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Psycho's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00)
100_기로에 서다(4)
바다를 떠돌아다니는 잉글랜드 유랑 극단.
그들이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코틀랜드에서는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
처음 불씨를 던진 잉글랜드의 여왕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거대한 불길이었다.
“존 녹스는 해명하라!”
“진짜로 성상을 파괴했습니까? 대답해, 이 개자식아!”
“화형에 처해야 해! 놈을 불태워라!”
연극을 이용한 선동의 효과는 강력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스코틀랜드어로 이루어진, 쉽고 재밌는 연극이라니.
그들은 지금껏 이런 걸 본 적이 없었다.
설득력 있는 격문까지 곁들여지니, 반향은 더 컸다.
게다가, 이건 애초에 터질 불이기도 했다.
북부 스코틀랜드는 두 세력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둘 다 왕을 참칭한 머레이 백작을 지지했으나, 지지하는 이유는 각기 달랐다.
“머레이 백작! 그는 유약한 프랑스 왕비를 대신해 강대한 스코틀랜드를 일으킬 진정한 왕이다!”
먼저 이게 스코틀랜드 북부 귀족들의 입장이었다.
이 북부는 험난한 산지로 이루어진 전통의 땅.
이곳에 사는 이들은 영어가 아니라 스코틀랜드어를 썼으며, 고대 켈트족의 전통을 강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보수적이며 배타적이었고, 가톨릭 신자였으며, 강한 왕을 원했다.
그들은 나약하고 프랑스에 의존적인 메리 여왕을 대신해 머레이 백작을 지지했다.
머레이 백작이 해적을 파견한 건 이들의 영향이 컸다.
배신자에게 엄벌을 가하는 강인한 왕이 되고자 한 것이다.
반면, 존 녹스의 세력은 생각이 좀 달랐다.
“개혁적인 신교도 왕! 이 스코틀랜드를 신께 바칠 왕이 필요하다!”
그들은 개혁을 원하는 이들이었고, 새로운 신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이 유럽에서 가장 진보적인 이들 중 하나였다.
두 세력은 물과 기름처럼 어우러지지 않았다.
물론 정치인들끼리는 어떻게 야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국가 정세를 넓게 살피고, 싸워선 안 된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민중은?
유감스럽게도, 두 집단의 신봉자는 결코 서로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게, 북부 스코틀랜드에 개판이 난 이유였다.
“성인을 공경하지 않고 성상을 파괴하는 무도한 이들!”
“탐욕스러운 교회의 배를 불려주는 돼지들! 우상 숭배자들!”
당황한 북부 지배층은 빠르게 사태를 진압하지 못했고, 다툼은 격화되었다.
심지어 북부 가톨릭 신자들 사이에선 이런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럴 바엔 차라리 메리 여왕이 낫겠다. 그 여잔 최소한 신을 배반하진 않았으니까!”
메리 여왕이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기에 나오는 말이었다.
명목상, 그녀는 아직 왕관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결국, 그들 중 독실한 일부가 선을 넘었다.
“차라리 남부의 진짜 여왕 메리 스튜어트 밑에 들어가 우리의 믿음을 지키자!”
북부 지도자들도 이 말만큼은 용납하기 어려웠다.
그리하여, 북부 스코틀랜드가 뜨겁게 불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던 잉글랜드의 여왕은 이렇게 외쳤다.
“상황이 좋긴 한데, 너무 과하게 좋잖아!”
기만처럼 들리겠지만, 여왕은 진심이었다.
스코틀랜드의 불길이 잉글랜드에 옮겨붙을 기미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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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멍청한 북부 놈들!’
나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래, 내가 불을 붙이긴 했다.
불길이 거세지길 바라기도 했고.
어느 정도 원하는 대로 되기도 했다.
날 암살하려던 존 녹스를 제대로 엿 먹였으니까.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사태가 커지면 어쩌라는 말이야!’
스코틀랜드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가뜩이나 작은 북부 스코틀랜드가 결딴날 기세였다.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폐하!”
덕분에 의회는 축제 분위기였다.
