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콰아아앙!
굉음이 울려 퍼진 곳은 다름 아닌 아낙시아의 뒤통수였다.
“……!”
아낙시아는 부지불식간에 벌어진 일을 이해하기 위해 눈을 한계까지 홉떴다.
시야에 한가득 비친 것은, 한 손으로 그녀의 이마를 쥐어 터뜨릴 듯이 움켜쥐고 있는 아일렛이었다.
“더 지껄여 봐.”
싸늘한 음성이 귀에 파고든 때에서야 현 상황을 깨달았다.
눈 깜빡할 사이, 아일렛이 아낙시아를 멀찍한 기둥까지 밀고 가서 처박은 것이었다.✠신성 강림을 쓸까 했었다.
신성 강림을 써서 단번에 찢어버리면 되니까.
자제하기 힘든 충동이었다. 하지만 아껴놓아야 한다는 이성이 가까스로 작동했다.
콰드득.
아낙시아의 뒤통수가 박힌 곳을 중심으로 기둥이 푹 파였다.
릴리트를 해치우고 얻은 스킬, ‘여왕의 괴력’을 발동시킨 효과였다.
아낙시아의 작은 머리통은 여전히 내 손아귀에 쥐여 있는 상태.
아낙시아로서는 굴욕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이 미친 마족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입꼬리로 곡선을 그려냈다.
“……정말 재밌는데?”
쉬이익!
거울에서 쏟아져 나온 사슬이 해일처럼 사방에서 나를 덮쳐온다.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사슬들은 마스터급 오러 유저의 오러 블레이드나 마찬가지였다.
오러 익스퍼트인 나로선 단독으로 덤벼드는 짓은 무리였다.
하지만.
콰드드득!
일시에 여러 방향에서 오러가 날아와 사슬을 상대했다.
“엄호할게.”
“엄호한다.”
“싸우세요, 누님.”
어느덧 주변 정리를 마친 애쉬, 이페일, 레이윈, 프린츠.
네 사람이 나를 위해 사슬을 견제해 주었다.
테실리드는 나보다 전위에 서서 어깨 너머로 말을 건넸다.
“아이, 절대 너한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할게. 맘껏 퍼부어.”
“응, 테리.”
그라면 믿을 수 있다.
그때 거울의 사슬로 일행들을 상대하고 있던 아낙시아가 나를 도발하고자 수작을 부렸다.
“또 약한 사내를 앞세우는 건가? 재미없게.”
대화에 어울려줄 기분이 아니었다.
스킬로 대답을 대신했다.
“단악.”
“이걸 공격이라고 한 거야? 간지럽지도 않아!”
뺨에 길지만 얕은 상흔이 생긴 아낙시아.
그녀가 전위를 뚫고자 테실리드를 날카롭게 몰아붙이며 외쳤다.
“방어가 불가능하다는 것 외에는 별 볼 일 없구나. 그런 스킬을 뒤에서 깨작거리는 것으로는 내 마기를 뚫을 수 없다!”
“단악.”
“가랑비로 몸을 적실 수는 있어도 익사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지 말고 네가 앞으로 나와라, 단악의 집행관! 그러지 않으면……!”
딜러들을 상대하던 거울 중 하나가 아낙시아의 옆으로 날아왔다. 하얀 손이 거울 속으로 쑥 파고들었다.
“이 예쁜 시녀를 네 눈앞에서 갈기갈기 찢어버릴 테니까!”
“……!”
아낙시아가 거울에서 손을 다시 빼낸 순간 내 눈이 한계까지 커졌다.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붙잡혀 나오는 여자의 손목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응? 뭐야, 이건?”
다 꺼내고 보니 엉뚱한 사람이었다.
“크흑, 여긴 또 어디냐……!”
“마르셀리온 공녀?”
끌려 나온 사람은 마도 공화국의 공녀, 오델리트 마르셀리온이었다.
오델리트는 엉망진창인 상태였다. 어디서 식물형 괴수와 사투라도 벌이고 왔는지 온몸에 촉수 뿌리 조각과 진흙이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모두가 아그네스와 같은 의문을 공유했다.
