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datory Soul RAW novel - Chapter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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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었다. 하지만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블레언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펼쳐지는 광경을 꼼짝없이 지켜만 보아야 했다.
눈앞에는 두 남녀가 얽혀있었다. 짙게 그을린 피부 위에 얹힌 순백의 나신은 적나라했다. 거대한 체구의 남자를 끌어안은 여인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가느다란 목소리로 신음하며 외치는 이름은 하나였다.
-이샤칸……, 아, 이샤칸……!
단순히 육체의 쾌락이 아니었다. 열기로 흐려진 보라색 눈동자는 사랑에 빠져있었다. 끌어안은 남자가 좋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듯, 설렘과 애정으로 가득했다. 젖은 눈빛에서 사랑한다는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았다.
블레언이 그토록 애타게 가지고 싶어 했으나, 결국 가지지 못한 그 눈빛이었다. 욕설을 내뱉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뛰어들어 단단히 얽힌 몸을 뜯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입술 하나 달싹이지 못하고 돌처럼 굳어있을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속박에서 풀려나기 위해 애쓰는 사이, 정사는 끝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레아는 작은 어깨를 움츠리면서 흐느끼고, 못 견디겠다는 듯 발버둥 쳤다.
-흣, 아아, 흑, 그만……!
레아의 몸이 빳빳이 굳어졌다. 말간 눈물과 타액을 뚝뚝 떨어트리던 그녀가 새된 소리를 내질렀다.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너른 등 위를 마구 긁었다.
명백히 절정에 달하는 모습이었다. 블레언은 숨을 죽였다. 저도 모르게 홀린 듯이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울면서 할딱이던 레아가 고개를 돌렸다. 정확하게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시선이 맞닿은 순간, 블레언은 꿈에서 깨어났다.
“……!”
현실의 서늘한 밤공기가 정신을 일깨웠다. 왕의 침실이었다. 주변을 확인한 블레언은 곧바로 침상을 박차고 일어났다.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걷어낸 그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하…….”
아랫도리가 불룩하게 솟아있었다. 잠시 씨근덕거리며 숨을 고른 블레언은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러다 손가락에 실처럼 달라붙은 은색 머리카락을 확인하곤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침대 머리맡의 줄을 잡아당겼다. 날카로운 종소리가 울리고, 곧장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시녀 서넛이 안으로 들어왔다. 얼굴을 하나씩 훑어본 블레언은 가장 왼쪽의 시녀를 가리켰다.
“너.”
그러자 그녀만 남겨두고 다른 시녀들은 조용히 물러났다. 많은 명령은 필요 없었다. 블레언은 밑을 내보이며 고개를 까닥였다. 홀로 남은 시녀는 얌전히 블레언의 침대 위로 올라와 성기를 빨았다.
침대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무표정하게 앉아있던 블레언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열심히 밑을 빨고 있던 시녀가 무심결에 올려다보았다가 눈이 마주쳤다.
블레언은 가만히 미소 지었다. 시녀는 눈을 내리깔아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고 멍하니 블레언을 바라보았다.
블레언의 미소가 짙어질수록 시녀의 얼굴도 점점 더 붉어졌다. 그녀가 귀 끝까지 새빨갛게 붉혔을 때, 블레언은 손으로 시녀의 뒤통수를 눌렀다. 성기가 목구멍 깊숙이 틀어 박혔다. 목젖을 건드렸는지 캑캑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블레언은 따분한 얼굴로 시녀를 내려다보았다. 너무 쉬웠다. 원한다면 어떤 여자든 가질 수 있었다. 아름다운 외모와 권력, 부를 갖춘 에스티아의 왕을 마다할 존재는 없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레아…….
그리고 그녀는 블레언이 유일하게 원하는 단 하나이기도 했다. 블레언은 꿈에서 보았던 레아를 떠올렸다.
항상 음울한 표정만을 짓고 있던 그녀는 꿈속에서 더없이 싱그러웠다. 갓 피어난 봄꽃처럼 생기를 가득 머금고 반짝였다.
에스티아의 왕녀가 아름다우나 향기 없는 꽃이라 폄하하던 자들도 그 모습을 보았다면 넋을 놓았으리라.
블레언은 입술을 짓씹었다. 잿빛 머리카락의 시녀는 어둠 속에서 보니 언뜻 은발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블레언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틀어잡고 거칠게 아랫도리를 쳐올렸다.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신음하던 레아의 모습이 눈앞에 가득 찼다. 빠르게 밑을 흔들다가 배설하듯 사정했다.
“큿…….”
하지만 끝까지 뱉어내었음에도, 찌꺼기 같은 감정은 심장에 들러붙은 그대로였다. 오히려 더욱 지저분해졌을 뿐이었다.
“나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젓자, 시녀는 몸을 추스르지도 못하고 허둥지둥 침실을 떠났다. 블레언은 침대 위에 털썩 드러누웠다.
