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ferences for possessed people RAW novel - Chapter (91)
91화
✠“와아, 마을이다!”
요 며칠 야숙을 했더니 온몸이 찌뿌둥했다.
침대가 너무 그리워 근육이 뒤틀리려는 찰나, 규모 있는 마을을 발견하게 되어 기뻤다.
나와 테실리드는 꼬질꼬질해진 서로를 곁눈질했다.
“아일렛, 오늘 하루는 여기서 쉬었다 가면 어때?”
“그 말을 기다렸어.”
마을에서 가장 좋은 여관을 수소문하여 숙소를 잡았다.
간만에 제대로 목욕을 해서 개운한 몸으로 침대에 누우니 행복했다.[‘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각방을 잡은 것에 불만을 토로합니다.]똑똑똑.
“아일렛, 나야.”
“응, 들어와.”
대자로 누운 상태 그대로 테실리드를 맞이했다.
그는 문을 연 순간 흠칫했지만 곧 아무렇지 않은 듯 이야기를 전했다.
“교회에 다녀올까 해.”
“교회에는 왜? 고해성사라도 하려고?”
테실리드는 의자에 걸려 있던 담요를 집어 들었다. 그것을 가운 아래로 드러난 내 다리에 덮어주는 매너를 제 맘대로 발휘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죄 많은 몸이니 그것도 괜찮겠군. 하지만 그런 목적은 아니야.”
“아, 알겠다. 성황청의 소식을 얻으려는 거구나?”
“맞아.”
연약한 주인공을 혼자 보낼 순 없었다.
“같이 가자. 잠깐 밖에서 기다려.”
테실리드를 내보내고 사첼백을 뒤졌다. 평소 입고 다니는 옷은 세탁을 해서 널어둔 터라 다른 옷을 입을 생각이다.[‘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예쁜 옷을 입자며 눈을 빛냅니다.]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이참에 교주 코스튬을 입어줄 것을 기대합니다.] [‘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그건 너무 오버고 베이지색 나들이 원피스가 좋겠다고 말합니다.]어차피 마을 안을 돌아다닐 테니 천칭님이 골라준 옷을 입어도 될 것 같았다.
에이프런 느낌이 살짝 나는 원피스에 셔츠를 받쳐 입고 나갔다.
“가자, 테리.”
“에스코트라도 해야 할 것 같은걸.”
“내가 너를?”
“…….”
마을 구경을 하면서 십자가 첨탑이 보이는 곳을 향해 걸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도착한 교회는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입구 근처에서 외관을 훑어보며 내가 중얼거렸다.
“크긴 한데, 외진 마을이라 성황청 소식을 알 만한 교단 관계자가 있으려나 모르겠네.”
“그건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아. 저기 봐, 아일렛.”
“어디…… 헉.”
마침 교회의 뒷문으로 들어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하늘색 바이어스와 금색 견장으로 멋을 부린 백색 제복은 성기사단의 상징이나 마찬가지다.
테실리드는 그들의 소속을 바로 알아보았다.
“성전 기사단이로군.”
“아, 성전.”
테실리드의 피 안 섞인 형, 클로비스 아르젠트가 책임지고 있는 기사단의 이름이었다. 주요 임무는 성유물 탐색이었던가.
테실리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뭔가를 깨달은 듯 말했다.
“아아, 이번 회차에서는 네 존재가 지워지지 않은 모양이군. 그럼 널 찾으려고 고생하는 거겠어.”
“응?”
“성전 기사단의 사명은 성녀 탐색이거든. 클로비스가 대략 8년째 너를 찾고 있는 것 같은데.”
“헉…….”
17회차의 시간선에서는 내 존재가 교단에 성녀로 인식되어 있는 상황.
따라서 원작에 없는 성녀의 등장으로 성전 기사단의 역할이 바뀐 모양이다.[‘시련의 마천루 건축가’가 당신이 8년 동안 탑에 박혀 있느라 클로비스가 성과를 전혀 못 내서 교단에서 깨지기 일쑤였다고 알려줍니다.] [‘천기누설 감찰관’이 당신 때문에 한 젊은이의 커리어가 망가졌다며 죄책감을 종용합니다.] [‘균형을 조율하는 독설가’가 엄밀히 말해 빙의자는 이단이니 숨는 게 나쁘다고는 볼 수 없다며 웬일로 당신 편을 듭니다.] [‘세계를 구축하는 언령’이 애초에 남의 교단 성녀를 왜 자기들 것인 양 구냐며 어이없어합니다.]독설가님과 언령님의 말씀이 맞다. 게다가 어차피 튜토리얼 때문에 백작성 바깥으로는 나가지도 못했을 것이고 말이다.
