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176)
176화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신도의 위기에 눈을 부릅뜬 채 부들부들 떱니다.] [‘만상의 혼돈을 감시하는 눈동자’가 잔혹함에 눈을 가립니다.]콰드득! 콰지지직!사슬의 무자비한 힘에 의해 쉼 없이 끌려다니는 동안, 내 등이 벽에 파인 자국을 길게 만들어낸다.
야만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에 나 대신 벽이 비명을 지른다.
단단한 돌벽이 부서지는 소음 때문에 귀가 다 얼얼했다.[‘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어서 수성의 방벽을 쓰라고 외칩니다.]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해당 스킬은 제로 거리 타격에는 무용하다고 설명합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그럼 신성불가침을 쓰라고 외칩니다.]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해당 스킬은 초월 등급이라서 아직 신성 강림 상태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그럼 아끼지 말고 신성 강림을 써버리라고 외칩니다.]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쉽게 말하지 말라고 울분을 토합니다.]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자! 이걸로 마무리다, 단악의 집행관!”
사슬이 나와 셀레스티드를 잡아끄는 방향이 변화한다.
소름 돋는 부유감과 함께 몸이 알현실의 허공을 가로질렀다.
쉬이이익!
한쪽 벽에서 맞은편 벽으로 단숨에 이동하여 등부터 처박혔다.
동시에 셀레스티드를 옥죄던 사슬이 깨지며 자폭하듯 마기가 터졌다.
콰아아앙!
“…….”
분명 거창한 폭발음이었을 텐데 아득하게 들렸다.
숨을 쉬기 힘든 게 먼지구름 탓인지 전신에 엄습한 고통 탓인지 모르겠다.
정신이 잠시 명멸했다.✠아낙시아가 아일렛의 등으로 알현실의 모든 벽을 갈아버리는 동안 일행들이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아낙시아!”
가장 먼저 눈이 뒤집혀 아낙시아에게 달려든 것은 프린츠였다.
그는 검을 올려 들며 빠르게 접근했다.
사방에서 사슬이 그를 멈추려 시간차로 뻗어왔지만 모조리 피하고 쳐냈다.
앞으로 다섯 걸음. 그의 검이 아낙시아에게 거의 닿을 듯했다.
그러나.
“어딜 감히.”
아낙시아의 눈길이 스침과 동시에 그를 덮쳐오는 무수한 사슬의 해일. 그것 앞에서는 무력했다.
“커헉!”
사슬들이 프린츠의 어깨, 복부, 허벅지를 동시에 꿰뚫는다.
아낙시아는 사슬에 꿰인 그를 가차 없이 내동댕이쳤다.
“프린츠!”
레이윈이 순간적인 판단으로 프린츠와 벽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가 온몸으로 충격을 완충해준 덕택에 프린츠는 목숨을 건졌다.
그때 아낙시아가 뭔가를 감지한 듯 태연히 고개를 돌렸다.
“응? 넌 또 뭐야?”
“윽!”
빈틈을 노려 세 걸음 뒤까지 접근했던 애쉬가 아낙시아에게 감지되었다.
기습의 실패에는 큰 대가가 따랐다.
“꺼져.”
“……!”
두꺼운 사슬 다발이 매섭게 애쉬의 복부를 후려쳤다.
그는 프린츠와 달리 가까스로 착지는 해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커흑! 쿨럭!”
가격당한 배의 장기가 심하게 상했다. 그는 적잖은 양의 피를 토해냈다.
토혈하느라 정신없는 틈에 사슬 몇 줄기가 그의 머리를 노리고 쇄도해 왔다.
대응하기는 늦었다고 판단한 애쉬가 눈을 부릅뜨는 찰나, 이페일이 그것들을 쳐냈다.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음에 기뻐할 사람은 없었다.
아일렛은 여전히 셀레스티드를 감싸 안은 채 벽에 갈리고 있었으며, 프린츠와 애쉬 두 사람은 순식간에 중상자가 되었다.
“내 즐거움을 방해하지 마라.”
아낙시아의 격이 담긴 싸늘한 경고가 떨어졌다.
보스의 위압감에 아군은 잠시 흠칫하고 말았다.
콰드드득! 으드득!
그사이 어느덧 아일렛과 셀레스티드를 매단 사슬이 알현실을 한 바퀴 완주했다.
아낙시아가 한껏 고양된 음성으로 외쳤다.
“자! 이걸로 마무리다, 단악의 집행관!”
사슬이 두 사람을 내동댕이친다. 아일렛이 셀레스티드를 감싼 채 허공을 가로질러 맞은편 벽에 처박혔다.
동시에 사슬이 깨지며 마기가 폭발했다.
콰아아앙!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일대의 대기가 탁하게 물들었다.
“누, 누님!”
“아일렛!”
겹쳐진 절박한 외침은 다섯 개였다. 테실리드는 차마 아일렛을 부르지 못했다.
털썩!
그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반사적으로 성검을 바닥에 꽂아 몸을 지탱하지 않았다면 꼴사납게 쓰러졌으리라.
“쿨럭, 쿨럭……!”
그의 입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조금 전에야 비로소 발동시킨 귀속의 수호로 인해 아일렛의 모든 상처가 그의 몫으로 넘어왔기 때문이다.
내장이 진탕된 것 같았다. 극심한 내상에 곧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피를 토해냈다.
테실리드는 흐려지는 눈을 힘주어 뜨고 뭉개지려는 의식을 붙잡으며 생각했다.
이로써 아일렛의 상처를 그가 가져왔다.
그리고 어쨌거나 그는 살아 있다. 그러니 아일렛도 분명 무사할 것…….
