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325)
“내 연인은 왜 교황 성하일까……. 이래서는 내가 너무 무도한 인간이 될 것 같아…….”
“…….”
아무래도 서로 생각한 게 비슷했던 것 같다.
그제야 이 부끄러움과 서먹함조차 사랑스러워졌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내 손등을 조심스레 그의 뺨에 가져다 댔다.
“아이……?”
“열…… 식혀주려고.”
내 접촉에 잠깐 놀란 듯했던 테실리드가 이내 평온히 미소 지었다. 애정의 재확인은 평정을 되찾아주는 데 효과가 좋았다.
문제가 있다면 기대 이상으로 여유까지 되찾아줬다는 것일까.
“고마워.”
테실리드는 내 손을 감싸듯 붙잡고 뺨에 부드럽게 비볐다. 그리고 제 입술로 끌어당겨 내 손 끝에 가볍게 입 맞추었다.
경애를 바치는 미남자의 모습에 심장이 떨린다. 나는 짐짓 불만스레 투덜거렸다.
“……뭐야,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
“이런 거?”
유혹할 의도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는 듯이 말갛게 되묻는 것이 얄밉다. 그래, 그냥 기사도의 일환일 뿐이라 이거지.
좋아, 너도 당해봐라.
이번에는 내 쪽에서 그의 손을 잡아당겼다. 힘줄이 도드라진 남자다운 손목을 쥐고 커다란 손바닥을 내 입술에 끌어왔다. 그리고 부러 쪽 소리 나게 입 맞췄다.
그 상태로 시선만 올려서 그의 반응을 살폈다.
“…….”
그의 흉곽이 크게 부풀어 오른 채로 멈춘다. 석상이라도 된 듯이 호흡을 잊은 모습이 만족스러웠다.
이쯤에서 결정타를 날려주도록 하자.
발돋움해서 그의 코앞으로 얼굴을 한껏 들이대고는 얄밉게 말했다.
“동요하네?”
“……아.”
테실리드의 얼굴이 더할 나위 없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날숨을 길게 내뱉고는 졌다는 듯이 말했다.
“그대로 돌려받았군.”
“자각 없이 유혹하니까 혼나는 거야.”
“이런 벌이라면 더 혼나고 싶어지는데.”
“큰일 날 소리 한다.”
“어차피 난 너한테만 이러니까 상관없잖아.”
“앗, 그런가?”
생각해 보니 테실리드는 죄가 없는 것 같다.
그가 웃으며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이제 집에 돌아가자.”
“응, 그러자.”
호수를 절반 돌았기에 나머지 절반을 마저 돈 뒤에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달빛을 사박사박 밟은 끝에 도착한 우리의 오두막집. 낮은 울타리 너머로 재밌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본 그 흰 양말의 고양이가 그네를 해먹 삼아 늘어져 있다가 우리를 보자 후다닥 수풀로 도망친 것이다.
왠지 앞으로 그네는 나와 테실리드보다 고양이가 더 많이 사용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을 때 테실리드가 내게 권했다.
“아이, 잠깐 그네에 앉아볼래?”
“밀어주려고?”
“원한다면.”
나무판자에 앉아 밧줄을 쥐고 다리를 띄웠다. 곧 테실리드가 뒤에서 그네를 부드럽게 밀어주기 시작했다.
“에이, 좀 힘차게 밀어봐.”
“…….”
“옳지. 신난다!”
“……재밌어?”
“응, 응.”
그렇게 한참을 타다가 슬슬 충분하다고 느꼈을 때였다. 내 속내를 기가 막히게 알아챈 테실리드가 그네의 진동 폭을 줄였다.
이윽고 그의 손에 밧줄이 붙잡히자 그네가 완전히 움직임을 멈췄다.
“좋아, 테리. 튼튼하게 잘 설치된 것 같아. 고생했어.”
이제 테실리드가 타고 내가 밀어줄 차례일까 싶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뒤쪽에 있던 테실리드가 속삭였다.
“아이, 계속 앉아 있어.”
“응?”
“할 게 있어서.”
“뭔데?”
“글쎄, 뭘까.”
웃음으로 말을 얼버무린 그가 그네의 뒤쪽에서 앞쪽으로 돌아와 내 정면에 섰다. 그리고…….
“어……?”
