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cious Beverage RAW novel - Chapter 78
정도마신 77화
양천상은 처음에는 사완악이 기습을 위해 검을 사용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양천상은 무너진 자세와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사완악의 검세(劍勢)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사완악의 검법은 매우 괴이하면서도 변화무쌍하여 좀처럼 예측이 불가능했다.
심지어 오로지 급소와 요혈만을 노려 오는 사완악의 검초는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이것은 바로 사완악이 사부 채보령에게 배운 환요검(幻妖劍)이었다.
요희요검 채보령은 검술보다는 남자를 홀리는 미혼술과 그들의 내공을 빨아먹는 사이한 방중술법으로 유명했다.
또한 그녀는 강호에서 제대로 무공을 펼칠 일이 별로 없었는데, 그 이유는 항상 무공이 강한 남자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 자기 대신 싸움에 임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양천상 역시 사완악의 무공 중 가장 강한 것은 염라대사 영환의 파신마장밖에 없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환요검의 본래 이름은 환요옥영검(幻妖玉詠劍).
역사상 유일하게 여인의 몸으로 마교의 교주가 되었던 검마후(劍魔后)의 무공이었다.
채보령은 환요옥영검의 열두 초식 중 여섯 가지만을 익혔지만, 염라대사 영환은 그것만으로도 파신마장 못지않은 무서운 무공이라고 했다.
사완악은 소림 무공에서 파생된 파신마장이 양천상의 옥심장력을 쉽게 뚫어 내지 못하자, 장법 대신 검법을 선택하여 양천상을 공격한 것이었다.
그리고 사완악의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크윽……!”
양천상은 공방이 계속될수록 얼굴이 굳어지고, 검상(劍傷)이 하나둘씩 늘어 갔다.
사완악의 검은 목을 찌르는가 싶으면 갑자기 검로가 뚝 떨어지며 허벅지를 찔러 왔고, 검을 쳐 내려 하면 마치 채찍처럼 흔들리며 급소를 공격해 왔다.
한 번의 위력으로 따지자면 파신마장에 미치지 못했지만, 초식의 움직임은 양천상 같은 절정의 고수조차 쩔쩔맬 정도로 신묘했다.
양천상은 끊임없이 뒷걸음치며 사완악의 검을 피하고 막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과한 대응으로 몸의 내력은 빠르게 소진되고 있었고, 상처가 많아질수록 손발이 어지러워져 더욱 수세(守勢)에 몰릴 수밖에 없었다.
양천상은 이대로 가다간 결국 당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고, 사완악의 검이 왼쪽 팔을 베어 올 때 순간적으로 있는 힘을 다해 오른손으로 옥심장력을 내질렀다.
이는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전략으로, 왼쪽 팔을 잃을 각오를 하며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결정적인 실수였다.
사완악은 양천상이 이러한 선택을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황이 다가온 순간, 사완악은 오른손의 검을 그대로 놓아 버리고 옆으로 한 걸음 움직이며 오른손으로 유풍유권을 펼쳐 양천상의 장력을 비틀어 쳐 내고, 왼손으로는 파신마장의 마룡일효의 초식을 전광석화와 같이 내질렀다.
이 일련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일어났고, 말로는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세 가지의 무공을 거의 동시에 펼쳐야 하는 엄청난 일이었다.
특히 자신의 검을 놓치는 것은 무인에게 가장 수치스러운 일 중 하나였는데, 사완악은 스스로 그 검을 놓아 버리며 유풍유권과 파신마장을 동시에 펼치니 양천상의 가슴에 용의 포효가 그대로 적중했다.
“크헉!”
양천상은 가슴이 으스러지고 오장육부가 녹아내리는 듯한 고통과 함께 뒤로 날아가 쓰러졌다.
“삼군!”
구휘가 놀라 외치며 달려갔다.
사완악은 한 차례 심호흡을 하며 중얼거렸다.
“삼군이었군.”
그런데 그때, 괴이한 일이 일어났다.
“커헉!”