‘아니, 확신할 수 있나?’
그는 귀속의 수호의 작동 기제를 완벽하게 알지 못한다.
만약 일정 이상의 고통과 부상은 전달하지 않도록 역치가 설정되어 있는 것이라면?
아일렛 로델라인과 관련된 문제에서 그는 극도로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피에 젖은 입술에서 떨리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아이.”
작은 목소리 탓인지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다시 한번 불렀다.
“아일렛.”
그리고 또다시 한번.
“아일렛 로델라인.”
왜일까.
피를 많이 흘린 탓에 느려져야 할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이 뛰어댔다.
그 불안한 심박동에 공명하듯 성검이 울림을 전달해온다.
미력할 정도의 떨림. 그러나 그의 안에서는 지축이 흔들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바닥에 비친 성검의 그림자가 기이하게 변해 있었다.
성검의 힐트에 박힌 것은 푸른 스퀘어 보석이건만, 그림자에는 붉은빛이 투영된다.
그때였다.
“다들 왜 이렇게 다쳤어?”
“……!”
익숙한 음성이 관통하듯 모두의 귀에 꽂혔다.
탁한 먼지구름 속에서 인영이 걸어 나온다. 걸음을 옮길수록 실루엣에 색이 덧씌워진다.
셀레스티드 왕녀를 양손으로 받쳐 안은 아일렛이 모두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성기사 제복이 너덜너덜해진 것을 제외하면 멀쩡했다.
“치유.”
강력한 신성력에 의해 중상자들이 차례대로 순식간에 치료되었다.
“아일렛!”
“누님!”
그녀를 부르는 아군의 음성이 아까와 전혀 달라졌다.
아낙시아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아일렛에게 말했다.
“정말 질긴 등가죽이로구나, 단악의 집행관.”
“야, 진짜 아팠다. 네 등도 짓이겨줄 테니 각오해.”
“너나 조심해라. 내게 등짝을 보인 순간 엉망진창으로 찢어놔 주마.”
“뭐래. 너 같은 거한테 보여줄 등짝은 없어.”
씹어뱉듯 말한 아일렛은 셀레스티드를 헤스티오에게 맡겼다.
그때 가녀린 손이 다급히 아일렛의 팔을 붙잡았다.
“자, 잠시만요!”
“왕녀 전하?”
무슨 일이냐는 의문을 담아 불렀을 때였다.
“구, 구해주세요……!”
난데없는 애절한 구조 요청이 돌아왔다.
이에 아낙시아가 입꼬리를 한껏 끌어당겼다.
“그래, 잊지 마라. 아직 인질 하나가 내 손안에 남아 있다는 것을!”
“으, 으아악!”
아낙시아가 하데일 왕자를 알현실 천장에 높이 매달아 진자 운동을 시켰다.
하데일은 비명을 지르다 혼절했다.
“흐음.”
아일렛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원작에서 1왕자 하데일은 테실리드를 몇 번이고 계략에 빠뜨려 죽이려고 한 것은 물론, 부당한 명령으로 레이윈과 싸움까지 붙였다.
아일렛에게 있어서 그는 인간 말종의 악역이었다.
아일렛이 셀레스티드에게 말했다.
“사이도 별로 안 좋으신 것으로 아는데 설마 새삼스럽게 혈육의 정인가요? 이중인격 오라버니는 사고사로 처리하고, 착한 이복 남동생과 잘 지내보시면 어떨까 싶은데요.”
“오, 오라버니를 구해달라고 청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럼요?”
이때 아일렛은 무방비하게 되물을 것이 아니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뒀어야 했다.
“비아를…… 비안카를 구해주세요!”
“……뭐?”
반문한 음성은 두 개였다.
싸늘하게 굳어버린 아일렛을 대신해서 프린츠가 물었다.
“전하, 방금……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비안카 길레트, 제 측근 시녀가 아낙시아의 거울에 갇혔어요. 제발 구해주세요!”
“…….”
프린츠의 눈빛이 변하며 평소 온화한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이 기세가 흉흉해졌다.
그러나 아일렛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비아를…….”
“…….”
“비아를 건드렸다고…….”
“…….”
페리도트 빛 눈동자에 살얼음이 낀 듯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아낙시아가 즐거운 웃음을 터뜨리고는 말했다.
“그 예쁜 시녀와 아는 사인가 봐? 이거 일이 아주 재밌게 되었는걸.”
“너, 비아를 어떻게 했어?”
질문을 담은 음성은 차분했다. 그러나 그 아래 두껍게 깔려 있는 분노는 확연했다.
그것이 소름 돋을 만큼 향기로워서 마족의 후각을 자극했다.
아낙시아가 눈꼬리를 한껏 휘어 웃었다.
“말을 안 들어서 훈육을 좀 했지.”
“……훈육이라고?”
“그래. 손목과 발목에 사슬을 감아서 관짝 크기의 조그만 공간에 가둬놨어.”
“언제, 부터?”
“글쎄? 왕족을 납치한 직후니까 일주일 전쯤부터?”
“…….”
“아아, 역시 쓸모 있는 것을 바로 알아본 내 안목이란. 그래서 너와는 무슨 관계야? 친구? 소중해? 얼마나? 많이? 응? 응?”
“…….”
“푸흡! 대답 안 하면 뭐 해? 얼굴에 다 드러나는데. 그나저나 어쩌면 좋지? 그 예쁜 시녀는 곱게 자란 연약한 귀족 영애인 것 같은데 말이야. 지금쯤 ‘아낙시아 님, 제발 용서해 주세요!’라면서 엉엉 울고 있을지도…….”
뒷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