이대로 가면 이 브리튼 섬 전체를 지배하는 것도 머지않았다고 김칫국을 마시는 이들도 수두룩했다.
“지금, 폐하께서 딱 한 마디만 하시면 됩니다!”
오늘만큼은 보고 싶지 않은 충신, 스티븐 주교가 외쳤다.
“잉글랜드가 가톨릭 국가임을 표명하시지요! 그리하여, 우리가 이단으로부터 신자를 지키겠다고 말하시는 겁니다!”
다른 귀족 하나가 그 말을 받았다.
“예. 저희가 가톨릭 국가임을 표명한다면, 북부의 신자들은 전부 우리의 품에 안기려 들 것입니다.”
물론, 의회에 존재하는 건 가톨릭 신자만은 아니었다.
“아니, 잠깐만요. 잉글랜드가 가톨릭 국가라고요? 헨리 8세께서 교회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몰라서 하시는 말씀입니까?”
“말씀을 똑바로 하시지요. 헨리 폐하께서 중시한 건 교황으로부터의 독립이지, 신을 아주 바꾸고자 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신교가 신을 배반했다고 말하는 겁니까?”
“틀린 말은 아니잖습니까?”
“뭐요?!”
그래, 이게 문제다.
연극의 효과가 예상보다 너무 과한 덕분에, 우리 잉글랜드에서도 종교 갈등이 터지게 생겼다.
가톨릭 진영의 대표자로, 스티븐 주교가 외쳤다.
“그냥 가톨릭 국가라고 선언하기만 하면 됩니다. 북부 스코틀랜드의 신도들이 내부에서 호응하면, 이 영광스러운 브리튼 섬을 전부 우리의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와이어트가 맞서 외쳤다.
“그리한다면, 잉글랜드의 충성스러운 신교도 신민들은 어쩌시려는 겁니까? 그들도 다 죽이시겠습니까?”
내가 아끼는 두 신하가 날을 세우고 대립했다.
나는 더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만! 다들 그만하게!”
의회에 침묵이 찾아왔다.
그러나 그게 갈등의 종식을 의미하는 건 아니어서, 저들끼리 편이 갈리는 것이 선명히 보였다.
전체적인 세는 7:3 정도.
스티븐 주교를 위시한 가톨릭 세력이 주류였고,
피 흘리는 것을 걱정하는 와이어트나 진짜 신교도들은 그 수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하긴, 내가 왕이 된 후 신교도는 많이 눌렸지.’
나는 종교적 중립을 지키려 노력하긴 했다.
하지만 내 혈통의 정당성을 인정해주는 것은 가톨릭.
반면 신교는 엘리자베스나 제인을 내세워 왕권을 찬탈하려 했으니, 그들의 세를 줄이게 될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국가 내 가톨릭 세가 조금 더 강한 상황.
‘하지만, 가톨릭 국가를 선언하는 건 곤란해.’
그랬다간 피가 흐를 수밖에 없다.
제인 그레이처럼 결코 종교적 신념을 꺾지 않을 신교도가 이 나라엔 여전히 많았으니까.
종교 문제를 섣불리 건드리면 따라올 후폭풍이 두려웠다.
향후 몇 년 안에 전 유럽은 종교 대립으로 붉게 적셔질 텐데, 내 나라가 거기 휘말리게 두고 싶지도 않았다.
“다들 좀 진정하게. 그간 내 정책을 잊었나?”
어떻게든 종교 문제를 넘겨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북부 스코틀랜드를 정복할 생각이 없다네. 최소한 남부 스코틀랜드를 완전히 동화시킬 때까지는 말이야.”
종교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으로 접근을 시도한 것이다.
“스코틀랜드는 큰 땅이야. 우리 잉글랜드만큼이나 크지. 그 큰 땅을 한꺼번에 삼켰다간 탈이 날 수밖에 없지. 내부에선 끝없는 반란이 일어날 테고, 이들을 찍어누르는 데 막대한 돈이 소모될 것이네. 아니, 그렇게 하고도 완전히 동화시킬 수 있으리라 장담하질 못하겠군.”
