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324)
외전 3장. 달빛 걷기
월광이 솔솔 뿌려진 초록 수풀이 별빛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나와 테실리드는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기왕 숲으로 들어왔는데 산책만 하기는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숨은 기척을 탐색했다.
“흐음…….”
“뭐 해, 아이?”
“혹시 야생 칠면조 없을까 해서. 보이면 잡아서 구워 먹어야지.”
어차피 낭만적인 분위기도 다 날아가 버린 마당이다. 생계에 보탬이 되는 활동이나 해야지.
그러나 정작 분위기를 날린 장본인인 테실리드는 내가 딴 데 집중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우리 지금 사냥이 아니라 산책 나온 건데.”
“그게 그거지. 우리 엄마도 산책 다녀올 때마다 매번 오다 주웠다면서 아빠한테 칠면조 잡아줬댔어.”
“그렇군.”
“아빠가 그거 손질하다가 자주 울었다고 했는데.”
순진하고 심약한 학자 청년이 팔자에 없던 도축을 하게 된 사연을 떠올리자 안쓰러운 한편 푸스스 웃음이 나왔다.
테실리드는 우리 부모님의 이야기에 진지하게 관심을 보였다.
“그럼 어머님 쪽에서 먼저 고백하신 건가.”
“응?”
“사냥감을 선물하는 건 고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구애 방식이니까…….”
“우와, 나 놀랐어.”
“왜?”
“의미는 부여하기 나름이구나 싶어서.”
엄마의 사냥 활동을 원시적인 구애로 해석한 관점이 참신하다.
나는 깍지 낀 양손을 앞으로 쭉 뻗어서 스트레칭을 하며 이야기를 더 풀어냈다.
“누가 먼저 고백했는지는 모르겠어. 사실 결혼도 어쩌다 보니까 얼렁뚱땅하신 것 같고.”
“얼렁뚱땅? 대체 어땠기에?”
“린츠 오빠가 생겨버렸거든.”
“…….”
“어쩌겠어. 애가 생겼는데. 결혼해야지.”
“……그, 그렇군.”
테실리드가 귀 끝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다.
아, 귀엽다.
장난치고 싶어.
잘생긴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고 나를 보게 한 뒤에, 발돋움에서 뽀뽀해 버리고 싶네.
야생 칠면조 대신 테실리드를 기습하고 싶은 기분을 참을 때였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테실리드 아르젠트의 반응으로 보아 애 만드는 과정을 매우 잘 아는 것 같아서 안심이라고 말합니다.] [‘만상의 혼돈을 감시하는 눈동자’가 성스러운 외모에 속아서는 안 된다며 눈을 부릅뜹니다.] [‘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7천 살이나 먹었는데 순진하면 그게 더 징그럽다고 정색합니다.] [‘시련의 마천루 건축가’가 언제쯤 다음 날 아침 해가 뜨고 참새가 짹짹짹 울지 궁금해합니다.]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방해되니까 다들 조용히 하라며 채팅창을 통제합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일진이냐며 항의…….]놀랍게도, 신들의 정신 사나운 메시지는 정말 그 후로 뚝 끊겼다.
언령님을 통한 간접 차단이 가능했구나. 새로운 걸 알았다.
“다 왔다.”
나와 테실리드는 본격적인 산책 코스에 도착했다.
나뭇잎으로 가려 있던 하늘이 넓게 탁 트여서 중천에 뜬 보름달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장소.
그 아래 반짝이는 호수가 있었다. 던전 버스트 때문에 생성된 크레이터에 물이 차면서 만들어진 곳이었다.
수심이 얕은 물가 쪽에서는 색색의 수초들이 하늘거리며 신비로운 수중 숲을 이루고 있었다. 예쁜 광경이었다.
나와 테실리드는 호수의 둘레를 따라 달빛을 밟으며 걸었다.
“테리, 이곳 말이야.”
“응.”
“밤에 볼 때랑 낮에 볼 때랑 느낌이 전혀 달라. 지금은 사파이어 빛이잖아? 낮에는 에메랄드 빛이야.”
