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Psycho's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89)
189_동방에서 온 사절(3)
“명에서 파견된 칙사, 고치라고 합니다.”
간드러진 목소리가 궁전 안을 울렸다.
통역을 맡은 챈슬러는 익숙한 듯 보였으나, 궁전의 다른 신하들은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 인상을 구겼다.
‘환관이로군.’
나로 말하자면, 반반이었다.
환관이라니.
역사서로나 접했지, 실제 그 목소리를 들을 일이 없는 자들 아닌가.
“그래, 반갑네.”
그래도 어쨌건, 존재를 모르진 않았으므로 나는 너무 늦지 않게 적절한 반응을 할 수 있었다.
“아시다시피, 저는 명나라와 영국의 국교 수립을 위해서 방문했으며, 황상께선 이 일에 큰 관심을 표하고 계십니다.”
환관이 젠체하듯 말했다.
마치 영광으로 알라는 듯한 말투였다.
뭐, 이 정도야 귀엽게 넘길 수 있었다.
명에서 먼저 조공국을 자처하지도 않은 오랑캐 국가에 사절을 보내 국교를 청하는 일은 흔치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명나라에선 우리 영국과 어떠한 국교를 맺고 싶은 건가?”
중요한 건, 그깟 사신의 태도가 아니라 실리니까 말이다.
“혹여 명의 황제가 우리의 조공을 받고자 한다면, 나는 결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아두게.”
환관은 당혹스런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황상께서는 조공을 원치 않으십니다.”
뭐, 이럴 것 같긴 했다.
‘조공을 받는 건, 명에게도 손해니까.’
조공은 명나라의 체면을 위한 것.
그 대가로 많은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는 일이기도 했다.
영국이 인접국이나 적대국도 아닌데, 구태여 조공을 받는 건 명나라로서도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당한 무역이 남겠군.”
“황상께서도 이를 바라실 겁니다.”
“좋아, 앞으로도 명나라와 좋은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면 좋겠군.”
환관은 공손히 인사하고는 한걸음 물러섰다.
조금 전부터 안달이 나, 발을 동동 구르던 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보다 폐하께서 말씀하시길, 영국의 여왕께선 불로장생을 이루셨다는데 이는 정녕 사실입니까?”
“정말 도교의 묘리에 통달하여 불로불사의 몸을 이루셨으나, 신선이 되길 포기하고 땅에 머무르시는 분이 맞으십니까?”
그들은 도사와 연단술사들.
가정제가 나의 불로불사를 확인하기 위하여 친히 보낸 자들이었다.
‘하, 이것 봐라?’
그들의 태도도, 외양도 내겐 뜻밖이었다.
내가 생각한 그들은 사이비에 미친 황제를 이용하는 탐욕스러운 돼지들이었는데, 지금 내 앞에 있는 자들은 초롱초롱하게 눈을 빛내는 순진무구한 도사들이었다.
‘그러고 보니···.’
흐릿한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보았다.
가정제 때 기록을 살펴보면, 그가 도교에 심취하여 많은 도사를 데려온 기록은 분명 존재한다.
도사에게 커다란 권력을 주고 대우해주었으며, 많은 권력을 주었단 기록도 존재한다.
상식적으로 따져봤을 때.
이 다음의 기록은 보통 도사의 패악질과 만행에 대한 내용이 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가정제 시기의 기록은 그렇지 않았다.
‘도사가 본분을 잊고 색에 취했거나, 제물에 탐닉한다는 이야기는 없었지. 그때는 가정제가 언론까지 탄압했나 생각했는데···.’
그러나 직접 도사들을 마주하니 알 것 같았다.
이들은 가정제가 중국 각지에서 찾아낸 가장 명성 높은 도사들.
가정제의 만행과 별개로, 그들 대부분은 진리를 찾는 수행자들이었다.
‘이렇게 되면, 일은 더 쉬워지겠는데?’
나는 살풋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그들이 가정제를 속이려는 사기꾼이면 사업가의 마인드로 접근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내가 내보이는 증거 앞에서 쉬이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불로의 증거를 보여주도록 하겠다. 여봐라, 그 초상화들을 가져오도록 하거라.”
