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224)
224화
[‘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마침 근처에 절벽이 있으니 뛰어내리면 기연을 얻을 수도 있겠다고 말합니다.]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다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버럭 합니다.]나는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에효, 다 쉬었어요.”
“재능이 없으면 근성이라도 있어야죠.”
드디어 아그네스에게 내 진지함이 닿은 모양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보던 그녀가 이내 근엄히 말했다.
“네?”
내 위치에 맞춰서 아그네스가 자리를 잡았다.
그녀가 턱을 살짝 치켜듦과 동시에 그녀의 의념이 일곱 자루의 오러 블레이드를 소환해 냈다.
조금 전은 확실히 오만하면서 멋져 보이는 턱짓이긴 했다.
저걸 따라하면 되나 싶어서 한번 따라 해보았다.
‘음, 안 되네.’
아무 반응도 없어서 머쓱하던 때에, 아그네스가 설명을 이었다.
“아뇨…….”
“…….”
여러모로 생각이 많아졌다. 어쩌면 선망의 자세로 비검(飛劍)을 바라본 게 틀렸던 것일까?
의문이 들었지만 깊게 파고들 여유는 없었다.
스승이 먼저 검을 뽑고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제자로서 시간을 길게 끌 수 없었다.
스르릉. 나의 애검은 여전히 맑고 영롱한 쇠울음으로 나를 응원해 주었다.
문득 나만의 검을 심상화라는 말이 떠오른다.
‘내 검, 세르펜스…….’
횡으로 눕힌 사복검의 검신에 내 얼굴의 일부가 비쳤다.
이 순간 내 눈을 들여다보는 것이 왠지 세르펜스와 시선을 맞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심호흡을 하고 자세를 잡았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외침과 동시에 내 발이 땅을 박찼다.
40일간의 극기 체력 훈련은 내 몸을 더욱 단련시켜 놓았다.
예전보다 빨라진 속도로 내 몸이 아그네스에게로 접근했다.
아홉 걸음 거리였던 것이 점점 좁혀진다.
여덟, 일곱, 여섯……. 그리고 마침내 다섯 걸음 거리를 남겨둔 순간.
쉬이익!
아그네스가 일곱 자루의 오러 블레이드를 내 쪽을 향해 던졌다.
검들이 회전하며 나를 향해 날아온다. 회전력이 매서운 절삭음을 만들어냈다.
개중 하나가 내 눈앞을 쓸고 지나가는 것을 시작으로 사방에서 맹공격이 시작되었다.
기감을 펼쳤다. 극도로 예민해진 감각권에 오러 블레이드들이 느껴졌다.
감지는 가능하다. 문제는 물리적으로 상대할 수 있느냐다.
이번에는 에우로페를 꺼내지 않았다. 일곱 자루를 상대하기에 두 자루의 검은 정답이 아니다.
적이 여럿이라고 인식을 전환하자 돌파구가 보였다.
‘검이 부족하면 몸으로 때워야지.’
탁!
내 발목이 매끄러운 회전력을 담아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산 정상의 무도회장에서 춤을 추듯 내 몸이 움직이며 검을 상대했다.
적진 한복판에 파고들 때 유용한 검술 보법, 몰살의 무도를 발동시킨 것이었다.
춤을 추듯 누비며 사방의 오러 블레이드를 피하고 쳐냈다. 검광이 쉴 새 없이 번뜩이며 스파크가 튀었다.
쉬익!
매서운 파공음이 왼쪽 귓가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분명 피했으나 풍압조차 날카롭기 짝이 없었다. 왼쪽 뺨에 혈선이 그려지는 게 느껴졌다.
무시하고, 전진한다.
그렇게 분투한 끝에, 네 걸음.
휘릭!
아그네스가 지휘하는 광휘의 검들이 진형이 바꾸었다.
새하얀 오러 블레이드들이 나를 둥글게 에워싸더니 가까운 지면에 꽂혔다.
그리고 형태를 길게 늘여 원뿔형 감옥 속에 나를 가두었다.