“낮에도 꼭 와야겠군. 수초들이 많은데…… 혹시 물고기는 없나?”
“십몇 년 전쯤 크레이터에 지하수가 고여서 만들어진 곳이라서 없을 것 같은데.”
“아쉽군.”
“민물고기 구해와서 방류하자. 안 그래도 너 낚시할 곳 하나 만들려고 했어.”
“정말?”
“응, 정말.”
기쁜 기색이 솔직하게 묻어나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아졌다.
낚시는 긴 세월 살면서 그가 처음으로 가진 취미였다. 나는 그에 맞춰서 생선 요리법을 연구해야겠다. 그가 물고기를 잡아 오면 맛있게 튀겨주고 구워주고 끓여줘야지.
‘큰 기대는 말고 재료는 송사리 위주로…….’
그때 작은 기척이 느껴졌다. 반사적으로 나와 테실리드가 시선을 모은 곳에는 치즈 색깔의 생명체가 있었다.
“어? 저기, 고양이다!”
“흰 양말을 신은 걸 보니까 아까 그네 설치할 때 본 녀석 같아.”
“귀엽다. 물 마시러 왔나 봐.”
우리는 방해되지 않도록 가까이 가지 않고 구경했다. 호숫물에 혀를 할짝대는 고양이를 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흐음.”
“무슨 생각해, 아이?”
“쟤는 너 낚시하는 동안 호수에 접근 못 하게 해야겠다는 생각?”
“왜?”
“쟤가 너보다 물고기 잘 잡을 것 같단 말이야. 네가 송사리 잡는 동안 쟤가 붕어 잡으면 속상해서 어떡해.”
“……지금 네 말이 더 속상한 것 같아, 아이.”
나는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그러자 짐짓 울상을 짓던 테실리드도 같이 목을 울려 웃었다.
“손잡자, 아이.”
“응.”
손바닥에 따스함이 전달되어 왔다. 왠지 조금 더 욕심이 났다.
더욱 가깝고 강하게 맞닿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깍지를 꼈다.
서로의 손가락이 틈새 없이 꽉 얽히는 느낌이 좋았다.
나와 테실리드는 다시 걸음을 걸었다.
대화가 끊겼으나 불편하지는 않았다. 작게 소란스러운 풀벌레의 노래, 코끝으로 스며드는 풀과 나무의 향기, 발끝을 비추는 달빛, 서로에게 보폭을 맞추어주는 배려, 연결된 손안에 담긴 조금 뜨거워진 체온.
이 순간의 모든 것에 사랑스러움을 느끼기에 바쁘니까.
물론 여기에 멋진 중저음이 귓가를 울려주면 더 좋고 말이다.
마침 테실리드가 하고 싶은 말이 생긴 듯 입을 열었다.
“있잖아, 아이.”
“응.”
“아까…… 신계에서…….”
머뭇거린 끝에 그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애기…… 엄청 귀엽더라.”
“맞아, 귀여웠지.”
감찰관님이 스포일러 해주신 두 아이들의 모습이 다시금 머릿속에 떠오른다.
벚꽃과 바다, 낮달과 새싹의 조합을 연상시키는 아이들. 그야말로 나와 테실리드를 반씩 섞어 고르게 배분했다는 느낌이었다.
나는 조금 감격스러운 기분으로 중얼거렸다.
“신기해. 우리가 합쳐지면 그렇게 되는구나…….”
“그렇지. 합쳐지면…….”
“응, 합…….”
“…….”
“…….”
“흠흠.”
“으흠.”
우리는 시선을 피하고 딴청을 부렸다. 하지만 맞잡은 손에는 왜인지 힘이 더 들어갔다.
열 오른 머리에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른다.
결혼하고 3년 뒤에 자녀를 낳는다고 감찰관님이 말씀하셨으니까 신혼 2년 차에 생기는 것이구나.
그러고 보면 이 세계에서 지금 우리 나이면 결혼해도 이상할 것 없지 않나?
내 눈이 빛났다. 그렇게 내가 추진력을 발휘하려는 찰나.
“후우…….”
“테리?”