이내 시종이 초상화를 가져왔다.
여왕 메리 1세, 즉 나의 초상화였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 나를 그린 초상화라네.”
재임 시작 후, 의무적으로 그린 초상화였다.
초상화를 본 도사들은 무척 놀란 눈치였다.
“무척이나 정교한 그림이군요···.”
영국 제일의 화가가 정교한 붓 터치로 표현한, 총천연색의 정교한 초상화였다.
결코 단기간에 사기를 위해 준비할 순 없을 물건.
그리고 이 그림 속의 여자는 분명 나였다.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이든 모습이였지만 말이다.
“정녕 젊어졌다니.”
“무량수불.”
젊은 도사들이 놀라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수로 불로불사를 이루셨습니까?”
“어렵지 않지. 바로 이 약 때문이라네.”
나는 다시 시종을 시켜, 검은 무언가를 가져왔다.
독특한 향기가 나는, 작은 자갈 같은 검은 물질.
“이게 무엇입니까?’
“초콜릿,이라고 부르는 것이라네.”
그간 궁전에서 마셔오던 액체 초콜릿과 달리, 그들에게 내민 것은 카카오를 가볍게 가공한 생초콜릿이었다.
카카오 99%도 아니고, 카카오 100%의 물건.
“이것이 바로 내 불로장생의 비결이라네.”
도사들은 의심스런 눈으로 초콜릿을 바라보다가, 이내 하나둘 조심스레 맛을 보기 시작했다.
“그걸 먹으면 머지않아 효과가 날 것이라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정신이 명료해지며 또렷해지겠지.”
내가 말하는 것은 바로 카페인의 효과였다.
내가 준 것은 큰 가공을 거치지 않은 생초콜릿.
그 안엔 많은 양의 카페인이 함유되어 있다.
저 도사들이 조심스레 먹은 양만 해도,
아메리카노 한 잔 정도의 카페인은 들어있다.
“···향기로운 향에 비해, 맛은 다소 씁쓸하군요.”
맛을 본 직후, 한 도사가 내뱉었다.
“어쩐지,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 같습니다.”
한 도사가 중얼거렸다.
이내 여러 도사가 이에 동조했다.
“피의 흐름이 빨라지고, 몸에 활력이 도는 것이,”
“정신이 명료하고 또렷해지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저, 저는 어쩐지 어지럽기도···.”
나는 흐뭇하게 도사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명료해지는 정신, 민감해지는 감각, 빨라지는 혈류. 이 모든 걸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괜히 21세기 사람들이 카페인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비슷한 약재를 접한 적도, 약물 내성도 없는 이 시대 사람에겐 더욱 큰 충격을 주겠지.
“이게 바로 불로장생의 묘약이라네.”
도사들은 감명 깊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받았던 초콜릿을 잃어버리기라도 할까, 한 손 가득 움켜쥐곤 뒤로 숨기는 모습도 보였다.
‘좋아, 마케팅 효과 보장되겠군.’
나는 흐뭇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초콜릿을 불사약으로 잔뜩 팔아먹을 생각이다.
고려나 조선이 명나라에 인삼팔이로 얼마나 많은 이득을 봤는지 생각하면, 그 수익성이 기대된다.
물론 사기였다.
그러나, 나는 당당했다.
‘어차피 이 시대 불사약은 수은이잖아?’
지금쯤 가정제는 수은으로 만든 약을 열심히 마시고 있을 터였다.
그런 걸 불로장생의 묘약이라 믿고 먹는 이 때에, 초콜릿을 좀 씹어서 나쁠 게 어딨겠나.
“이 약을 대가로, 무엇을 원하십니까?’
한 도사가 내게 물었다.
뒤에서 환관이 노려보는 걸 보아하니, 아마 그에게 허락된 질문은 아닌 모양.
아마 지나치게 들떠 그런 것 같았다.
“글쎄, 그에 대해선 천천히 이야기해보지.”
나는 부러 급할 게 없다는 듯 미소 지었다.