웅웅 공명하는 짧은 순간 폭발의 조짐을 느꼈다. 여기서는 신성력을 쓸 수밖에 없다.
“신성 불가침!”
그 순간 오러의 폭풍이 산 정상을 뒤덮었다.
쿠과과광!
지축이 흔들렸다. 폭발에 땅거죽이 파이며 나무 몇 그루가 휩쓸려 날아가 버렸다.
‘미친 오러량……!’
제자리에서 버틸 재간이 없었다. 나는 풍압에 몸을 맡기고 뒤로 날아가듯 물러났다.
그 와중에도 나는 원거리에서 공격을 시도했다.
매끈한 직선의 검신에 오러를 주입해 휘두르자 세르펜스가 유려한 곡선으로 늘어난다.
그것이 먹이를 물어뜯으려는 뱀처럼 파고들어 아그네스의 목을 노렸다.
그러나.
내 손목의 움직임만으로 아그네스는 궤도와 파괴력을 간파해 버린다.
심지어 내 공격은 원거리에서 이루어졌다. 대응할 시간은 차고 넘쳤다.
내 세르펜스의 궤도가 수직으로 작렬하는 아그네스의 오러 블레이드들 때문에 가로막힌다.
포획당한 뱀처럼 꿈틀대는 내 가여운 세르펜스를 빠르게 회수했다.
“하아, 하아…….”
숨을 고르며 재정비를 할 때였다.
“……!”
아그네스의 보랏빛 눈동자가 서늘한 안광을 발했다.
절대적 무위 차이를 보여주겠다는 듯한 눈이었다.
그래, 이제부터가 진짜다.
“흡……!”
기합을 넣고 세르펜스를 양손으로 쥔 채 집중했다.
사방에 흩어져 있던 오러 블레이드가 아그네스의 부름을 받들었다.
검들은 그녀의 등 뒤에 도열해 있다가 일시에 포물선을 그리며 길게 늘어났다.
사복검답게 변화한 오러 블레이드들이 주변 일대를 난폭하게 휘젓기 시작했다.
“헉!”
마치 칠미호의 꼬리가 나를 후려치는 듯했다.
콰지지직! 콰드득! 콰아앙!
어마어마한 파괴력에 산 정상의 돌과 나무가 마구 터져 나간다. 나는 즉시 막으려던 생각을 고쳐먹었다.
내 두 다리가 넓은 지역을 내달리며 도망치듯 회피했다. 몸을 낮춰서 하나를 피하고, 슬라이딩해서 또 하나를 피하고, 그 상태로 바닥을 짚어 궤도를 트는 것으로 두 개를 동시에 피했다.
그사이 또 하나의 오러 블레이드가 변화무쌍하게 휘며 내 어깨를 파고들었다.
이번에는 피하는 게 불가능했기에 세르펜스를 세워 들었다.
챙!
그그그그극!
공격의 궤도를 비트는 데는 성공했으나 오러 블레이드가 세르펜스를 길게 긁고 지나갔다.
대치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내 움직임이 묶였다.
‘안 돼!’
그리고 다음 순간.
퍼어어억!
“커흡!”
등에 육중한 타격이 느껴졌다. 목구멍을 타고 핏물이 울컥 터져 나왔다.[‘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시련의 마천루 건축가’가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을 다시 앉힙니다.]그나마 신성 불가침이 있었으니 이 정도로 끝난 것이었다.
아그네스는 후속타를 날리지 않고 오러 블레이드를 거두어들였다. 덕분에 치료할 시간을 벌었다.
“…….”
근거도 없이 쉽게 말하는 아그네스였다.
하지만 대거리하기엔 그녀의 뒤쪽에서 횡으로 누운 오러 블레이드들이 살벌했다.
나를 향해 겨누어진 그것들은 언제라도 쏘아져 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나는 오랜 학습을 통해 직감했다.
‘피할 수 없어.’
이 악물며 나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을 불러냈다.
“신성 불가침. 수성의 방벽.”