테실리드도 의견을 보탰다.
“미안함 느낄 것 없어. 클로비스가 성녀 탐색 임무를 맡았을 때 네가 열두 살이던가. 그때 네가 성녀인 게 밝혀져서 교단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쳐봐.”
“어떻게 돼?”
“가족들과는 강제로 생이별하고, 어린 나이부터 봉사와 희생을 강요받았겠지. 성녀라는 이름에 지워진 의무는 무거우니까.”
“음…… 고마워, 테리.”
“갑자기?”
“성전 기사단장, 네 형이잖아.”
피도 안 섞이고 데면데면한 사이지만.
“비밀 지켜줘서 고마워.”
“옳다고 생각한 대로 했을 뿐이야.”
생색 낼 줄 모르기는. 그러니까 늘 손해만 보고 살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할래? 클로비스 기사단장하고 접촉할래?”
“친하지 않아서 그건 별로.”
“친한 사람 있긴 해?”
“……있어.”
“오오, 누구?”
“알 텐데. 헤스티오와 이페일.”
이건 또 놀랍다.
10년 전 장난감의 저택에서 함께 보스룸에 쳐들어갔던 그 친구들 아닌가.
그때 테실리드와 친하게 지내달라고 학부형의 마음으로 먹인 샌드위치가 아직도 효과를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놀란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걔들이 성전 기사단으로 배정됐어?”
“그래. 저기 봐.”
마침 흑발과 금발의 훤칠한 청년 두 명이 무리 끝에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긴 흑발을 느슨하게 땋아 내린 까칠한 얼굴의 사제.
금발을 목덜미를 덮도록 기른 장난스러운 인상의 기사.
그들의 얼굴 위로 기억 속 어린 남자애들의 모습이 겹쳐졌다.
“와아, 잘 컸네. 쟤들.”[‘영혼을 심판하는 천칭’이 훌륭한 비주얼에 흡족해합니다.]살려주길 잘했다. 원작의 전개대로 갔으면 세계가 큰 손실을 입을 뻔했다.
내가 헤스티오와 이페일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동안, 테실리드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
“그러니까 저 둘하고만 따로 접촉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어떻게 불러낼 방법이…….”
“어? 테리, 저기 봐. 둘만 으슥한 곳으로 가는데?”
“뭐?”
기사단에서 이탈하여 반지하로 내려가는 헤스티오와 이페일을 보고 테실리드가 멍한 얼굴을 했다.
교회 구조에 바삭한 아그네스가 설명해 주었다. 그녀가 아는 지식이라면 테실리드도 알 것이다.
“내 인생에 일이 이렇게 잘 풀리다니 이상한데.”
“어서 가자, 테리.”
잡생각이 깊어지지 않도록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런데 헤스티오와 이페일이 왜 기도실에 가는 거지? 신앙심이 그리 투철하지 않은 녀석들인데.”
“방음 잘 되는 개인 공간이라며. 낮잠이라도 자러 가는 것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어.”
기도실을 지키는 사제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안으로 들어갔다. 반지하의 복도 좌우로 기도실 방문이 쭉 있었다.
수십 개의 방 중에서 어디에 헤스티오와 이페일이 있을지를 찾기란, 딱히 어렵지 않았다. 왜냐하면.
“흐흑! 테실리드, 이 한심한 자식아! 그렇게 허무하게 뒤져 버리면 어떡해! 크흐으윽!”
“워워, 진정해, 헤스티오. 다 들리겠다.”
“야! 어제가 친구 장례식이었는데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멍청한 놈이 시체도 없이 뒤져 갖고는…… 흐어어엉.”
통곡하는 헤스티오의 음성이 그들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정숙해야 할 곳에서 방음벽이 흔들리도록 소음공해를 일으키는 걸 두고 볼 수 없지.
당장 그쪽 기도실로 가서 문을 열어젖혔다.
벌컥!
“실례합니다.”
십자가상과 방석이 있을 뿐인 좁은 방.