“나머지 이야기는 며칠 뒤 다시 하도록 하고, 오늘은 피곤하니 이만 자리를 파하지. 내 그대들과 교류할만한 사람을 소개해주겠네.”
나는 그들에게 명나라에서 중국어를 배워온 선원 하나를 통역으로, 그리고 동양의 연단술사에 관심 많은 존 디를 말벗으로 붙여주기로 했다.
‘존 디에게 이들과의 대화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자리를 파했다.
“저들이 놀랐을 때 밀어붙이는 게 낫지 않았겠습니까?”
명나라의 사절을 보낸 뒤, 듣고 있던 챈슬러가 입맛을 다시며 내게 물어보았다.
“아니, 어차피 실권을 가진 환관은 그리 동요하지 않았었네. 지금은 시간을 갖는 것이 나아.”
내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한 뒤, 덧붙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대가 데려온 손님은 이들 뿐만이 아니지 않나.”
명나라와의 협상을 오늘 전부 마치기에는, 한가지가 걸렸다.
“먼저 조선에서 왔다는 사신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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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사신이라···.’
나는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챈슬러와 함께 왔다는 조선의 사신.
그들은 내가 예상치도 못한 존재였다.
왜 영국에 왔는지, 어째서 왔는지도 몰랐다.
챈슬러에게 물어도 대답은 신통치 않고, 역시 직접 만나 대화할 수밖에 없을 듯해 보였다.
‘으음, 조선이라.’
내가 괜히 손가락을 꼬았다.
조선의 사람을 만나게 되니, 어쩔 수 없이 자꾸만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아마 명종의 재임 시기이던가?”
학창 시절 지독히도 외웠던 왕의 이름들.
그에 따르면, 명종의 다음은 선조였다.
즉, 임진왜란이 머지않았단 말이다.
“내가 조선을 도와야 할까?”
턱을 괴었다.
그래, 그럴 의무가 없는 건 안다.
나는 지금 영국의 여왕, 조선과는 관계없다.
하지만 왜인지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찌 됐건 내 고향이나 다름없는 곳 아닌가.
‘조언이라도 해줄까? 몇십 년 뒤에 왜에서 쳐들어와, 조선에 큰 피해를 준다고?’
그러나, 난 이내 고개를 저었다.
조선에서 믿어주리란 보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를 도사들과 어울리는 사이비 여왕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랐다.
‘임진왜란을 조선이 미리 알기만 해도···.’
그럼에도 고민을 거듭하던 내게, 마침내 당도한 조선의 사신이 내뱉은 이야기는 뜻밖이었다.
“아국은 왜구의 침략에 시달리고 있으며, 놈들이 다시 한번 쳐들어오리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뭐?
이미 알고 있어?
내가 놀라던 그때, 조선의 사신.
장흥 부사 변협이라는 자가 말했다.
“영국과 우리 조선은 같은 적을 두었으니, 힘을 합쳐 왜구를 막고자 하는 것이 바로 저희 주상의 뜻입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이야기의 연속이었다.
변협은 그리 말하며 내게 서신을 건넸다.
서신을 받은 나는, 이내 당황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으음, 일이 그렇게 된 건가?’
전혀 예상치도 못한 나비효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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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5년, 조선에선 을묘왜변이 일어났다.
조선의 건립 이래 가장 심각한 왜구의 침입.
그들은 전라남도와 제주도를 공격했으며, 조선에 큰 피해를 입혔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될 것이오! 군을 강화하여, 다시는 놈들이 우리를 우습게 보지 못하도록 하겠소!”
이제 막 수렴청정을 벗어난 청년 왕, 명종은 이후 왜구를 증오하며 군사 개혁에 온 힘을 쏟았다.
전쟁에 대비해 비변사를 키웠고, 수군의 대대적인 정비에 들어섰다.
그러나 일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흉년으로 백성의 입에 들어갈 낟알도 없는 이 때에, 명에서 군마를 수입하시겠다니요. 이는 아니 될 말입니다!”
사림에선 문치가 아니라 무에 힘을 쏟는 왕을 비판하고 나섰다.
