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140)
140화
“……야.”
아, 놀랐네.
안 하던 소리를 하니까 놀랐잖아. 놀라서 심장 뛰었어.[‘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잠깐 눈을 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냐며 궁금해합니다.]‘없었습니다, 전혀.’
장난을 먼저 시작한 게 나인지라 탓하기도 뭐했다.
나는 걸음에 속도를 높여서 앞장섰다.
“빨리 바래다줘.”
“그래.”
점잖은 신사분께서는 목을 울려 웃고는 얌전히 나를 뒤따라왔다.
때는 7월.
한여름에 접어든 탓에 밤공기가 제법 후끈했다.✠그로부터 일주일이 흐른 시점.
나는 이런저런 문제들에 관하여 추기경 의회와 극적인 타결을 보았다.
공증 서류를 쭉 확인한 내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품위유지비와 출장비 책정이 아주 마음에 드네요. 이토록 성의를 보여주셨으니 저도 열심히 대륙을 돌아다니며 교단의 위상을 선양하고 오겠습니다.”
“가, 감사합니다. 그런데 예하…….”
데칼이 식은땀을 흘리며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첫 방문지를 바꿔주실 수는 없는지…….”
“없는데요. 전혀, 절대, 조금도.”
딱 자르고는 선언하듯 말했다.
“자아, 그럼 히스펜릴 공국에 방문 서한을 넣어주세요. 승낙이 떨어지는 대로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할아버지, 곧 손녀가 갑니다!
26장. 할아버지 댁 방문
히스펜릴 공국으로 출발하는 당일, 친선 사절단이 성황청 중정에 모였다.
중심에는 단연 신성경인 나, 그리고 내 기사단의 유일무이한 단원이자 성검의 주인인 테실리드가 있었다.
성기사 제복은 안 그래도 화려한 편인데 대표인 내 차림새는 좀 더 유난했다.
남들보다 태슬과 체인을 비롯한 장식을 훨씬 많이 단 것도 모자라, 한쪽 어깨에 짙푸른 클라미스 망토까지 걸쳐야 했다.
이에 대한 나의 감상은…….
‘더, 더워! 지금은 한여름이라고!’
오러를 운용해서 체온을 낮추고는 있지만, 뙤약볕 아래에서 옷을 몇 겹이나 껴입고 있으려니 조금도 시원하지가 않다.[‘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당신의 업그레이드된 제복 코스튬 착용으로 야근에 지친 심신을 위로받습니다.]……뭐, 나의 신께서 그러시다는데 땀샘에 힘을 주고 버텨보자.
그렇게 옆의 테실리드를 본받아서 살아 있는 성예술 조각상인 척하고 있을 때였다.
기사단을 끌고 온 렉스가 내게 예를 갖췄다.
“은총 기사단 전원, 준비 완료입니다, 예하.”
성황청은 은총 기사단으로 하여금 나를 수행하도록 했다.
나 포함 2인 기사단이 사절단의 총인원이어서야, 교단의 위상이 얕보일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은총과 항상 세트를 이루던 성전은 이번에 나와 함께하지 않았다. 듣자하니 그제 다른 임무를 받아서 떠났다고 한다.
배치 전환을 앞둔 이페일과 헤스티오에게는 성전으로서의 마지막 임무가 될 듯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나는 테실리드와 함께 공간 전이석으로 이동했다.[ 히스펜릴 공국의 수도, 페론사 지역에 입장했습니다. 시차에 따라 현재 시각을 조정합니다.]몸이 안착한 곳은 공왕성, 라이미안 하우스의 정문 앞 공터였다.
폭이 얼마나 되는지 모를 만큼 커다란 철제 창살 문은 활짝 열려 있는 상태였다.
그 안으로 물방울을 찬란히 뿜어내는 거대한 대리석 분수,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도록 꾸며진 중정이 한눈에 들여다보였다.
뒤따라서 은총 기사단원들이 대여섯씩 그룹을 지어 도착했을 때였다.
빠바바밤! 빰빠밤!
펑! 퍼벙!
우렁찬 관악기 연주음과 요란한 폭죽, 꽃잎 세례가 좌우에서 터져 나왔다.
“신성경 예하의 히스펜릴 공국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일찍이 도열해 있던 공왕성의 가신들이 열렬한 환영을 해주었다.
그들 사이에서 한 노신사가 걸어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신성경 예하. 수석 보좌관 에드가 발트 백작입니다. 공작 각하께서는 라이미안 하우스 안에서 예하를 뵙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따뜻한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어서 공작 각하를 뵙고 싶군요.”
아그네스가 생트집을 잡았다.
어휴, 참.
할아버지는 스스로 칭왕하지 않지만 국제 의전상으로는 왕에 버금간다.
이런 경우 보통 손님맞이를 위해 자식을 대신 보내지만 지금 우리 엄마는 가출…… 아니, 출가 상태고.
솔직히 격식을 따지는 게 이상하다. 지금 손녀가 할아버지 댁에 가는 것인걸.
에드가 보좌관은 테실리드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성검의 주인을 뵙습니다.”
“환대에 감사드립니다.”
음, 정말 건조하다.
“모시겠습니다, 예하.”
정문을 넘어 이동을 시작했다.
나와 테실리드는 앞에서 에드가와 같이 걸었고, 약간 거리를 두고 가신들이 은총 기사단을 안내하는 형태로 함께 뒤따라왔다.