한쪽 무릎을 정중히 꿇으며 나를 그윽하게 올려다보았다.
순간 달콤한 의혹이 내 머릿속에 퍼뜩 떠올랐다.
‘서, 설마?’
이 자세.
이 분위기.
아무리 봐도 그거 같지?
그렇지?
삽시간에 부풀어 오른 기대감에 내 눈이 커졌다.
나도 모르게 그네의 밧줄을 힘주어 잡는 동안, 테실리드는 나를 물끄러미 지켜보더니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왜 긴장했어?”
알면서 묻는 거다, 저건. 나는 작게 씩씩거리며 원망을 토로했다.
“너, 너…… 만약 지금 나 놀리는 거면 그러면 안 돼. 나 지금 숨 안 쉬어질 것 같단 말이야.”
“놀리는 거 아니야. 그리고 숨 쉬어.”
“내 숨이 넘어가는 걸 막으려면 하려던 걸 빨리 마저 해줘. 서두르는 게 좋을 거야.”
“아아, 내가 겪어본 것 중 가장 무서운 인질극이군.”
테실리드가 품을 뒤적여 자그마한 벨벳 상자를 꺼냈다. 뚜껑을 열자 보인 것은 큼지막한 분홍빛 보석이 박힌 반지였다.
“아이.”
그라고 해서 마냥 여유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긴장을 품은 중저음의 미성은 평소보다 깊고 낮게 울렸다.
“손을…….”
“으응…….”
그가 내 왼손 약지의 묵주반지를 오른손으로 옮긴 뒤,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를 새롭게 껴주었다.
황홀한 반짝임 때문일까. 눈이 조금 아릿한 기분이었다.
반지의 아름다움보다도 반지의 의미가 가지는 아름다움이 더 컸다. 나는 먹먹한 기분 속에서 반지 너머의 테실리드를 보았다.
여전히 정중한 자세로 나보다 조금 낮은 곳에서 내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는 테실리드. 그가 모양 좋은 입술을 열어 현악기처럼 매력적인 중저음을 연주해 낸다.
언젠가 들었던 말, 그러나 약간의 변주를 곁들여 그가 내게 청했다.
“내 마지막 시간선의 끝까지 함께 살아줄래?”
그렇다면 내 대답도 정해져 있다.
“응. 내가 있는 시간선에서 같이 살자.”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 언약했다.
기뻤다. 진심으로, 정말로,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어떡하지. 너무 행복해.
앞으로 그와 쭉 함께하는 삶이 벌써부터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했다.
봄에는 벚꽃 잎이 살랑살랑 떨어지는 꽃길 속을 걸으며 팔짱을 끼고.
여름에는 광활한 바다의 수평선에서 일출과 일몰을 보며 어깨를 살포시 기대고.
가을에는 같은 앞치마를 두른 채 식탁이 가득 차도록 함께 만든 요리를 서로 한 입씩 먹여주고.
겨울에는 눈 내리는 아침까지 따뜻한 하얀 이불 속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반복되는 사계절 속에서, 그렇게 서로를 듬뿍 사랑해 주며 살아갈 거야.
“행복하게 살자. 행복하게 해줄게, 테리.”
“응. 네가 내 행복이니까, 나도 네 행복이 되도록 노력할게.”
대답한 테실리드는 몸을 일으켰다. 달빛을 등진 그가 역광 속에서도 선명히 빛나는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의 손은 나를 일으켜 주는 대신 그네의 밧줄을 쥐었다. 곧 장신의 상체가 내 쪽으로 천천히 기울여졌다.
“아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얼굴이 이제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안달하며 내 초점 거리 안쪽으로 파고든다.
나는 기꺼이 그에게 맞춰 고개를 들고 입술을 열어주었다.
붉고 말랑한 도장이 찍히고 습한 숨결을 교환했다.
호흡을 잇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가슴의 오르내림이 거칠어지고 심장이 북이 되어 우는 것을 느꼈다.
한계다 싶었을 때쯤 호흡의 결합이 헐거워졌다.
이마를 마주 댄 채 숨을 골랐다. 한껏 흐트러진 상태를 지척에서 드러내 보이는 것이 부끄러워 머리로 열이 몰린다.
