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77
정도마신 76화
“사완악, 너의 청개구리 같은 성격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도 알고 있는 바. 혹시 이런 상황이 오는 것을 염려했었지.”
양천상의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네가 사대악인의 제자라는 것은 이미 온 강호에 알려졌을 것이다.”
사완악은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이미 이곳에 오는 중간에 소문을 내고 있었다는 건가?”
양천상이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후면 태산 입구에서부터 천라지망(天羅地網)이 펼쳐질 것이다. 아무리 너라 해도 그들과 싸우지 않고 태산을 벗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지.”
“그럼 그 전에 빨리 도망가야겠군.”
“하하. 보다시피 출구가 없는 공간이네만.”
사완악은 이 천기자 패거리의 의도를 이제야 완전히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든 사완악이 사대악인에게 원한이 있는 정파인들과 싸우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수많은 정파인들이 죽게 될 것은 자명했다.
천기자와 그의 제자들은 그 상황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것이 강호를 위한 일이지?’
사완악은 그런 의아함이 들었으나 깊게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자세한 건 나중에 생각해 볼 일이다. 일단은 이곳을 빠져나가자.’
사실 사완악은 처음 이 공간에 갇혔을 때부터 틈이 나는 대로 주위를 면밀히 살피고 있었다.
이 진법에는 어떤 변화도 없고, 오직 출구만이 사라진 평범한 공간이었다.
즉, 진법의 약점이나 이 진법을 형성하고 있는 매개체를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사완악은 바로 그러한 점과 지금까지 양천상이 했던 말들을 종합하여 이 진법의 탈출구를 추측할 수 있었다.
‘이들은 내가 멋대로 진법을 파괴하고 도망갈 것도 염려해 두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들 입장에서 진법을 지킬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사완악은 양천상을 바라보며 말했다.
“꽤 자신이 있었나 보네.”
“음?”
“그럼 어디 실력 좀 볼까?”
순간, 양천상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리고 사완악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갑작스럽게 내공을 끌어올리며 양천상을 향해 파신마장의 초식을 날렸다.
하지만 거의 동시에 양천상의 신형도 움직였다. 그는 한 걸음 물러서며 쌍장을 내질렀다.
꽝!
폭음과 함께 양천상의 손바닥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사완악의 파신마장과 격돌하였음에도 양천상의 얼굴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과연 팔대고수의 면모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사완악은 한 번의 공격으로 양천상이 쓰러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어서 그의 손에서 파신마장의 초식들이 연달아 쏟아져 나왔다.
사완악의 장력이 두 줄기로 갈라지며 양천상을 덮쳐 갔다.
하지만 양천상 역시 운룡무왕이라 불리는 천하팔대고수였다.
양천상의 손이 밝은 빛으로 물들며 한 줄기 얼음장 같은 장력이 쏘아졌다.
곤륜파의 절학 옥심장력(玉心掌力)이었다.
사완악의 백의장삼과 양천상의 옷자락이 장력의 기세에 미친 듯 펄럭였다.
지금까지 후기지수들과의 싸움과는 격이 달랐다.
사완악의 장력은 한 마리의 난폭한 용이 자신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모두 쓸어버릴 듯한 기세로 파괴하는 것 같았고, 양천상은 구름을 만들어 용의 자취를 숨기듯 그 기세를 막아 갔다.
사완악은 다시 한번 내공을 끌어올려 세 번의 초식을 연달아 펼쳤다.
양천상은 내심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 나이에 이런 엄청난 내력을…….’
이렇게 거세고 위력적인 장력을 연달아 펼친다는 것은 사완악이 얼마나 심후한 내공을 지니고 있는지 말해 주는 것이었다.
양천상 역시 어려서부터 천재적인 무재를 타고 났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 재능으로 천기자의 제자가 되었고, 최연소의 나이로 강호 팔대고수가 되었다.
하지만 사완악은 이제 겨우 약관이 조금 넘은 나이였다.
그럼에도 사완악의 장력은 양천상의 힘을 능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양천상은 거센 파도처럼 밀려오는 장력 앞에서도 두 발을 굳건히 하고 똑같이 세 번의 옥심장력을 내질렀다.
꽝! 꽈릉! 꽝!
두 사람의 장력이 격돌할 때마다 연달아 폭음이 울려 댔다.
세 번의 격돌 이후.
먼지가 자욱이 피어올랐다가 서서히 걷혔다.
양천상은 안색이 조금 창백해졌고, 두 발은 땅을 파고 들어가 두 개의 흙길을 만들며 뒤로 주르륵 밀려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의 중심은 전혀 무너지지 않았으며 눈빛 또한 담담했다.
반면 사완악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딱히 대단하지는 않지만…….’
몇 번의 격돌로 사완악은 양천상의 무위를 확실히 파악할 수 있었다.
강호 팔대고수라고 하지만 그는 확실히 사완악의 아래였다.
솔직히 말하면 그는 사부들 중 가장 약하다고 볼 수 있는 사마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물론 대단한 고수인 것은 맞지만, 과연 강호 팔대고수에 꼽힐 수 있을 정도인지 의문이었다.
사완악은 어쩌면 그가 강호 팔대고수의 호칭을 얻고 정도맹주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 천기자가 다른 수단을 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성가시군.’
문제는 양천상이 익힌 곤륜파의 무공이었다.