외척 역시 왕을 방해하긴 마찬가지였다.
“허허, 맹선이 아니라 판옥선으로 전함을 교체하겠다고요? 나라에 그만한 돈이 어디 있겠습니까?”
왕의 외숙, 윤원형은 어전에선 그렇게 말하고는, 사석에선 다른 말을 내뱉었다.
“지방에서 보내오는 쌀을 나르려면 맹선 한두 척으론 어림도 없을 지경인데, 적재량도 별로 없는 판옥선을 도입하면 얼마나 골치가 아프겠느냐.”
여기서 지방에서 보내는 쌀은 세금이 아니다.
윤원형에게 뇌물로 오는 쌀을 말하는 것이다.
즉, 그는 자신에게 오는 뇌물을 나라의 전함을 사용해 나르고 있었다.
지난 세월, 어린 명종을 대신해 윤원형의 누이인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해왔기에 가능한 권세였다.
이처럼 윤원형이 세도를 부리는데, 나라에 돈이 남아돌 리가 없었다.
명종의 군사 개혁은 국고의 부족과 외척의 전횡, 그리고 사림의 반대로 시들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무렵.
엄청난 소식이 들리게 된 것이다.
“뭐라고? 명나라에서 왕직을 토멸했단 말인가?”
“왕직은 도망갔으나, 그 해적단은 궤멸한 것이나 마찬가지랍니다. 명나라에서 사정거리가 긴 대포를 쏘니, 예상도 못 하고 당했다는군요.”
왕직이 누구인가.
그는 명나라인이었으나, 왜구와 어울리던 자.
저번 을묘왜변에서 선두에 섰던 해적이었다.
명종은 이 소식에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역시, 명나라에서 좋은 총통으로 대항하니 놈들도 꼼짝 못 하고 당했구나.”
명종은 총통 개량에 관심이 많았다.
다른 군 개혁은 실패하더라도, 좋은 성능의 총통만 있으면 왜구를 견제할 수 있으리라.
“그 좋은 총포를 우리가 마땅히 수입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이 총통은 명나라의 것이 아니랍니다.”
“뭐라고?”
명종은 바로 그날에 영국의 존재를 알게 됐다.
영국이란 나라가 가진 총통의 위력도.
그들이 좋은 대포가 썩어 넘치는 나라라는 것도.
마지막으로, 그들이 무역에 관심이 많다는 것까지.
“바다를 떠돌며 사는 자들이라면, 왜구와도 다툼이 잦겠구나. 우리 조선과 멀리 떨어진 나라이니, 조선에 큰 위협은 되지 못할 테고.”
자고로 원교근공이라 하지 않았던가.
명종은 즉각 이 영국이란 나라와 친해져야겠다고 결심했다.
“사절을 보내야겠다.”
사림을 설득하는 건 어렵잖았다.
이이제이는 오랜 묘리였고, 동맹엔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윤원형 일파도 침묵했다.
그들의 이익을 해치는 것도 아니잖나.
명나라는 난색을 보였다.
그들의 조공국과 타국의 외교는 쉬이 허락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에, 명종은 변협을 보냈다.
장흥 부사 변협.
그는 을묘왜변에서 최전선에서 싸운 장군이었으며, 왜구에게 잡혀있던 명나라 사람 다수를 구출하여 명나라에 돌려보낸 자였다.
명나라에서도 인정받은 장군이 나서서 자국을 침탈한 왜구를 막아준 영국에 인사를 보내겠다 하니, 명분으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영국이 명의 조공국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물론 명분은 명분일 뿐.
조선이 영국과 접할 수 있던 가장 큰 이유는-.
“정말 고려 인삼이 확실하오?”
“물론. 거래는 확실합니다.”
뇌물이었다.
이 시대 명나라는 엉망이었다.
가정제 휘하의 명에서, 뇌물로 안 되는 것은 없었다.
‘어떻게든 그들을 설득해, 대포를 한 포라도 얻어낸다.’
그리하여 변협은 부푼 꿈을 꾼 채, 마침내 영국에 입성하게 된 것이었다.