영국은 21세기에도 ‘연합 왕국’으로 남는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대립도 21세기까지 이어졌고.
그러니, 북부를 빨리 삼켜서 좋은 것이 없었다.
“차근차근 흡수해야 하네. 지금은 북부라는 확고한 적이 있기에 남부 스코틀랜드 동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지 않나. 남부가 우리와 완전한 하나가 될 때까지, 북부는 저리 치고받게 두는 것이 더 이익이야.”
종교가 아니라 정치를 내세운 설명이었다.
그 말에, 의회의 다수가 별수 없이 수긍했다.
여전히 아쉬운 내색을 보이는 이들도 많았지만, 어쨌건 그들은 모두 잉글랜드인이었다.
“으음, 확실히 폐하의 말씀대로입니다. 지나치게 흥분했군요.”
주교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며 이야기했다.
그나마 잘 마무리된 것 같아, 내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다른 안건에 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지요.”
“그러지. 다음은 무엇인가, 주교?”
“반역자들의 처벌입니다.”
“반역자들의 처벌?”
내가 의아하게 되물었다.
“감히 날 암살하려 한 무도한 이들을 말하는 거라면, 이미 전부 사형에 처하지 않았나?”
별의 방에 폭탄을 매설한 시녀.
경비를 소홀히 한 경비병 등은 전부 처벌받았다.
달리 반역자라 불릴 이들이 또 있었나?
“암살을 주도한 시녀는 신을 위해 폐하를 죽이겠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생각해볼 가치도 없는 헛소리였지만.”
“그 시녀가 속해있던 신교도 길드가 있습니다. 이들을 처벌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목이 턱 막혔다.
‘아, 젠장. 이런 함정이 숨어 있었네.’
아무래도, 끝난 줄 알았던 종교 이야기가 끝이 아니었나 보다.
“그 신교도 길드의 이들이 시녀와 함께 반란을 모의했는가?”
“그렇진 않습니다만, 존 녹스의 사상에 깊이 경도되어 그와 같은 주장을 하곤 했던 것 같습니다. 잠재적인 반란 분자라고 할 수 있겠지요.”
차라리 대놓고 반란을 꾸몄다면 좋았을 텐데.
이렇게 되면 저들의 처분은 단순히 저들의 처분으로 끝나지 않는다.
‘저걸 처분하면, 반역자 존 녹스의 사상을 공유한다는 이유로 다른 신교도도 전부 처벌할 수 있게 되겠군.’
반대로 저걸 처분하지 않는다면?
‘반란에 엮인 신교도들까지 처분하지 않은 게 된다. 가톨릭 신자들이 불안해하겠지.’
여왕이 신교에 호의적이란 의심을 하게 될 것이다.
“으음···.”
처분하던, 처분하지 않던 한쪽 편을 드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처벌해야 합니다! 그 암살자와 같은 사상을 공유한다면, 저들도 감히 폐하를 해치려 들지 누가 압니까?”
“지금 신교도가 다 반역자라고 하는 겁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 종교 길드와 신교도가 다 같은 뜻을 공유한다면 말입니다!”
“폐하의 자비를 모욕할 셈입니까! 폐하께선 반역으로 몰릴 뻔한 이들에게도 자비를 베풀어주셨어요. 암살자와 같은 종교 활동을 했다고 처벌하는 건 가혹합니다!”
“폐하는 억울한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었지, 진짜 반역자에게까지 자비를 베풀려 하시진 않았습니다!”
어이구, 난리가 났다.
“다들 그만하게! 반역자의 처벌은 어디까지나 군주의 몫이거늘, 왜들 그리 목청을 높이는 것인가!”
내가 쏘아붙이고는, 정리하듯 말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알아서 결정하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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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골치 아프네.’
함정에 빠진 기분이었다.
처벌하면 신교도 탄압, 처벌하지 않으면 신교도 용인이라니.
지금껏 유들유들하게 종교 문제를 넘겨 왔는데, 그게 곤란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냥 가벼운 처벌만 내리고 넘어갈까?”
현실 도피적인 생각이 들었다.
상황을 회피하고 대충 덮어버리는 계획.
