의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었다.
“저는 저자를 데리고 남궁세가에 은밀히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아, 대사님께서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아닙니다. 남궁세가는 정도맹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사흘이면 다녀올 수 있습니다. 완악과 인사도 해야 하니 비무 대회가 끝나기 전에 오도록 하겠습니다.”
“사, 사흘이요?”
아무리 남궁세가가 가깝다고 하지만 보통 사람이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현종의 경신술이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었다.
“설 문주는 아까 말한 대로 완악에게 넌지시 물어봐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밤이 깊었습니다. 먼저 돌아가시지요. 저는 이 전각에 펼쳐진 진법을 조금 더 조사해 보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설린은 문득 매우 야심한 시각에 현종과 단둘이 전각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두 사람은 무림인이고, 현종이 소림사의 승려라고 해도 그리 바람직한 장면은 아닐지도 몰랐다.
“예, 현종 스님도 조심하세요. 그럼 이만…….”
설린은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장내를 나가려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