“…….”
그는 가느스름한 눈으로 침실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장에는 에스티아 왕실의 문장이 그려져 있었다. 문장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블레언은 비뚜름히 웃었다.
비틀린 성벽과 소유욕, 음습한 집착의 기원은 분명했다. 전부 세르디나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그녀가 블레언에게 집착하듯, 블레언은 레아에게 집착했다. 핏줄에 흐르는 광기는 무엇으로도 지워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선명해질 뿐이었다.
블레언은 가운을 걸치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탁자 위에 놓인 술병을 들고 그대로 입 안에 털어 넣었다. 현실을 견디지 못해 마신 술이나, 독주를 들이켰는데도 정신이 또렷했다.
레아는 도망쳤다.
억지로 몸을 가지려 했던 그날 이후, 야만족의 왕과 함께 떠나버렸다. 처음에는 그녀가 금방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왕궁에 남겨진 이들이 많으니 당연히 제 발로 돌아오리라 여겼다.
하지만 왕궁에 사절단으로 찾아왔던 야만족들도 증발한 것처럼 깨끗이 사라졌음을 확인했을 때. 블레언은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하루아침에 사라진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집시들 또한 전부 자취를 감췄다. 야만족 놈들이 손을 쓴 것이라 짐작하고 병사들을 풀어 수도를 샅샅이 수색했다. 그러나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세르디나의 상태는 지속적으로 불안정해지고 있었다. 때때로 힘을 견디지 못하고 폭주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대비궁에서 실려 나오는 시체가 수레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살육으로 힘을 잠재울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게 아니라서 문제였다. 집시들도 사라져버렸으니, 혈육의 심장을 먹여야 하는 것은 아닌지 블레언은 고민하고 있었다.
어쨌든 세르디나가 제정신을 차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레아부터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했다.
결혼식 전까지 레아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왕녀궁 시녀들을 하나씩 참수하여 목을 성문 위에 효수할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그녀와 친밀했던 귀족들을 차례대로 단두대에 올릴 작정이었다.
그리 아끼던 이들이 까마귀에게 뜯어 먹히며 썩어가는 꼴을 보면, 레아도 왕궁으로 돌아오리라.
하여 왕궁에 잡아놓은 후에는 더 이상 기다릴 것도 없이 곧장 인형으로 만들어 버릴 생각이었다.
다음 날, 블레언은 국무회의장에 직접 나섰다.
레아가 없으니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았다. 예전 같았으면 그녀가 알아서 처리했을 모든 일들을 이제는 블레언이 직접 챙겨야 했다. 물론 레아가 돌아온다면 다시 원래대로 그녀가 모두 떠맡겠지만 말이다.
국무회의장에 자리한 블레언은 턱을 괴고서 귀족들을 살폈다. 어차피 자아가 없는 놈들이었다. 보여주기식 국무회의에 시간을 낭비해야 한다니, 참으로 짜증스러운 일이었다. 무심하게 훑던 블레언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
웨들턴 백작이 앉아있었다. 그는 블레언과 눈이 마주치자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왕의 외조부라고는 하나, 여태 정치에 관심 없던 늙은이였다. 그런데 갑자기 국무회의에 참석한 것이다.
웨들턴 백작의 옆에는 오베르데 변경백이 앉아있었다. 딱히 접점도 없는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은 몹시 의외로웠다.
가만 보니 변경백도 뭔가 조금 이상한 것 같았다. 주술에 걸렸으니 국무회의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받아들여야 했다.
나돌아 다니는 시녀 하나를 잡아다 회의장 탁자 위에서 성교를 벌여도 당연하게 여겨야 하건만, 오베르데 변경백은 당혹스러워 보였다. 항상 국무회의를 이끌던 왕녀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처럼 말이다.
오베르데 변경백을 유심히 살피던 때였다. 국무회의장의 문이 열렸다. 블레언은 인상을 찌푸렸다.
열려서는 안 될 문이었다. 이미 왕이 착석하였는데, 뒤늦게 참석할 귀족이 있을 리가 없었다. 혹 있다고 하여도 응당 회의가 끝나기 전까지는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규율이었다.
어느 제정신 아닌 놈이 함부로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인지, 당장 기사들에게 끌고 나가라 명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이 완전히 열리자, 블레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딱딱하게 굳은 채로 앞을 응시했다.
은빛 머리카락이 나부꼈다. 드레스자락을 끌며 단정한 걸음으로 들어선 여인은 침착한 눈으로 회의장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본래 자신이 앉았던, 지금은 블레언이 앉아있는 가장 상석을 바라보았다.
곧은 시선이 블레언과 맞닿았다. 맑은 보라색 눈동자가 선명하게 빛났다. 그녀를 바라보며, 블레언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레아.”
왕녀의 귀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