하지만, 이리했다간 누구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내 종교적 신념을 확인하려 더 안달을 내겠지.
‘폐하께서 가톨릭교회의 수호자가 돼주시리라 믿습니다.’
내 손을 잡고 눈물을 글썽이던 스티븐 주교의 얼굴이 떠올랐다.
‘제 종교적 신념을 지켜주셔서 감사해요.’
아일랜드에 시집간 제인 그레이도 떠올랐고.
‘종교로 누구도 화형당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내게 충성을 맹세하던 와이어트도 떠올랐다.
‘어떤 결정을 하든, 누군가는 실망하게 될 텐데.’
골치가 아파서 코코아를 한 잔 더 홀짝였다.
그러자, 앞에서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무슨 고민이 있으시길래 그렇게 홀로 생각에 잠기신 건가요?”
내 앞에 앉아있는 것은, 엘리자베스였다.
“나와 차 마시는 게 싫은 거니?”
“설마요. 제가 그럴 리가 없잖아요.”
내가 시선을 보내자, 엘리자베스가 언제 불평했냐는 듯 살포시 웃음을 보였다.
그래, 이래서 엘리자베스를 부른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살기 위해서 종교를 바꾸는 시늉도 할 애니까.’
한숨 돌리며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데, 다른 이들은 종교에 열을 올리며 말할 것 같아 엘리자베스를 불렀다.
과연, 엘리자베스가 내 심기를 살피며 물었다.
“기분 전환이 필요하시다면, 같이 연극이라도 보시겠어요?”
연극? 나쁘지 않은 제안 같기도 한데.
달리 신경 쓸 곳이 필요하기도 했고.
“그래, 그렇게 하자.”
그렇게 얘기하긴 했는데,
설마 ‘이걸’ 보자고 했을 줄이야.
“이단자 존 녹스? 브리타니아 일대기가 아니라?”
내가 살짝 인상을 쓰며 물었다.
스코틀랜드 순회공연 이후, 수도에서 이걸 공연하고 있었을 줄이야.
내가 따로 명령한 게 아니라 미처 몰랐다.
‘종교 문제로 골치 아픈 상황에서 또 종교로군.’
하지만 기껏 보러 와서 안 본다고 하기도 미안했다.
날 확인한 배우들이 저리 빳빳이 기합이 들어갔는데, 그냥 가면 저들이 뭐가 되겠는가.
“휴우, 그래. 내 배우들이 어떻게 스코틀랜드를 홀렸는지 한 번 구경해보도록 할까.”
사실 나는 이 연극을 본 적이 없었다.
첩자가 가져온 정보를 토대로 극작가가 재구성한 연극.
이번 기회에 한 번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잠깐만. 존 녹스가 저랬다고?”
무언가 이상했다.
연극의 세세한 내용이, 내가 아는 정보와 좀 어긋나는데.
“저 부분은 극작가가 지어낸 것인가?”
내 혼잣말에 엘리자베스가 이상하다는 듯 답했다.
“과장은 있을지언정, 아주 지어낸 것은 없어요. 폐하께서 그리 명령하셨잖아요?”
연극을 계속 보다 보니, 어긋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아, 무심코 원 역사와 비교하고 있었군.”
하지만 내 개입으로 존 녹스의 행보는 바뀌었다.
존 녹스는 본래 제노바에서 칼뱅에게 신학을 배웠으나, 내 개입으로 이 일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아는 그의 행적과 차이가 나는 것이고.
‘연극 속 존 녹스는 내가 아는 것보다 사상적으로 부족해.’
그런데 그걸 느낀 순간, 섬광처럼 깨달음이 찾아왔다.
‘알았다, 종교 문제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게 내가 생각한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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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의회.
“어제 신교도 종교 길드 처벌 어찌해야 할까 논의하던 걸 기억하나? 결론을 내렸다네.”
모두의 기대 어린 시선이 나를 향했다.
스티븐 주교는 목에 걸린 십자가를 매만졌고,
와이어트는 가만히 손을 모아 기도하듯 깍지를 꼈다.
나는 그들 모두를 둘러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