방어 스킬을 다시금 몸에 새롭게 두르고 그녀의 공격을 받아냈다.
일곱 자루의 오러 블레이드가 시간차로 쇄도해 들어왔다. 연이은 타격에 결계가 부서지고 종국에는 뚫려버린다.
수성의 방벽을 관통한 오러 블레이드가 내 몸을 분쇄하려 들었다.
“큽……!”
가만히 맞아줄 생각은 없었다. 검을 들지 않은 왼손으로 공중제비 넘으며 물러났다.
쾅! 콰앙! 쾅!
지면에 헛되이 처박힌 오러 블레이드들이 폭발을 일으켰다.
연속적으로 뒤로 물러나다 이윽고 나는 멈춰 섰다.
아그네스에게는 아직 하나의 오러 블레이드가 남아 있었지만 쏘아 보내지 않고 손속에 여유를 두었다.
그 이유는…….
잘그락.
내 뒤꿈치에 밟힌 자갈이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등 뒤는 아득한 허공. 절벽이 있었다.
나는 입안의 살을 짓씹었다.
‘……몇 번째지.’
계속 이런 식이었다. 허공을 맘껏 누비는 비검들에게 몰아붙여져, 절벽까지 밀리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다.
“하.”
대련을 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느끼게 되는 무력감에 신물이 난다.
아그네스는 다시 일곱 자루의 오러 블레이드를 불러들이고는 나직이 말했다.
“…….”
내 검을 뽑으라고.
그 말이 세르펜스를 뽑으라는 뜻이 아님을 안다.
‘어떻게 하는 건데요, 그거…….’
분했다.
왜 못하는 거야.
검을 어떻게 만들라는 건데.
자괴감에 매몰되려다가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차렸다. 아그네스는 차라리 오만해지랬다.
그때 다시 아그네스가 같은 공격을 천천히 준비하는 것이 보였다. 그녀의 음성이 나를 차근히 가르쳤다.
“…….”
“…….”
오러 블레이드들이 나를 사냥하고자 과녁을 겨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검을 심상화……. 검을 지휘하고, 지배하라고…….’
그러다 문득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검?’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일반적인 검을 뜻하는 것이 아닐 터다.
검을 만드는 건 대장장이의 일. 나는 검사다.
그렇다면 내가 심상화하여 지휘하고 지배해야 하는 것은 검이 아니라…….
‘검술. 사복검술이다.’
그럼 스스로에게 묻건대, 내 안의 사복검술은 뭐지?
“……아.”
무의식적으로 눈을 뜬 순간이었다.
강한 바람이 정면에서 밀려왔다.
일곱 개의 검이 나를 향해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 영향으로 회오리 같은 검풍이 먼저 나를 덮쳐왔다.
나는 두 눈을 한계까지 벌렸다. 아름답게 나선을 그리며 가까워져 오는 오러 블레이드들을 망막에 새겨 넣을 듯이 눈에 담았다. 몸은 대응을 잊었다.
의아해하는 아그네스의 음성이 귀를 스쳐 달아났다.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저 한 가지 생각에 몰입해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사복검술. 그 본질은 바로…….
‘포식한다.’
콰아아앙!
섬광이 터지고 굉음이 울려 퍼졌다.
일곱 자루 오러 블레이드가 일점에 꽂힌 충격이 지축을 우르릉 울렸다.
누런 흙먼지가 한참 후에 잦아들었다.
나는 아그네스의 검격을 정면에서 받아낸 사람답지 않게 멀쩡했다.
나는 고개를 들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내 몸 주위를 두 자루의 오러 블레이드가 공전하듯 맴돌고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내게 사역되는 존재들 같았다.
“아…….”
뭔가 아득한 곳에 다녀온 느낌이 들었다. 의식이 갈무리되어 현실감이 조금씩 돌아올 때였다.
아그네스의 음성이 상황을 정리해 주었다.
메시지창이 쉴 새 없이 갱신되었다.
빙의 관리국 신들의 축하가 내게로 쏟아지고 있었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