양천상의 뒤쪽에서 또 하나의 신음과 함께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갑자기 한 명의 사내가 나타나며 붉은 선혈을 토해 내는 것이었다.
사내가 나타나자 그의 신형 뒤쪽에서 원래 이 공간으로 들어왔었던 동굴의 입구도 스르르 나타났다.
이것은 사완악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사완악은 귀신처럼 나타나 피를 토하며 쓰러진 사내를 바라봤는데, 그 사내는 맹주 양천상을 호위하는 청호단의 복장을 입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맹주 양천상은 본래 두 명의 청호단 무인을 데리고 이 공간에 들어왔었다.
그중 한 명은 구휘였는데, 생각해 보니 다른 한 명이 사라진 것을 그 누구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피를 토한 청호단의 무인은 심한 기침과 함께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사완악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얼굴을 확인하고는 끄덕였다.
“너였군. 하긴, 이런 요상한 진법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이 흔할 리는 없지.”
비틀거리며 간신히 몸을 세운 청호단 무인.
그는 과거에 사완악을 진법에 빠트리고 구휘를 정유문에서 구해 갔던 이군이었다.
사완악은 양천상이 쓰러지자마자 피를 토하며 나타난 이군과 동굴의 입구를 보고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이곳의 진법은 일종의 술법이었군.’
진법의 매개체는 양천상, 그리고 술법사는 이군이었던 셈이다.
이때 이군은 땅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는 양천상을 향해 걸어갔다.
양천상은 이군을 보자 침통한 음성으로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미안하게 됐소…… 저자의 무공은 내 생각보다…….”
이군은 손을 들어 양천상의 말을 막았다.
“아닙니다. 삼군은 충분히 잘했습니다.”
“그, 그 말은…….”
흔들리는 촛불처럼 위태로워 보이는 양천상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밝아졌다.
이군은 붉어진 눈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예, 편히 가십시오.”
“다행이오…… 뒤를…… 부탁하오.”
양천상은 그 말을 끝으로 눈을 감았다.
이군은 고개를 돌려 사완악을 바라보았다.
사완악은 그의 시선이 조금 의외였다.
동료를 잃은 이군의 눈빛에는 슬픔이 가득했지만, 사완악을 향한 어떤 분노나 적개심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사완악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손을 뻗어 구휘의 어깨를 만지며 힘겹게 무언가를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러자 구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돌연 동굴을 향해 크게 외쳤다.
“맹주님이 시해당하셨다! 사대악인의 제자가 맹주님을 살해했다!”
구휘의 외침은 동굴 벽에 메아리치며 멀리 퍼져 나갔다.
이때 이군의 표정은 매우 쓸쓸해 보였고, 눈빛은 공허했다.
사완악은 그 외침을 듣고 퍼뜩 깨닫는 바가 있었다.
천기자의 제자들은 사완악으로 하여금 후기지수들을 죽이도록 유도했다.
그러나 사완악은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
아까는 잘 넘어갔지만, 그들이 정신을 차리고 나면 맹주의 이번 시험에 대해 다시 한번 의아함을 가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만약 맹주 양천상이 사완악의 손에 죽는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후기지수들은 맹주의 말이 모두 옳았다고 생각할 것이고, 사완악은 후기지수들을 죽인 것만큼이나 강호의 공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구휘가 지금 동굴로 소리를 질렀다는 것은 이미 사대악인에게 원한을 지닌 사람들이 도착했다는 뜻이었다.
“대단하군. 그의 죽음도 너의 계획이었나?”
사완악의 말에 이군의 공허한 눈빛에 분노가 어렸다.
“당신이 살인을 저질러 놓고, 내게 사형제의 죽음을 의도했냐고 묻는 것이오?”
사완악은 무표정한 얼굴로 이군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군은 그런 사완악을 마주 쏘아보다가 이내 말했다.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든 상관없고 해명할 필요도 없소. 당신과 대화를 나눌 사람은 내가 아니라…….”
이군이 말끝을 흐렸을 때였다.
“저곳이다!”