아낙시아는 오델리트의 발끝이 땅에 닿지 않도록 높이 들어 올리고는 말했다.
“난 분명 시녀를 가둔 훈육용 거울을 소환했는데? 대체 왜 이런 이상한 인간 계집이 나온 거지?”
우연한 실수인가?
비안카가 끌려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안도하고 넘어가기엔 위화감이 크다.
마침 신의 계시가 떨어졌다.[‘만상의 혼돈을 감시하는 눈동자’가 아껴두었던 당근을 격하게 흔듭니다!] [‘천기누설 감찰관’이 당근을 빼앗아 멀리 집어 던집니다.]선득한 느낌이 뇌리에 박혀 들어온다.
……확인해 보는 게 좋겠다.
“하, 됐다. 더러우니 일단 꺼져라!”
“헉!”
아낙시아가 오델리트를 집어 던졌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방향은 하필 이쪽이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일단 양팔로 받아서 땅에 착지했다.
“다, 당신은……! 성녀님 아닙니까? 지금 이 상황은 대체……!”
“마르셀리온 공녀.”
이것저것 캐물으려는 오델리트의 말을 끊었다.
“지금부터 제가 묻는 말에 솔직하게 대답해 주시는 게 좋겠어요.”
당신을 위해서.
“……뭡니까?”
“흑발의 귀족 영애가 갇힌 거울을 알고 있나요?”
“…….”
“당신이 가지고 있죠?”
“…….”
충분한 시간을 두고 기다려 주었다. 하지만 이윽고 돌아온 대답은.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정말인가요?”
“예.”
“……그래요.”
이걸로 되었다.
차가워지려는 표정과 음성을 정돈하고 그녀의 발을 땅바닥에 붙여주었다.
나는 전방에서 테실리드가 아낙시아의 주의를 끌어주는 것을 힐끗 확인하고는, 사무적인 어투로 그녀에게 상황 설명과 지시를 전달했다.
“현재 보스전 중입니다. 공녀는 후방에 계세요.”
“후방이라니요? 저도……!”
“아뇨. 개입하지 말고 뒤에 있어요. 여기서는 내가 지휘관이고, 나는 저번 헬카이온 토벌전에서 실책을 저지른 당신을 이번 전투에서 배제할 겁니다.”
“……!”
오델리트가 두 눈을 부릅떴다.
나는 무감하게 직시하며 헤스티오와 셀레스티드 왕녀가 있는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가세요. 자존심이 상한다면 왕녀 전하를 호위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해도 좋아요.”
“……”
“그럼 알아들었으리라 믿죠.”
오델리트는 이를 사리물며 눈앞의 나를 한 대 치고 싶다는 얼굴을 했다.
그러던 중 돌연 오델리트의 표정이 변했다.
헤스티오와 셀레스티드가 있는 쪽에서 뭔가를 발견한 것이었다.
“네, 네가 왜 여기에……?”
정신이 팔린 틈에 나는 오델리트에게서 돌아섰다.
이제껏 오델리트 따위에게 시간을 낭비한 게 미안해질 만큼 시야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군 딜러들은 이페일과 애쉬, 프린츠와 레이윈으로 나뉘었다.
두 팀은 양익(兩翼)처럼 아낙시아의 좌우에서 거울을 세 개씩 상대했다.
거울에서 뽑혀 나온 사슬들이 직선과 곡선으로 경로를 자유롭게 바꾼다.
그러다 일시에 하늘로 치솟아 작살비처럼 아군에게 쏟아졌다.
매서운 파괴력에 알현실 바닥은 포격이라도 맞은 듯 깨지고 부서졌다.
아군은 그런 사슬들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고 쳐내면서도 거울에 끈질기게 접근했다.
“막내야!”
“네, 형님!”
마침내 이페일과 애쉬의 협공으로 우측의 거울 하나가 부숴졌다.
“이쪽도 하나 처리했다!”
그로부터 머지않아 프린츠와 레이윈도 성과를 알려왔다.