그 안에 테실리드를 밀어 넣고 나도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깜짝이야! 갑자기 뭐……! 헉?!”
“……우와, 헤스티오. 나 지금 헛것이 보여. 죽은 테실리드의 유령이 눈앞에 있어.”
“너, 너도?”
휘둥그레진 눈을 끔뻑이는 모습이 좀 웃기다.
하지만 오랜만의 재회이니만큼 웃음을 꾹 참고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했다.
“오랜만이야, 헤스티오, 이페일.”
“어, 너,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맞아. 저 분홍 머리…….”
“완전히 잊지는 않았나 보네. 너희랑 같이 장난감 저택에 끌려들어 갔던 아일렛이야. 머리에 꽃 달고 오르슈 백작한테 가려고 했던 애라고 하면 기억나려나?”
“아!”
“아!”
만족스러운 반응이다. 기특한 마음에 간식거리라도 하나씩 줄까 생각했는데.
“그럼 너도 죽었어?”
“뭐?”
흑발의 사제 청년, 헤스티오가 갑자기 헛소리를 했다.
“테실리드랑 같이 온 거 보니 죽은 것 같은데? 이페일, 어떻게 생각하냐?”
“그래, 헤스티오. 분명 먼저 죽어서 테실리드의 영혼을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인사시키려고…….”
“야. 너희들 정신 차린 거 아니까 그만해라?”
“응.”
“그래.”
이페일과 헤스티오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다물었다. 테실리드는 그 모습이 퍽 신기한 모양이었다.
“10년이란 게 원래 별로 길지 않은 시간이었나? 되게 자연스러워 보여.”
방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들었어, 헤스티오?”
“응.”
“말도 하네. 진짜 유령 아니구나.”
“야, 테실리드. 반가워서 그러는데 멱살 좀 잡아도 되냐?”
물론 테실리드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헤스티오의 손이 당장 테실리드의 멱살을 낚아챘다.
“테실리드 이 자식아! 살아 있으면 살아 있다고 성황청에 와서 보고를 해야지! 여기서 뭐 하고 있어! 멀쩡한 것도 모르고 어제 네 장례식장에 꽃 올려놓고 왔잖아!”
“내 장례식이라니, 흥미롭네. 좀 더 이야기해 주겠어?”
담담한 대꾸에 헤스티오가 움찔하더니 이페일을 돌아보곤 의견을 구했다.
“이 자식 성격 좀 이상해진 것 같지 않냐?”
“그러게. 뭔가 분위기가 바뀌었다?”
회귀자라 그래.
……를 적당히 얼버무리기로 했다.
“죽다 살아나서 그래.”
내 말에 납득한 헤스티오는 테실리드의 멱살을 놔주고, 한결 차분하게 취조를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야?”
테실리드가 답했다.
“던전 버스트가 일어나서 죽을 뻔했는데 여기 있는 아일렛이 살려줬어. 정신 차린 지는 얼마 되지 않아서 이제 성황청에 귀환하려는 거고.”
담담한 음성에 담긴 건 굉장히 정제된 요약이었다. 리드에게 고문을 당한 끔찍함도, 찬영 기사단에게 버림을 받은 비참함도 걸러진 내용이었으므로.
“하아…….”
“후우…….”
그때 헤스티오와 이페일이 탄식하듯 한숨을 뱉어냈다. 뭔가 말을 고르고 있음을 느꼈다.
내가 끼어들었다.
“성황청에서는 테리의 죽음에 관해 뭐라고 발표했어?”
“그게…….”
“말해줘.”
테실리드도 알아둬야 하니까.
격양된 헤스티오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이페일이 금발을 쓸어 넘기며 테실리드에게 말했다.
“네가 성검을 믿고 혼자 던전에 쳐들어갔다가 버스트를 일으켰다고 하더라. 물론 우리는 안 믿었어.”
“…….”
실로 엄청난 고구마. 나는 곧장 테실리드를 살폈다.
그는 눈을 내리깐 채 가만히 있다가, 한참 후에야 한마디 내뱉었다.
“누가?”
“……찬영 기사단 전원.”
테실리드가 소속된 기사단의 이름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그를 버리고 도망쳐서 목숨을 건진 기사단은, 자신들의 불명예까지 희생양에게 씌워 없애려 했다.
빙의자를 위한 특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