울리는 외침과 함께 타다다닥 하는 발자국 소리들이 동굴에서 울렸고, 휙휙 옷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며 네 명의 중년인이 나타났다.
그들은 동굴에서 나오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눈을 크게 떴다.
약 스무 명의 청년들이 땅에 쓰러져 정신을 잃고 있는 것과, 백의장삼을 입고 당당히 서 있는 한 명의 청년, 그리고…….
“맹주!”
네 명의 중년인은 얼음장 같은 얼굴로 두 눈을 감고 있는 양천상을 발견하고는 비명을 지르며 다가갔다.
그들은 이내 양천상 옆에 서 있는 구휘와 이군의 옷소매에 푸른실 자수로 정(正) 자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는 다급히 말했다.
“자네들은 청호단인가?”
이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년인 중 하나가 재차 물었다.
“지금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인가!”
이군은 손으로 사완악을 가리키며 힘겹게 말했다.
“저자가…… 맹주님을 죽였습니다. 그는…… 그는 사대악인의 제자, 사완악입니다.”
“……!”
“……!”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충격이 네 사람의 얼굴에 떠올랐다.
정도맹의 맹주가 죽었다니!
강호 팔대고수이자 곤륜파 제일의 천재, 운룡무왕 양천상이 살해당하다니!
하지만 그보다 더욱 그들의 눈빛을 변하게 만든 것은 바로 사대악인이라는 네 글자였다.
“사대악인의 제자……!”
네 명의 중년인은 맹주의 죽음도 잊은 듯 사완악을 노려봤다.
“네놈이 정녕 사대악인의 제자이더냐!”
사완악은 그들이 사대악인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안색이 변하고 눈에서 살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고서, 자신의 사부들에게 깊은 원한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답하라! 네놈이 사대악인의 제자가 맞느냐!”
서슬 퍼런 음성.
하지만 그렇다고 기가 죽거나 눈치를 볼 사완악이 아니었다.
사완악은 별다른 표정 없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 순간.
“이노오옴!”
갑자기 네 사람 중 한 명의 중년인이 괴성을 내지르며 사완악을 향해 돌진했다.
그의 신법은 매우 빨랐다. 그리고 검집에서 검을 뽑아 찔러 오는 것은 더욱 빨랐다.
그의 검에는 정교함보다는 어떤 울분이 가득했고, 상대의 반격을 조심하는 기색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사완악은 특별한 초식을 쓸 필요도 없이 검을 단순하게 휘둘러 중년인의 공격을 받아쳤다.
깡!
쇳소리와 함께 중년인의 신형이 다시 뒤로 밀려났다.
“큭……!”
중년인은 상당히 놀란 듯했다.
사완악의 나이가 어리기에 자신의 검을 이렇게 쉽게 받아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탓이었다.
이때 이군이 말했다.
“조심하십시오. 저자의 무공은 매우 고강합니다. 그는 이곳의 후기지수를 모두 죽이려 했고, 맹주님은 그와 생사대결을 펼쳤지만…… 맹주님도 그를 막지 못했습니다.”
이군의 말에 네 명의 중년인은 모두 경악하며 사완악을 바라봤다.
생각해 보면 맹주 양천상이 죽었다는 말을 들을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사대악인은 모든 이성을 마비시키는 이름이었기에 깊은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중년인 중 한 사람이 중얼거렸다.
“사대악인이 진정한 악마를 키워 냈구나…….”
그러나 그들은 사완악이 맹주를 죽였다는 사실에도 전혀 두려움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사완악을 향해 소리 질렀다.
“채보령! 그 요망한 년은 어디 숨어 있느냐!”
사완악은 그 말을 듣고는 생각했다.
‘어머니에게 원한이 있는 자들이구나. 그런데 조금 전의 그 초식…… 왠지 낯이 익은데?’
중년인이 감정에 휩싸여 내지른 일검.
사완악은 그 검로가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었다.
이때 중년인들 중 한 사람이 말했다.
“너는 우리가 누군지 아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