다행히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 역시 나처럼, 아니 나 이상으로 스스로를 다스리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는 무언가를 강하게 인내하는 듯했다. 살짝 찌푸린 얼굴마저도 매혹적인 그가 한참 동안 나를 눈에 담는다.
어둠 속에서도 요요한 빛을 내는 바다색 눈은 어쩐지 갈등하는 듯했다.
물론 그는 훈련된 기사님이었다.
탄식 같은 한 번의 심호흡, 지그시 감았다 뜬 한 번의 느린 깜빡임.
그것만으로 저를 진정시킨 그가 나를 일으켜 주었다.
“먼저, 들어가.”
현관까지의 짧은 거리를 에스코트해 주고, 손수 문까지 열어주는 기사도.
내가 가만히 서 있자 그가 재촉한다.
“어서. 안 그러면.”
“…….”
“……어겨 버릴지도 몰라.”
턱에 힘이 들어간 나머지 볼품없이 뭉개진 단어.
그러나 내 귀는 똑똑히 들어버리고 말았다.
칠주선을.
“……아.”
입맞춤은 한참 전에 끝났는데 늑골 안쪽의 아우성은 더욱 커져만 갔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심장이 마구 내달려, 내 몸 상태가 도저히 통제되지 않았다.
나는 나를 잘 알았다.
내게는 테실리드 같은 대단한 자제력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불가항력적인 충동에 기꺼이 따르기로 했다.
“아이?”
당황한 부름. 그의 시선은 자신의 셔츠 소매를 붙잡은 내 손을 향해 있었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같이…… 안 들어가?”
“…….”
“같이 들어가면 좋겠는데…….”
그의 눈이 애처로울 정도로 요란하게 흔들렸다.
차마 계속 얼굴을 마주하기가 부끄러워 나는 시선을 바닥으로 내렸다.
솔직히 지금 나도 정신이 없어서, 내가 무슨 말을 내뱉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지금 굉장히 나답지 않은 화법과 말투를 쓰고 있다는 건 알겠다.
그에게 혼란을 주지 않고 내 의사를 명확히 전달하려면 나답게 굴어야겠지. 그러니까 자신 있게 눈을 똑바로 보고 말해야겠다.
나는 비장하게 고개를 들었다.
“같이 들어가. 나랑.”
부러 강한 어조로 말한 그 순간.
“……!”
부지불식간에 입술이 틀어막혔다. 반사적으로 부릅뜬 시야를 아름다운 얼굴이 점령한다.
달빛을 빨아들인 듯한 은발 틈새로 나를 응시하는 물색 눈이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고 짙었다.
말려들 듯 그에게 호응하며 갈급한 입맞춤을 나누었다.
정신 차렸을 때는 어느덧 집 안에 발을 디디고 있었다. 닫힌 나무문에 등을 대고 계속 입술을 탐했다.
드디어 숨 쉴 여유가 허락되었을 때는 몸이 바닥으로 주르륵 미끄러져 내릴 뻔했다. 그러나 테실리드가 그렇게 두지 않았다.
그가 나를 안아 올린 뒤 집 안을 가로질렀다. 곧 푹신한 곳에 뒤통수와 등이 부드럽게 닿았다.
떨리는 눈으로 정면을 올려다보자 바다색 눈과 마주했다. 어느새 그는 내 몸 위로 음영을 드리우고 있었다.
우아한 검지가 크라바트에 걸린다. 금욕적으로 목을 죄던 천 조각이 느슨하게 풀어져 내렸다.
“이제 됐어.”
그가 미소 지었다. 내가 미친 건지, 이 순간 성결한 얼굴이 지독하게 퇴폐적으로 보였다.
그가 해방감 어린 음성으로 선언했다.
“나는 오늘 칠주선 같은 거 몰라.”
다시 입술을 그에게 내주면서 생각했다.
전적으로 같은 기분이라고.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모든 신의 접근을 차단합니다.]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밀린 일을 하러 갑니다.]양손을 뻗어 그의 뺨을 감싸고 입술을 더욱 가까이 비벼 붙였다. 그의 모든 감각을 빨아들일 것처럼 욕심껏 내게로 그를 끌어당겼다.
이윽고 밤의 어둠 속에서 그림자가 포개진다. 이지러진 시트 위에서 그와 나의 손이 단단하게 깍지를 얽었다.
그것이 새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