사완악은 사부 영환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유능제강의 무공이라 하면 언제나 무당파를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무당파의 무공은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능력이 뛰어나 그렇게 느껴질 뿐, 사실은 매우 강맹한 부분이 있다. 무당파의 무공 역시 소림사 무공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곤륜파의 무공은 다르다. 곤륜파의 무공 이름에는 구름을 뜻하는 운(雲) 자가 많이 들어가는데, 그것이 바로 곤륜파 무공의 특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다. 곤륜파의 무공은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흐트러뜨려 사라지게 한다. 무당파의 무공이 강한 힘을 되돌려 준다면, 곤륜파의 무공은 강한 힘을 사라지게 한다. 그만큼 곤륜파의 무공은 대성하기 어렵지만, 완성하고 나면 소림사 무공과 그야말로 상성이라 할 수 있다. 곤륜의 무공은 소림의 무공을 지치게 하지만, 소림의 무공 역시 곤륜의 무공을 부술 수 없다. 물론 이는 두 상대가 서로 비슷한 수준일 때의 이야기이다.’
파신마장은 소림사의 칠십이절예에서 파생된 무공이다.
그리고 사완악은 직접 겪어 보니 염라대사의 말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확실히 곤륜의 무공은 파신마장을 너무나 효과적으로 막아 냈다.
더군다나 양천상은 오로지 시간을 끌 요량으로 방어에만 치중하니 어떤 허점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후반부 초식을 쓸 수는 없다.’
파신마장의 전반부 초식 열 개는 위력이 비슷하고 상황에 따라 쓰임새와 효율이 달랐다. 하지만 후반부 초식 네 가지는 전반부 초식들에 비해 훨씬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이라면 양천상을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몰랐다.
다만, 이 후반부의 초식들은 너무나 많은 내력을 소모해야 했다.
만약 양천상을 쓰러뜨린 후, 다른 적이 나타나기라도 한다면 큰 낭패였다.
사완악은 양천상에게 말했다.
“내 장법을 모두 막아 내는 사람은 당신이 처음이군.”
양천상이 말했다.
“너의 무공은 이미 나를 뛰어넘었지만…… 이곳에 발을 묶어 두는 정도라면 자신 있다.”
사완악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하게 싸운다면 그렇겠네.”
양천상은 사완악의 말에 뼈가 있음을 느꼈다.
“평범하지 않은 건 무엇이지?”
“내가 영환 사부에게 배운 파신마장에는 필살의 초식이 있지.”
“필살의 초식?”
“초식의 이름은 파천마군(破天魔君)이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사완악은 그렇게 말하며 양천상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사완악의 전신에서는 진한 살기가 가닥가닥 흘러나오고 있었다.
양천상은 심상치 않은 느낌에 내공을 더욱 끌어올리며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그 순간, 사완악은 양손으로 세상의 기운을 모으듯 크게 원을 그리고는 왼손을 내뻗으며 외쳤다.
“파천마군!”
양천상 역시 곤륜파의 옥심장력으로 사완악에게 일장을 내질렀다.
그렇게 두 사람의 장력이 부딪치는 순간.
‘이게 무슨?’
양천상의 장력은 사완악이 펼친 필살의 초식을 너무나 쉽게 뚫어 버리고 앞으로 쏘아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사완악이 있던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장력을 날린 것 같은 기분…….
‘설마 허초였다고!’
그 순간, 양천상은 자신의 눈에 한 줌의 흙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면서도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이 무슨 유치한 속임수인가!’
양천상은 뻗었던 오른손을 거둠과 동시에 바람을 일으켜 흙을 날려 버렸다.
하지만 그 순간, 구휘가 외쳤다.
“조심해요!”
동시에, 하나의 날카로운 검기가 양천상의 좌측에서 날아왔다.
눈앞에서 사라졌던 사완악이 어느새 보검을 들고 양천상의 어깨를 찔러 가고 있었다.
만약 양천상이 다른 사람과의 대결이었다면 이런 원초적인 속임수에 걸려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사완악처럼 절정의 반열에 오른 고수가 이런 행동을 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양천상은 황급히 보법을 밟으며 왼손을 뒤집어 손날을 번개같이 뻗었다.
곤륜파의 무공 중 가장 빠른 섬전수(閃電手)라는 수공이었다.
하지만 섬전수는 빠르고 가벼운 수법인 만큼 방어에 유용한 초식은 아니었다.
“큭!”
양천상은 가까스로 사완악의 검을 쳐 냈지만, 팔목이 깊게 베여 피가 흘렀고 허점이 드러났다.
그리고 사완악의 검은 귀신같이 그 허점을 찾아 찔러 왔다.
“이런 치사한……!”
화난 목소리로 외친 양천상은 다급히 곤륜파의 신묘(神妙)한 보법인 신행미종보(神行迷踪步)를 펼치며, 맨손으로 검을 든 상대를 방어하기에 적합한 태청산수공(太淸散手功)으로 간신히 사완악의 초식을 막아 갔다.
사완악의 낭랑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본인이 가르쳐 준 수법을 두고 치사하다니!”
양천상은 사완악의 말에 한 가지 황당한 사실을 깨달았다.
‘이놈, 설마 받은 대로 돌려주려고?’
양천상은 견정대의 후기지수들과 태산으로 오는 길에, 객잔에서 실전의 중요성을 가르치며 사완악에게 기습적으로 모래알을 던지고 공격했던 일이 있었다.
양천상은 그때 사완악이 본능적으로 사대악인의 무공을 사용하기를 바라며 했던 행동이지만, 사완악은 끝내 아무 반응도 하지 않으며 패배를 인정했었다.
하지만 설마 그때의 일을 마음에 담아 두고, 서로의 운명이 걸린 싸움을 하는 와중에 그대로 돌려주기 위해 흙을 집어던졌던 것일까?
어떻게 보면 참 애 같은 성격이고, 다르게 말하자면…….
‘정말 지독한 놈이구나.’
하지만 양천상은 이런 감상을 오래 할 틈이 없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검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