두 사람은 부서진 거울을 밟고 등을 맞댄 채 남은 두 거울에 대한 공격을 준비했다.
나는 네 사람의 자잘한 부상을 치료해 주고 테실리드를 돌아보았다.
그는 아낙시아와 치열한 합전(合戰)을 벌이는 중이었다.
쌍을 이루는 두 개의 사슬 무기가 테실리드를 채찍처럼 번갈아 후려쳤다.
테실리드는 성검을 들어 첫 번째 사슬을 막아냈다.
강력한 반동으로 튕겨나가려는 검을 억제하며 두 번째 사슬을 막았을 때였다.
사슬은 처음과 달리 검신에 타격되고도 궤도를 틀지 않았다. 대신 검을 빠르게 휘감았다.
아낙시아가 사슬 끝을 잡아당겼다.
테실리드는 그녀에게 속수무책으로 끌려가는 척하다가 성검을 빠르게 재소환했다.
풀려난 성검을 고쳐 쥔 그가 아낙시아의 심장을 겨누고 미끄러지듯 접근했다.
캉!
검 끝은 사슬의 고리에 막혔다. 지척의 거리에서 아낙시아가 비웃음을 날렸다.
“은발, 그 얼굴을 하고서 너무나 약해 빠졌구나.”
“…….”
“아무리 생각해도 그 거죽은 네 녀석에게 사치야. 내게 내놓아라!”
아낙시아의 한 손이 테실리드의 얼굴을 움켜쥐려 하는 것이 보인다.
마침 나는 보조 주문을 다 쌓은 참이었다.
“테리, 눈 감아.”
내 손이 섬광을 터뜨렸다.
“소제하라.”
“……큭!”
영혼을 태우는 강력한 빛이 아낙시아의 눈에 집중되었다. 그녀는 즉시 뒤로 물러섰다.
이때를 기다렸다.
“신벌.”
일전에 뚫어놓은 천장의 구멍을 통해 밤하늘을 휘젓는 뇌전의 회오리가 비친다.
그 다섯 갈래의 극점에서부터 낙뢰가 꽂혔다.
“끄아아악!”
직격당한 아낙시아가 비명을 지르며 떨어져 나갔다. 그녀의 전신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성공이다. 이로써 그녀를 보호하던 마기가 상당히 벗겨져 나갔다.
아낙시아의 얼굴이 야차처럼 일그러졌다.
“단악의 집행관!”
“응, 아낙시아. 이제 그 이름값 해줄게.”
나는 아낙시아가 주문한 스킬을 시전했다.
“단악.”
“크윽!”
테실리드에게 덤벼들던 아낙시아의 몸이 꼬꾸라졌다.
이전과 달리 제대로 먹혀들어간다는 것을 알았으니 망설일 게 없다.
“단악.”
고집스레 이 스킬을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시전 시간이 비교적 길고 대상의 쇠약도에 따라 위력이 달라지지만, 존재 자체에 타격을 주는 궁극 스킬이라는 이점이 있다.
테실리드가 아낙시아를 온몸으로 막아주고 있는 지금, 그를 피해 아낙시아만 공격하기에는 최적이다.
“단악.”
“커흐흑!”
시전 횟수가 늘어날수록 아낙시아의 몸 이곳저곳에 생채기가 늘어갔다.
물론 그 상처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것은 피 따위가 아니다. 회복 불가능한 영혼의 조각이다.
아낙시아의 핏발 선 두 눈이 나를 향했다. 하지만 곧 테실리드가 그녀의 시야를 가렸다.
“비켜라, 은발!”
“…….”
“비키라고!”
테실리드는 대꾸하지 않고 그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그동안 나는 뒤에서 편하게 신성력을 아낙시아에게 퍼부었다.
이제 몇 번 남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토벌은 시간문제.
극도의 위기감을 느낀 듯 아낙시아가 대응하고자 스킬을 시전했다.
“조금쯤은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는 게 좋을 거다!”[ 경고. ‘피의 반사’가 발동됩니다.]아낙시아의 눈이 기이한 안광을 발하며 번뜩였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