얘가 왜 갑자기 한숨일까.
아까까지 예쁜 아이들을 생각하며 설렜던 것 아니었니, 우리?
테실리드는 우울한 낯으로 한숨을 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혔다.
“아이를 낳을 때 네가 너무 힘들고 아플 테니까…….”
“…….”
“귀속의 수호로 어떻게 안 되나? 고통만이라도 옮길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는 진지하게 내 출산의 고통을 덜어줄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테리…….”
새삼 다시 반할 것 같았다.
세상에 어쩜 이렇게 멋있고 늠름한 남자가 있을 수 있지?
이건 정말 감동할 수밖에 없다. 나는 하마터면 입을 틀어막고 눈물까지 흘릴 뻔했다.
‘아니, 그런데 잠깐만.’
왜 지금 우리는 출산 과정부터 고민하고 있단 말인가?
앞에 중요한 단계가 생략되었다. 일단 아이를 만드는 것부터 생각해야 하지 않나?
“저기, 테리. 너무 앞서 나간 것 같은데. 그걸 벌써 걱정할 필요는 없어.”
“아, 미안. 그렇지. 지금 단계에서 걱정할 문제는 아닌가.”
“응, 지금 단계에선.”
“그래, 지금 단계.”
“…….”
“…….”
우리는 한동안 서로의 얼굴을 홀린 눈으로 보았다.
그러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마른침 삼키는 소리가 귓가를 울린 그 순간, 크게 당황하여 고개를 서로의 반대편으로 홱 돌려 버렸다.
얼굴이 불에 익은 듯 화끈거린다.
‘내, 내가 방금 무슨 생각을!’
순간적으로 그렇고 그런 상상을 해버린 스스로가 너무도 양심 없게 느껴져서 내적 비명을 질렀다.
저 성결하기 짝이 없는 미남자의 얼굴을 보며 무슨 삿된 망상을 품었단 말인가.
문학 독서량조차 형편없어서 ‘절세미남 성기사를 타락시키는 50가지 방법’이라는 책 제목을 읽지도 못하는 사람이다. 그뿐인가.
내가 개입해 버린 튜토리얼 때문에 원작이 완전히 비틀려서, 그는 뮤리엘 필리제와는 아무 사이도 아닌 관계가 되어버렸다.
즉, 그는 7천 년간 금욕과 절제를 미덕으로 여겨온 순결하고 신성한 성기사님인데, 그런 남자를 상대로 내가 그러면 안 되는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배덕감에 양심이 쥐어짜인 듯 아파온다.
‘안 되겠어. 내일 새벽 일찍 힐데한테 가서 고해성사를 하자……!’
한편 안절부절못하는 내 심리 상태는 행동으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던 것 같다.
쉴 새 없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고 손등으로 뺨을 식히는 내가 이상해 보이긴 했던 모양이다.
테실리드가 아직 자기도 진정 못 했으면서 나를 향해 넌지시 입을 열었다.
“아이, 무슨 생각해……?”
조심스럽긴 해도 떠보는 기색이 역력한 질문이다. 나는 뜨끔하며 방어했다.
“무, 묻지 마. 그러는 테리 넌 무슨 생각했는데?”
“…….”
분명 방어만 할 생각이었는데, 본의 아니게도 효과적인 역공이 된 모양이었다.
테실리드는 크게 당황한 듯 흔들리는 눈을 하더니, 한 손으로 마른세수를 하는 척 입을 가려 버렸다.
“테리?”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던 그가 결국 고개를 푹 떨궜다. 그리고 한 말은…….
“미안.”
“…….”
뭐니. 왜 사과하니.
“뭐, 뭐야. 너 무슨 생각한 건데?”
“……있어.”
“말해줘. 궁금해.”
“안 돼.”
“돼.”
“아, 안 돼, 진짜로…….”
그는 얼굴은 물론이고 목덜미와 귀 끝까지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진짜 궁금하지만 참기로 했다.
괴롭히면 안 돼. 100회차 때의 인성이 나오지 않도록 사랑만 퍼주기로 결심했는걸.
그런데 고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