길 양옆에는 미남 조각상들이 반쯤 헐벗은 채 늘어서 있었다. 탄탄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근육이 딱 내 취향이었다.
“중정이 굉장히 멋있네요.”
노신사가 알아봐 줘서 기쁘다는 듯이 대답했다.
“본래는 굉장히 우락부락한 대리석상이었습니다만, 최근에 싹 다 바꾸었습니다. 공왕 각하께 신성경 예하의 방문을 학수고대하며 저택의 단장을 새로 하라고 명하신 덕분이지요.”
“앗, 정말요?”
“예. 사실 각하께서 10년 전부터 종교에 굉장히 심취하신 상태입니다. 그 때문인지 신성경 예하 영접에 대한 기대감이 크셨던 터라 서둘러 진행하게 하셨지요. 당시만 해도 저는 느긋하게 준비해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지금에 와서 보니 저희 각하께서 옳으셨습니다. 예하를 가장 먼저 모시는 영광을 저희 히스펜릴 공국에서 누리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나는 입을 가리고 웃었다.
“그런 일이 있었다니, 각하의 훌륭한 혜안에 감탄할 수밖에 없네요. 그리고 제 방문에 신경을 많이 써주신 공왕성의 사용인분들께도 감사드려요.”
“어이쿠, 예하. 감사라니 당치도 않습니다.”
나를 향해 웃는 노신사의 인자한 얼굴에 호의가 보여서 기분이 좋아졌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수석 보좌관님조차 내가 공왕의 손녀인 걸 모르는군.
그러잖아도 지금 너무 기대되어서 가슴이 다 설렌답니다.
그러고 보니 테실리드도 모르네? 깨닫고 나자 기대가 더 커졌다.
당장은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듣는 할아버지 이야기가 궁금했다.
에드가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공작 각하는 어떤 분이신가요? 분명 훌륭한 분이시겠지요?”
“예. 훌륭하시다마다요. 알려진 것만 해도 공국의 성군이자 대륙에서 제일가는 권사이지 않습니까. 게다가 인간적인 매력도 차고 넘치시는 분입니다. 신실하고 소탈하신 분이니 예하께서도 분명 저희 각하의 훌륭한 인격에 호의를 느끼시리라 장담할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께 에드가 보좌관은 팔불출 형 같은 느낌이었을까.
“더 더 이야기해 주세요. 평소에는 뭘 하며 지내시나요?”
“하하, 저희 공작 각하께서는 근육을 참 좋아하셔서 말입니다. C급 광산에서 곡괭이질로 근육을 다듬는 수련을 즐겨 하십니다. 1년의 대부분을 그곳 베테랑 광부들과 지내시다가 추수감사절 무렵에만…… 따님이신 공녀님을 만나기 위해 귀가하시지요.”
마지막 문장을 맺었을 무렵 에드가 눈빛은 살짝 흐려져 있었다.
뭐, 할아버지와 엄마 사이가 나쁘다는 건 대륙의 모든 이들이 아는 내용이지.
분위기 쇄신을 위해 내가 말했다.
“사제들은 방문지에 축원 기도를 올리는 관례가 있지요. 이따 가내 평화를 기원하는 내용을 많이 넣도록 하겠습니다.”
“아, 예하!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에드가가 반색했다.
“저희 각하께서는 10년 전 따님을 찾은 것이 신의 은총이라 철석같이 믿고 계시는 분입니다. 신의 대언자이자 대행자이신 신성경 예하께서 기도를 해주시면 정말 기뻐하실 겁니다.”
명색이 성녀가 하는 기도이니 좀 더 영험하리라 믿는 게 당연했다.
에드가가 눈가에 눈물을 찍어낼 듯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한 것은 그때였다.
“소문을 들어 아시겠지만 공작 각하와 공녀님의 사이가 조금 데면데면한 편입니다. 가끔씩 주고받는 서신이 전부일 만큼 교류가 없지요…….”
“서신이라니.”
안타까워하는 에드가와 달리 나는 놀랐다.
추수감사절에만 만나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편지로 소통을 하고 계시긴 했구나.
이만하면 골이 많이 메워진 편 같은데.
“공녀님으로부터 답신이 자주 오지는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상서롭게도 신성경 예하께서 방문하시는 오늘 딱 맞춰 편지가 도착했군요. 이게 아마도 6개월 만일 겁니다. 각하께서 받자마자 어찌나 감격스러워하시던지. 집무 책상을 부숴 버리셨습니다.”
“그, 그 정도군요.”
“예. 유난히 기쁜 소식을 담은 내용이었으니까요. 예하께만 살짝 말씀드립니다만…….”
사제에게는 기도와 관련하여 개인의 비밀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하물며 성녀씩이나 되는 나는 믿을 수 있는 대나무숲이었으니, 기도의 효력을 최대치로 뽑아내기 위해 에드가는 망설임 없이 내 귀에 정보를 속삭였다.
“각하께서 조만간 외증손을 볼지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기도 내용에 이것도 꼭! 꼭! 넣어주시길 바랍니다.”
“네? 외, 외증손이요?”
“예.”
기도 의뢰를 마친 에드가는 흐뭇하게 웃으며 건물 입구로 들어가는 문을 열었다.
나는 계단에 한쪽 발을 디딘 채로 애매하게 굳었다.
자, 자, 자, 잠깐만.
외증손이라면 우리 엄마가 할머니가 된다는 소리 아닌가?
‘프, 프린츠가 사고를 쳤나?’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